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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제가 듣고 녹취하였습니다.
자~ 그러면 입정 들기 전에 또 설명 안 할 수 없지요.
실은 설명할 수도 없고, 또 말할 수 없고
그다음 요리저리 따지고 생각 할 수는 없다.
말할 수 없으니 언어도단
요리저리 따질 수 없다 해서 심행처멸
그런 걸 왜 우리는 생각을 하고 말을 해야 되느냐
모르니까 할 수 있는 가 설명해줘야 되고,
설명이 뜻이 아니거든 또 모르니까 생각해야 되지 않나
생각 하는 것이 근본이 아니다.
우리가 공부를 한다. 마음을 닦는다.
공부라고 하는 거를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마음 닦는다 하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마음 닦는다 하고 반대로 마음 닦지 않는다고 하면
어떤 것이냐 반대쪽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거든
우리가 도를 깨닫는다. 도를 성취한다.
도가 도대체 뭐냐 도라고 하면 이미 설명이거든
도란 말이 도가 될 수 없잖아요.
그래서 그 도를 향해서 마음 깨닫기 위해서
도를 향해서 마음 깨닫기 위해서
마음과 도 이름이 다르다뿐이지 역시 뜻은 같다 이거라.
그렇게 도를 깨닫기 위해서 도를 찾고자 이렇게 온갖 노력을 하고,
생각도 많이 하고 책도 보고 여러 가지 쫒아 다녀 보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10년 20년 동안 헤매고 돌아다니고
연구하고 애를 썼지마는 얻지 못했다고 하면,
그 도라고 하는 것이 도대체 이렇게 돌아다니고
내가 근처에 가보지도 못하고 찾지도 못하고,
도라고 하는 것이 정말로 그런 것이 있는 것인가 의심나기도하다.
그러다 보면 선문에 책도 보면 마음밖에 도가 없고
마음 밖에 부처가 없고 마음밖에 진리가 없다고
이런 구절을 우리가 접해 볼 수가 있거든
그것이 결국 곧 마음이도요 마음이 부처요
마음이 진리다 이 말이 거든,
그 마음 안 가진 사람 마음 없는 사람 누가 있어요.
사람뿐만 아니라 벌레 짐승도 새들도 일체 생물들은 다 마음이 있다.
그래 부처님 말씀에 일체 중생이 라고 하면 사람뿐만이 아니거든 생명이 목숨 붙어 있는 것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그렇잖아요. 자기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이 세상에 태어났다 태로 태어났다 해서 태생, 또 알로 새들이나 여러 알로 나는 것을 난생이라고 하거든, 또 습기에서 나는 생물들을 습생, 또 딴 데서 오지 않고 자기 스스로 생겨나는 것이 그런 생물이 있어요. 그 화생이라고 하거든, 그래 4생이라 하거든 태생·난생·습생·화생.
우리가 예불할 때 삼계도사 사생의 자부라고 부처님을 우리가 그렇게 칭송하거든, 또 그다음에 유색 무색 모양이 있다 유색이거든 색깔이 있다 모양이 있다 이 말이거든 또 무색 모양이 없으니 색깔이 없다 생물도 유형도 있고 무형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물도 있다 이 말이거든 그다음에 유상무상 생각 감각 우리가 사람들이 지능적으로 요리저리 따지고 생각할 수 있는 유상 또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 무상도 있다 여덟 개아닙니까? 그 다음에는 비유상 비무상 생각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 없는 것도 아닌 그런 생물이 있다. 그래서 아홉 가지 구류중생이라고 한답니다.
이모든 구류중생을 하나도 남김없이 영원히 잠시 동안이 아니고 영원히 영원히 영구적으로 괴로움이 없는 가장 편안한 곳에 부처님은 인도 한다 이 말입니다.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 모든 구류 중생들을 영원히 괴로움이 없는 그런 곳에 인도하게 들어가게 한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했는데 실은 누구 한사람도 영원히 편안한곳에 든 사람 한 사람도 없다 이런 구절이 있어요. 가만 우리도 처음 책보면 다 고통 속에서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열반이라는 곳에 열반의 반대가 생사입니다. 생사 헐떡거리고 있는 이세계서 생사 없는 열반의 곳에 도피안에 저쪽언덕에 도달한다.
이쪽 언덕은 생사 중생세계고 저쪽 세계는 생사가 없는 열반에 영원히 편안한 곳에 우리가 건너간다 그러잖아요. 그래서 저쪽 언덕에 건너가기는 가는데, 실은 누구 한사람도 열반의 언덕에 간자는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부처님 말씀 따라 주지 않고 그런 것인가 그러면 고통 없는 세계 들어가게 한다. 고통 있는 세게 살고 있는 사람을 고통 없도록 해 준다 이 말이거든 그거는 사실이라 고통 없는 세계 들어간 사람 한사람도 없다.
그러면 고통 계속 안고 있는 것이 아니냐. 고통 없는 세계 들어가게 한다고 하는 내용이 여기서 저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고통 속에서 헐떡거리고 있던 내 마음이 부처님 말씀 듣고 깨닫는다. 아 고통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중생세계가 고통이 아니고, 어디로 갔던 내가 살고 있는 내 마음이 어리석음의 생각이 덜어 버리면 그것이 어리석음이 없어지면, 깨달음 지혜를 성취한 사람 어리석은 짓을 절대로 안 해요. 어디를 가든 사바세계가든 지옥에 갔던 천상에 갔던 어리석은 짓은 안한다.
장소로 옮겨 들어간 것이 아니라 성불이라고 하고 부처님이라고 하면, 우리를 떠나서 부처님 세계 부처님의 몸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우리도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지요. 부처님이라고 하면 우리 중생과 같나 깨달았고 광명도 신통력도 있고, 그런 분이 이 지구상에 지금부터 3천년 전에 요즘은 불기 2500년.. 전에 옛날에 우리 처음 들어올 때는 그때는 2900 얼마로 했어요. 그래서 세계적으로 통일을 해가지고 학자들이 모여가지고 2500으로 굳혀버리고 우리가 처음 들어 올 때는 안 그랬어요. 우리가 처음 들어 올 때는 그때 식으로 계산하면 불기3010년 넘었을 겁니다.
