인터넷에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한 정보가 적지 않지만 대부분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당사자 입장이 배제되어 있다. 외부 관찰자의 시선으로는 한계가 있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다'는 표현이 많다. 게이를 앓는다거나 레즈비언을 앓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앓는다'는 표현 자체가 편견이다. 게이나 트랜스젠더를 치료해 보겠다고 덤비는 얼빠진 사람에 대해서는 질타하면서 아스피를 환자 취급하는데 대해서는 관대하다. 왜 일론 머스크를 치료하지 않나?
특히 어린이 아스피를 둔 부모와 상담할 때의 습관으로 성인 아스피를 바라보는 문제가 있다. 환아로 취급하는 것이다. 장애인을 장애우라고 낮춰 부르는 것과 같다. 내가 니 친구냐? 어른이 장애인 어린이를 친구라고 불러주면 대접해주는 말인데 성인에게는 그 반대가 된다.
아스퍼거의 본질을 모른다. 본질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는 호르몬과 관계가 있다. 동물은 누가 자신을 정면으로 쳐다보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장애인 안내견을 정면으로 쳐다보면 안 된다는 정도는 다들 상식으로 알고 있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스피는 누가 쳐다보면 무의식적으로 숨을 멈추어서 호흡이 안되므로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을 회피하게 되고 시선을 회피하다 보니 상대의 마음을 읽지 않게 되어 결과적으로 사회적 기술이 떨어지는 것이다.
아스피가 사회적 기술이 떨어지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호르몬 문제로 대인관계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본질을 간과하고 있다. 대개 원인이 아닌 결과를 보고 잘못된 해석을 하고 있다.
인삿말과 같은 의례적인 말은 감정을 끌어올리는 장치다. 아스피는 감정을 끌어올리지 않는다. 감정을 격발하는 방아쇠가 없거나 필요한 호르몬이 나오지 않는다. 특히 애매한 관계일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스피 어린이는 형과 놀거나 동생과 놀려고 한다. 역할이 잘 나눠지기 때문이다. 동급생은 역할을 차지하기 위한 기싸움을 하는데 그게 짜증나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과는 대화할 수 있다. 그 경우는 구체적인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할 말을 하면 된다. 친하지 않은 애매한 상태에서 관심사도 다른데다 서로를 제압하려고 하는 기싸움 행동에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말하기가 싫은 것이다.
일반인은 친구를 만났을 때 '야 이 씨뱅아. 이 새끼가 뒈지지도 않고 살아있네. 귀신이 너 안잡아가더냐.' 하고 일단 욕설을 해서 감정을 끌어올린다. 아스피는 반가운 사람을 만나서 왜 욕설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아마 전영록의 돌아이 시리즈 때문인듯 한데 한 때 모든 인간이 서로를 또라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이것들이 단체로 돌았냐?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아스피는 상황에 맞지 않는 엉뚱한 말을 하는 때가 많다. 몰라서 그런다기 보다는 말이 말을 물고 오기 때문이다. 저명한 음악가 앞에서 음이름이 어떻고 계이름이 어떻고 하다가 핀잔을 먹은 적이 있다. 감히 음악가에게 계이름과 음이름을 가르치려 드느냐는 식이다. 나는 그게 생각이 안 나서 말했을 뿐인데 말이다. 말하다 보면 생각나는 것이다. 지금도 헷갈린다.
아스피가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은 언어 자체의 결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렇게 말해야 말이 술술 잘 된다는 말이다. 불필요한 표현을 굳이 넣는 이유는 그래야 생각이 잘 되기 때문이다. 그냥 말하기 좋은대로 말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왜 자살하는지 이해를 못한다. 자살하는 이유는 죽을거 같기 때문이다. 당장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온 몸이 괴롭다. 고통이 계속되면 죽을 수 밖에. 모르는 사람은 저 사람은 대단한 용기가 있어서 자살한다고 착각한다? 자살할 용기가 있는게 아니고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있는 것이다. 아스피도 마찬가지다. 아스피가 왼쪽을 선택한다면 그 이유는 왼쪽이 좋아서가 아니라 오른쪽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아스피가 혼자 있는 이유는 혼자가 좋아서가 아니라 사람 많은 곳이 싫어서다. 괴롭기 때문이다. 괴로움을 피하다보면 혼자가 되고 혼자에 익숙해지면 그럭저럭 버티게 된다. 분명히 말한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아스피는 없다. 단지 대화가 안 통하는 사람과 서로를 제압하려고 기를 쓰고 신경전을 벌이면서 어색하게 공존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특히 백화점 같은 곳은 아스피가 아니라도 남자는 다 괴로운듯 하다. 여자들은 신이 나서 쇼핑을 즐긴다. 그런 우스개나 만화나 유머 이미지가 많다. 그곳은 내가 손대면 안 되는 남의 물건이 잔뜩 있고 바닥이 딱딱해서 걸으면 허리가 아프다. 점원들이 감시하므로 불편한 공간이다. 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면 데굴데굴 굴러보고 싶은데 백화점에서 그럴 수는 없잖아. 이케아는 좀 편하다. 소파가 많아서. 만약 내가 유명인이라면 백화점 바닥에 큰 대짜로 누워서 천장을 보고 싶다. 사람들이 어쩌나 보게. 기안84 정도면 흠.
