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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절리柱狀節理
임 영 도
틈이 만든 자연의 걸작이다. 틈은 존재의 여유이며 경계의 사이 공간. 깊은 해안에 만들어진 주상절리는 땅이 만든 틈이고 바다가 그은 금이며 하늘이 도운 공간이다. 틈 사이로 바람이 불어 풍화가 이뤄지고 파도가 스며든 침식이 수십만 년의 흔적을 바위에 새겨 놓았다.
주상절리! 거대한 바위산처럼 길게 펼쳐진 기암절벽에 있는 선명한 절리 공간이 위압감 속에서 신비감으로 눈길을 끌어모은다. 갈매기 떼가 바위 위에서 재롱을 떨며 재잘거리다 파도의 회초리에 투덜거리며 바다 위를 날아오른다.
제주도 갯깍[바다 끄트머리] 주상절리는 수십만 년 전 바다 밑 땅속의 변고가 땅 밖으로 분출되어 해안의 경관을 절벽에 새겨 놓았다. 촘촘히 서 있는 다각형의 거대한 돌기둥들은 용궁의 성벽인 듯 굳게 닫혀져 태고의 신비를 침묵으로 지켜내고 있다. 땅속의 뜨거움이 땅 위의 차가움에 열을 빼앗겨 오그라들면서 끊어지거나 어긋남이 없이 금만 생겼다. 떨어져 나누어지지 않고 한 몸으로 끈질기게 우애를 다지고 있는 바위의 조화調和이다.
주상절리는 바닷물이 씻어 형태가 드러났고 하늘의 빛으로 밝게 빛났으며 지혜로운 사람의 손길로 자연의 작품으로 탄생되었다. 희미했던 선線과 선線이 이어져 다각형의 면을 이뤘고 근접하기 힘든 바닷가에 하나하나의 형체가 묶여 웅장한 바위 집이 만들어졌다. 인위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불과 물의 비밀을 자연의 색깔로만 연출한 신비의 공간을 사람은 눈과 손으로 찾아냈다.
섬이 아닌 육지의 끝단에서도 주상절리를 보았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는 바닷가에 가지런히 누워 있는 돌기둥들이 부챗살 모양의 거대한 돌꽃을 피워 놓은 바다 위의 꽃밭이다.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오로지 자연이 만들어낸 천혜의 조각품이다. 흩어져 있는 돌꽃 사이를 파도는 밤낮없이 드나들며 깊은 물 속에 간직된 오랜 바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철썩거린다. 하얀 물 위에 검게 피어난 돌꽃은 먼 옛날 바위 속의 비밀을 숨기려는 듯 물속에 꽃대를 감추고 수줍게 꽃잎을 내밀곤 한다.
주상절리를 품은 ‘파도소리길’을 걷는 두 발의 걸음 속에 심장과 머리도 힘들어한다. 거친 파도의 하얀 물꽃이 주상절리의 검은 돌꽃 위를 덮었다 풀었다 하며 한낮의 햇살을 받아 반짝거린다. 길섶에 핀 야생화는 바람결에 향기를 실어 화답을 한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의 해안 길을 걷다 보면 바다와 땅이 하나임을 느낄 수 있다. 지구는 땅과 물의 세계다. 두 개의 세상은 각각 다른 생명이 지배하는 영역이다. 사람은 땅의 주인임을 자처하고 물고기는 물의 임자처럼 활개친다. 주상절리는 땅과 물이 한몸임을 일러준다. 바위에 새겨진 태고의 비밀을 들여다보면 바다의 저 밑바닥에도 땅이 있었고 땅속에는 물이 흘렀다. 바다가 땅으로 솟아오르고 땅은 물로 가득 채워져 세월의 침식을 묵묵히 견뎌냈다.
땅 위에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과 미생물까지 함께 섞여 살아간다. 누구나 공평하게 자신의 공간 영역을 침해당하지 말아야 평화롭다. 인간은 땅뿐만 아니라 바다도 심지어 하늘까지 넘보며 영역의 욕심을 부려왔다. 바다의 세계를 양보하고 하늘의 세상도 존중하는 땅의 아량이 지구를 지키는 인간의 양심일 테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도 사람들이 땅의 과잉 점령과 이기적 탐욕으로 독재적인 주인행세를 했던 것에 대한 다른 종의 반발이 아닐까 싶다. 영역 싸움이라기보다는 공생과 상호인정의 요구일 듯도 하다.
선은 점이 이동한 자취이다. 점은 위치가 있고 크기는 무의미하다. 점이 시작과 끝의 정지된 무한의 순간이라면 선은 시작과 끝을 잇는 유한의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움직임 속에서 형체가 드러나고 진화의 싹이 튼다. 선의 울타리로 만들어진 면은 바다의 물속처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넓이의 터에 그 싹을 키워나간다.
사람의 삶은 시간의 선線과 사유思惟의 면面이 만들어 놓은 공간 속에 일상을 담고 비우는 그릇 만들기와 같다. 인생은 중간중간에 연륜의 시간 절리가 있어 여유를 가지고 속도를 조절하며 무난하게 경계를 넘어간다. 유소년의 철부지 모험심, 청년의 혈기왕성, 중장년의 중후함, 노년의 느림과 여유는 삶의 곡면들이다. 끊어짐 없는 시간의 선위를 달리며 성숙의 공간을 거치면서 생의 출구를 향해 걸어간다.
수많은 금을 그으며 살아왔다. 건축대학에서 선線의 미학을 배웠고 건설회사에서 집을 설계했다. 집은 삶의 공간을 배려하는 선의 이음으로 만들어진다. 공간 속에 생활의 동선을 이어주고 끊어줌으로써 편리한 방이 완성된다. 선 긋기는 분절된 기둥과 가로막힌 문으로 선의 흐름을 끊고 공간의 단층을 만들기도 한다. 선과 면, 공간의 미학이 삶의 방향을 이끌어 주었던 셈이다.
눈에 보이는 외형의 선이 아닌 보이지 않는 마음속에도 금이 존재했다. 주상절리처럼 바위 속 용암의 들끓음이 표면에 그은 금과 같이 외부의 언짢음으로 생긴 감정선이 앙금으로 남아 잠재된 단층을 만들기도 했다. 빌려 간 돈을 갚지 않은 친구가 불신의 진한 감정선을 긋고 연락조차 끊어버렸다. 선이 마음속에 꽉 막힌 면의 담장을 쌓아 우정의 공간이 허물어졌다. 지워버려야 할 마음의 틈이 되었다.
자연은 계절마다 환절기란 틈이 있어 생명체가 일상을 조율하며 살아가게 해준다. 시간의 절리는 자연의 섭리, 하늘의 포용, 사람의 지혜를 조화시켜 지구에 상생의 자리를 잡아준다. 주상절리는 태고의 자연이 실눈을 뜨고 오늘의 세상을 바라보는 바위 집의 문틈이 아닐까. 그 집의 주인은 바다와 육지이다. 하얀 갈매기 한 마리가 기둥 속의 비밀이 궁금한 듯 머리를 갸웃대며 열심히 문틈을 들여다본다.
임영도 ydlim@alimse.co.kr
2017년 《선수필》 등단
건축사/구조기술사
에세이집 『지붕과 서까래』 『수필 소풍』 『마음의 빈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