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답사는 나일강을 따라 진행되었다. 가장 남쪽, 나일강 상류에 있는 아부심벨에서 시작하여 아스완 하이 댐과 로우 댐 중간에 있는 필레신전을 둘러보았으며 다음은 아스완 로우 댐 아래에서 크루즈를 타고 하류로 내려가면서 룩소르를 거쳐 카이로까지 답사를 이어가는 방식인데 크루즈 출발 전 아스완에서 몇 곳 더 둘러보았다.
ㅇ 미완성 오벨리스크(obelisk)
영국의 런던 템즈강변과 프랑스 파리의 콩코드 광장, 미국의 뉴욕 센트럴파크와 터키 이스탄불의 히포드롬 등에 서있는 오벨리스크. 조사된 오벨리스크는 모두 25개였지만 이집트에 4개가 남아있고 21개가 외국에 나가 있다는 것인데 그 대부분은 로마 제국 통치하에 사실상 약탈된 것이었으며 일부는 이집트 정부가 자의적으로 보내 주거나(미국, 영국) 대형 시계와 맞바꾼(프랑스) 것도 있어서 세계적 문화유산의 씁쓸한 현주소를 보게 된다.
오벨리스크는 원래 태양 숭배의 상징물로 말하자면 태양 탑이다. 중왕국시대에 해당하는 12 왕조를 연 아메넴헤트 1세(재위 BC1991~BC1962)가 오벨리스크를 처음 세웠다고 하는데 지금은 카이로의 일부가 된 고왕국 시대에 태양신 사상에 힘입어 태양의 도시로 세운 헬리오 폴리스의 태양신 아툼 라 신전 터에 아메넴헤트 1세의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오벨리스크에는 전승을 기념하거나 왕의 위업을 과시하는 문장이나 문양을 새겼는데 원래는 신전 입구에 2개씩 세워졌으나 이리저리 옮겨지고 가져간 탓에 1쌍 2개가 남아있는 것은 없다. 일부 외국으로 옮겨진 오벨리스크 윗부분에 십자가를 붙이기도 했는데 이는 이교도에 대한 기독교의 승리를 상징한다.
일부 학자들은 남근석 문화에 포함되는 다산 숭배 사상이라고도 주장하지만 아무튼 거석(巨石) 문화의 한 종류로 보이며 그 옛날 이런 대규모의 석조 상징물을 어떻게 만들어서 운반하고 세웠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데 그 제작과정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현장이 바로 아스완의 미완성 오벨리스크이다. 필레 신전을 둘러보는 날 잠깐 시간을 내어 찾아갔다.
전 국토의 95% 이상이 사막인 이집트에서 질 좋은 화강암이 나오는 채석장이 아스완에 있는 것은 행운이었을 것이다. 나일강변에 있으니 원하는 석재를 전국 어디나 옮기기도 편리하였을 것인데 그 역사의 현장, 아스완 채석장에 길이 42m, 무게 1200톤이나 되는 완성하지 못한 오벨리스크 하나가 몇천 년을 그 자리에 누워 있다.
<아스완 채석장 전경>
<바닥에 누워있는 미완성 오벨리스크, 3면은 모양이 잡혔으나 바닥은 아직 암반에 붙어있는 상태이다. 아랫부분만 떼어내면 옮겨 갈 수 있었을 것이나 상부에 균열이 생기면서 포기하고 버려진 듯하다.>
<터키 이스탄불의 히포드 롬 광장에 서 있는 투트모스 3세의 오벨리스크. 이집트의 정복왕 투트모스 3세는 카르나크 아몬 신전에 오벨리스크 4개를 세웠는데 357년 로마 콘스탄티우스 2세 때 알렉산드리아로 옮긴 것을 39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 전차 경기장 가운데로 옮긴 것이다.>
ㅇ 아스완(Aswan) 댐
이집트 내륙을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6437Km의 나일강은 이집트 문명의 젖줄이다. 비가 내리지 않는 이집트는 남쪽 상류에서 내린 폭우가 흘러내려와 해마다 9~10월이면 어김없이 나일강이 범람하지만 물이 빠지고 나면 상류에서 가져온 기름진 황토가 남아 농사짓기에 최적의 조건이 된다.
그러나 인구가 늘어나고 더 많은 농경지와 농작물이 요구되면서 이집트는 국가적 차원에서 해마다 발생하는 홍수를 예방하여 농경지와 거주지를 보호하고 근대화에 필요한 전력생산이 필요하게 되는 등의 목적에서 댐 건설을 추진하게 된다. 처음 댐 건설은 지금 아스완 로우 댐으로 부르는 기본 댐으로 영국의 영향력 하에 있던 1889년 시작하여 1902년에 완공하였으나 충분치 못하여 댐을 높이는 증축공사를 1912년과 1933년 두 차레나 하게 된다.