20대 남자들도 식당주인이 아는척 하고 말을 걸면 다시는 그 식당에 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솔직히 짜증나잖아. 이런 문제가 유독 아스피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불편한 공간을 피할 뿐이다. 특히 이공계는 약간 그런 경향이 있다. 아스피 테스트 점수는 이공계가 더 높다고.
방해받지 않고 혼자 있으면 그럭저럭 견딜만 하다. 내 시간을 뺏기고 내 공간을 침범당하는 것은 큰 고통이다. 집중해 있는데 누가 말 시키면 솔직히 짜증나잖아.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어도 대화하기 싫을 때가 많고 대화하고 싶을 때도 먼저 말을 걸고 싶지 않다.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도 않고. 둘 다 말을 안 하면 어색하다.
말을 할 수도 있는데 에너지를 끌어올려야 한다. 빌어먹을 윤석열을 씹어준다거나 하면 분위기가 화기애애 해질 수 있다. 아스피가 말을 잘하고 싶다면 공공의 적을 발굴해야 한다. 아스피는 구조론 같은 특이한 것을 추구하므로 공통의 취향은 잘 발굴이 안되니까 공동의 적이라도 찾아보자.
일반인은 항상 감정이 업되어 있는 것 같다. 흥분해 있으며 에너지가 넘치는 것처럼 보인다. 호르몬이 많이 나오는듯. 그들은 화려한 리액션을 즐긴다. 아스피는 솔직히 리액션이 귀찮다. 저런 한심한 이야기에 억지로 동조해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건성으로 리액션을 하려니 더 어색하다.
일반인 '우와 대단하다. 죽이잖냐?'
아스피 '별거 아닌거 가지고 호들갑 떨기는. 미친. 지금 지구 온난화로 인류가 멸종할 판에. 유치한.'
아스피는 상처 주는 말을 쉽게 한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다기보다는 간만에 말할 기회를 잡았기 때문에 일단 말을 뱉고 보는 것이다. 학교 같은 시끄러운 공간에서는 가만이 앉아있는 것도 괴롭다. 그 상황에서 어쩌다 말할 기회가 주어지면 말하는게 먼저가 된다. 분위기를 맞춰주는 무의미한 말을 못하기 때문이다.
관찰해본 결과 인간들의 대화 중 90퍼센트는 헛소리였다. 헛소리를 하지 않고 참소리를 하면 냉정한 말이 된다. 그 말이 떠올랐고 아이디어가 아까워서 일단 말을 뱉고 본다. 뱉고 난 다음에는 후회한다. 그 상황에서 별로 좋은 말이 아니었어.
예컨대 이런 거다. "AB형이 원래 사차원이죠. 혹시 AB형 아니세요?" 이렇게 말해버린다. 사실은 상대가 AB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졸지에 상대방을 사차원 만들어 버렸는데 단지 그 표현이 재밌다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던 거다. 달리 할 말도 없고. 뭔가 임팩트 있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 미안하긴 하다.
조리있는 말은 곧잘 하는데 조리있는 분석적인 말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조리있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보통은 자기를 개입시켜 자기 감정을 근거로 말하는데 아스피는 감정을 끌어올리지 않으므로 대상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없거나 객체 자체에서 뭔가 근거를 찾으려고 하므로 객체를 요모조모 뜯어보고 비교하여 말하는 습관이 있다.
일반인 : 아무개 정말 멋지잖냐? 죽이잖냐?
아스피 : 걔는 항상 이렇게 하고 쟤는 항상 저렇게 하네. 둘이 정반대네.
결론적으로 아스피가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에 관심이 치우쳐서가 아니라 그 반대쪽을 피하다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다.
