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澤堂先生集卷之七 / 敎書
敎靖社功臣或人書
王若曰 予惟宗國顚覆 戚蕃定其基 草昧經綸 材俊騁其智 故風雲有感 或收釣築之遺 帶礪申盟 亦超茅土之數 爰稽舊典 用答殊勳 卿器宇嶔崎 神情倜儻 家傳忠烈 不以名利嬰懷 學有師資 不以場屋屈跡 挾靑霞之爽氣 包黃石之深韜 以龍蟄蠖屈之蹤 値狐鳴梟噪之日 天常已殄 董養升堂而發嘆 王室將移 袁安當座而下泣 才非命世 不足以濟其屯 義非忘身 不足以蹈其險 卿時協策 予實推誠 捐貲鬻裝 大蒐兵械 露肝抽膽 密結英髦 杜如晦之善斷如流 陳孺子之出奇多祕 元臣宿將 咸 缺 左右之勞 巨猾魁兇 莫逃牽掣之勢 矛頭淅米 幾觸危機 坂上轉丸 益恢全算 風霆無以比其迅 鬼神無以測其幽 乘閑趙宮 獨陳耿弇之議 指星唐苑 卽決幽求之謀 致會朝之淸明 復長秋之孝養 宗社之慶 生民與休 宜推不次之恩 用酬非常之績 肆策勳爲靖社功臣一等云云 儀之以繪象 錫之以幣鈔 由烏臺而鳳池 已愜輿論 自韋布而金紫 未爲驟遷 昔在太祖之開邦 實惟迺先之佐命 豈意重恢之大業 更資元輔之仍孫 一等第三 符舊封於上洛 竝侯父子 同後拜之伯禽 知家國之俱榮 驗公侯之必復 於戲 守成難於創始 處貴異於居窮 君臣共貞 敢忘無疆之恤 子孫永保 宜思不世之功 故玆敎示 想宜知悉
정사공신의 봉작을 받는 어떤 사람에게 내린 교서[敎靖社功臣或人書]
왕은 이르노라. 내가 살펴보건대, 종국(宗國)이 전복될 위기에 처하면 척번(戚藩)이 그 기업(基業)을 안정시켜 주기도 하였고, 초매(草昧)에 국가 대사를 경륜(經綸)할 때에는 뛰어난 인재들이 있는 지혜를 모두 다 발휘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풍운(風雲)이 감흥함에 혹 조축(釣築)의 유일(遺逸)을 거두어들이기도 하였으며, 대려(帶礪)의 맹약을 행할 때에는 모토(茅土)의 은수(恩數)를 넘치게 베풀어 주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에 옛 전고(典故)를 상고하여 수훈(殊勳)에 보답하는 바이다.
[주-D001] 종국(宗國) : 동성(同姓)의 제후국(諸侯國)을 말한다.
[주-D002] 척번(戚藩) : 근친(近親)의 번왕(藩王)들을 말한다.
[주-D003] 초매(草昧) : 혼란 상태에서 일을 다시 시작하는 초창기를 말한다.
[주-D004] 풍운(風雲)이 감응함 : 《주역(周易)》 건괘(乾卦)의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雲從龍 風從虎]”에서 나온 말로, 뜻이 맞는 임금과 신하가 만나는 것을 말한다.
[주-D005] 조축(釣築)의 유일(遺逸) : 반계(磻溪)에서 낚시질하다 주(周) 나라 문왕(文王)에게 발탁된 여상(呂尙)과 토목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은(殷) 나라 고종(高宗)에게 중용된 부열(傅說)을 말한다.
[주-D006] 대려(帶礪)의 맹약 : 공적이 있는 신하들에게 봉작(封爵)을 나누어 주면서 “황하수가 허리띠처럼 가늘어지고 태산이 숫돌처럼 닳아 없어질 때까지[使黃河如帶 泰山若礪] 복록을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을 말한다. 《史記 高祖功臣侯者年表》
[주-D007] 모토(茅土)의 은수(恩數) : 옛날에 천자가 제후를 봉(封)할 때, 그 지방이 속한 방향의 색과 같은 흙을 흰 띠풀[白茅]에 싸서 내려 준 것을 말한다.
경은 기우(器宇)가 괴위(魁偉)하고 신정(神情) 또한 탁월하기만 한데, 충렬(忠烈)스러운 가문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리(名利)에 대한 생각에 얽혀든 적이 있지 않았으며, 사자상승(師資相承)의 학업을 닦으면서 장옥(場屋 과거시험을 말함) 때문에 자신의 행적을 굽힌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청하(靑霞)와 같은 삽상한 기운을 몸에 지니고 황석(黃石)의 심오한 도략(韜略)을 간직한 채 용칩확굴(龍蟄蠖屈)하는 상태로 있으면서 호명효조(狐鳴梟噪)하는 날을 맞게 되었던 것이었다.
[주-D008] 청하(靑霞)와 …… 기운 : 벼슬을 하지 않고 수도(修道) 생활을 하려는 고원(高遠)한 뜻을 말한다.
[주-D009] 황석(黃石)의 …… 도략(韜略) : 신기할 정도로 뛰어난 병법(兵法)을 말한다. 황석(黃石)은 황석공(黃石公)이 장량(張良)에게 주었다는 병서(兵書) 《황석공삼략(黃石公三略)》을 가리킨다.
[주-D010] 용칩확굴(龍蟄蠖屈) : 자취를 감춰 몸을 보존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하(下)에 “자벌레가 몸을 굽히는 것은 장차 몸을 펴기 위함이요, 용과 뱀이 칩거하는 것은 몸을 보존하기 위함이다.[尺蠖之屈 以求信也 龍蛇之蟄 以存身也]”라고 하였다.
[주-D011] 호명효조(狐鳴梟噪) : 소인들이 득세하여 떠들어대는 것으로, 한유(韓愈)의 ‘영정행(永貞行)’에 나오는 말이다.
천상(天常 강상(綱常) 윤리(倫理))이 이미 끊어짐에 동양(董養)은 마루에 올라가 탄식을 발하였고, 왕실의 권세가 장차 옮겨지려 함에 원안(袁安)은 자리에 앉아 눈물을 흘리곤 하였다.
[주-D012] 천상(天常)이 …… 발하였고 : 진(晉) 나라 태시(泰始 265~274) 초에 양후(楊后)가 폐위(廢位)되자 동양(董養)이 태학(太學)에서 노닐다가 그 마루에 올라가 탄식을 하고는 ‘무화론(無化論)’을 지어 이를 비난하였다. 《晉書 卷94》
[주-D013] 왕실의 …… 하였다 : 후한(後漢)의 원안(袁安)이 천자는 유약(幼弱)하고 외척(外戚)이 권세를 독점하는 것을 보고는 조회(朝會) 때나 공경(公卿)들과 국가 대사를 의논할 때마다 눈물을 흘려 감동시켰던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75》
당세(當世)에 저명한 걸출한 인재가 아니고서는 난세(亂世)를 구제할 수가 없고, 자신의 한 몸을 잊어버리는 의리가 없으면 험난한 지경에 뛰어들 수가 없는 법이다. 경이 계책을 제시하면 내가 진정으로 믿고 따랐나니, 의연금으로 장비를 구입하고 병장기를 대대적으로 비축하는 한편, 속마음을 다 털어 내놓고 비밀리에 영걸들을 규합하였다.
