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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하늘길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제 1차 백두대간
1) 언제 : 2014,6,27~28일(1박 2일)
2) 어디를 : 지리산 종주길을 걷다(16시간, 1박 2일)
성삼재~반야봉~삼도봉~영신봉~촛대봉~천왕봉~중산리...33.26km
3) 누구와 : 홀로 걷다
4) 산행 이야기 :
나는 신년초에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꼭 하고 싶은 일을 열가지씩 적어서 실천 해 보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금년(2014년)에 하고 싶은 일, 십여가지 중에 하나는 지리산 골짜기를 열번정도 탐방 하는 것이고 지리산 천왕봉은 3회 이상 오르겠다는 것이다.나는 전남 함평에서 돼지농장을 한다.그래서 계획을 잘 세우면 시간적으로 산행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있었다.나의 가족이 살고 있는 광주에서 지리산 자락까지는 80km정도의 거리여서 쉽게 지리산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나의 돼지농장은 금년 봄 유행한 돼지 설사병(PED)이 발생하여 상당한 피해을 보았으며 농장일과 더불어 다른일들도 바빠져서 상반기에 제대로 산행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어느정도 회복이 되어 그리운 지리산으로 달렸다.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이 가슴을 적시고 때로 심장이 펌프질 하는 순간의 쾌감을 느끼고 싶었고 좋아하는 마루길을 한 없이 걷고 싶어 지리산 종주길을 나섰다.첫날 노고단과 삼도봉을 거쳐 벽소령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둘째날은 촛대봉을 넘어 제석봉과 천왕봉에 오르고 하산하는 길은 법계사을 지나 중산리로 하산 하였다.
사진과 함께 기억하는 것들을 써 본다.
(지리산 종주를 위한 베낭을 꾸리고)
지리산를 갈 때면 하루전부터 기분이 설래인다. 그래서 베낭을 꾸리는것 또한 즐겁다.
어릴적 소풍가기 전날 같은 들뜬 기분이며 젊은 청춘이 애인을 만나러 가는 그런 기분이다.
새벽 5시 출발 준비을 마치고, 광주 유스퀘어(광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구례행 버스를 탔다.
아내는 혼자 가는 것이 무척이나 부담스럽나 보다. 그런데 생각 해 보고 또 생각 해 봐도
혼자 가는 것이 편한것을 어떻하랴 ~
한 10년후 다리에 힘 떨어 질 때 자연스럽게 누구와 동행을 하면 좋겠지만
아직은 혼자 걷고, 혼자 느끼고 때로는 버려질 망상도 하며,더러는 생각을 집중하고 싶었다.
버리고 비울 수 있다면 거침없이 내려놓은 용기도 가져 보고 일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이른새벽 물 안개피는 섬진강)
구례행 버스는 곡성읍내를 지나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달린다.
버스에서 창밖의 섬진강물을 본다. 섬진강의 새벽은 차고 정갈했다.
새벽안개가 걷히는 섬진강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물안개가 피어 올라 강물이 하늘로 흐르는 모습이다.
물은 높은곳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지만 안개낀 새벽에는
물이 수증기로 변하여 하늘로 오르는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아침이 열리는 강줄기를 보면 나는 새벽의 엄숙함를 진하게 느낀다.
이 강가에 터를 잡아 살고 있는 친구가 있다.그 친구도 이렇게 나처럼 좋을까?
오늘 광주시 광천 터미널에서 6시35분 출발하는
구례행 첫 버스에는 등산객들이 많지 않았다.국가대표 축구경기 때문일까? 모르겠다.
오늘 새벽에 브라질 2014년 월드컵 예선 마지막 경기인 이란과의 경기시간이지만
나는 중계방송 보기를 포기하고 떠난 것이다.
구례읍 터미널에 도착하여 택시을 타고 성삼재에 오른다.
이른 아침 지리산 성삼재 주차장은 아직 조용하다.
성삼재는 삼국시대에 한 어머니가 성이 다른 세아들을 가졌는데
그 세 아들이 장군이 되어 성을 지킨 성터이다.
(어린 두아들과 지리산 종주하는 가족)
8시 50분 성삼재에서 산행을 시작하는데 어린 두 아이를 대리고 온 멋진 아빠를 만났다.
그분께 "어디까지 가시나요?"라고 물으니
"종주 합니다. 벽소령에서 숙박 할 겁니다 " 라고 한다.
" 애들아 너희들 멋지다"라고 말하고 지나쳤다.
