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반에 출발,, 단풍 한층 시즌이라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리지 못하고 정안 휴게소에 도착 ....
점심식사는 뭐니뭐니 해도 휴게소 국밥으로..ㅎ
모두 즐거운 모습들..
김양순님이 호두과자를 사서.. ㅎㅎ , 부회장님도 한입. 다소 영어로 varacious & hastily 하게...ㅎ
레오 ! 나도 먹는다 (이승환 화백님도...ㅎ )
3시반에 운주사에 도착하였다.. 한시간 정도 둘러 보려 했는데, 주체측에서 빨리 올라는 전갈을 받고
한 30분 바쁘게 사전 스케치 장소를 답사 하였다....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道岩面) 대초리(大草里) 천불산(千佛山)에 있는 절.
창건자 :도선(道詵)
운주사(運舟寺)라고도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창건에 관한 이야기는 도선(道詵)이 세웠다는 설과 운주(雲住)가 세웠다는 설, 마고할미가 세웠다는 설 등이 전해지나, 도선이 창건하였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법당과 석불, 석탑이 많이 훼손되어 폐사로 남아
있다가 1918년에 박윤동(朴潤東)·김여수(金汝水)를 비롯한 16명의 시주로 중건하였다. 건물은 대웅전과 요사채, 종각 등이 있다.
1942년까지는 석불 213좌와
석탑 30기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석탑 12기와 석불 70기만 남아 있다. 크기는 10m
이상의 거구에서부터 수십cm의 소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매우 투박하고 사실적이며 친숙한
모습이 특징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절 좌우의 산등성이에
1,000개의 석불과 석탑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1980년 6월에는 절 주변이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소장되어 있는 문화재로는 연화탑과 굴미륵석불, 보물 제796호인 9층석탑, 보물
제 797호인 석조불감, 보물 제798호인 원형다층석탑, 부부 와불(臥佛) 등이 있다. 운주사의 천불천탑은 우리 국토의 지형을 배로 파악한
도선이 배의 중간 허리에 해당하는 호남이 영남보다 산이 적어 배가 기울 것을 염려하고 이곳에 1,000개의
불상과 불탑을 하룻밤 사이에 조성하였다고 한다. 잘 알려진 부부와불은 천불천탑 중 마지막 불상으로 길이 12m, 너비 10m의 바위에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의 조각이다. 이 불상을 일으켜 세우면 세상이 바뀌고 1,000년 동안 태평성대가
계속된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운주사 [雲住寺] (두산백과)
천불산 다탑봉 운주사는 천불천탑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불교의 깊은 혼이 서린 운주사는 우리나라의 여느 사찰에서는 발견 할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불사를 한 불가사의한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의 기록 ‘운주사 재천불산 사지좌우산척 석불석탑 각일천 우유석실 이석불
상배이좌(雲住寺 在天佛山
寺之左右山脊 石佛石塔 各一千 又有石室 二石佛 相背以坐)라는 유일한 기록이 있다. 이는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으며 절 좌우 산에 석불 석탑이 각 일천기씩 있고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있다’는
내용으로 보아 정말 그때까지만 하여도 석불 석탑이 일천기씩이 실존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또한 조선조 인조 10년(1632)에
발간된 능주읍지에는 ‘운주사 재현남이십오리천불산좌우산협석불석탑 일천우유 석실이석불상배이좌(雲住寺 在縣南二十五里千佛山左右山峽石佛石塔
一千又有 石室二石佛相背而座)’ 운주사는 현의 남쪽 이십오리에 있으며 천불산 좌우 산 협곡에 석불 석탑이 일 천씩 있고 석실에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있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봐서 일천씩의 석불 석탑이 있었던 게 분명하고 그 말미에 금폐(今廢) 라는 추기가 있어 정유재란으로 인해 소실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 후 조사한 기록을 보면 석탑이 22기, 석불이 213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석탑 17기, 석불 80여기만 남아있어 역사 속에서 끝없이 유실되어온 뼈아픈 세월을 살아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네차례의 발굴조사와
두차례의 학술조사를 하였으나 창건시대와 창건세력, 조성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확증을 밝혀내지 못하여
운주사 천불천탑은 여전히 불가사의한 유적으로 남아있다.
운주사 불상들은 천불산 각 골짜기 바위너설 야지에 비로자나부처님(부처님의
빛, 광명)을 주불로 하여 여러기가 집단적으로 배치되어있다. 크기도 각각 다르고 얼굴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홀쭉한 얼굴형에 선만으로
단순하게 처리된 눈과 입, 기다란 코, 단순한 법의 자락이
인상적이다. 민간에서는 할아버지부처, 할머니부처, 남편부처, 아내부처, 아들부처, 딸부처, 아기부처라고 불러오기도 했는데, 마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표현한 듯 소박하고 친근하다. 이러한
불상배치와 불상제작 기법은 다른 곳에서는 그 유형을 찾아볼수 없는 운주사 불상만이 갖는 특별한 가치로 평가받는다.
또한 운주사 석탑들은 모두 다른 모양으로 각각 다양한 개성을 나타내고 있다. 연꽃무늬가
밑에 새겨진 넙쩍하고 둥근 옥개석(지붕돌)의 석탑과 동그란
발우형 석탑, 부여정림사지 5층 석탑을 닮은 백제계 석탑, 감포 감은사지 석탑을 닮은 신라계 석탑, 분황사지 전탑(벽돌탑) 양식을 닮은 모전계열 신라식 석탑이 탑신석의 특이한 마름모꼴
교차문양과 함께 두루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운주사 탑들의 재료로 쓰인 돌은 석질이 잘 바스라져서 오히려
화강암질의 강한 대리석보다 더 고도의 기술을 습득한 불모(석공)님이
아니면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 석질로 빚어만든 탑이 이렇게 수많은 세월의 풍상을
버티어 전해져 오는 것을 보면 이곳의 조형자들의 기술이 가히 최고 수준이었다는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듯 싶다.
석불감쌍배불좌상골짜기 중심부에는 팔작지붕에 용마루와 치미가 모각된 돌집 안에 석불 두 기가 등을
맞대고 앉아 있다. 남향한 불상은 결가부좌하고 오른손을 배에 댔고 북향한 불상은 옷 속에서 두 손을
모아 지권인을 취한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 시대의 지방화된 불상양식을 보이는 것으로 보물 제797호로 지정되어 있다.
운주사 서쪽 산능선에는 거대한 두 분의 와불(미완성석불)님이 누워있다. 조상 대대로 사람들은 “이 천번째 와불님이 일어나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말을 전해왔다. 아마도 운주사 천불천탑은 우주법계에 계시는 부처님이 강림하시어 하화중생의 대 설법을 통한 불국정토의 이상세계가
열리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으로 조성한 대불사가 아닐까한다.
제2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