경은 그야말로 두여회(杜如晦)처럼 물 흐르듯 결단을 잘 내리고, 진유자(陳孺子)처럼 남이 모르는 많은 기책(奇策)을 쏟아 내었다. 그리하여 원신(元臣 중신(重臣) 및 노신(老臣))과 숙장(宿將 역전의 장수)들이 모두 좌우에서 수고를 아끼지 않은 결과 교활하고 흉측하기 그지없는 무리들이 결박 당해 끌려오는 일을 피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주-D014] 두여회(杜如晦) : 당 현종(唐玄宗) 때의 명재상으로 방현령(房玄齡)과 함께 정사를 총괄하였는데, 여회는 결단을 잘 내리고 현령은 계책을 잘 꾀했으므로, 양상(良相)을 칭할 때에는 반드시 방두(房杜)를 일컬었다고 한다. 《新唐書 卷96》
[주-D015] 진유자(陳孺子) : 한 고조(漢高祖)의 지낭(智囊)으로 기책(奇策)을 내어 통일 사업을 도운 진평(陳平)을 말한다. 진평이 일찍이 고향에서 제사를 주관하며 고기를 공평하게 나누어 주자, 부로(父老)들이 “진유자가 일을 주관하며 멋지게 처리한다.[善陳孺子之爲宰]”고 칭찬한 말이 있다. 《史記 陳丞相世家》
창끝으로 쌀을 일어 밥을 짓는 긴박한 상황에서 몇 번이나 위기에 봉착했던가. 그러나 산비탈 위에서 공을 굴리듯 더욱 더 완전한 승리를 기할 수가 있었다. 바람과 천둥도 어떻게 그 신속함을 따를 수 있었으리요. 천신(天神)과 인귀(人鬼)들도 그 깊은 계책을 엿볼 수가 없었다.
조궁(趙宮)의 한가한 틈을 타서 경감(耿弇)의 의논을 독자적으로 개진하였고, 당(唐) 나라 후원(後苑)에서 별을 가리키며 즉각 유구(幽求)의 계책을 결행하였다. 그리하여 회조(會朝)의 청명함이 있게 하는 동시에 장추(長秋)를 다시 효성스럽게 봉양할 수 있도록 하였으니, 이는 그야말로 종묘사직의 경사로서 생민(生民)들과 함께 그 복을 나눠 가질 일이라 할 것이다.
[주-D016] 조궁(趙宮)의 …… 개진하였고 : 광해군(光海君)을 몰아내고 새로 왕위에 오를 것을 건의하였다는 말이다. 경감(耿弇)은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중흥 사업을 도와 동마(銅馬)ㆍ적미(赤眉) 등의 제적(諸賊)을 격파한 명장으로, 광무가 조(趙) 나라 수도 한단(邯鄲)의 궁궐에서 쉬고 있을 때, 경시(更始)의 실정(失政)을 논박하며 제위(帝位)에 오를 것을 건의하였다. 《後漢書 卷49》
[주-D017] 당(唐) 나라 …… 결행하였다 : 군사작전을 곧장 행하여 인조반정을 성공시켰다는 말이다. 당 나라 예종(睿宗) 때 위서인(韋庶人)이 찬탈하려는 역모를 꾸미자 임치왕(臨淄王 뒤의 현종(玄宗)임)이 들어 와 복주(伏誅)시켰는데, 이때 유유구(劉幽求)가 밤하늘의 별들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이 시기를 놓칠 수 없다며 군사작전을 결행토록 한 고사가 있다. 《新唐書 卷121》 《舊唐書 卷97》
[주-D018] 회조(會朝)의 청명함 : 아침이 되기 전에 천하를 다시 맑게 하였다는 말이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대명(大明)의 “肆伐大商 會朝淸明”이라는 말에서 연유한 것이다.
[주-D019] 장추(長秋) : 한(漢) 나라 장락궁(長樂宮)의 전각 이름으로 태후(太后)가 거하였으므로 국모(國母)의 대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따라서 불차(不次 차서(次序)를 무시하고 발탁하여 등용하는 것)의 특은(特恩)을 적용하여 비상(非常)한 공적에 보답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에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等) 운운(云云)에 책훈(策勳)하는 한편, 초상화를 그려 걸어두는 의례(儀禮)를 행하고, 공신의 비단 증서를 내려 주는 바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오대(烏臺 법관들을 가리킴)로부터 봉지(鳳池 학사(學士), 혹은 재상을 가리키는 말임)에 이르기까지 여론(輿論)이 흡족하게 여기게끔 되었는데, 위포(韋布)의 신분에서 금자(金紫)의 지위로 껑충 뛰어오른 것은 아직까지 있지 않았던 일이다.
옛날 태조(太祖)께서 개국(開國)하실 때 실로 그대의 선조가 좌명(佐命)을 하였는데, 중흥(中興)의 대업(大業)을 이룰 때 원보(元輔 재상을 말함)의 잉손(仍孫 8세손을 가리킴)으로부터 다시금 도움을 받게 될 줄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세 번째의 일등공신으로 상락(上洛)의 옛 봉호(封號)에 부합되게 하고, 뒤에 백금(伯禽)에게도 내렸던 것처럼 그대의 부자(父子) 모두에게 후작(侯爵)을 하사하는 바이다. 이는 국가와 함께 집안이 경사를 나누어 갖게 됨을 알게끔 하는 일인 동시에 반드시 공(公)과 후(侯)로 보답 받게 된다는 것을 징험케 하는 일인 것이다.
[주-D020] 좌명(佐命) : 제왕이 새로 천명(天命)을 받아 창업(創業)을 할 때 보좌하여 이루는 것을 말한다.
[주-D021] 상락(上洛)의 옛 봉호(封號) : 이 교서는 아마도 김자점(金自點)에게 내린 것으로 여겨지는 바, 그의 선조 가운데 태조 때에 개국 정사공신(開國定社功臣) 1등으로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에 봉해진 김사형(金士衡)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주-D022] 뒤에 …… 바이다 : 아들에게도 함께 봉호(封號)를 내려 준다는 말이다. 백금(伯禽)은 주공(周公)의 아들 이름이다. 무왕(武王)이 천하 통일을 한 뒤 노공(魯公)에 봉해진 주공이 봉지(封地)에 가지 못하고 무왕 옆에서 정사를 돕자 다시 백금에게 노공을 봉하여 노 나라를 다스리게 하였다. 《史記 魯周公世家》
아, 수성(守成)하는 일은 창업(創業)보다도 어렵고, 존귀한 자리에 있는 일은 궁박한 처지에 있을 때와는 다른 법이다. 임금과 신하 모두 바른 도를 지켜 나가야 할 것이니, 어찌 감히 끝없이 돌보는 일을 망각할 수가 있겠는가. 자손 대대로 복록을 길이 보전하며 세상에 보기 드문 이 공업(功業)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교서를 내리는 바이니, 잘 알아 들었으리라 믿는다.
