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1:16, 하나님이 기뻐하실 때에, 2023.07.02. 맥추절
학생들은 선생님이 내일까지 해야 할 숙제를 내 주시면, 그것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 지를 누군가와 의논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숙제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학생들이 선생님이 내 준 숙제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들은 숙제보다 더 재미난 일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이렇게 더운 여름이면 냇가에 가서 ‘미역’을 감아야 하고, 노는 일에 흠뻑 빠지다 보면, 숙제를 못하고 마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은 것 같습니다.
‘미역’이란 국어사전에 ‘냇물이나 강물 등에 들어가 몸을 씻거나 노는 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릴 적에는 하루 종일 냇가에 가서 그렇게 물 놀이를 했습니다. 또 방학이면 방학숙제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 방학이 끝날 때면 그 때 가서야 몰아서 겨우 숙제를 마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럴 때, 친구나 누나나 부모에게 찾아가서 ‘숙제를 해야 돼, 말아야 돼’이런 의논을 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냥 숙제를 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것을 끝내지 못한 자기 자신이 한심할 뿐입니다.
주중에 사랑하는 집사님이 소천했습니다. 병원에서 연락이 와서, 목사님이 보고 싶다고, 기도해 달라고 하기에, 시간을 내서 경북대 병원까지 갔습니다. 가서 전화하니, 이미 죽음을 맞이한 지 1시간 정도 되어 있어서 운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집사님의 시신을 보고 큰 아들이 있었는데, 임종을 한 후라, 임종기도를 했습니다.
당일 저녁에 장례식장에 가서 위로예배를 드렸고, 임종 후 24시간 전후로 입관예배를 드려야 하기에, 입관예배 말씀을 하는 듯 해서, 입관예배도 드렸습니다. 마지막 날, 화장터로 가는 시간에 맞춰 발인예배를 드리고, 화장 하기 전에 기도를 해 드리고, 장지에 가서는 하관예배를 드렸습니다. 자녀들이 집사님이 교회를 다녔으니, 교회예식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교회장례를 치뤘습니다.
거기에 누구랑 의논한 것이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에 그냥 한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누구랑 의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그냥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예수알리기’를 제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나타내시기를 제일 기뻐하십니다. 어떻게든 예수님 십자가로 말미암은 인간 구원의 비밀을 알리고 싶어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박해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구제불능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를 이방인을 위한 전도자로 부르셨습니다.
바울은 고백하기를 하나님이‘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셨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를 부르셨다’, ‘하나님이 내 속에 예수를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래서 내가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교회를 심히 박해했던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니, 이방인이 사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는 게 되는 일을 제일 기뻐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시다.
갈 1:13–16,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기쁘시게 하시는 일은 여러분 속에 예수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나타내시기’(아포칼뤼프토)는 ‘드러나다, 밝혀지다, 알려지다’라는 부정과거능동태입니다. 이 말은 ‘전에 소수의 사람에게만 알려지거나 감추어지고 비밀로 지켜졌던 정보를 알리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능동적으로 다 하셨다는 것입니다. ‘기뻐하셨을 때’(유로케오)는 ‘기뻐하다, 매우 좋아하다’의 부정과거능동태입니다. ‘높은 수준의 즐거움을 누리거나 정신적 만족감을 얻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일은 여러분에게도, 이방인에게도 예수님을 알리고 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기를 기뻐하십니다. 여러분도 전에는 박해자였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둘째, 혈육, 곧 사람들과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내 속에 예수 알리기를 기뻐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알게 된 그 이유가 ‘그의 아들 예수를 이방인에게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기뻐하시는 데, 그 때에 사도 바울은 누군가와 의논한 적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요즘은 민주사회라고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의논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의논이나 대화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민주적 결론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죄인 된 인간의 이성적인 결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갈 1: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혈육’(사르크스)은 ‘몸, 육체’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인간의 신체(몸)을 의미하지만, ‘종종 하나님을 향한 반역과 죄의 좌소로 이해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는 인간을 의미합니다(동일한 유전적 뿌리를 가진 것으로 믿어지는 사람들). 그러나 어찌 되었던, 어떤 인간도 완벽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미 사도 바울에게 예수님을 나타내셔서(알리기),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시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의 무슨 의논이 필요합니까?
종종 신앙인들이 착각하기 쉬운 것이 많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너무나도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죄 많은) 다른 사람과 의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논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적극적으로 밀어 부치는 것입니다. 마치 정의를 구현하는 듯, 십자가 군병이라도 되는 듯, 그 일에 온 몸을 불태워 헌신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말 웃기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누군가와 의논하지 말고, 그냥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가운데서 기쁘시게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사람들과 의논함으로 도리어 하나님의 일을 꺾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길 바랍니다.
셋째, 교회 지도자들을 만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예수 알리기를 기뻐하셨고, 그래서 이방인의 사도로 세웠을 때에, 사도 바울은 ‘자기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곧 사도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교회로 가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래도 사도들을 만나야 되지 않을까, 교회 목사님을 찾아가 조언이나 상담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다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 너무나도 분명한데, 목사님의 조언이나 상담이나 심방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갈 1: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럼 사도 바울은 어디로 갔습니까? 사도 바울은 ‘아라비아로 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을 머물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이방인의 사도 사역을 준비했습니다. 기도하고, 성경보고, 어떻게 예수님을 이방인에게 알려야 할 지에 대해서 연구했습니다. 그렇게 꼬박 3년 동안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그래서 그가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신앙인들을 어떤 결정권이 있는 사람이나, 또는 영적인 목회자나 교회 지도자를 찾아서도 안 됩니다. 신앙인들은 광야기도원에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3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그를 세우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누구에게 답이 있습니까? 그에게 예수님을 알리신 하나님께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