그 옛날에 인도에 석가모니라는 부처님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서 성불하신 분이 부처님이다 그이가 설해놓은 법문이 불법이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거든, 그때 제가 놀란 것이 불교 공부도 한 번도 안했는데, 처음에 출가했을 때 조그만 암자에 출가 했어요. 그래 대문 열고 딱 들어서니까 법당에 그 옆에 글씨 석자가 심시불 마음 이것이 부처다. 내 깜짝 놀랐어요.
아 마음이 부처다 나는 따로 부처님이 있고 이렇게 생각 했거든, 마음이 부처다 그때 깨달았으면 좋을 긴데.. 그래도 조금은 깨달았어요. 아 마음이 부처라면 우리 중생들이 다 부처님이다 이 말이구나. 마음이 있는 사람 이 말이 부처님이구나. 그까지는 이해를 했어요. 거기서 조금 깊이 했으면 확철히 그까지 생각 못했어요.
그래서 밖으로 부처 찾던 마음은 없어졌어요. 그런데 마음이 부처인데 왜 부처님처럼 지혜도 없고 신통도 없고 광명도 없느냐, 그래서 마음을 닦아야 된다. 또 이렇게도 생각이 하거든, 그래서 여러 가지 책도 보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 조금씩 조금씩 지식적으로 이론적으로 조금 조금 책으로 보니까 머리로 생각하라잖아요. 생각하다보니 염불도 하고 게송 외우기도하고 남보다 조금 알아지니까 제법 내가 부처님이 되어가는 것 같거든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제가 18살에 출가 했거든 누구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요. 나는 복이 없어서 배우는 스승을 못 만났어요. 절에 와서도 누가 있어야지 속가에서 제가 스승에게 배운 학문이라는 것은 일본에서 국민학교 배웠던 그 선생님만 스승이라 그다음은 혼자서 배웠어요. 해방되어 버리니 한국에도 처음 우리나라 해방직후의 모습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지금은 대학 안 나온 사람이 거의 없잖아요. 대학 안 나온 사람이 참 귀하지. 그때 학교 나왔다고 하면 모두 신기하게 생각하더라고 그래도 공부 하고 싶은 생각으로 절에 왔다 여러분 절에 오면 처음에 출가해서 공부하러 왔다 해서 가만 앉혀 놓고 밥 먹여주고 그런데 어디 있어요. 쌔가 빠지게 일도하고 나무도 하고 요새는 나무하는.. 낮에는 나무도 해야 되고 밭일도 해야 되고 청소도 해야 되고, 손님 오면 마중 나와서 밥도 채려주고 불공도해야 되고 이거 정신없어요.
책 같은 것 있으면 그냥보고 실력도 없는 실력으로 사전 같다 놓고, 글자 하나하나 주서 외우고 하다 보니 이때까지 속가에서도 듣도 보지도 못했던 글들이, 초발심자경문 수심결.. 수심결 보고 진짜 놀랬어요. 와 제가 18살에 출가 했는데 19살에 사미계를 받았어요. 어떤 내보다 나이 좀 든 중학교 졸업하고 제법 인테리라고 딱 붙잡아 앉혀놓고 내가 강의를 했어요. 그이가 깜짝 놀려더라고 속가에서 듣도 보도 못하던.. 그때는 누구 만나면 붙잡고 내 혼자 알기가 너무 아까워 이 좋은 것을 자기만 가지고 있으면, 남한테 노나줘야 이 보배를.. 지나가는 사람 붙잡아 놓고는 배우려고 하지도 않은 사람을.. 그래 스님 공부를 많이 하셨습니다. 대학자라 내 학자도 아닌데 처음에 그랬다고요.
그랬던 것이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내가 깨친 것은 절대로 아니야 좀 책자나 보고 글귀나 주서 외우고 그런 것뿐이지. 그리그리 하다가, 그 절에서 제가 도를 깨칠 때까지는 떠나지 않고 10년을 마음먹고 있으려고 했던 것이 그것도 인연이 그렇게 돼야지, 우리나라 해방 직후에는 지금도 그런가 모르지만 공산주의다 민주주의다 그런거 많았잖아요. 그래도 살아서 빨치산 부대라고 북한에서 정식으로 내려온 공산군이 아니고, 빨치산 부대들이 산에 설치고 그때 산중 절들이 굉장히 불안했어요.
그래가지고는 나중에는 거기서 소개하라 있지 못하게, 그래서 그때는 범어사가 큰절에 가까운데 범어사를 안가고 해인사를 갔어요. 해인사에 큰마음 먹고 범어사 보다는 깊은 산중이고 가지산속에 팔만대장경이라는 경판이 있다. 그때 무슨 마음을 먹었느냐하면 내가 해인사 10년 동안 공부를 해서 도를 성취하면 팔만대장경을 내 실력으로 모두 번역해서 세상 보게 하겠다. 그런 마음으로 먹고 간 것입니다. 절대 거짓말 아닙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되나 6.25전쟁이 일어나버렸다. 해인사 갔을 때가 20살이다 여러분 6.25전쟁 경험해 보신분이 있는가 모르지만 제가 금년에 88이거든 20살 때니까 68년 전의 일입니다.
해인사 승려들이 거의 다 잡혀갔어요. 죽은 사람 굉장히 많았어요. 내하고 몇 사람만 살아가 구사일생으로 돌아왔다. 그런 난리를 겪고 이 공부를 하려고 해도 공부할 시간이.. 만날 끌려 다니고 잡혀가고 도망오고 그리그리 하다가 다시 범어사로 피난 갔다가, 범어사에도 잡혀가지고 군대 훈련받고 이래 만날 전쟁 속에 살았어요. 그래도 마음속으로 공부를 해야 되겠다. 이거를 절대로 잊지 않고 그리그리 하다가, 나중에 23살 때 그때 처음으로 문경 원적사로 큰마음 먹고 우리가 이때까지 공부하려고 출가 했는데, 물론 공부할 생각을 게을리 한 것은 없었지만 늘 보면 잡혀가고 도망가고 그런 속에 정말 한결같이 마음을 정해서 해야 도를 성취하든지 만날 이리 끌려가고 저리 끌려가고 이러면 되겠느냐?
