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임씨(晋州任氏) 시조(始祖) 임형(任衡) 사적 연보
진주임씨역사연구원(晋州任氏歷史硏究院)에서는 진주임씨(晉州任氏) 시조(始祖) 임형(任衡)에 대한 사적(事蹟) 연보(年譜)에 대해서 연구 진행 중에 있으며 현재까지 확인된 일부 사적(事蹟) 연보(年譜)를 안내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추후 고증 자료를 통하여 확인이 되면 다시 안내하여 드리겠습니다.
●1360년 전북(全北) 전주(全州) 출생, 초명은 충(衝)
●1385년 음서(蔭敍)로 관직(官職)에 나감
고려시대, 나라에 공을 세운 신하나 지위가 높은 관리의 자손을 과거(科擧)를 치르지 아니하고 관리로 채용하던 일로 부친(父親)은 종3품 삼사소속(三司所屬) 좌윤(左尹)을 지냈으며 조부(祖父)는 상서성(尙書省) 정2품 좌복야(左僕射)를 지내고 진주군(晋州君)으로 봉해진 고위관직의 자손으로 관리로 채용됨
●1386년 정부인(貞夫人) 장수황씨(長水黃氏)와 혼인(婚姻)
●1388년 장자(長子) 유도(有度) 득남
●1389년 방촌(厖村) 황희(黃喜)와 함께 문과(文科) 과거에 급제
●1391년 차자(次子) 유직(有直) 득남
●1392년 문하부(門下府) 소속의 정5품 이조정랑(吏曹正郞) 헌납(獻納)
●1392년 8월 5일 고려 멸망
●1392년 8월 5일 조선 개국
●1392년 12월1일 조선에서 인재 천거와 시무책을 정할 때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이라며 벼슬을 그만 둠
●1392년 12월20일 고향인 전주(全州)로 낙향(落鄕)
●1393년 태조(太祖)가 방촌(厖村) 황희(黃喜)를 보내 벼슬을 제의 함
●1393년 방촌(厖村) 황희(黃喜)를 보내 태조(太祖)가 폐백을 보내 옴
●1394년 경상도(慶尙道) 수양산(首陽山)에 은거(隱居) 생활을 하며 호(號)를 죽곡(竹谷)이라 하고 諱를 형(衡)으로 개명
●1418년 8월에 조선4대왕 세종(世宗)이 즉위하자 수양산에서 전주로 귀향
●1428년 전주(全州)에서 별세(別世)
●1428년 전주시 완산구 정여립로 석산에 안장(安葬)
●1429년 사후(死後) 충정공(忠貞公) 시호(諡號)를 받음 시호는 벼슬한 사람이나 학덕이 높은 선비들이 죽은 뒤에 그의 행적에 따라 국왕으로부터 받은 이름이다. 죽은 이의 인생과 업적을 평가하기 때문에 시호에 사용되는 글자에는 모두 엄격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시법에 자주 사용된 글자는 문(文). 정(貞), 공(恭), 양(襄), 정(靖), 양(良), 효(孝), 충(忠), 장(莊), 안(安), 경(景), 장(章), 익(翼), 무(武), 경(敬), 화(和), 순(純), 영(英) 등이 있는데 사람의 행실에 따라 두 글자로 만들어 하사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충정(忠貞)은 충성스럽고 절의가 있는 사람에 대해 붙여지는 시호(諡號)이다.
●2016년 선모재(先慕齋) 건립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정여립로 488-9)
●2019년 선모재(先慕齋) 주련 설치
선모재(先慕齋) 주련사는 不事二君 行忠節(불사이군 행충절), 永慕先祖 礎石固(영모선조 초석고), 忠孝之魂 連後孫(충효지혼 연후손), 立齋勝地 覺心彫(입재승지 각심조) 이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충절을 행함은 조상을 길이 사모하는 초석으로 굳었고 충효의 정신이 후손에게 이어져서 승지에 재각 세워 깨우치며 마음 새기네로 해석된다. 2019年 여름에 선조들의 의지를 기리고, 우리 후손들이 본받아 삶의 도리를 알고, 효도하고 서로 우애하며 살자는 의미를 담아 임영(任詠)이 지었다. 임영(任詠)의 호(號)는 범계(凡界)이며 晋州任氏 27世孫으로 전북교육청 장학사와 중등학교 교장(校長)을 지낸 인물이다.
參考文獻 : 高麗史, 高麗史節要, 太宗實錄, 晋州任氏族譜, 豐川任氏族譜
晋州任氏歷史硏究院長 任和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