저 아이들은 평생 죽을때까지 오늘의 이 산행이 기억에 남을것이다.
나는 이 가족의 산행이 무탈하게 지리산종주 하기를 바랬다.
모험적이고 교육적이며 낭만이 있는 훌륭한 아빠다.
나는 큰아이가 초등1학년이였고 작은애가 5세였던 어린 유치원시절
겨울눈이 수복하게 쌓인 어느 겨울밤 새벽 일출을 보겠다고 온 가족을 데리고
어둡고 깜깜한 밤에 영광 불갑산 연실봉에 오른적이 있다.
장성한 딸들은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도 가끔 그때의 이야길 하곤 한다.
당시 아이들에겐 좀 무모한 겨울의 눈길 산행이였지만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는것 같았다.
노고단 대피소 아래 무넹기를 지난다.
노고단 대피소와 종석대사이에 이르면 시원한 계곡물 소리가 들리는데 이곳이 무넹기이다.
무넹기는 노고단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를 경상남도 마천 사람들이 호남의 구례사람들에게
물줄기를 보내주는 인공수로이다.
무넹기 수로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르지만 영남과 호남이 화합하는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40여분 쉽없이 걸어 노고단 삼거리에 도착하고 잠시 숨을 고른다.
(노고단 삼거리, 이곳에서 천왕봉까지는 25.5km)
장성한 두 아들과 같이 오신 60대부부는 노고단 탐방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모습이 아름답다.
그 아들에게 사진을 한컷 부탁하고 나는 지체 없이 다시 걸었다.
혼자 가는 길은 혼자서 결정 할 일이니 편하고 쉬웠다..
날씨는 한 없이 좋은데 햇빛이 조금 따가웠다.
물은 임걸령 샘터에서 보충 할 생각이여서 빈 물통인채로 걷는다.
지리산은 자연샘이 많아 식수를 많이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6월의 신록)
나는 이런 6월의 푸르름이 좋다. 숲의 냄새도 좋고 신선하다.
6월의 신록은 나름 무성하지만 여린숲이다. 나는 그런 여린 녹색이 주는 편안함이 좋다.
그러나 마루길 숲과 계곡의 숲은 조금 다를것이다. 지난 여름 뱀사골 계곡의 울창한 숲과
묘향대 아래 하늘을 가려버린 원시림은 진하디 진하고 깊은 숲이였다.
1시간 넘게 걸었다. 멀리 왕시루봉 마루능선이 보이는데 안개 때문에 왕시루봉이 더
멀게만 느껴진다.저 산마루는 지금 휴식년 지역이지만 산꾼들은 살짝살짝 다니는 모양이다.
지리산만을 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옛길을 더듬어 걷는 사람도 있고,
다향한 형태로 자기만의 취향으로 사람이 오지 않은 곳들만 골라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지리산은 큰산이다. 지리산은 3개의 도(道)와 5개의 군(郡)과 15개의 면(面)으로
둘러 쌓여있는 산이니 크고 높은산이며 넓은 산이기도 하다.
지리산에는 둘래길이 있는데 지리산 자락을 22개 코스로 나누어 산자락을 넘나 들고
마을을 연결하고 개울과 들판의 길을 이으며 걷는 편안한 길이다.
요즈음은 그 둘래길를 걷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지리산을 좋아하는 사람중에는 태고적부터 현재까지의 지리산 역사와 지리산 문화을
공부하면서 다니는 학구파도 있고 지리산 문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도 있다.
부산출신 이광전씨는 2008년에 생애 지리종주를 200회씩이나(부산국제신문참조)했고
이제 고인이 되신 함태식선생은 평생을 지리산에서 지리산 산장(지금의 대피소)를 지키며 살았다.
그렇게 지리산은 많은 사람들이 삶과 사랑을 나누는 산인 것이다.
나도 일을 그만 두고 은퇴하면 지리산 자락에 살고 싶었다.
그래서 실제 내가 살고 싶은 마을들을 탐방한적이 여러번 있었다.
그중에 대성골 의신마을 자락에 살면서 명성봉과 삼도봉을 올라 다니며 살아 볼까?
화개면 쌍계사 아래 화개동천 마을에 터 잡고 살면서
날마다 불일폭포에 다녀오고 야생화를 보며 살아 볼까?
아니면 하동 악양면 형제봉 아래 살면서 지리산 학교 교우들과 인정을 나누며 살아 볼까?