상처를 주기도 잘하고 받기도 잘하기 때문에 결국 사람을 피하게 된다. 사람이 싫은게 아니고 상황이 힘들다. 나의 이런 약점을 노리고 이용하려는 자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있었다. 그들은 동물적 후각으로 어수룩한 아이를 재빨리 알아보고 제압하고 괴롭히는 것이었다.
얼굴표정을 특이하게 짓고 눈을 야리고 치아 사이로 물총을 쏘듯이 침을 찍 뱉고 여러가지 특이한 기술을 보여주는데 그런 일에 젬병인 아스피 입장에서는 이 자가 지금 서커스를 하나 싶은 것이다. 정말 역겨운 짓이다.
아스피가 아니라도 조금씩 비슷한 증세가 있는 사람은 많은 것 같다. 나의 견해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돕기를 희망한다. 인간들이 그렇다. 좋은 친구가 없기 때문에 나쁜 친구를 사귀게 된다. 원하지 않게 흐름에 말려드는 거.
사는게 힘들었다. 휘파람 불기, 물구나무 서기. 훌라후프 돌리기, 손가락을 튕겨서 딱 소리내기, 풍선껌 불기, 껌 씹으며 딱 소리내기. 피리불기, 꽈리불기, 열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치기, 노래부르기, 국민체조 순서(음악이 나오므로), 총검술, 가지런하게 놓기. 이런게 다 안 된다. 고스톱을 치든 뭘 하든 잡기는 해봤자 지기 때문에 안 한다. 어릴 때는 앞을 보는 것도 귀찮아서 땅만 보고 다녔다. 시야에 뭔가 보인다는 사실이 생각의 집중을 방해한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 관찰하는 것은 좋아한다.
햇볕에 나가면 괴롭다. 빛 자극에 민감하다. 특히 오전에 땡볕에 나가면 속이 메쓱거린다. 항상 모자를 써야 한다. 선크림은 못 바른다. 얼굴이 따끔거린다.
고양이가 박스를 좋아하듯이 나는 좁은 통로를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아스피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지하철 머리칸부터 꼬리칸까지 괜히 가보기 재밌잖아. 나만 그런가? 하여간 민폐다. 학교다닐 때는 큰 길 놔두고 시장통으로만 다녔다. 동대문 밀리오레가 처음 생겼을때 대박날걸로 알았다. 두타는 망한다고 예견했다. 사람들이 다들 좁은 통로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착각인지도 모른다.
옛날에는 아스퍼거가 성격문제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성격개조를 한답시고 자녀를 웅변학원에 다니게 하거나 카세트 테이프를 사서 듣게 하는 사람이 있었다. 대략 뻘짓이다.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스피는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며 감정이 업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감정이 다운되는 것이다. 심하게 우울해진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일부러 찾아가서 문제를 일으키는 꼴통 아스피도 있는 것 같다. 유나바머는 상반되는 두 가지 행동을 동시에 하고 있다. 주목끌기와 은둔하기. 아스피도 내심은 주목 받고 싶다. 단 사태를 감당하지 못할 뿐이다.
일론 머스크가 12년 동안 같이 일한 여비서를 해고한 것은 그가 냉정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자기 공간을 빼앗겨서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본다. 임금문제는 핑계다. 누가 옆에서 감시하고 있으면 솔직히 짜증나잖아. 아니면 자기 마음을 못 알아줘서 스트레스 받았거나. 다른 이유가 있다. 12년 만에 용기를 낸 거. 냉정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나도 냉정하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지만 사실은 큰 고통을 피하려고 작은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가족들과 함께 학교를 방문하는 행사가 있었다. 아이들이 칠판에 글자를 쓰고 있다. 어머니는 내게도 써보라고 권했지만 쓸 수 없었다. 1. 다른 애를 밀어내고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2. 분필을 찾아야 한다. 3. 다른 아이를 곁눈질 하여 분필로 글씨 쓰는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해본적 없는 일을 갑자기 하라고 하면 어쩌나? 그럼 잘 하는 애들은 뭐냐? 그들은 눈치가 빠른게 분명했다.
내게는 너무 많은 장벽이 있는데 사람들은 장벽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다. 그냥 얘가 숫기가 없어서, 암되어서, 어리숙해서 그렇다고 한다. 장벽 1, 장벽 2, 장벽 3을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고. 내심 엄마가 분필을 찾아서 손에 쥐어주면 써보려고는 했는데.
윤석열은 기본적인 것도 안 되는 사람인데 그래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나 같으면 쪽팔려서 죽었다.
이런 이야기는 솔직히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아스피는 위험을 미리 예고하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일 수도 있고 신경과민으로 프로불편러가 되어 인류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외계인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