그래서 그해 가을에는 큰마음 먹고, 이때까지 여러분 다 공부하려고 애썼지마는 마음 놓고 할 기회가 없었다. 요번에야 말로 마음먹고 입에 숟가락만 놓으면, 일체 딴생각 안하고 가만 들어앉아서 공부하기로 하자 일체 잡답 못하게 하고, 그때 몇 사람 약속하고 그렇게 있었어요. 그때 제가 이 세상에 가장 신경 써보기는 그것도 오래한 것은 아니고 일주일 정도 밖에 없어요. 너무 신경 곤두세워 가지고 잘못해 병난다는 말이 절대 거짓말이 아닙니다. 병 안나는 것은 신경 곤두세웠기 때문에.. 편안하게 있기 때문에 병 안나는 것이지. 야 어찌 공부가 그렇게 어려운지, 잘못하면 그런 수가 있는지 정신적으로 이상자도 더러 생기기도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자기 혼자서 하는 것도 해야 되지만, 밝은 스승 있으면 일언지하 말 한마디에 깨닫는다는 말이 절대 거짓말이 아입니다. 일언지하에 한마디로 그러면 마음밖에 부처가 없고 마음밖에 도가 없고 마음밖에 진리가 없다고 하는 것은 결국 마음이 부처요 도요 진리요 이말 아닙니까?
그 마음은 도대체 뭐야. 자기 마음을 가지고 깨달아 보겠다고 자 연구하고 있는데 깨달아 집니까? 그러면 또 선문에 보면 심시불이다 마음이 부처다 이런 말이 나오지요. 그다음에 무심이시도라. 무심 무심이 도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무심의 반대가 뭡니까 유심 아입니까 유심이라는 거는 내가 앉아있든 일하고 있든 머릿속에 이러쿵저러쿵 온갖 생각하고 있는 것을 유심이라 하잖아요. 여러분 유심해 본적이 있지요. 화도 나고 욕심도내고 감정도 이게 전부 유심아입니까. 그거는 도가 아니다 그렇지요. 화내고 있는 거를 도라고 하면, 화가 사라지면 도가 없어졌다고 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래 무심이라는 정반대이다. 화도 안내고 감정도 내지 않고 요기저기 따지지 않는 것, 그런 생각 없는 것을 무심이라 이 말이지요. 이해되지요.
그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눈만 뜨면, 오늘 뭘 해야 되나 공부를 해야 되겠는데, 빨리 도를 성취해야 되겠는데, 장사를 해야 되는데 뭐 학교에 가야되는데 전부 유심아입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그거는 도라고 볼 수 없잖아요.
도는 그런 생각이 없는 자리, 유심과 무심을 비교해보는 겁니다.
우리가 유심은 다 알잖아요. 그래 무심을 대게 착각을 해요.
그러면 아무것도 생각 않는 것이 생각하는 것이 유심이라고 하면
무심이란 그렇지 않다. 요거저거 아무것도 생각지 않는 것이 무심이다.
그러면 눈감고 아무생각 안하면 무심이다. 생각하고 있을 때와 다르잖아요.
이거 무심이다. 요걸 도라고.. 그 도겠어요.
그런 사람을 무심병에 걸렸다. 진짜 무심이 아니라 무심이라는 상태에 사로 잡혀있다 이 말입니다. 정말 무심이라 하는 것은 그거조차 없는 것. 그런데 그 반대로 여러 가지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는 거는, 생각이 마음속을 가리고 있다. 이 말아닙니까? 유심이 가리고 있다. 마음속에 무엇이 가리고 있으면 제대로 보지 못하고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안보이고 안 들리고 모르는 것은, 뭐가 앞에 가리기 때문에 안보이고 안 들리고 모르는 것이다 이 말이지요. 맞지요 그거 덜어버리면 저절로 보이고 저절로 들리고 저절로 알게 된다 이 말입니다.
단디 들어보이소 우리가 예를 든다면 물체가 여기 있는데 딱 같다놓으면 누구든 볼 수 있잖아 눈에 보이거든 맞지요. 이게 안 보이는 사람은 눈 감으면 안보입니다. 그렇지요 자고 있으면 모른다. 또 깨고 있어도 딴생각하고 있으면 안 보인다 이 말입니다. 그렇지요 이 앞에 갖다놓고 딴생각 유심은 이거 볼 수 없잖아요. 맞지요 어려운 말이 한 개도..
유심이라 내마음속 생각 하고 있는 모습이 내 마음속에 떠오르잖아요. 서울모습 부산모습 또 자기 친구들에 모습이라면 마음속 친구들에 모습들이 마음속에 그림자들이 떠오르고 요것 때문에 이게 안보이잖아요. 그렇지요 그렇게 안하면 보인다 해서 눈감고 보입니까? 생각 안하고 있지마는 그래도 눈감고 있다가는 혼침에 빠지면 안 보인다. 눈 감지 말고 잠에 빠지지 말고 눈뜨고 있고, 눈뜨고 있으면서 딴생각 안하면 저절로 보이는 거 아닙니까.
딴생각하고 있으면 나와 이 물건 속에 생각에 온갖 그림자들이 오고가고 요거해야 되고 저거 해야 되고, 공부를 해야 되고 도를 깨달아야하고 진리를 깨달아야 부처님 찾아야 되겠다. 그거 생각하고 있으면 이게 안보이잖아요. 그렇지요 그러니까 다 털어버리라고 어떤 생각도 사로잡히지 말아라. 마음이 자기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아라. 마음으로 생각하는 놈이 아입니까? 생각할 때는 분명히 해야지 생각하더라도 생각하고 있을 때는 무심이 유심이라, 유심에서 무심으로 한번 돌아와 보라. 무심에 돌아와 보라 하는 것은 유심세계서 무심세계로 딱 이동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생각하던 것을 털어버리면 그만 아니냐 그렇지요.
털어버렸다고 하는 거는 털지 못해서 우리가 요것저것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가, 탁 털어버리면 생각 때문에 제일 가까운 것을 보지도 못했고, 가까운 소리도 못 들었을 거고 차로 마시더라도 차 맛도 못 느끼고 있었는데, 탁 털아 버리니까 입에 들어오고 차면 차고 뜨거우면 뜨겁고 종소리면 종소리고 앞에 산이 있으면 산이 그대로 보일꺼 아닙니까? 요거는 특별한 재주 기술 따질 필요가 있는 자연 그대로라.. 맞지요 이렇게 한번 해보십시오. 이게 어렵습니까? 말 한마디면 되는게 아닙니까?