이런 저런 생각들 해 보곤 했었다. 생각은 자유 였으니 생각만으로도 행복했다.
(지리산 임걸령 샘터)
반야봉 아래 임걸령 샘터에 도착했다.
임걸령 샘터물은 존재하는 모습도 물의 수량도 항상 그대로다.
2시간 쉼없이 걸어서 갈증이 났고 임걸령 샘물은 오늘도 무척이나 시원하고 달다.
주변 바위에 잠시 앉아서 쵸코렛로 당을 보충하고 쉰다.
(울타리를 수선하는 국립공원 직원들)
국립공원 공단직원 4명이 낭떨어지 바위가 있는 위험지역에서 나무울타리를 수선중이시다.
나는 젊은시절 한때 이분들을 부러워한적이 있었다. 날마다 산에 사는 그들이 부러워서 그랬나보다.
유람 삼아 가끔 오는 나와 직업적으로 임무을 수행하는 그들과 비교할 수 없는 일인데
그렇게 생각했던 내가 우스웠고 수고하시는 이분들이 고맙다.
그리고 다시 도착한곳은 멧돼지의 놀이터 돼지평전이다.
지리산 산마루 주위에는 평원이 많지 않는데 나름 평평하고 너른평원이 몇군데 있다.
이곳 돼지평전과 세석대피소 위의 세석평전 그리고 세석습지가 그렇고 불일평전 등이 그렇다.
불일폭포 아래에는 소설가 정비석님이 경치에 반하셨다는 불일평전이 있다.
그곳은 수 많은 야생화가 있어 놀라운 주변운치는 한번쯤 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런곳에서 시(詩)를 쓰고 소설을 읽으며 그림이라도 그리면서 살면 인생이 이쁠것 같았다.
평전은 나름 각각 풍기는 품위가 다르지만 이곳 돼지평전도 나름 운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11시 50분 반야봉 아래 노루목에서 잠시 쉰다.
여기까지는 반야봉 탐방때 자주오는 곳이기도 하다.
반야봉 아래 노루목은 노루가 다니는 길목인지, 노루의 목을 닮은곳인지 모르겠다.
(반야봉 아래 노루목에서 쉬고 있는 모습)
이곳에서 1km 오르면 반야봉인데 반야봉(1,732m)은 지리산의 중앙에
사람의 엉덩이를 닮은산이며 지리산에서 두번째로 높은산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성삼재에서 반야봉을 후딱 다녀오곤 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그리고 삼도봉 표시탑(전남,전북,경남 경계)에 이른다.
삼도봉은 산악인들에게 날라리봉으로 더 알려진곳이다.
이 봉우리가 낫의 칼날을 닮았다 하여 "낫날봉"으로 부르다가 "날나리이 봉"으로 부르던것을
국립공원공단에서 삼도봉으로 표준화 한것이다.
(삼도봉 표시탑)
성삼재에서 시작하는 당일 산행길은 반야봉까지 탐방하고 되돌아 가거나
임걸령을 거쳐 피아골로 하산하는 경우가 많아서 삼도봉까지 오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래도 종주산행때 들리거나 때론 잠시 들려가곤 했었던 곳이기도 하다.
내가 결혼하기전인 약 30년쯤 전에 여동생하고 왔던 기억이 남아 있다.
지리산은 수 많은 봉과 잔잔한 산군들을 거느린 거대한 산이다.
(홀로 종주하는 외국인과 함께 기념사진을 번갈아 찍고)
화개재 삼거리를 지나는데 어느 외국인이 반대방향에서 홀로 걸어 내려 오고 있었다.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하니 환한 웃음으로 반긴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하산하면 뱀사골로 하산하는 길인데 계곡길이가 20리가 넘고 숲이 깊다.
여름철 한번쯤 걷고 계곡에 빠져 볼 만하다.
그 옛날 화개재는 산상시장이 열렸던 곳이라고 한다.
섬진강길을 따라 올라온 경남의 소금장수가 화개재를 넘어 오도재를 다시 넘고
전북의 삼배와 산나물들이 이곳에 와서 물물 교한하기 위해 산상 시장이 열렸던 곳이라 했다.
장터목대피소 주변도 이런 산상시장이였다는데 당시 민초들의 힘든 삶을 짐작 할 만하다.
화개재을 지날 때 이런 저런 상상들을 하면서 지나는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
(연하천 대피소)
어느덧 토끼봉(1,535m)을 지나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한다.
