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회계(姜淮季)
출생일 미상
사망일 1392년(공양왕 4)
경력 고공좌랑, 진원군
고려후기 고공좌랑, 진원군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문과] 창왕(昌王) 1년(1389) 기사(己巳) 기사방(己巳榜) 동진사(同進士) 22위(32/33)
생애 및 활동상황
본관은 진주(晉州). 아버지는 문하찬성사를 지낸 강시(姜蓍)이며, 대사헌 강회백(姜淮伯)의 동생이다.
1390년 정월에 고공좌랑(考功佐郎)으로 세자 왕석(王奭)의 시학(侍學)이 되었고, 같은해 8월에 공양왕의 셋째 딸 경화궁주(敬和宮主)와 혼인하여 진원군(晉原君)에 봉해졌다. 공양왕이 폐위되자 우성범(禹成範)과 함께 회빈문(會賓門) 밖에서 참형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집필 (1995년)손홍렬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강회계(姜淮季))]
공양 기사원년(1389), 대명(大明) 홍무22년
○ 11월 갑술일에 지진이 있었다.
○ 왕이 즉위한 날 저녁에 왕의 사위 강회계(姜淮季)의 부(父) 시(蓍)가 내전에 들어와서 왕에게 아뢰기를, “여러 장상들이 전하를 왕으로 세운 것은 다만 자기의 화를 면하기 위한 것이지 왕씨(王氏)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
전하께서는 삼가시고 친신(親信)하지 마시어 스스로 보전할 것을 생각하소서" 하였다.
왕의 사위 우성범(禹成範)이 곁에 시립하고 있다가 이 말을 듣고 그 어머니 윤씨(尹氏)에게 알리니, 윤씨의 종형(從兄) 소종(紹宗)이 전해 듣고 9공신에게 알렸다.
공신들이 왕에게 의견을 아뢰기를, “전하께서 겨우 왕위에 오르자마자 참소하는 말이 갑자기 들어오니, 신들은 두려워서 어찌할 줄을 모르겠습니다.
전하께서 만약 참소하는 말을 믿으신다면 곧 신들에게 죄를 주시고, 만약 신들이 위성(僞姓)을 내쫓고 다시 왕씨를 세운 공이 있다고 여기신다면, 참소하는 사람에게 죄주어 윗사람과 아랫사람으로 하여금 틈이 없도록 하기를 청합니다"하니, 왕이 측근 신하를 돌아보고 잠잠히 말이 없었다.
공양 경오2년(1390), 대명(大明) 홍무23년
○ 8월에 사대부 집의 제의(祭儀)를 반포하였다.
○ 우성범(禹成範)을 단양군(丹陽君)으로 삼고, 강회계(姜淮季)를 진원군(晉原君)으로 삼았다.
첫댓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강회계 부문의 <개설> 내용에 오류가 있군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같은 류인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의 내용은 사진과 같습니다.
형이 동생으로 둔갑했어요 ㅎㅎ
틀린 걸 옮기셨으니 고치셔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회백은 동생이다'를 '강회백의 동생이다'로 수정했습니다.
공목공의 묘지명(양촌 권근 찬)에는 이미 강회계에 대하여
<공보다 먼저 죽었다 先公歿>라 하였는데도
우리 1994대동보에는 <一云 은둔 안변...>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허구를
버젖이 투탁으로 올리고 있는 엉터리 족보가 되어 있습니다..
자손에 대하여 성화보나 남한보등에 모두 무후(无後)하다 하였슴에도
현족보에는 아들이 4명이나 붙어 있으니
스스로 위보(僞譜)임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중종25년 1530년 6월 22일 기사에는
위 같은 내용에 대하여
고려 공양왕이 사위인 강회계를 총애하자, 회계의 아비인 강시가
은밀히 참언(讒言)을 올려 공신을 이간하였다라고....쓰여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