澤堂先生集卷之七 / 敎書
敎靖社功臣完城君崔鳴吉書
王若曰 雷雨動而經綸之志奮 風雲感而際會之期昌 雖神謀與能 大啓廟社之慶 然群策畢擧 實資帷幄之良 爰策第一等之功宗 用酬不貳心之勞效 卿名家濟美 弱冠翹英 體不勝衣而養之以剛大 辭如摛錦而守之以謙沖 久沈踪於散班 多覯悶於群小 屬陽九之板蕩 致坤五之傾危 哀纏永寧 公卿進詭經之說 誣慘元祐 殿陛無抵奏之言 彝倫遂至於斁崩 寶命將移於姦宄 卿惟奮義 國耳忘家 陳丞相之燕居 念深匡難 蔡興宗之先見 志存除殘 幸徼福於宗祧 仍見推於寡昧 縱橫籌略 悉剖心腹之微 諭集俊髦 不憚腁胝之苦 轟霆破柱而不懾 皎日炳衷而靡他 凡玆武帳之大勳 蓋多瀛府之善斷 三韓再造 慰先靈之在天 萬類回甦 續危緖於墜地 旣共嘗其夷險 又自任於安危 鑑以衡平 世傳山濤之啓事 氷淸檗苦 人服毛玠之持廉 言念殷復之洪休 盍修代來之偉績 肆策勳云云 超三階於宰秩 援例已行 紀一德於旗常 視古尤偉 井賦有行 牲璧申盟 雲臺應宿之圖 兄弟竝列 天廏孕房之錫 錦鈔隨頒 於戲 景運重開 知創守之皆艱 隆名難保 貴始終之無替 予方甄不世之賞 卿敢忽有爲之機 天之經人之綱 自今玆而復整 河如帶山如礪 期信誓之長存 故玆敎示 想宜知悉
정사공신 완성군 최명길에게 내린 교서[敎靖社功臣完城君崔鳴吉書]
왕은 이로노라. 뇌우(雷雨)가 발동함에 경륜의 뜻이 떨쳐지고, 풍운(風雲)이 감응함에 제회(際會)의 시기가 빛나도다. 비록 귀신이 일을 꾸며 백성들이 그 일에 참여함으로써[神謀與能] 종묘사직의 큰 경사를 이루게 되었다 하더라도, 뭇 계책이 모두 시행될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유악(帷幄)의 양신(良臣)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에 일등공신에 책훈(策勳)하여 마음을 변치 않은 그 공로에 보답하는 바이다.
[주-D001] 뇌우(雷雨)가 …… 떨쳐지고 : 《주역(周易)》 해괘(解卦)의 뜻을 풀이한 것이다. 해(解)는 감하진상(坎下震上)의 괘로서 음(陰)과 양(陽)이 교감(交感)하여 천하의 환란이 해산(解散)되는 것을 상징하는데, 진(震)은 뇌(雷), 감(坎)은 우(雨)의 뜻을 취하여 “天地解而雷雨作 雷雨作而百果草木皆甲拆 解之時大矣哉”라고 말하고 있다.
[주-D002] 풍운(風雲)이 …… 빛나도다 : 《주역(周易)》 건괘(乾卦)의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雲從龍 風從虎]”라는 동류상응(同類相應)의 뜻을 취한 것으로, 뜻에 맞는 임금과 신하가 서로 만나 빛나는 시대를 여는 것을 말한다.
[주-D003] 귀신이 …… 참여함으로써 :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하(下)의 “하늘과 땅의 자리가 베풀어짐에 성인이 그 능력을 발휘하셨나니, 사람이 꾀하고 귀신이 꾀함에 우매한 백성들까지도 그 공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天地設位 聖人成能 人謀鬼謀 百姓與能]”라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주-D004] 유악(帷幄)의 양신(良臣) : 뛰어난 지모(智謀)를 발휘하는 작전 참모를 말한다. 《한서(漢書)》 장량전(張良傳)에 “진영(陣營)의 장막 속에서 작전을 세워 천 리 밖의 승리를 결판냈다.[運籌策帷幄中 決勝千里外]”는 말이 있다.
경은 대대로 아름다운 명성을 떨친 명가(名家)의 후예로서 약관(弱冠)의 나이에 벌써 영채(英彩)를 발하였다. 몸은 옷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가냘펐지만 강대(剛大)한 기운으로 길러 나갔고, 비단이 펼쳐지는 듯한 문사(文辭)의 재질을 소유하였으면서도 겸허한 자세로 묵수(默守)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은 오래도록 보잘것없는 관직에 머물러 있으면서 군소배(群少輩)들에게 갖가지로 시달림을 당해 왔다.
판탕(板蕩)하는 양구(陽九)의 운세를 만나 곤오(坤五 국모(國母)를 가리킴)의 지위가 위태롭게 되었는데, 영녕전(永寧殿)에 슬픔이 휘감긴 상황에서 공경(公卿)이라고 하는 자들이 법도에도 맞지 않는 설을 지어 올리는가 하면, 무함(誣陷)하는 말이 원우(元祐) 때보다 참혹했는데도 궁전 뜰에는 이에 대항하여 아뢰는 말이 하나도 나오지를 않았다. 그리하여 인륜 도덕이 마침내 땅에 무너져 내리고 보명(寶命)이 장차 간악한 자의 손으로 넘어갈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주-D005] 판탕(板蕩)하는 …… 운세 : 국정(國政)이 문란해지고 사회가 온통 혼란한 보기 드문 액운(厄運)을 말한다. 판(板)과 탕(蕩)은 《시경(詩經)》 대아(大雅)의 편명(篇名)으로 주 여왕(周厲王)의 학정(虐政)을 읊고 있으며, 양구(陽九)는 천액(天厄)을 뜻하는 도가(道家)의 용어이다.
[주-D006] 영녕전(永寧殿) : 조선 왕조의 왕 및 왕비로서 종묘에 모실 수 없는 분의 신위(神位)를 봉안하던 곳.
[주-D007] 원우(元祐) : 송 철종(宋哲宗) 때의 연호(年號)이다. 당시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에 반대하는 사마광(司馬光), 소식(蘇軾), 정이(程頤) 등 1백 20인을 간당(姦黨)으로 몰아 원우간당비(元祐姦黨碑)를 세우고, 3년 뒤엔 다시 3백 9인을 기록하여 원우당적비(元祐黨籍碑)를 세웠다.
이때 경이 오직 의기(義氣)를 떨치고 일어나 나랏일만 생각할 뿐 집안 걱정은 모두 잊어버렸나니, 진 승상(陳丞相)처럼 한가이 거하면서 환란을 구할 깊은 생각에 몰두하였고, 잔적(殘賊)을 제거할 뜻을 두고서 채흥종(蔡興宗)처럼 선견지명(先見之明)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종묘사직이 행복하게 될 희망이 생기면서 과매(寡昧)에게도 추중(推重)을 받게끔 된 것이었다.
[주-D008] 진 승상(陳丞相) : 한(漢) 나라 진평(陳平)을 말한다. 여 태후(呂太后)가 여씨(呂氏)들을 모두 왕으로 삼아 세력을 넓힐 때 진평이 우승상으로 있으면서 날마다 술이나 먹고 부녀자를 희롱하는 등 정사에 뜻이 없는 듯 한가히 노닐다가 여 태후가 죽자 태위(太尉) 주발(周勃)과 합세하여 여씨들을 모조리 숙청하였는데 그 계책이 모두 진평에게서 나왔다고 한다. 《史記 陳丞相世家》
[주-D009] 채흥종(蔡興宗) : 남조(南朝) 송(宋)의 명신으로,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급진적이고 과격한 계책 대신 온건책을 제시했던 인물이다. 태시(泰始) 2년에 설안도(薛安都)의 모반 사건이 일어났을 때 역시 위무(慰撫)하도록 건의했는데, 조정에서 급히 공격하다가 참패를 당하자 선견지명이 있다는 평판을 얻기도 하였다. 《宋書 卷57》
종횡으로 계책을 세울 때에는 마음속의 미세한 생각까지도 죄다 털어놓았고, 준재(俊才)들을 타일러 모여들게 할 때에는 손과 발에 못이 박히도록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경은 벼락이 기둥에 떨어져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그 충정(衷情)은 밝은 태양과 같아 다른 뜻이 전혀 없었다.