일언지하에 그런데 우리는 자꾸 책자를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따지고 머리도 복잡한 거라 그러니까, 물에 파도가 파도도 물은 물이지마는 바깥에 모습들이 물에 비추는 모양에 파도가 출렁출렁 하늘에 보름달이 비추기는 비추지마는 보름달이 동그랗는데 파도가 치면 동그랗케 안 비칩니다. 길어졌다가 짧아졌다가 정체를 알 수가 없어요. 달은 동구라 변덕을 하지 않고 그대로 물에 비추지만, 물 자체가 파도치고 있으면 동그란 달이 동그랗게 보이지 않고 온갖 모습으로 바뀌잖아요. 그랬던 것이 파도가 나중에 자기도 모르게 싹 갈아 않았다고 봅시다.
파도 없는 물이 드러나면 거울과 같이 하늘에 보름달이 동그란 그대로 가장 정확하게 있지요. 그래 우리가 생각 속에서 보통 보고 듣고 느끼고 하고 있는 감정 속에서 듣다보니 기분 나쁘기도 기분 좋기도 하고 누가 욕하면 화가 나고 누가 칭찬하면 너무 좋아 엎어지고 자빠지고 야단이잖아요. 생각을 덜어버리면 욕했다고 뭐가 나쁘고 칭찬했다고 뭐가 좋을게 있느냐 그저 소리 지나갈 뿐이지, 그래 사람이 고통이니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털어버리지 못하고 거기 사로잡히고 느끼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때 부처님당시 때 누가 제가 자주 말씀드리지마는 중생이 우리가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게 어째 그렇습니까. 부처님께 물었더니 환경이 나쁘거나 주위 환경이 자기 뜻대로 안 되는 그런 것이 아니고 네가 생각이 짧아서 그렇다. 조금 깊이 생각해보라. 네가 안고 있는 고통이 도대체 뭐냐? 요것이 안돼서 요구대로 안 됐기 때문에.. 그러면 요거 손에 안 쥐기 때문에 괴롭다고 하면 손에 쥔 사람은 괴로움이 없겠느냐 찾아가 보라. 재물이 없는 사람 재물이 없어서 고통이고, 그러면 재물 있는 사람은 고통이 없다 이 말이 되고, 권력이 없는 사람이 권력 없어서 그렇다고 하면 권력 있는 사람은 괴로움이 없느냐. 다 재물 있든 없든 권력 있든 없든 지혜가 부족하면 없으면 없는 대로 고통, 있으면 있는 대로 고통이다. 지혜라는 거는 학문 지식이 아니다. 깊이 생각해보라.
고통의 내용이 뭐냐? 자기 요구대로 안돼서 그렇거든, 뭐 때문에 그런 요구를 하느냐? 돈이 없어서 고통이다 부자가 되었거든, 그럼 고통 없겠네요. 아니지요 이 돈이 없어질까바 잃어버릴까바 어디 가지도 못하고, 보십시오. 괴로움이라 하는 것은 쓸데없는 요구를 하고 있다. 쓸데없는 요구입니다. 필요한 것을 필요하다는 것은 뭐가 필요 하는 것입니까? 눈이 안보이고 귀가 소리 안 듣고 입에 차를 마셔도 차 맛을 못 느낀다고 하면 골란 하지마는, 누구든지 눈뜨면 보이고 귀가 막히지 않았다면 누구든지 들린다. 뭐가 부족한 것이 있느냐. 그래서 우리가 요구한다고 벌써 무심이 아니잖아요. 뭐 때문에 네가 요구.. 도가 어디 그런 것이냐.
마음 밖에 도가 없다 마음이 곧 도다. 마음이라는 거는 유심일 때도 있고 무심일 때도 있다. 무심이라 해서 무심만 지키고 있는 거 아닙니다. 일할 때는 오늘 작업을 뭐를 만들고 그렇게 연구를 해야 될 거 아닙니까? 연구할 때는.. 그렇지요. 그것이 마음의 기능입니다 목석은 생각 유심도 될 수 없잖아요. 생각 못하지마는 마음은 온갖 생각을 한다. 자유자재 하잖아요. 하고나면 탁 털어버리면 무심에 돌아가야 된다.
이때까지 화도내고 웃기도 온갖 감정을 누가 봐도 그건 무심이라고 볼 수 없죠. 저놈의 새끼 누가 봐도 얼굴이 빨갛고 그렇드라.. 탁 털어버리면 흔적 없다 무심이 되었다. 무심의 그 자리를 확인한 사람은 무심만 지키고 있는 거 아닙니다. 유심 탁 털어버리면 흔적도 없어요. 이것이 된다.
그래서 부처님 말씀에도 내가 오늘까지 49년 동안 말 한마디 설한바가 없다. 실큰 이야기 해놓고 왜 흔적도 없다 일반 보통사람은 무심에 이 자리를 확인 못한 사람은, 좋고 나쁜 일이 있으면 이미 지내갔는데도 좋고 나쁜 그 모습들이 마음속에 사라지지 않으니까, 무심이 될 수 없지 그게 앞에 가려서 답답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요 이 답답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괴로움에 벗어나게 하려면 어떻게 돼야 됩니까? 괴로움이 없는 곳에 인도해야 될 거 아닙니까? 그렇지요 인도.. 탁 털어버리면 그만 아니냐. 털어버리면 유심이란 마음이 무심에 돌아왔잖아요.
무심에 돌아온 것이 어디 유심의 세계에서 무심의 세계에 들어온 것이 아니잖아요. 맞지요 우리가 생각하기가 힘들고 괴롭지 뭣을 생각해야 됩니까. 자꾸 잊어버리고 잊어버리고 해서 생각 놓치지 마라 하라하라 하니 얼마나 괴로워요. 그것들 다 때려치워 버려라 다 집어 던져버려라 그러면 훨씬 수월하잖아요. 그런데 무심의 자리가 이거는 생각할 필요도 없고 안할 필요도 없는 자리입니다. 무심이라는 자리, 그것이 말로 설명할 수 없고 생각으로 할 수 없는 자리를 상대방에 느끼게 하려고 하니까, 좀 더 괴롭히는 수밖에 없는 겁니다.