다른 대피소에 비해 규모는 작으나 아담한 운치는 누구든지 한번쯤 머물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소박하다. 내 친구 득규하고 숙박했던 오래전 기억이 떠 오른다.
불현듯 연하천에서 숙박하고 도솔암을 경유하여 영원사를 보고 실상사로 빠지는
칠암자 코스를 가 보고 싶었다.
칠암자코스는 일곱개의 암자를 순례하는 코스인데 대부분 비탐구간이지만 매년 사월 초파일에는
비탐구간을 개방하기 때문에 그때 산행을 하면 좋겠다.
연하천대피소 바로 앞에 식수대가 있어서 식수을 보충하고 출발했다.
(벽소령 가는길옆 바위와 소나무)
연하천에서 벽소령 가는 길이 제법 까탈스럽다.
다리에 힘이 빠진건지 지루하기도 하고 거리가 멀게만 느껴진다.
이것이 나의 체력 한계인가? 암튼 산행은 15km가 넘으면 조금씩 지루하기 시작하고
걸음이 더디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벽소령대피소까지는 3.3km로 비교적
짧은구간이라 다급하지 않게 걷는다.
(벽소령대피소에서 휴식중인 사람들)
오후 4시 45분 벽소령(1,340m)대피소에 도착했다.
대피소 입구에서 국립공원 직원이 대피소 예약자 체크를 하면서 반갑게 맞이 하는데
"아이고 힘드내요" 라고 덕담으로 인사를 했더니 "아직 힘이 넘쳐 보이는데요?"라고 답을 하신다.
그렇게 긍정적인 대답을 듣고 보니 기분은 좋다. 오늘은 16km를 8시간동안 걸었다.
산행중에 대피소에 도착하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지난 겨울에 보지 못한 밤하늘 별들을 볼 수 있을런지?
한 여름밤 쏟아지는 별빛을 보고 싶었고 지나가는 바람을 가슴으로 맞고 싶었고
벽소령 별빛을 보면서 지리산 기운을 느끼고 싶었다.
대작하는 친구는 없지만 지나가는 바람과 자연을 벗이라 생각하고 가져간 약간의 잎새주를
마셔야 겠다. 떠날 수 있어서 즐거웠고 짝사랑하는 지리품안에 올 수 있어서 행복하고
벽소령에서 소주 한잔에 번민과 무게를 내려 놓을 수 있어서 더 행복하다.
저녁 식사를 위해 라면과 햇반을 꺼낸다.
벽소령의 밤은 깊어가고 1시에 일어나 밖으로 나와 벽소령의 밤하늘을 한참 동안 보고
기억에 담는다. 벽소령 밤 하늘은 어릴적 여름밤 시골 마당에서 본 하늘이고 그 별 자리이다.
밤하늘 별빛을 작은 카메라에 담을 수 없어 머리와 가슴에 담는다.
산을 보려거든 적당히 멀리 떨어져 보란 말이 있다.
정작 산속에 들어가서는 산을 볼 수 없다는 말인것이다.
그러나 산을 느끼려면 반듯이 산속으로 들어 와야 한다.
멀리서 보는것으로는 산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산속으로 들어 와서 진심으로 온몸으로 산 기운을 느끼고 싶은거다.
얼마전 저녁 뉴스에 반달곰이 벽소령에 나타나서 공포탄 쏘고 소란이었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어서 주변을 더 살피며 멀리가지 못하고
대피소 가까운곳에서 서성인게 조금은 아쉽다.
(새벽 벽소령 대피소를 떠나며 셀카!)
(세석으로 가는길)
새벽 3시부터 일어나서 떠나는 사람들이 있어 부산하다.
나는 더 늦게 천천히 출발하기로 한다. 지난 설날 겨울산행때는 4시에 출발했었는데
그땐 어두워서 주변을 볼 수 없음이 다소 아쉬웠었다.
이번엔 5시 출발이다. 숲은 조용하고 이슬에 젖었지만 걸어 갈만하다.
이 시간 세석으로 가는 사람은 없는 듯하여 당분간 혼자 가야 할 모양이다.
새벽 공기가 시원하고 깨끗하다.새벽 동이 트기전 숲은 어둠의 길이지만 외롭지 않다.
어차피 인생이 나그네 아니던가? 너무도 편하다는 느낌뿐이다.
이른 새벽 길을 나서면 하루를 길게 쓸 수 있어서 좋다.
또한 나 자신이 부지런한 사람 같아서 기분이 우쭐하다.