무릇 무장(武帳 군사작전을 지휘하는 곳)에서 이렇듯 큰 공훈을 세우게 된 것은 대체로 볼 때 영부(瀛府 홍문관 등 학사의 관아를 말함)에서 결단을 잘 내려 준 데에 기인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삼한(三韓)이 재건되어 하늘에 있는 선조들의 혼령을 위로해 드릴 수 있게 되었고, 만물이 다시 소생하면서 땅에 떨어진 위태로운 상황을 극복하여 지속할 수 있게끔 되었다.
공은 이미 험난한 지경을 모두 함께 맛본 뒤 이제는 또 안위(安危)를 자임(自任)하는 처지가 되었다. 세상에 전해 오는 산도(山濤)의 계사(啓事)처럼 감식안(鑑識眼)이 뛰어나 공평한 인사행정을 행하였으며, 빙벽(氷蘗)과 같은 청고(淸苦)한 생활은 청렴을 신조로 한 모개(毛玠)처럼 사람들의 탄복을 자아내었다.
[주-D010] 산도(山濤)의 계사(啓事) : 진(晉) 나라 산도가 이부 상서(吏部尙書)로 있을 때 각 인물들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여 제목별로 분류해서 작성한 뒤 인사행정을 행하였는데, 이에 사람들이 모두 심복(心服)하며 “산공계사(山公啓事)”라고 불렀던 고사가 전한다. 《晉書 山濤傳》
[주-D011] 빙벽(氷蘗) : 황벽(黃蘗)나무 껍질을 벗겨 먹고 얼음물을 마신다는 뜻으로, 춥고 배고픈 것을 참고서 절조를 지켜 나갈 때 쓰는 표현이다.
[주-D012] 모개(毛玠) : 삼국 시대 위(魏) 나라의 명신(名臣). 지극히 청렴하여 청공(淸公)이라고 불리웠으며, 아무리 명성이 높은 이라 하더라도 염절(廉節)이 없는 사람은 그의 인사행정에서 단호하게 배제되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魏志 毛玠傳》
은복(殷復)의 크나큰 은혜를 생각할 때 어찌 대래(代來)의 위대한 공적을 닦아 보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에 운운(云云)의 봉호를 내리며 책훈(策勳)하노라. 재질(宰秩)을 세 등급이나 뛰어 올려 제수하는 것은 이미 전례(前例)를 원용(援用)하여 행하였거니와, 기상(旗常)으로 한결같은 그 덕을 기념하게 된 것은 그야말로 옛 역사에 비추어 볼 때 더욱 위대한 것이라고 하겠다.
[주-D013] 은복(殷復) : 은(殷) 나라 무정(武丁)이 다시금 훌륭했던 선왕(先王)의 정치를 회복했던 것처럼 인조(仁祖)가 반정(反正)을 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 “殷復前王道 周遷舊國容”이라는 표현이 있다. 《杜少陵詩集 卷13 傷春 五首》
[주-D014] 대래(代來) : 한(漢) 나라 문제(文帝)가 대왕(代王)으로 있다가 여씨(呂氏)들이 소탕된 뒤에 대(代) 땅에서 와 천자가 되었던 것처럼, 인조가 추대를 받고 왕이 된 것을 말한다. 《한서(漢書)》 문제기(文帝紀)에 “乃修代來功”이라는 표현이 있다.
[주-D015] 기상(旗常) : 근왕(勤王)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기(旗)는 교룡(蛟龍)을 그린 깃발이고 상(常)은 일월(日月)을 그린 깃발로서 임금을 상징한다. 《周禮 春官 司常》
정부(井賦 전부(田賦)와 같음)를 내리면서 생벽(牲璧 희생(犧牲)과 옥기(玉器)로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말함)으로 다시금 맹약(盟約)을 행하노니, 성수(星宿)를 응한 운대(雲臺)에 형제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릴 것이요, 방성(房星)의 천구(天廐)에서 태어난 말을 하사하며 비단 증서를 지급해 줄 것이로다.
[주-D016] 성수(星宿)를 …… 운대(雲臺) : 공신각(功臣閣)을 말한다. 후한(後漢) 명제(明帝)가 하늘에 28수(宿)가 있는 것을 본따 선대(先代)의 공신 28장(將)의 초상화를 그려서 남궁(南宮)의 운대(雲臺)에 걸어 놓은 고사가 있다. 《後漢書 朱祐等傳論》
[주-D017] 방성(房星)의 …… 말 : 궁중의 말을 뜻한다. 방성(房星)은 28수의 하나로 천사(天駟), 즉 말을 주관하는 별이다. 천구(天廐)는 궁궐의 말을 관리하는 사복시(司僕寺)를 가리킨다.
아, 크나큰 운세가 다시금 열린 때에 창업(創業)과 수성(守成) 모두가 어려운 것을 알아야 할 것이요, 성대한 명예는 보전하기가 어려운 법이니 처음부터 끝까지 변치 않는 일관된 자세를 견지해야만 할 것이다. 내가 지금 세상에 드문 상훈(賞勳)을 내렸으니, 경이 어찌 감히 업적을 세울 일을 소홀히 해서야 되겠는가.
하늘의 경상(經常)과 사람의 강상(綱常)이 지금 이때로부터 다시금 가지런히 바로잡히게 되었기에, 황하수가 허리띠처럼 가늘어지고 태산이 숫돌처럼 닳아 없어지도록 영원히 보존시킬 것을 맹세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교시하는 바인데, 잘 알아들었으리라 믿는다.
澤堂先生集卷之七 / 敎書
敎靖社功臣綾城君具宏書
王若曰 天地交而泰來 方啓休否之運 將相和而士附 迄成勘亂之功 乃眷熊虎之臣 合膺茅土之賜 國有常典 予匪私恩 惟卿颯爽英姿 縱橫戎略 桑蓬有志 豈事鉛槧之工 桃李成蹊 克遵卑養之節 棲遲陛戟縣符之役 激昂衽金裹革之心 頃當奸逆之滔天 而致倫紀之墜地 誰無父母 忍見幽廢之憂 將有亂亡 莫任扶持之責 幸賴介臣之齊憤 得覩會朝之淸明 卿惟肺腑之親 首效爪牙之用 膂力方壯 不憚裏外周旋之勞 訏謨大同 實賴上下協贊之效 指揮而陰氛洗滌 扈衛而精神折衝 相從險艱 豈惟狐偃 素著名譽 殆同野王 肆策勳云云 魏其疏封 以彰平吳之績 雲臺竝像 不廢佐漢之忠 申之以誓言 賁之以物采 於戲 不易得者 功名之會 莫難處者 貴戚之家 須知安能惟始佚能惟初 可免位不期驕祿不期侈 指九天而爲正 期百世之不渝 故玆敎示 想宜知悉
정사공신 능성군 구굉에게 내린 교서[敎靖社功臣綾城君具宏書]
왕은 이르노라. 하늘과 땅의 기운이 서로 통하여 태(泰)의 시대가 도래했나니, 이제 바야흐로 휴비(休否)의 운세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장상(將相)이 화합하고 사졸(士卒)이 이에 따라서 마침내 난세(亂世)를 평정하는 공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니 범처럼 용맹스러운 신하들을 돌아봄에 모토(茅土 봉작(封爵))의 은사를 내리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국가의 떳떳한 전형(典刑)에 따르는 것일 뿐, 내가 사은(私恩)을 베푸는 것이 아니다.