고통스럽게 고통이라고 아무나 고통을 사서 할렵니까. 좋은 것이 있다 부자가 된다 금메달 딴다 도를 성취한다고 꼬아나야 해야 되겠다. 노력하는 거 아냐. 운동선수 금메달 따기 위해서 그렇고, 학교도 박사학위 따기 위해서 노력 하는 거고, 도를 얻기 위해서 고생 잠을 안자고 하는 거 그렇잖아, 좀 애를 메게야 되거든 그래야 뭐가 되지.. 그랬는데 도를 깨닫겠다고 딴생각하지 말아라. 일념으로 화두를 들더라도 염불이라도 좋다 일념으로 조금이라도 딴 생각 일으키지 말고 딱 해야 네가 원하는 도를 성취한다. 이 소리 듣고 딱 하는 겁니다. 이 도~ 금메달보다.. 뭐 재물이고 도보다 더 귀한 가장 높은 보배가 없다.
부처님도 도를 성취했기 때문에 성불한 것이다. 그 도를 내가 지금 목적으로 하는 것이니, 조금 고생하는 것은 참아야지 그렇잖아요 막 견딘다. 그래 그렇게 깨닫는 사람 몇 사람이 있느냐 참 드뭅니다. 만명중에 한사람 천명중에 한사람 혹시 그렇다. 그 선문에도 나옵니다. 그래도 밝은 스승이 있어서 자기가 노력하면, 스승은 이미 깨닫기 때문에 깨닫지 못한 사람의 상황을 들어보면 알아요. 그러니까 그때 방편을 설하든지 바로 일언지하에 한마디 딱 일러주면 괜찮은데, 자기 혼자 깨닫는 사람 거의 불가능이라 그래도 간혹 자기 혼자서 깨닫는 사람 더러 있어요. 그런 사람은 아마 만중에 희유다 그 부처님 같은 이도 누구에게 지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신라 때 원효대사도 보면 누구스승에게 배운 것도 아니고, 자기 스스로가 그런 사람 더러 있기는 있지마는 그런 사람 드물다. 그런 사람은 생이지지라 이 세상 태어나면서 벌서 깨달을 수 있는 소질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사람 조금 노력하면 자기 스스로가 딱 돌이켜 깨닫는다. 보통 그렇게 안 되기 때문에 반드시 스승의 지도로 말 한마디 들으면 깨닫는다.
그러면 보이소. 유심과 무심 마음이라는 것은, 유심 때도 있고 무심 때도 있지요. 피곤할 때도 있고, 즐거울 때도 있잖습니까? 마음이 어디 똑 같나요. 이 날씨와 똑 같애요. 날씨 어디 항상 개이고 항상 비가오고, 항상 구름 끼고 항상 바람 불고, 시시각각으로 바람이 있을 때 없을 때 비올 때 비 없을 때, 날 좋은날 날 나쁠 때 그렇지만 허공은 조금도 변함이 없어요. 그렇지요 마음이라면 우리 살다보면 재미있을 때도 재미없을 때도 기분 나쁠 때도 있잖아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그렇지마는 마음은 온갖 환경을 느끼고 하지마는, 마음은 한 번도 새로 생긴 일도 없어진 것도 더러워진 것도 깨끗해진 것도 없다 이겁니다 그것이 마음이다.
무심이라고 해서 가만히 아무것도 생각 않을걸.. 뭘 집으로 만들어야 되고 농사 질려면 생각해야 될거 아닙니까? 그렇잖아요. 무심이라 해서 벌레가 먹든지 말든지 나두고 그러면 되겠느냐. 그때는 약도 치고 하듯이 마음은 자유자재 하되, 사람들이 아깝게 하나를 놓치고 생각을 하고 있다 이 말입니다. 놓치고 그거만 확실하게 잡아놓으면 생각은 니가 알아서 해라 자유자재라. 생각을 능히 부릴 수 있다. 부리고 또 떨쳐 버릴 수도 있고 일반사람은 생각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 사로 잡혀버렸다. 그렇잖아요.
어떤 사람 괴로워 죽겠습니다. 왜 그러냐. 뭐를 잊어버려야 잊어버리지 않아서.. 마음속에 이 감정 이거 누가 가져가줄 사람 있으면, 가져가 달라 부탁하고 싶어도 이놈이 자꾸 안 사라집니다 이러거든.. 전에도 이야기 했는데 일본노래 우리말로 번역하면 슬픈 술이라 왜 술을 먹느냐 괴로워 죽겠다. 보통 화가 나면 한잔마시고 텔레비전 보면 그렇테요. 그러면 몸이 좋아집니까? 점점 망가진 줄 모른다. 곤드레만드레 해가지고 그래 술을 턱.. 술아 술아 니가 마음이 있다면 내 괴로움을 덜어 달라. 하고 한잔 먹었다. 먹으면 먹을수록 잊어버려야 할 물건이 점점 떠오른다. 이러거든 그렇잖아요. 그래 가만히 감정 아닙니까? 감정을 덜 줄을 모르는 겁니다.
그래 감정 더는 방법 지혜가 깨달아라. 어리석어서 감정에 사로 잡혀있지 그래 이것을 구체적으로 제가 설명한다면 자주 말씀드리지만,
달마대사에게 찾아왔던 혜가대사가 달마대사 만났지요. 달마대사께서 혜가대사에게
“너 나에게 뭣을 구하러 왔는냐?” 혜가대사가
“제가 지금 마음이 굉장히 불안합니다. 괴롭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음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안심법을 구하러 왔습니다.” 그래 달마대사가
“그대 마음이 불안하다고한다면 누가 너를 괴롭히고 있다 이 말이 아니냐. 그래 너를 괴롭히고 있는 그놈을 나에게 가져오라.”
“네 알겠습니다.” 하고서 자기를 괴롭히고 있는 놈을 누군고 하고 찾아보니, 앞 뒤 찾아봐도 없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요. 그래서 달마대사가 그 답이 나오도록 기다리고 있었거든 그래 혜가대사 아무리 연구해봐야 안 나오니까,
“스님의 말씀 듣고 막상 찾아본즉 조금 전에 분명히 답답하고 괴로웠는데 스님의 말씀 듣고 막상 찾아보니 흔적도 없습니다.” 그렇지요 달마대가사 그 말이 나오리라고 미리 짐작 했었겠지요.
“그렇다면 너 이미 불안에 벗어난 것이 아니냐, 안심법을 얻었다.”
