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우리가 독일처럼 2차대전을 일으키지도 않았는데 분단이 되었고, 분단되어야할 일본은 섬 네 개니까 두 토막 아니라 네 토막으로도 나눠먹기 쉬웠을 텐데 왜 멀쩡히 있다가 우리나라 6.25 사변 덕택에 군수물자 팔아먹고 편안히 경제대국이 되었는가? 가 의문이었다.
그 명쾌한 해답을 조정래작 태백산맥에서 찾았다.
다음은 태백산맥 10권중 제2권 288쪽 - 299쪽 김범우라는 등장인물의 대사를
발췌한글이다.
“우리나라의 분할 점령은 독일의 분할 점령과는 전혀 그 성격이나 의미가 다릅니다.
미국이 전범국인 독일을 분할 점령한 것은 승전국으로서 전리품을 처리하는 당연한 권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그런 권한은 또 하나의 전범국인 일본에게 행사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들은 우리나라를 분할 점령하고 말았습니다.
미국의 팽창주의는 소련의 팽창주의가 일본에까지 미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연합국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미국은 특히 일본 문제에 있어서는 발언권이 절대적이었지요. 일본을 도맡다 시피 해서 싸운 것이 미국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미국은 일본열도를 독식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건 태평양으로 뻗치는 소련의 힘을 견제하는 동시에 태평양 전체를 장악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그 계획에 따라 당연히 한반도 분할이 필요했고 독일에서와 달리 일본 쪽에 전적이 미미한 소련은 한반도의 반이나마 차지하는데 동의한 것입니다. 그들은 처음에 ‘일본지상군의 항복을 받기 위해’ 한반도에 진주하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고, 뒤이어 ‘통치능력이 생길동안 신탁통치’를 해주겠다는 일방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해방을 갈망해왔고, 독립국가 건설을 열망하는 우리 민족의 뜻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전개된 것입니다. 두 나라의 점령군을 맞으며 우리는 새로운 역사의 시련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첫째, 두 강대국이 내세운 명분을 무산시킬 수 있도록 일사불란한 민족적 단합을 보여야 했습니다.
둘째로, 그들의 정치적 도구가 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며 제2의 독립운동을 전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첫째도 실패, 둘째도 실패함으로써 식민지 상황보다 나을 것 없는 분단국가를 만드는데 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오늘과 같은 정치, 사회적 혼란과 자체분열을 일으키는 민족적 희생이 야기되게 되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남북협상을 떠나기 전 그의 앞을 가로막는 군중들에게 `여러분, 나에게 마지막 독립운동을 허락해 주시오` 한 말은 우리 민족의 행동 방향을 단적으로 제시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해방은 식민지시대의 종식이 아니라 새로운 식민지 시대의 개막이었습니다.
전시대에는 일본을 공동의 적으로 삼는 민족적 명제나 자존이 있었습니다마는, 이제는 백인들이 만들어낸 공산주의, 민주주의, 라는 것에 최면이 걸리고 마취되어 우리끼리 적을 삼아 살육을 자행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즘을 일단 도구화한 이상 상호 양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정치적 실현을 위한 상호 상승 작용만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정치생리이며 힘의 역학입니다.
벌써 서로를 괴뢰라고 공공연하게 욕하기 시작 했습니다.
(해방 후 6.25직전 시대적 상황에서 한말임)
태백산맥 조정래 남한 공산주의자 빨치산을 새롭게 조명한 글이다.
6.25를 중심으로 남한과 전 세계 시대적 상황인 피지배 계층은 공산주의에 현혹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해방이 되자 북에 진주한 김일성은 농지개혁부터 실시했다.
당시 북한 농지개혁이란 지주로부터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뜻한다.
남한은 유상몰수 유상 분배(소작해서 몇 년 분할상환 조건)를 했다.
미국식 자본주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전제도에 비하면 훨씬 개선된 제도였다.
이조시대 국법은 소작을 50%이상 받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동학혁명 일어난 배경부터 일제치하 때까지 지주들은 90%정도의 소작료를 받아냈다.
70%이상이 소작농인 상황에 공동생산 공동분배 사유재산부정 등의 공산주의 이론은 마약이상일 수밖에 없었다.
북한군은 농부들에게는 전부 구세주처럼 반가운 존재라서 초반의 소련제 탱크 위력으로도 무너졌지만 그보다 더 강력한 것은 그 이론이 남한의 많은 동조 세력들의 도움과 묵인을 받았다.
북한군은 토지 무상 분배 후 세금으로 20%만 받겠다고 했다.
소작료와 세금을 합해서 90%씩 내던 사람들에게는 꿈만 같은 제도였다.
그러나 낱알을 세고 다니고 뜰 안에 있는 감나무 감개수까지 세고 돼지새끼난 마리수 까지 세어 인심만 잃고 대부분 세금은 걷지도 못하고 유엔군에 의해 쫓겨났다.
그러나 그들은 정확한 세금을 걷겠다는 이상주의적 발상이었다.
김일성도 이상주의적 발상에서 혹독한 소작료로 고생하는 남한의 농부들을 해방시키겠다는 이상주의적 정신과 명분으로 남하했다.
인천 상륙작전으로 추풍령 고개를 점령한 연합군에 의해 퇴로를 차단당한
북한군은 산 속에 숨어들어 남부군과 함께 빨치산으로 전락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빨치산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로 교육받았다.
그러나 작가는 그들도 우리의 이웃이며 사촌이며 형제로서 그 공산주의에
최면이 걸려 이상적 나라를 성급히 만들겠다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을 뿐이지
그들에게도 사랑이 있고 진한 동지애가 있었고 만주에서 독립 운동하던 독립군 출신도 있었고 좋은 나라를 만들어 보자는 애국주의가 있었다고 말해, 조금 성급한 주장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에 의해 검찰에 끌려가기도 했다지만, 어찌보면 조금 늦은 감도 있고, 당연한 일이지만 최근에사 무죄확정이 된 게 반갑기 도하고 한편 역사에 부끄러울 따름이다.
독일국민성이 너무 우수해서 2차대전 후 강대국들이 일부러 통일을 시키지 않을 만큼 무서운 민족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민족을 강대국들이 독일보다 더 무서운 민족으로 보고 일부러 통일을 원치 않는 게 아닐까 (이런 억지논리로 마음을 위로 하면 조금 싱겁지만 위로가 될까.)
아이러니로 볼 수도 있는데 공산주의가 가장 잘 실현되고 있는 나라가 소련을 가장 싫어하는 나라중 하나인 이스라엘 협동농장 키브츠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자본주의가 완벽히 발달된 이후의 수정 보완하는 제도가 공산주의 이론에 가깝다는 이론이 설득력이 있다.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라는 징검다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 공산주의로 가는 것은 물속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수업료를 너무 비싸게 전 세계가 지불한 것이다.
나뿐 아니라 우리국민 여론조사에도 가장 감명 깊게 보고 앞으로도 후손들이 가장 많이 애독할 것이라고 보는 조정래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명작인 이 태백산맥을 유네스코에 세계 문화유산 지정 추천작으로 해야 한다고 본다.
아무튼 20세기에 세계 최고의 명작이라 감히 말하고 싶은 10권의 대작을 완성한 우리나라의 국보적인 존재라 말할 수 있는 조정래님에게 끝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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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정래 작가가 그랬지요
반쪽 짜리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서 "태백산맥"을 쓴 거라고
저도 이 책을 구입해서 읽었습니다.
남북 분단. 빨치산들의 이모저모
우리 나라 질곡의 역사가 들어있다고 봅니다.
허소라 교수님하고 어떻게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