[주-D001] 태(泰) : 《주역(周易)》 64괘(卦)의 하나로, 음양이 조화되어 만물이 화통하게 되는 것을 상징하는데, 그 단사(彖辭)에 “天地交而萬物通也 上下交而其志同也”이라 하였다.
[주-D002] 휴비(休否) : 천사의 비운(否運)을 종식시킨다는 말이다. 《주역(周易)》 비괘(否卦) 구오(九五)에 “休否 大人吉”이라 하였다.
생각건대, 경은 보기만 해도 시원스러운 영특한 자태를 지니고서 종횡으로 병략(兵略)을 발휘하였다. 상봉(桑蓬)의 뜻을 간직했으니 어찌 연참(鉛槧)의 일을 안중에 두었으리요. 자신을 겸허하게 기르는 덕목을 제대로 준행(遵行)한 결과 도리성혜(桃李成蹊)의 찬사를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은 섬돌 아래에서 창을 잡고 호위하거나 범인을 체포하는 사소한 일을 하며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런 중에서도 언제든지 갑옷 입고 병장기를 들고서 전쟁터에 나가 한 목숨 바칠 생각으로 늘 격앙되어 있었다.
[주-D003] 상봉(桑蓬)의 뜻 : 사방을 경륜하는 큰 뜻을 말한다. 옛날 남자 아이가 출생하면 뽕나무로 활을 만들고 갈대풀로 화살을 만들어[桑弧蓬矢] 천지 사방에 쏘았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禮記 內則》
[주-D004] 연참(鉛槧)의 일 : 연참은 글을 쓰는 공구(工具)로, 즉 시문을 다듬는 것을 뜻한다.
[주-D005] 도리성혜(桃李成蹊) : “桃李不言 下自成蹊”의 준말로, 말 없는 가운데 그 충심(衷心)이 드러나 사람들이 감복하는 것을 말한다.
그동안 간악한 역적들의 죄가 쌓여 하늘에까지 넘실대더니 마침내는 윤기(倫紀)가 땅에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기까지 하였다. 그 누가 부모가 없으리요마는 국모(國母)가 유폐(幽廢)되는 환란을 눈 뜨고 그냥 보고만 있었는데, 장차 나라가 망할 운명에 처하였어도 누구 하나 일으켜 세워 보겠다고 책임지는 사람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몇몇 곧은 신하들의 의분(義憤)에 힘입은 결과 회조(會朝)의 청명함을 보게 되는 경사를 맞게 되었다.
[주-D006] 회조(會朝)의 청명함 : 《시경(詩經)》 대아(大雅) 대명(大明)의 “肆伐大商 會朝淸明”에서 나온 말로, 아침이 되기도 전에 천하를 다시 바로잡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때 경은 폐부지친(肺腑之親)으로서 맨 먼저 용맹스럽게 힘을 발휘하였다. 한창 건장한 체력으로 두려움 없이 내외(內外)를 드나들며 주선하는 수고를 하였고, 큰 계책을 함께 도모하여 그야말로 위와 아래에서 모두 협찬(協贊)하는 도움을 받게끔 하였다. 공이 지휘를 함에 음산한 기운이 깨끗이 씻겨 나갔고, 호위를 함에 있어서는 절충어모(折衝禦侮)의 정신으로 충만하였다. 험난한 곤경을 서로 겪은 것으로 말하면 어찌 호언(狐偃) 뿐이라 말하리오. 평소 명성을 드날린 것은 거의 야왕(野王)과 같다 할 것이다.
[주-D007] 폐부지친(肺腑之親) : 왕실의 근친(近親)이라는 말이다. 구굉은 인조(仁祖)의 어머니인 인헌왕후(仁獻王后)의 오빠이다.
[주-D008] 절충어모(折衝禦侮) : 달려드는 적을 무력(武力)으로 제압하는 것을 말한다. 《詩經 大雅 綿注》
[주-D009] 호언(狐偃) : 춘추 시대 진 문공(晉文公)의 외삼촌으로, 문공이 망명하던 19년 세월 동안 늘 호위하며 보좌하였다. 《春秋左傳 僖公 23年》
[주-D010] 야왕(野王) : 진(晉) 나라 환이(桓伊)의 소자(小字)로, 사현(謝玄) 등과 함께 부견(苻堅)을 비수(淝水)에서 격파하였다. 《晉書 卷81》
이에 경을 책훈(策勳)하여 운운(云云)하노라. 위기(魏其)에 봉토(封土)를 나누어 준 것은 오(吳)를 평정한 공적을 표창하기 위함이었고, 운대(雲臺)에 초상화를 나란히 걸어 둔 것은 한(漢) 나라를 도운 충성심을 잊지 않기 위함이었나니, 이를 맹세하는 말로 거듭 다짐하고 물채(物采)로 아름답게 빛나게 하노라.
[주-D011] 위기(魏其)에 …… 위함이었고 : 한 경제(漢景帝) 때 두영(竇嬰)이 오(吳)ㆍ초(楚) 등 7국의 반란을 평정한 공으로 위기후(魏其侯)에 봉해진 고사를 말한다. 《史記 卷107》 《漢書 卷52》
[주-D012] 운대(雲臺)에 …… 위함이었나니 : 후한 명제(明帝)가 전세(前世)의 공신을 추념(追念)하기 위하여 등우(鄧禹) 등 28장(將)의 초상화를 운대(雲臺)에 걸어 놓은 것을 말한다. 《後漢書 朱祐等傳論》
아,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은 공명(功名)의 기회요, 처신하기가 지극히 어려운 것은 귀척(貴戚)의 집안이다. 따라서 안일(安佚)한 환경 속에서도 언제나 시초(始初)의 마음가짐을 견지해야 함을 알아야 할 것이니, 그래야만 지위가 높다고 해서 교만해지지 않을 것이요, 복록(福祿)이 많다고 해서 사치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런 뒤에야 구천(九天)을 향해서도 바름을 주장할 수 있고 백세토록 바뀌는 일이 없을 수 있겠기에, 이렇게 교시하는 바인데 잘 알아들었으리라 믿는다.