“아 생각에 사로 잡혀있었구나” 생각 사로잡혀있으면 유심의 상태 아닙니까. 유심해놓고 왜 무심으로 못 되는냐? 탁 털어버리면 그만 아닙니까? 그래 생각이 그도 가져와보라, 답답한 생각 꽉 찼다 많이도 가져오지.. 한 개만 접시에 담아 가져와보라.
생각은 실제존재가 아니라 실제존재 지금 여기 책상은 실제 있기 때문에 우리가 걸려서 못나가지만 생각이라는 것은 실제가.. 아무래도 손이 받치지 않잖아요. 그래 실제존재가 아니고 그림자가 잠간 비치고 있는 거다. 뚫고 갈 수 있다. 거기 우리가 사로잡혀있는 겁니다.
너무 사로 잡혀버리면 앞에 이 물건이 안보입니다. 맞지요 그 살짝 생각돼바야 이 물건 보이잖아요. 물건이 보이던.. 생각이 비췄다고 요거 때문에 안보이고, 우리가 엎어지고 자빠지고 생각 일어나거나 관계없어요. 신경쓸거 없잖아요. 그래 망상 생각일어 나든지 말든지 나두라, 조용히 내 앞에 푸른산이 보고 있으면 온갖 생각들이 왔다 갔다 하지마는 푸른산이 내눈에 떠나지 않아요. 그렇지요 그런데 너무 생각 사로잡혀버리면, 그때는 푸른 산은 보지 못하고 그렇지요.
그래 마음은 유심 때도 있고 무심 때도 있다. 무심의체를 확인하면, 일상생활에 온갖 작업을 이리 하고 있지마는 다 끝나면 탁 털어버립니다. 어떤 생각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무심의 상태를 조용히 앉아보면 앞에 벽이 있으면 벽이 똑똑히 내 눈에 들어올 것 아닙니까? 이때 종소리 텅 나면 똑똑히 귀에 종소리가 들려올 거 아닙니까? 종소리 있다가 사라지지마는, 종소리 듣고 있던 마음은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고 생기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아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 무구무래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없다. 어디서 왔는냐 온 곳이 없고 어디로 가는냐 간곳도 없다. 마음은 불생불멸이라 아마 마음속에 온갖 생각들이 일어났다 사라졌다, 오기도하고 가기도하고 과거현재미래 따지고 있는 뿐이지, 마음 자체는 과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다. 모든 시간 포용하고 있는 것이 마음 그렇지요. 또 마음을 생각 이러쿵저러쿵 온갖 생각 생각을 생사라고 합시다.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다. 생사는 일어났다 사라졌다 움직이는 것은 용이라고, 하고 용이 뭐냐 파도가 움직이고 있다. 파도가 사라져 버리면 파도는 없지만 물만 남잖아요. 물을 열반이라고 합시다. 파도를 생사라 합시다. 생사라는 파도라는 물하고 파도 없는 물하고 둘입니까? 한 놈이 아닙니까? 움직일 때도 있고 움직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지요 생각하려면 할 수 있고 탁 털어 버리면 생각이전에 체에 돌아온다.
맞지요 그런데 우리가 보통 뭐냐 하면, 사람들이 이 몸은 자기 주인이 아닙니다. 이 지수화풍 사대라고 하잖아요. 마음이 어떻게 생각하는냐에 따라 몸이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지 그렇지요. 마음 편안하게 일체 장애물이 없으면 몸에 모든 것이 장애물이 없이 혈액순환 모든 것이 소통이 되야 되고, 나쁜 거는 바깥에 내보내 버리고 없는 거는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 몸에 구조.. 쪼개보면 없지마는, 마음 작용하나 어떻게 생각하는냐에 따라 몸을 도와주는 물질이 나오고, 또 생각이 이상하게 잘못하게 되면 몸을 괴롭히는 해되는 물질이 나옵니다. 의사들도 이야기 합니다.
그래 보니까 일체유심조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제가 자주 말씀드리지요. 일을 열심히 했다 병난 사람 몸이 건강하고 같은 일을 하는데 하나는 병나고 하나는 건강하다. 왜 하기 싫어 억지로 했거든, 그렇지요 하나는 즐겁게 했다. 즐겁게 하면 병이 안 납니다. 좀 피곤할 뿐이지 하기 싫으면 조금해도 속이 틀어지고 그래 병신이라.. 일을 해놓고 병까지 얻어놓으면 어떻게 하느냐. 물질도 그렇다 도둑맞았다. 도둑맞았다면 기분 좋은 사람 하나도 없거든 그렇지요. 어떤 사람은 굉장히 즐거워.. 왜 도둑맞았나 내가 일부로 내발로 수고해서 보시하러 가는데 내 앉아서 저놈이 나를 보시하게 해줘서 굉장히 고맙다. 인사를 하거든. 그런 사람 병나겠어요. 어차피 물건은 가버렸다. 마음가버렸으면 물건 떠난 것을 억울하다면 마음까지 괴로우면 더 억울할 거 아닙니까. 물건이미 갔고, 아~ 보시 잘했다 하면 병은 나지 않을 꺼 아입니다.
그래 일체유심조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용심을 일상생활에, 깨달은 사람 그때그때 생각할 때는 부지런하고, 생각하지 말아야 그걸 알고 하는 것입니다. 무심자리 가만히 지키고 있는 거 아닙니다. 요때는 무심상태에 있어서 안 되고 신경 곤두세워 살펴보라. 뭐가 고장이 날줄 모른다. 그렇잖아요. 차 운전할 때 무심이 가만히 있다가 텅 받아버리면 어찌됩니까. 와~ 조심해라 눈을 곤두세우고 그런데 그렇게 할 때도 무심코 있다가 턱 졸아버리고 편하게 있을 때 쓸데없는데 신경쓰다보며 뭡니까 신경 감지 되가지고 사고를 일으키고 있다.
그러니까 깨달은 지혜 있게, 요때는 움직일 때고 요때는 움직여서는 안 되고, 요때는 긴장해야 되고 요때는 마음 푹 자유자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육신이 증거입니다. 몸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한 10년 전에 그 사람 몸이 형편없었는데, 몸도 유연하고 부드럽고 얼굴도 화색도 있고 뭐를 잡샀습니까? 세상사람 뭐먹고 좋은 줄 알고 아 좋은 거 묵었지. 뭡니까. 부처님의 반야지혜의 국물을 얻어먹어서 그렇다. 그 나한테 한 그릇 노놔 주시오. 얼마든지 네가 안 가져가서 그렇다. 니 속에 있는데 남에게 구할 것이 아니다.
