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면, 후임목사와 전임자가 원로이든 은퇴자이건 가릴 것 없이 갈등이 발생하거나 교회 내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전적으로 전임자의 책임임을 모든 전임자는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양자관계가 불편해진다는 것은 교회의 갈등요인을 전임자가 제공했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필자는 40년 시무 중에도 부목사나 전도사를 초청할때도 어떤 분들처럼 까탈스럽게 심사하고 살펴보고 모시기보다는 이미 시무하고 있는 부교역자들에게 부탁해서 초빙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훈복 목사를 후임자로 선임할 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수 많은 질문을 받았다. 고백하건대 혈연이나 지연관계 등 그 어떤 관계도 없었으며 단 몇 해 전에 그 곳 송탄남부교회에 가서 4일간의 부흥회를 인도했던 것이 전부이다. 그 때 4일을 함께 지내다보니 사람이 진실해보이고 무엇보다도 심성이 착한 것 같아서 함께 지내기가 부담스럽지 않고 마음이 따뜻할 것 같아서 그저 초청했을 뿐이다.
초청기간은 1년으로 잡고 퇴임 3년을 동사케 하려니까 꼭 4년 전에 당회에 후임자 초청에 관한 안건을 제기해 당회로 만장일치로 후임자 선정은 당회장에게 일임했다. 필자는 만에 하나 실수할까 봐 다시 당회에 7인의 위원을 선임토록해서 후임자를 결정하기까지 단 한번의 설교를 시킴도 없이 결의부터 하고 모시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쉽게 온다고 허락해 놓고는 한 반년이 지난 다음 진단서를 들고 와서는 간질환도 있고 몸이 약해서 못 오겠다고 사정하듯 말하기에 병은 아무 곳에 있어도 고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와서 치료하면 될 것이고 부임 설교 한 주일만 하고는 1년이건 3년이건 휴가는 자유로 줄테니 얼마든지 쉬라고 전하고는 그 마음을 누구러트렸다. 그 때 내 짐작으로는 아마 많은 분들이 그 호랑이 같은 사납고 거친 목사 밑에서 어떻게 견디려고 가느냐는 만류가 있었을 법한데 그것은 지금도 알 수가 없는 일이지만 그 때 “나는 부드러운 남자인데…”하며 혼자 웃어보기도 했다.
우선 전임자는 후임자의 인사 건이나 재정 용도관계나 교회조직 관리에 대하여 자신의 방법과 상이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전혀 후임자의 몫이기에 관여할 수 없는 금기사항으로 알아야 한다. 예배형식에서 시작하여 교회행정 체제변화에 이르기까지 한가지 목적을 위해 여러 가지 다양한 형식과 방법이 있을 수 있기에 그것 역시 전혀 후임자의 권한에 속한 일이기에 비판이나 불만을 표현해서도 안될 것이다.
물론 필자 역시 어찌 후임자가 한 일이 내 마음에 다 들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내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착각 역시 교정되어야 할 전임자의 오식된 사고에서 비롯되었음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 8년 가까이 지나고 보니 나와 함께 있던 부교역자들과 사무직원을 합쳐 유급직원이 도합 20여명인데 한 두 명을 빼고는 거의 교체되었으며 예배형식도 나와는 전혀 상이한 패턴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이것 역시 어떤 의미에서 내 생리엔 조금은 마땅치 않다고 생각한다. 전통성의 결여라고 표현해야 좋은 지는 몰라도 복음성가와 찬양 중심의 예배이다보니 교회 분위기가 확 바뀌었는데 이것 역시 마음 한구석에 서운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렇게 하라고 해도 능력이 없고 부족해서 하지 못한다. 그런데 후임자는 과감해서 무엇이나 큰일도 잘 처리하고 밀고 나가기에 오히려 때로는 내가 했던 과거의 목회방법이 졸속했던 것 같아서 스스로 부끄러워질 때가 있기도 하다.
나의 임기말에는 주일 낮 집회가 1000명에 미달했는데 지금은 2000명에 육박하고 예산도 갑절이나 늘었으며 교회조직도 대폭 재편되고 활성화 되어서 어떤 의미에서 나의 목회기간이 광야의 율법시대라면 후임자의 목회는 가나안의 은혜시대인가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후임목사께서는 절기나 때마다 또 나의 생일이나 특별한 날에는 잊은 적이 없이 나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고, 지난 음력 4월에 아내의 생일에 전교인 체육대회 장소에서 전 성도 앞에서 꽃다발을 건네주고 돈봉투까지 두둑히 주어서 아내가 얼마나 기뻤던지 40여일의 유럽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마중나와서 첫 번째 한 말이 후임목사에 대한 칭찬에 침이 마르지 않았다.
나는 때로 이기적인 계산도 깔려있음을 고백해야겠다. 당회장의 연봉에 70%을 원로가 생활비로 받게 되는데 후임자가 목회를 잘 하도록 도와줘야 나도 풍성하게 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돕는 것만은 아니겠지만 “만일 서로 물고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 5:15)라고 가르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생각부터 말 한마디라도 후임자에게 유익이 되게 조심하여야 할 것이며 그렇게 못하고 충성스런 후임자를 마땅치 않게 여긴다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을까를 염려하며 경계하기도 한다.
이훈복 목사님은 정말 나의 자식 4남매보다도 나은 분이시며 동시에 당회장님이시고 나는 평신도란 자세로 그저 정성껏 섬길 뿐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