어둠을 헤치고 가는 기분도 쿨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멀리 갈 수 있어서 좋고
머리가 맑고 정갈해서 좋았다.
(덕평봉 선비샘)
(선비샘 유래 현판)
덕평봉 선비샘에 도착 했다.
덕평봉 아래 선비샘은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았고 잘게 흐르는 선비샘에
허리를 굽혀 물 한모금 마시는데 전설처럼 인사(절)을 올리는 형국이다.
이곳 안내간판에 선비샘 유래가 적혀 있는데
옛날 덕평골 화전민 이(李)씨 노인은 평소 천대와 멸시를 받고 살았는데 죽어서라도
존경을 받고 싶은 마음에 자식들에게 자신을 상덕평 샘터 위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
노인이 죽자 자식들은 그 샘터 위에 묘를 만들었다. 그후 샘터를 찾은 수 많은 사람들은 고개숙여
물을 마시니, 무덤에 절하는 형국이라 죽어서 존경 아닌 존경을 받고 있는 셈이다.
덕평봉(1,520m)과 칠선봉(1,558m) 그리고 영신봉(1,651m)을 오르고 지난다.
갈수록 높은 봉우리여서 연신 오르막이고 이제는 세석대피소가 문전이다.
5새벽부터 2시간반 동안 6.4km을 걸어 세석대피소에 도착한다.
이제 세석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1시간 정도 쉬어 간다 . 아침 메뉴는 북어국인데 인스턴트여서
그런지 맛은 그냥 그맛이다. 9시 세석대피소에서 다시 길을 떠난다.
세석에서 천왕봉까지는 12km정도의 거리여서 12시쯤 천왕봉을 오를 수 있을것 같았다.
세석평전 위 촛대봉(1,703m)으로 걷는다. 이제 오를 만큼 올랐다.
이른 아침 출발한 산꾼들도 속속 지나치고 더러 나처럼 혼자 걷는 사람들도 보이고 더러
혼자 온 여성도 간혹 보인다. 지리산에 와서 보면 나 같은 사람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그만큼 홀로 산행을 즐기는 사람이 많았다. 연화봉에 올라서니 장터목산장이 보인다.
장터목 산장위로 안개구름이 감싸고 있어서 제석봉은 볼 수 없었으나
장터목산장 마당에 움직이는 여러사람들를 볼 수 있었다.
(장터목 대피소 전경)
10시30분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한다.
아주 오래전 지금처럼 공원관리가 안된 시절에 장터목대피소 앞 마당이 텐트를 칠 수 있는
야영장이였다. 나는 결혼하기전 1991년 즈음에 아가씨였던 아내와 천왕봉에 오른적이 있는데
당시 이 마당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던 아련한 기억이 있다.
오늘 장터목산장 주변에는 사람이 붐빈다.아마도 날씨가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오른 모양이다.
생애 처음 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단체로 올라 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벽소령 분위기완 다르다. 본래 시장터여서 그런가? 사람이 붐벼서 주변이 더 소란스럽다.
나는 빨리 벗어날 생각으로 식수만 보충하고 천왕봉으로 향한다.
(제석봉으로 가는 소박하고 단아한길)
11시 제석봉 돌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제석봉 오르는 길은 완만한 오름이며 단정한 돌계단은 천상에 오르는 엄숙함이 느껴지는 길이다.
반야봉에서 마지막 오르는 느낌과 흡사하며 키가 작은 철쭉과 주목나무
그리고 고사목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길이다.
느낌이 아까워서 되돌아 보며 기억에 담고 천천히 걸었다.
제석봉은 오래전에 벌목꾼들의 산불로 인해 고사(古死) 되었다는 고사목 군락이 있다.
이제는 제석봉 언덕과 천왕봉 주위 고사목이 사연은 슬퍼도
지리산의 상징이 되어 처연한 모습도 이쁜 풍경으로 보인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간다는 구상나무군락!
지금은 보호를 하고 어린모종을 식생하여 육성하고 있어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천왕봉 주위에 모인 사람들)
(천왕봉 돌탑)
정오 12시 무렵 정상을 밟았다.
정상석 뒤면에는 "한국인의 기상(氣像) 여기서 발원(發源)되다" 라는 글귀가 있다
아름답고 적절한 글귀이다.
이 글귀는 처음에 "영남인" 이였다가 나중에는 "경남인"으로 바꾸기도 했었다는 유래가 있다.
천왕봉 정상 주위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벌써 올라와 있었다.
정상석 옆에는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긴줄이 섰다.