澤堂先生集卷之七 / 敎書
敎靖社功臣平城君申景禛書
王若曰 天厭昏穢 景命方新 武定艱難 多算是勝 雖復三軍左袒 大啓渭邸之基 萬騎宵屯 克贊臨淄之業 事貴謀始 功讓開先 爰疏上賞之榮 用酬中興之佐 嗟乎曩事之慘 實惟前代所希 金墉之囚 旣逼於母后 鐵塔之斃 忍施於稚孩 三綱四維 圮絶而莫救 群黎百姓 塗炭而靡歸 苟非秉義而達權 疇能撥亂而反正 惟卿燕頷投筆 豹頭沈機 早荷宣祖之知 益篤先將軍之烈 旋丁債師之橫 獨恥妄校尉之封 雲中有士卒之思 灞上任亭障之辱 越自長秋之一閉 雖蒙寸祿而亦辭 迨同二三舊臣 共恢百六頹運 桐宮故事 無待問於司農 荊府前言 尙有徵於長史 大策先定 天人與能 群材景從 大小協力 俄被南箕之謗 久淹西塞之征 謀參蓍龜 在遐外而罔間 志堅金石 履險阻而愈平 亟恢坤極之危隳 坐弭宗國之淪喪 身羈關徼 潛授之圖不渝 迹阻戎行 首建之勳難掩 闔門從役 義聲俱倡 肆當改玉之初 卽有追鋒之召 歷敭盡悴 始終贊謨 良疇告豐 敢忘播種之苦 大廈敷蔭 宜思究度之勤 肆策勳云云 爰田有加 儀物斯備 一句佚 勳閥之隆 古今罕見 於戲 明良際遇之不易 功業保守之尤難 非忠無君 非孝無親 信此理之不忒 有功必酬 有德必報 豈予心之或私 指白水而示衷 配靑丘而永久 故玆敎示 想宜知悉
정사공신 평성군 신경진에게 내린 교서[敎靖社功臣平城君申景禛書]
왕은 이르노라. 하늘이 혼탁한 세상을 싫어하여 크나큰 명을 새로이 내리셨다. 그러나 무력으로 평정하는 일은 어렵고 위험한 일인 만큼 다방면으로 계책을 세워야만 승산을 얻을 수가 있는 법이다. 옛날에 비록 삼군(三軍)이 좌단(左袒)을 하여 위저(渭邸)의 기틀을 크게 열어 놓긴 하였지만, 일만 기병(騎兵)이 밤에 진을 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임치(臨淄)의 공업(功業)을 도울 수가 있었겠는가. 어떤 일이든 시작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니, 앞길을 먼저 열어 놓은 것보다 더 큰 공은 없다고 할 것이다. 이에 상상(上賞)의 영예로운 봉호를 부여하여 중흥의 사업을 도운 공에 보답하는 바이다.
[주-D001] 삼군(三軍)이 …… 하였지만 : 한(漢) 나라 여후(呂后)가 죽은 뒤 태위(太尉) 주발(周勃)이 여씨(呂氏)들을 숙청할 목적으로 북군(北軍)에 들어가 군중(軍中)에 명령을 내리기를 “여씨 편을 드는 자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유씨 편에 서려는 자는 왼쪽 어깨를 드러내라.[爲劉氏左袒]”고 하자 모두 좌단(左袒)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그리고 한 문제(漢文帝)가 대왕(代王)으로 있다가 이때 추대를 받고 장안(長安)에 들어올 때 위교(渭橋)를 건너 대저(代邸 대왕(代王)의 서울 저택)로 들어가 옥새를 받았는데, 이를 위저(渭邸)의 기틀이라고 표현하였다. 《史記 孝文帝本紀》
아, 그동안에 일어났던 참혹한 사건이야말로 전대(前代)에도 참으로 드문 일이었다. 금용(金墉)에 유수(幽囚)되는 화(禍)가 이미 모후(母后)에게 박두했는가 하면, 철탑(鐵塔)의 죽음을 차마 모질게도 어린 아이에게 행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삼강(三綱)과 사유(四維)가 모조리 허물어진 채 구할 수 없게 되었고, 뭇 백성들은 도탄(塗炭)에 빠져 의지할 곳이 없게 되었다. 이러한 때에 진정 의리 정신에 투철할 뿐만 아니라 권도(權道)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이가 아니라면, 어떻게 난리를 평정하여 반정(反正)을 할 수가 있겠는가.
[주-D002] 금용(金墉)에 …… 화(禍) : 폐위(廢位)되어 갇히는 것을 말한다. 사마사(司馬師)가 위주(魏主) 조방(曹芳)을 폐하고 금용성(金墉城)으로 옮겼으며, 진(晉) 나라 양후(楊后)와 민회태자(愍懷太子) 역시 가후(賈后)가 폐위됨에 미쳐 모두 금용성으로 옮겨졌으며, 조왕 윤(趙王倫)이 혜제(惠帝)를 폐한 뒤 금용성으로 옮겼다. 《讀史方輿紀要 河南 洛陽縣》
[주-D003] 철탑(鐵塔)의 죽음 : 남송(南宋) 고종(高宗)의 황태자 부(旉)가 겨우 세 살이었는데, 위국공(魏國公) 장준(張俊)이 의거를 일으켜 반정(反正)을 하고는, 일찍이 역적 묘부(苗傅)와 유정언(劉正彦)에게 부가 옹립되었다는 이유로 철탑에 가두어 죽였다는 설을 말한다. 광해군 때 간신들이 이 설을 근거로 내세워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죽일 것을 주장했었는데, 이는 바로 패사(稗史)의 무설(誣說)로서 나대경(羅大經)이 이미 밝혀놓았다는 기록이 실록에 보인다. 《中央 卷24 高宗趙棋》 《光海君日記 5年 5月 22日, 8月 24日條》
[주-D004] 삼강(三綱)과 사유(四維) : 삼강은 군신ㆍ부자ㆍ부부의 윤기(倫紀)를 말하고, 사유는 예ㆍ의ㆍ염ㆍ치를 말한다.
생각건대, 경은 위무(威武)스러운 용모에 걸맞게 무신(武臣)의 길을 걸었으며 담대(膽大)하면서도 기략(機略)이 심오하였다. 일찍이 선조(宣祖)의 지우(知遇)를 받고서 선장군(先將軍)의 공렬(功烈)을 두터이 선양하였으며, 채수(債帥)가 횡행하는 때를 만나 망교위(妄校尉)가 봉후(封侯)되는 것을 홀로 수치스럽게 여겼다. 운중(雲中)의 사졸(士卒)들이 그리워하는데도 패상(灞上)의 정장(亭障)을 맡는 모욕을 당했는데, 장추궁(長秋宮)이 한 번 닫힌 뒤로는 조그마한 녹봉(祿俸)도 받지 않고 사양하였다.
[주-D005] 선장군(先將軍) : 신경진의 부친 신립(申砬)을 말한다. 임진왜란 때 삼도 도순변사(三道都巡邊使)가 되어 빈약한 병력으로 충주(忠州) 탄금대(彈琴臺)에서 배수진을 치고 싸우다가 패하자 물에 뛰어들어 자결하였다.
[주-D006] 채수(債帥) : 빚을 꾸어서라도 뇌물을 바쳐 장수가 된 뒤 백성의 고혈(膏血)을 짜내어 상환(償還)하는 부패한 무장(武將)을 지칭한다.
[주-D007] 망교위(妄校尉)가 …… 것 : 평범한 무관이 보잘것없는 군공(軍功)으로 큰 상을 타는 것을 말한다. 《한서(漢書)》 이광전(李廣傳)에 “흉노를 치기 시작한 때로부터 내가 항상 종군하였다. 그런데 망교위(妄校尉) 이하에서는 재능이 중간도 못되는데도 군공(軍功)으로 후(侯)에 봉해진 자가 수십 인이나 되었다. 내가 다른 사람에 뒤질 것이 없는데도 아무런 공도 인정받지 못한 채 봉읍(封邑) 하나 얻지 못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하였다.
[주-D008] 운중(雲中)의 …… 그리워하는데도 : 대군(大軍)의 신망을 한몸에 받고 있다는 말이다. 한 문제(漢文帝) 때 명장 위상(魏尙)이 운중 태수(雲中太守)로 있으면서 사재(私財)를 털어서까지 군사를 잘 먹여 길렀으므로 흉노가 감히 범접을 못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史記 張釋之 馮唐列傳》
[주-D009] 패상(灞上)의 …… 당했는데 : 신경진이 박승종(朴承宗)의 견제를 받고 평안도 박천(博川)의 효성령 별장(曉星嶺別將)으로 쫓겨간 것을 말한다. 《燃藜室記述 卷23 癸亥靖社》
[주-D010] 장추궁(長秋宮)이 …… 뒤로는 : 인목대비(仁穆大妃)가 유폐된 것을 가리킨다. 장추궁은 한 나라 때 태후가 거처하던 궁전 이름이다.