하지만 1946년 홍수로 댐이 범람하면서 세 번째 공사가 1952년에 시작되었는데 나세르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자 아랍과 이스라엘의 전쟁방지를 위해 미국과 영국이 차관 2억 7천만 달러를 제공하기로 약속을 하였다가 나세르를 무력화하려는 미국과 영국의 비밀협상으로 철회된다. 그러자 나세르는 소련과 손을 잡고 막대한 지원을 받아 아스완 하이 댐을 건설, 1970년 완공하게 된다.
아스완 하이 댐은 홍수예방은 물론 농업용수의 충분한 관리와 저수지 상류의 어업 활성화, 막대한 전력 생산 등의 경제적 효과를 가져다주었지만 댐으로 인하여 수몰 위기에 처한 고대 유물들에 대한 세계 각국의 우려에 따라 아부심벨 신전과 필레 신전 등의 이전 사업이 막대한 예산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발굴되지 못한 미확인 유물들은 이제 물속에 잠겨버렸으며 뿐만 아니라 하류지역으로 더 이상 기름진 흙을 날라주지 않기에 하류 농토가 비옥해지지 않아서 비료 사용이 늘었다는 것이며 흘러가지 못하는 토사가 댐 아래에 쌓이고 있어 고민이라는 것이다.
<아스완 로우 댐, 댐으로서의 기능이 충분치 못하여 6Km 상류에 하이 댐을 다시 지었지만 로우 댐은 보조 댐으로 역할을 계속하는 듯하다. 상부에는 2차선 도로가 통행하고 있다.>
<하이 댐의 모습. 약 4Km에 가까운 길이와 중심축 넓이가 40m에 달하는 대규모 댐이다. 하이 댐으로 인하여 생긴 상류 인공호수는 댐 건설을 추진한 나세르 대통령 이름을 따서 나세르 호(湖)라 부르는데 1/3은 수단 영토인지라 누비아 호라고 부른다.>
<하이 댐 발전소. 여기서 수력발전으로 생산하는 전기로 이집트 전국에 전기를 공급하게 되었다고 한다.>
<소련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댐을 건설 후 양국 간의 친선을 기념하는 조형물을 세웠다. 관광객들은 엘리베이터(유료)로 꼭대기로 올라가 볼 수 있는데 벽면에는 당시 소련의 수상 후르시초프 얼굴이 새겨져 있다.>
ㅇ 나일 크루즈 (Nile Cruise)
아부심벨 신전과 필레신전, 그리고 아스완 하이 댐과 로우 댐을 돌아보고 미완성 오벨리스크까지 살펴보고 나니 아스완 지역 답사는 마무리되었다. 아스완부터는 유명한 나일 크루즈를 승선하여 강 하류로 내려가며 콤 옴보 - 에드 푸 - 룩소르 순서로 들리면서 필요할 때마다 내리고 타는 방식으로 3일간을 이동하게 되는데 생각보다 안락한 여행길이었다.
나일강 크루즈는 이집트 여행에서 아주 유명한 코스인데 떠다니는 5성급 호텔로 불리는 비슷비슷한 모양의 크루즈들이 줄잡아 400척이 넘는다고 하며 비교적 안락한 시설과 뷔페식 식사, 옥상에서의 자유시간과 무료 티-파티에 수영장까지 갖추었으며 무엇보다 매일 체크-인, 체크-아웃을 반복해야 하는 고단한 여행 일정 없이 진행하는 장점과 함께 바다가 아닌 강을 따라가는 여객선인지라 흔들림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나일강을 오가는 크루즈들 모습. 옥상에는 수영장과 비치베드가 있고, 그늘막 아래 휴식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무료 티-파티가 열리거나 간단한 음료와 주류를 사 먹을 수 있다.>
<4~5층 높이의 커다란 크루즈선 옆으로 작은 배가 다가와 이집트 모직물이나 작은 카펫 등을 보여주며 파는데 둘둘 말아서 옥상까지 정확하게 집어던지는 것이 볼만하다. 구매의사가 없으면 다시 내려보내도 정확하게 받아간다.>
<크루즈 출항시간이 여유가 있어서 나일강의 또 하나의 명물, 전통 돛단배 무동력 펠루카를 1시간쯤 타보았다. 바람에 따라 돛과 노를 민첩하게 움직이며 나일강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뱃놀이가 흥겨웠는데 애거사 크리스티가 소설 '나일강 살인사건'을 집필한 올드 캐터랙트 호텔에는 지금도 그때의 집필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계속]
내 나라 문화유산 답사회 : https://band.us/@4560dap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