그래서 유심과 무심을 우리가 보통 무심 아무것도 생각안하고 있으면 졸고 있고, 잠자고 있으면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무심이라 할 수 있거든.. 그리 무심이라고 가리고 알지 못한다. 소리가 난 것도 모르고 앞에 물건 온 것도 모르고 찬바람 분 것도 모른다. 마음이란 것은 영특해서 거울에 물체가 오면 그대로 비추듯이 마음이 그렇지 못한 마음은 뭐가 가리고 있는 거라. 감정이라는 그늘이 또 잠이라는 혼침 이 두 개가 없으면, 마음이 신령스럽게 알고 있다.
신령스럽게 알고 있다 해서 영지 소소영영 맞지요. 그래서 화두를 열심히 열심히 하다 나중에 기진맥진 생각 놓치면 안된다 해서, 계속 뭐 화두를 들고 있으면 탁 일념으로 따지지 말고, 그대로 알고 싶은 그 알고자 하는 의욕 하나만 밀고 나가다나가다 보면 너무 이것이 지나치게 하면 병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그거를 주의해라 신병날정도로 그때는 너무 느리게 하면, 잠이 오고 이거 굉장히 조절하기 힘들어요.
그렇게 지극히 아무리 연구연구 연구해도 알아지지도 안하고 깨닫지도 않하고, 그렇게 애를 맥이야 되는 깁니다. 애를 맥이지 않고는 못 알아차리니까 나중에는 더 이상 생각할 수가 없어요. 기진맥진 앞으로 나갈려야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포기 할려.. 후퇴도 못하고 진퇴양난 속에 딱 빠져버립니다. 그기 묘한 자리입니다. 그런 속에 가만히 있다가 그때 누가 자극을 주어야 됩니다. 그때 손가락 하나 탁 튕기면 된다했어요.
경허스님도 제가 자주 말씀.. 아무리 생각해도생각해도 그러 간절한 생각으로 해야 되는 것이지, 심심풀이로 해볼까 그런 장난 심으로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정말로 기어이 해내야 되겠다는, 주먹을 쥐고 이런 결심으로 가진 간절한 사람만이 된다고 하는 것이거든. 그렇게 아무리 연구해봐야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지 생각안하고 있는지도 모른 지경으로 그렇다고 해서 포기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간절히... 그런데 갑자기 바깥에서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거든 코구멍없다. 없다 소리에 딱 깨달아버린 겁니다. 없다 소리에 희안하지요.
어떤 사람은 배고플 때 밥 먹을 줄 알고 목마를 때 물마실줄 알면 된다. 그런 소리 항상 듣고 있었어요. 그런데 가만.. 깊이 생각다가 모든 생각 털어버리고 정말 이렇게 어려운 것이 다른 것은 될 수 이것처럼 어려운건 없다. 가만히 생각하고 있다 나중에 모든 생각 집어던져버리고 잘못하다 병날 지경이 됐기 때문에 요 이상하다가는 내가 정말 병나겠다 싶어서 일단 몸을 회복시켜야 되겠다 해서, 탁 털어버리고 아무것도 생각안하고 조용히 눈 감지 않고 가만히 그것이 10분 30분 1시간 그러다 보면 옛날에 들었던 이야기가 머리에 떠오른다. 사람이 배고플 때 밥 먹을 줄 알고 목마를 때 물마실줄 안다. 그 소리에 탁.. 그러면 그거 모르는 사람 누가 있어요. 찬바람 불면 누구든지 찬바람인줄 알잖아요. 그럼 내가 지금 앉아있으니까 아무생각.. 방안에 있는 아 이것이 내가 찾고 있던 그기 무심경지입니다.
그 많던 유심에서 이 생각생각 생각에서 차차차차.. 마지막까지 한생각도 염도염궁무념처 생각하고생각하고 생각하고 그다음에 염궁 아미타불 부르드라도 하고하고 염궁 다할 궁자입니다. 생각 없어 졌다. 그렇지요. 유심이 무심으로 돌아왔다. 거기서 보니까 눈으로 보는 것이 빛이요 귀로 듣는 소리요 코로 맞는 냄새요 입에 들어오는 모든 맛이 그대로가 진리다.
그러면 그 자리 와보니 얻은 것은 한 개도.. 본래에 들어온 것이지 찬줄 알고 더운 줄 아는 이거 모르는 사람 누가 있어요. 그걸 얻었다고 하면 됩니까? 그거 본래 있던 것이지. 근데 그거를 모르고 헤메고 있는 것을 일어버렸다고 하는 거고, 그거 알아차린 것을 얻었다고 하는 것뿐이지 실제는 얻은 것이 없잖아, 얻었다고 하는 것은 얻은 것이 없는 줄을 알아차린 것을 얻었다.
반야심경에 특별한 지혜도 없다. 무지 또 얻을 것도 없다. 찬줄 알고 더운 줄 아는 이 이상 얻을 거 없다. 그기 알아차린 것이 깨달은 지혜 거기 의지한다. 일상생활에 배고플 때 밥 먹으면 되는 거고, 목마를 때 물마시면 되는 것이지 뭐 불평불만 있습니까. 일할 때 일하면 되는 거고 피곤하면 쉬었다가.. 특별한 것이 뭐 쫒아내 버리고 새삼스레 구할 것이 없다. 그래 이제 환하게 열리거든 불안한 것이 없다. 앞에 가린 것이 없기 때문에 불안함이 없다 무유공포 원리전도 엎어지고 자빠지고 하는 그런 거 영원히 덜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성불하는 성불은 그렇게 해서 성불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통 유심이라고 하면 이게 앞에 물건이 보이는데 딴생각 하고 있으면 보이지 않지요. 그러니까 무심이라 아무생각 안하고 눈감고.. 그건 무심이아니라 혼침이다. 참된 무심은 유심 때문에 보지 못하는 앞에 가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못보는.. 없어져 버리면 앞에 보인다. 그렇지요. 그기 무심이다. 너무 싶지요 그럼 한 생각 돌이키면 된다.