그리고는 두세 명의 구신(舊臣)과 함께 백륙회(百六會)의 액운(厄運)을 극복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동궁(桐宮)의 고사를 사농(司農)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겠는가. 형부(荊府)의 전언(前言)은 아직도 장사(長史)에게 징험해 볼 수가 있다. 이렇게 해서 큰 계책이 먼저 정해지면서 하늘과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을 추천한 결과 뭇 인재들이 그림자처럼 따르면서 크고 작은 일에 협력을 아끼지 않게 되었다.
[주-D011] 동궁(桐宮)의 고사 : 은(殷) 나라 이윤(伊尹)이 정사를 문란케 하는 임금 태갑(太甲)을 동(桐) 지방으로 쫓아낸 고사이다. 《書經 太甲上》 신경진이 김류(金瑬)를 찾아가서 위의 고사를 거론하며 광해군을 축출할 계책을 정하였다. 《燃藜室記述 卷23 癸亥靖社》
그러다가 남기(南箕)의 비방을 받고는 오래도록 서쪽 변방에 엄체(淹滯)되어 있었는데, 시귀(蓍龜)와 같은 계책을 함께 정하면서 아무리 먼 곳에 떨어져 있어도 빠지는 적이 없었고, 금석(金石)과 같은 견고한 뜻을 지니고서 아무리 험난한 지경에 처하여도 오히려 평온한 자세를 견지하였다.
[주-D012] 남기(南箕)의 비방 : 남쪽에 보이는 기성(箕星)이 구설(口舌)을 주관한다는 전설에서 유래하여, 허무맹랑한 참소를 받는 것을 뜻한다. 《詩經 小雅 巷伯》
그리하여 위태위태했던 곤극(坤極 국모(國母)를 가리킴)의 지위를 정상화시키면서 무너져가는 종국(宗國)의 운세를 되돌려 세웠나니, 변방에 매여 있으면서도 변함이 없이 묘략(妙略)을 남몰래 전해 준 그 공과, 군사작전을 행하기에는 걸림돌이 많은 처지에서도 선봉으로 길을 열어 놓은 그 공훈이야말로 결코 덮어 버릴 수가 없는 것이라 하겠다. 게다가 온 집안이 이번 거사에 뛰어들었으니, 그 의로운 성예(聲譽)가 다 함께 빛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개옥(改玉)하는 처음에 곧바고 추봉거(追鋒車)를 보내어 부름으로써 처음부터 찬조하며 심력(心力)을 아끼지 않았던 그 공을 두루 찬양받게 하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양전(良田)에 풍년을 구가하게 된 이때에 어찌 파종(播種)할 적부터의 그 수고를 감히 잊을 수가 있겠는가. 큰 집이 이미 낙성되었으니 구탁(究度)한 그 공로를 생각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 이에 책훈(策勳)하여 운운(云云)하노라. 원전(爰田 상으로 주는 공전(公田))을 가하고 의물(儀物)을 빠짐없이 마련케 했나니, 이번의 융성한 훈벌(勳閥)이야말로 고금(古今)을 통해 쉽게 볼 수 없는 것이라 하겠다.
[주-D013] 개옥(改玉) : 개옥개보(改玉改步)의 준말로, 임금을 바꾸고 제도를 일신(一新)하는 것을 말한다. 《春秋左傳 定公 5年》
[주-D014] 추봉거(追鋒車) : 가장 빠르게 달리는 수레로, 극진한 대우를 베풀 때 위에서 내렸다.
[주-D015] 구탁(究度) : 《시경(詩經)》 대아(大雅) 황의(皇矣)의 “維彼四國 爰究爰度”에서 나온 말로, 이모저모로 빠짐없이 따져 보고 경영했다는 말이다.
아, 명군(明君)과 양신(良臣)이 서로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공업(功業)을 보전하여 지키는 것으로 말하면 더욱 어려운 일이라 할 것이다. 진정한 충신과 효자가 아니면 무군(無君)과 무친(無親)의 결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니, 이 이치야말로 만세토록 어긋남이 없는 것이라 하겠다. 공이 있고 덕이 있는 자에게는 기필코 보답해야 하는 것이니, 이것이 어찌 나의 사심(私心)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는가. 흘러가는 강물에 나의 진정한 속마음을 전하면서 청구(靑丘)와 함께 영구히 복록을 내릴 것을 서약하는 바이다. 그래서 이렇게 교시하는 바인데, 잘 알아들었으리라 믿는다.
澤堂先生集卷之七 / 敎書
敎開城留守張晩加資書
王若曰 授鉞築壇 所以重外閫 分茅增秩 所以疇元勳 苟非包文武之全材 曷能副終始之委寄 惟卿天資英爽 宇量恢弘 儲頗,牧於禁垣 曾陪晉接之榮 置范,韓於關陜 屢協師貞之吉 利器旣別於盤錯 昌言亦著於昏狂 玆當鼎新之初 首下圖舊之旨 匈奴未滅 當勤戶牖之防 老成尙存 盍膺斧鉞之錫 不料梟獍之逆 遽出貔虎之班 作廷尉之逋囚 始戕命使 驅涇原之戍卒 遽犯宗都 當斯之艱 捨卿誰恃 伯玉在蜀 已發鍾會之謀 齡石留秦 何懼鎭惡之叛 出號則三軍髮豎 走檄則群醜膽寒 曳踵觀兵 左右哀新息之壯 登舟灑泣 中外倚太眞之忠 投醪之恩 足以感厲反側 轉丸之智 足以撑持事機 昏氛盡滌於一麾 巨猾卽梟於雙闕 風凌雨震 梁棟之質不撓 陰闔陽開 桑楡之功非暮 將申帶礪之誓 與同宗社之休 肆策勳云云 秩視三台 兼管陪京之鎖鑰 兵提八路 仍摠上將之韜鈐 於戲 功鉅者報隆 任大則責重 推誠馭物 予何吝於酬功 受命忘家 卿宜勉於盡悴 故茲敎示 想宜知悉
개성 유수 장만에게 가자한 교서[敎開城留守張晚加資書]
왕은 이르노라. 단(壇)을 쌓고 부월(斧鉞)을 전해 주는 것은 외곤(外閫)을 중하게 해 주기 위함이요, 봉토(封土)을 나누어 주고 직질(職秩)을 더해 주는 것은 원훈(元勳)을 보답하기 위함이다. 진정 문무(文武)를 겸비한 완전한 재능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믿고서 맡기는 자리에 어떻게 부응할 수 있겠는가.
[주-D001] 외곤(外閫) : 왕명을 받고 도성 밖으로 나가 군대를 지휘하는 무장을 말한다.
생각건대, 경은 천품이 영민한 데다 도량 또한 넓고 깊기만 하다. 그리하여 금원(禁垣 궁중(宮中)을 가리킴)에서 염파(廉頗)와 이목(李牧)을 기르듯이 대하면서 진접(晉接)하는 영광을 곱절이나 가하였는데, 그대 역시 범중엄(范仲淹)과 한기(韓琦)처럼 관섬(關陜 변방의 요새를 말함)에 있으면서 누차 사정(師貞)의 길한 법도를 행하여 왔다. 복잡한 상황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그대의 걸출한 재능은 이미 뚜렷이 구별되었고, 그대의 덕스러운 발언 역시 미친 듯 혼란한 조정 속에 확연히 드러나게 되었다.