하긴 여기까지 오기 위해 몇시간씩 걸어서 온 사람들이니 그럴 수 있겠다.
생애에 처음 올라온 분들은 얼마나 감동적일까?
이런 저런 생각에 나는 한켠으로 비켜나서 아직 찾지 못한 바위에 새겨진
천주(天柱) 글자를 찾다가 이내 포기하고 정상석 주변 적당한 바위에 앉는다.
천왕봉은 통천문을 지나 오르는데 봉우리는 하늘을 떠 받드는 기둥이다.
언젠가 그 누구가 천주(天柱)라는 글씨를 세겼다는데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우리의 선조들은 천왕봉이 하늘을 떠 받치는 기둥으로 생각한 것이다.
정상 표시석 넘어는 천길 낭떨어지여서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때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매우 위험하다. 위치가 조금만 넓은곳으로 옮겨져 있으면 좋았을것을 하고
올 때마다 생각 해 본다. .
인증샷 하는 인파에 밀려 법계사 방향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변을 조망하고 한참을 앉아 쉬었다. 그러면서 산세구경, 때론 사람구경, 바람 소리와 더불어
이런 저런 사람 소리를 듣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서 법계사로 향한다.
법계사로 내려가는 길은 매우 가파른 내리막이다.
아주 심한 경사도는 피로에 쌓인 무릎에 통증이 느껴지게 한다.
법계사까지는 2km로 짧은 구간이지만 급경사라서 하산 하기가 여간 어렵다.
(법계사 입구 표시석)
법계사는 이 사찰이 흥하면 일본이 쇄한다는 말이 있는 사찰로 유명하다.
법계사는 늘 하산할 때 피곤한 발로 거치는 곳이라서
아직까지 사찰경내는 구경을 안하고 지나치곤 했다.
이번에는 불공이라도 올리고 가야지 하면서 또 다음 기회로 미루고 지나친다.
피로한 무릎으로 불공을 하기가 힘들겠다는 생각과
법계사 불공은 오르는 길에 하는것이 좋겠다는 핑게 아닌 핑게를 댔다.
오후 3시 법계사 입구를 지나 로타리 산장을 거쳐 오후 5시중산리에 도착한다.
오늘 이렇게 둘째날 18km을 걸었고 이틀간 34km를 걸어 지리 종주산행을 마쳤다.
큰 말썽 없이 이틀간 걸어 준 다리와 무릎이 고맙다.
최근에 금호지구 병원의 의사는 허리가 성치 않아 조심하며 쉬어주라 했는데 지리산에 왔었다.
지리산은 진시황제가 불로초가 있다고 믿었던 삼신산(三神山,영주산,방장산,봉래산)이며
"방장산"이였고 백두산에서 흘러 내린 산이라 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지금의 지리산은(智異山) 어리석은 사람도 이 산에 들어서면 지혜로와 진다는 산이라는 뜻을
가진 산이다.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이 어떤 이름이 가장 적합한지 모르겠으나
오늘 여기를 찾은 수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지혜를 얻어 가길 소원해 본다.
나는 몇해전부터 지리산 무박종주를 계획했다가 실행하지 못했다.
20시간 계획으로 도전 해 볼까 했으나 같이 갈 동료을 만나지 못했고 나 자신도 열정이
부족해서 실행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무박종주는 체력이 비슷한 사람과 동행해야 좋을것 같은데
같이 갈 사람도 없었고 혼자서는 용기가 없었다.이제는 무박종주는 내려 놓으려 한다.
이제 더 보호 해야 할 무릎이고 무리하게 도전하는것 보다 나의 체력에 맞는 산행을 해야 할 것
같다. 올 여름은 뱀사골, 아니면 백무동 계곡, 또는 한신,칠선계곡에서 바람따라 산 냄새 따라
편하게 스며들고 싶다.중산리 택시를 이용하여 구례터미널까지 가기로 예약하고
중산리 식당에서 땀에 젖은 몸을 샤워했다.
그리고 산체 비빔밥에 막걸리 한사발 들이키니 맛이 달디 달다.
혼자 마시는 막걸리지만 허기지고 갈증나서 맛깔나게 마셨다.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때로 고통을 감수 해야 하고 이런 저런 시간를 안배하고
부지런히 살아야 하지만 고통의 크기보다 성취감과 행복지수가 훨씬 크다.
나의 네번째 지리산 종주는 이렇게 끝냈다.
2014년 6월 27~28일 걷고 7월 5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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