임재록에도 그런 말이 있거든 임제선사가 대중들에게 내가 너희들에게 내 입에 신물이 나도록 이야기 해주고 있다. 쓸데없는 짓 하지마라. 너희들이 구하고 있는 도라고 하는 것은 우리 도 한가운데 요기서 일어나기도 하고 않아있기도 하고 엎어지고 자빠지고 하고 있으면서, 요거를 하나도 눈치 채지도 못하고 도를 찾고 진리를 쫓아다니고 있다 이 바보들아. 그런 말이 있거든 뭐가 부족해서 구하고 있노, 배고플 때 밥먹을줄 알지 목마를 때 물 마실 줄 알지 한번도 숨을 멈춘 적이 있나 이기라 지금도 역역히 팔닥 팔닥 고기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지 않나, 이거를 못 알아차리고 있다 이 멍텅구리야. 그런 말이 있거든 생각 안해도 아무 생각 안 해도 찬바람불면 저절로 알잖아, 이거니 마음 아니고 이거 빼놓고 뭐를 쫒아 다니고 있느냐. 그래 금강경에도 그런 말이 일체생각에서 벗어난 사람, 일체생각에서 사로잡히지 않는 자가 부처님이다.
우리는 생각하면서 생각에 사로잡히고 있어요. 누가 욕했다 해서 욕했다 소리 들으면 입을 다물고 가버리거든, 그럼 나는 기분 나빠도 동시에 없어져야 될거 아니냐? 그런데 요새는 .. 그거 뭐 보배라고 사로잡히고 있나 그러 집어던져버리지. 가만 생각해보니까 아 우리 어리석었구나. 그러니 어리석은 줄을 알았다. 알아차리면 기분이 나쁠 때는 욕할 때는 좀 기분이 나쁘지마는 내가 공부가 덜됐기 때문에 욕하면 기분이 별로 안 좋다 이거라 딱 다물어 가버렸거든, 동시에 기분 나쁜 거 없어야 될 거 아니냐. 그렇게 안 되는 거는 네가 쓸데없는 생각에 사로 잡혀있다. 환상에 사로 잡혀있는 겁니다.
모든 사람들은 환상에 성불이라는 환상 도를 깨달아야 되겠다는 환상 모든 진리라고 환상 모든 그런 환상이 없는 것이 진리요 도요 그기 불법이다. 맞지요. 이제 무심부터 확인해 봅시다. 무심에서 김치도 담고 간장과 소금 이거는 생각을 해도 마치면, 딱 무심의 경지에 돌아와야 된다. 하다가 어떤 놈 이야기 할 때는 기분 나빴지마는 다 털어버리면 기분 나쁜 것도 하나도 없잖아요. 오히려 기분 좋아 욕도 참잘하드라 오히려 구수하게 들리드라. 벌써 1시간이 그러면 잠시 제가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알아차리고 못하는 것은 여러분의 목입니다. 그까지 나에게 따지면 곤란하지요. 자 그러면 무심상태 돌아갑니다.
-입정-
임재록 한 구절에 보면 불법은 깊고도 깊고 하지마는, 어렵긴 어려운데 일단 손에 딱 넣어버리면, 그 다음 부터는 니가 알아서 해라. 딱 넣어버리면 일상생활 줄줄줄.. 깊고도 깊고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미치지 못하게 깊다. 그래도 일단 딱 알아차리면 그 다음부터는 니 알아서 해라. 않던 섰던 갔던 떠들든 뭐를 하든 구애가 없다 자유자재라. 그래 제가 한가지 생각난 것이 차 마시다 우리끼리 이야기 했는데, 옛날에 지금보다 돌아가신 경허스님의 제자 혜월스님이라고 글자 한자도 몰랐어요. 무식하고 글자도 모르고 그이가 도를 깨닫고 부산 선암사, 지금은 선암사라면 그때는 선암사가 서면서도 숲속으로 깊은 산중이었어요.
그때 왜정땐데 일본 육군 장교가 육군대위라고 칼을 차고, 일본 군인들을 보면 불교 중에서도 선승이라면 굉장히 찾아갑니다. 불교 학자들은 좋아 안 해요. 선하는 선승이라면 어디 먼 곧이라도 찾아가서 친견하고 법문도 듣고 그래요. 한국에도 그런 선지식 계신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왔어요. 그래서 일본 자기부하 몇 사람을 거느리고 혜월스님이라고 선지식 찾아 왔어요. 그래 혜월스님
“누가 찾아왔느냐?” 일본군 장교가 왔다
“뭐 때문에 왔느냐?” 큰스님 뵈러왔다.
그래 만났다. 그래서 일본군인 장교가 칼을 차고 있거든
“저에게는 이런 칼이 있습니다. 스님에게도 이런 칼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거든, 그래 혜월스님이 일본말을 모르잖아요. 경산도 말로
“뭐라카노” 자기 “이런 칼이 있는데 스님도 칼이 있느냐?” 묻습니다. 그해 혜월스님이
“치워라 치워라” 일본군인도 그 말을 모르고 그거 무슨 말이냐? 그래 치워라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라 이말이거든, 치아라 치아라 뭐 자기한테 칼이 있다고 자랑하느냐 치아라 치아라
그런데 일본 군인이 “그래도 칼 보여 주십시오” 이렇게 나왔어요. 한걸음 더 나왔어요.
그래 해월스님이 가까이 오더니 볼 태기를 한발때기를 확 때렸어요.
그래 장교 부하들이 이 혹시 또 군인을 치는가보다 혹시 일본을 반대자들..
군인들이 나서려하니 장교가 부하들을 막으면서
“너희들이 알바가 아니다. 너희들은 이 소식을 모른다.” 그래서
“스님의 칼 맛을 잘보고 갑니다.” 하고 가드라는거요.
혜월스님이 “야 그놈이 진짜 칼 맛을 보고 간 놈이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마라. 뭐 목탁이고 진리고 부처님이고 밥이나 제대로 먹어라 이 말입니다. 이게 선의 기질입니다. 뭐 쓸데없는 잠꼬대하고 있나, 눈은 제대로 보고 그기 심시불이다 무심이라 그 말이 이거든, 이기 산불교입니다. 산소식이다 죽은 소식이 아니다. 그래 할구 소식이라 하는 겁니다. 문자 사로잡히지 마라. 뭐 이렇게 따지고 있느냐. 오늘 요까지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