[주-D002] 염파(廉頗) : 전국 시대 조(趙) 나라의 명장으로, 인상여(藺相如)와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고 진(秦) 나라에서 감히 넘보지 못하게 하였다.
[주-D003] 이목(李牧) : 전국 시대 조(趙) 나라의 명장으로, 진(秦) 나라에서 그를 두려워하여 이간책을 써서 그를 죽인 다음에야 조 나라를 공격해 멸망시켰다.
[주-D004] 진접(晉接) : 임금이 자주 접견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周易)》 진괘(晉卦)의 “晝日三接”이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05] 범중엄(范仲淹) : 북송(北宋)의 명신으로, 섬서(陝西)를 경략(經略)할 때 오랑캐들이 침범하지 못하고 용도노자(龍圖老子)라고 부르며 오히려 존경했다 한다.
[주-D006] 한기(韓琦) : 섬서 경략안무초토사(陝西經略安撫招討使)로 범중엄과 함께 오래도록 변방에서 군대를 지휘하여 한범(漢范)으로 천하에 명성을 떨쳤던 북송의 명신이다.
[주-D007] 사정(師貞) : 엄중하게 군대를 지휘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周易)》 사괘(師卦)의 “師 貞 丈人 吉”이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이번에 일체 혁신(革新)하는 초창기를 당하여 빛나는 선대(先代)의 문물을 다시 도모할 유지(有旨)를 맨 먼저 내리게 되었는데, 흉노가 아직 사라지지 않아 문단속을 철저히 해야 할 이때에, 노성(老成)한 이가 아직도 건재해 있으니 어떻게 부월(斧鉞)을 내리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효경(梟獍)과 같은 역적이 느닷없이 거칠게 날뛰는 무부(武夫)의 반열에서 나와, 정위(廷尉 의금부를 가리킴)가 체포하려 하자 이윽고 왕명을 받든 도사(都事)를 죽이고는, 변방의 정예 군사를 내몰아 갑작스럽게 도성을 범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어려운 때를 당하여 경을 빼놓고 누구를 의지할 수 있었겠는가.
[주-D008] 효경(梟獍) : 효(梟)는 올빼미 종류로 어미를 잡아 먹고, 경(獍)은 파경(破獍)이라는 호랑이 종류의 맹수로서 아비를 잡아 먹는다고 한다.
백옥(伯玉)이 촉(蜀)에 있을 때 종회(鍾會)의 음모가 벌써 드러났는데, 영석(齡石)이 진(秦)에 머물러 있으니 진악(鎭惡)의 모반쯤이야 두려워할 것이 있었겠는가. 호령을 내리면 삼군(三軍)의 머리칼이 쭈뼛해졌고, 격문(檄文)을 돌리면 추악한 무리들의 간담(肝膽)이 서늘해졌다. 무거운 발을 끌고서 관병(觀兵)을 할 때에는 좌우에서 신식(新息)의 장한 기상을 애달프게 여겼고, 눈물을 뿌리며 배에 오르니 중외(中外)에서 태진(太眞)의 충성심을 믿고 의지하였다.
[주-D009] 백옥(伯玉)이 …… 있었겠는가 : 도원수(都元帥) 장만(張晚)이 평양(平壤)에 주둔하고 있었으므로, 이괄(李适)의 반란을 쉽게 진압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백옥(伯玉)은 진(晉) 나라 위관(衛瓘)의 자(字)로, 촉(蜀)을 평정한 뒤에 종회(鍾會)와 등애(鄧艾)의 반란을 평정하고 재양공(菑陽公)에 봉해졌다. 《晉書 卷36》 영석은 남조(南朝) 송(宋)의 주영석(朱齡石)으로 촉(蜀)을 정벌하고 관중(關中)의 군사(軍事)를 총독하였으며, 진악은 남조 송의 왕진악(王鎭惡)으로 유의(劉毅)를 공격하여 장안을 함락시켰다. 《宋書 卷48, 卷54》
[주-D010] 무거운 …… 여겼고 : 신식(新息)은 후한(後漢)의 명장인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의 봉호(封號)이다. 그는 62세의 늙은 나이에도 자원해서 출정하였는데, 혹서기에 병든 몸으로 누워 있다가도 적이 험한 지형을 이용해서 고조(鼓譟)를 할 때마다 문득 발을 끌고 나와 관병을 하곤 하였으므로 좌우에서 그 장한 뜻을 슬프게 여기며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後漢書 卷54》
[주-D011] 눈물을 …… 의지하였다 : 태진(太眞)은 진(晉) 나라의 명장 온교(溫嶠)의 자(字)이다. 소준(蘇峻)이 반란을 일으키자 도간(陶侃)을 맹주(盟主)로 추대하고 출정하여 석두(石頭)에서 격파하였는데, 이때 소준의 죄상(罪狀)을 낱낱이 열거하자 7천 군사가 눈물을 뿌리며 배에 올랐다는 기록이 보인다. 《晉書 卷67》
경이 투료(投醪)해 준 은혜는 두 마음을 품었던 자들을 감복시키기에 충분하였으며, 둥근 구슬을 굴리듯 쉽게 승리를 거두는 그 지모(智謀)는 사태를 진정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그리하여 손 한 번 휘두르는 사이에 혼탁한 분위기를 말끔히 씻어 내고, 교활한 괴수의 머리를 즉시 쌍궐(雙闕)에 걸게 된 것이었다.
[주-D012] 투료(投醪) : 군민(軍民)과 동고동락하는 것을 말한다. 월왕(越王)이 막걸리를 강물에 풀어 많은 백성과 함께 마셨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呂氏春秋 順民》
비바람이 몰아쳐도 큰 집을 지탱하는 대들보는 끄덕이 없었고, 음양(陰陽)이 개합(開闔)하듯 이루어 낸 상유(桑楡)의 공은 결코 늦은 것이 아니었다. 이에 대려(帶礪)의 서약을 거듭 확인하며 종사(宗社)와 휴척(休戚)을 함께하는 뜻에서 경을 책훈(策勳)하여 운운(云云)하는 바이다. 이와 함께 삼정승에 비견되는 직질(職秩)로 배경(陪京 수도 이외의 다른 경도(京都), 즉 개경(開京)을 말함)의 정사를 겸관(兼管)케 하는 동시에, 팔로(八路)의 병권(兵權)을 장악하고 상장(上將)으로서의 웅략을 펼쳐 총지휘하게 하노라.
[주-D013] 음양(陰陽)이 …… 공 : 처음에는 패전의 쓰라린 맛을 보았어도 결국에는 큰 공을 이루게 된 것을 말한다. 《후한서(後漢書)》 풍이전(馮異傳)에 “동우(東隅)에서 실패했다가 상유(桑楡)에서 공을 거두었다.”는 말이 있다.
[주-D014] 대려(帶礪)의 서약 : 황하가 허리띠처럼 가늘어지고 태산이 숫돌처럼 작아지도록 공신(功臣)의 집은 영구히 단절시키지 않겠다는 맹세이다.
아, 공이 크면 보답도 응당 융성해야 하는 법이요, 임무가 막대하면 그에 따른 책임도 중해지는 법이다. 정성을 다하여 인재를 돌보아야 하나니, 내가 어찌 공을 보답하는 일에 인색할 수 있으리요. 왕명(王命)을 받고 나면 집안일을 잊어버려야 하나니, 경 역시 심력(心力)을 다해 노력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교시하는 바이니, 잘 알아들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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