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사문들 곁에서①
이날 저녁 그들은 고행자인 초췌한 사문들을 따라가 동행하며 시중들기를 청하여 승낙을 얻었다. 싯다르타는 옷을 벗어 길에서 만난 어떤 어려운 바라문에게 주어 버렸다. 그는 다만 잠방이와 바느질 하지 아니한 회색 웃옷을 입었을 뿐이었다. 하루에 한 끼씩 먹되 결코 요리한 음식을 먹지 않았다. 그는 십오일 간이나 금식할 때도 있었다. 어떤 때에는 한 달 동안 금식한 때가 있었다. 장 단지와 볼의 살이 빠졌다. 커진 눈에는 열정적인 꿈만 어른거리고, 여윈 손가락에는 손톱만 길고, 턱에는 마르고 엉클어진 수염만이 자라날 뿐이었다.
그의 눈은 여인을 만날 때 경멸로 떨렸다. 그는 장사하는 상인들, 사냥 가는 귀족들, 죽은 사람을 서러워하는 상제들, 몸을 파는 창부들, 병자를 위해 애쓰는 의사들, 파종의 날을 점치는 승려들,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어린애에게 젖을 물린 어머니들을 보았다. 그러나, 모두가 거들떠볼 만한 가치가 없었다.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
모든 것은 냄새가 났다. 허위의 냄새가 나고 있었다. 모든 것은 뜻이 있고, 행복 되고 아름다운 것 같이 보이나 실상은 다 썩어 갈 터이었다. 세상은 괴롭고 생은 괴로움에 차 있었다. 한 목적이, 유일한 목적이 싯다르타 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해탈하는 일이었다. 욕심으로부터, 욕망으로부터, 꿈으로부터, 기쁨과 슬픔으로부터 해탈하는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 이미 내가 아니라는 것, 마음을 비우게 하여 안식을 발견하는 것,
자기의 생각을 버리는 데서 기적을 아는 것, 그것들이 목적이었다. 모든 나라는 것이 정복되고 죽을 때, 모든 욕망과 욕심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최후의 것, 가장 본질적인 깊은 것, 이미 내가 아닌 큰 비밀을 깨달아 알 수가 있으리라.
싯다르타는 태양이 직선으로 내려 쬐는 곳에 묵묵히 서 있었다. 찌는 듯이 괴롭고 타는 듯이 목마른 것을 참아가며 그는 말없이 덤불 위에 쪼그리고 앉을 때도 있었다. 가려운 피부에서는 피가 흐르고 곪아서 고름이 났다. 그러나 피가 흐를 만큼 흘러 더 흐르지 않고 가시에 찔릴 대로 찔려서 더는 찔릴 데가 없으며, 피부가 아플 대로 아파 더 아프지 않을 때까지 잠자코 앉아있었다.
싯다르트는 단정히 앉아 호흡을 조절하는 법을 배웠다. 처음에는 적은 호흡으로 참아갈 수 있는 법을, 나중에는 호흡을 아니 하고도 참을 수 있는 법을 배웠다. 그는 호흡을 줄여 심장의 고동을 쉬게 하며, 고동의 수를 제한하여 적게 하며, 나중에는 전혀 움직이지 않게 하는 법을 배웠다. 해오라기가 대숲 위를 날아갔다.
싯다르타의 혼은 그 새와 함께 수풀과 산 위를 날아보았다. 물고기도 잡아먹고 해오라기처럼 배도 고팠다. 해오라기의 소리를 하였고 해오라기의 죽음을 경험하였다. 어떤 죽은 이리가 모래 언덕에 있었다. 그리하여, 싯다르타의 혼은 그 시체속에 들어가 보았다. 싯다르타는 죽은 이리가 되었다. 해변에 자빠지고 부풀어 썩은 냄새가 났다. 개에게 찢기고 매에게 뜯기었다. 나중에는 해골이 되고 먼지가 되어 들판에 흩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나서 싯다르타의 혼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죽었다. 썩어 부스러졌다.
여기서 그는 슬픈 유전(流轉)을 맛보았다. 사냥꾼과 같은 새로운 기대를 가지고 유전에서 벗어나며 인과율(因果律)이 그치고, 슬픔 없는 영원이 시작되는 것을 기다려 보았다. 자신에서 떠나 낯설은 물건속에 들어가 그 물건이 되었다. 짐승도 되고 썩은 고기도 되고, 돌도 되고 물도 되어 보았다. 하지만, 언제나 다시금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태양은 여전히 빛나고, 달은 여전히 떠 있었다. 그는 다시금 그였다. 유전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욕망이 일어났다. 정복하면 다시 새로운 욕망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싯다르타는 사문들 곁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자아를 떠나는 많은 점을 배웠다. 그는 고통을 통하여 자기를 잊는 길을 걸었다. 괴로움과 기아와 기갈과 피로를 자발적으로 맛보고 정복함으로써 자아를 이기는 길을 걸었다.
명상에 잠겨 모든 사물에 대한 욕심을 망각함으로써 자아를 버리려고 하였다. 이리저리 여러 길을 배워 수천 번 자기를 잊었다. 몇 시간 또는 며칠 동안이라도 무아의 경지에 머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를 잊는다 해도 결국은 언제나 다시 나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싯다르타는 무수히 자아를 벗어나 무(無)도 되고 동물도 되고 돌도 될 수 있었으나, 자아 발견은 피할 길이 없었다. 그러므로, 햇빛이 내려 쬐이는 곳에서 혹은 달빛 아래서, 그늘 밑에서, 혹은 비 오는 날에 싯다르타 자신으로 다시 깨어나 면할 수 없는 유전의 고통을 느껴야 했다. 그의 옆에는 그림자처럼 고빈다가 따르고 있었다. 그도 같은 길을 걸었고, 같은 수도에 힘쓰고 있었다.
그들은 이따금 봉사하는 일과 수련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별로 서로 말이 없었다. 간혹 자기들과 스승들의 양식을 얻기 위하여 같이 마을에서 마을로 걸을 때가 있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느 날 탁발하는 도중에 싯다르타는 고빈다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우리들은 과연 수도에 있어 멀리까지 왔다고 볼 수 있을까? 목적지에 도착하였다고 볼 수 있을까?”
고빈다는 대답하였다.
“우리들은 많이 배웠네. 그러나, 더 많이 배울 걸세. 싯다르타, 자넨 위대한 사문이 될 걸세. 자네는 빨리 고행을 익혔네. 늙은 사문들도 종종 놀랄 만큼. 오! 싯다르타, 자넨 성자가 될 걸세.” 싯다르타는 말하였다.
“내게는 그렇게 생각되지 아니하네. 고빈다, 지금까지 사문들 곁에서 배운 그것은 좀더 빨리 좀더 간단히 배울 수 있었을 것이네. 창기들이 뒤끓는 술집에 다녔다면, 노동자들과 섞였다면, 도박자들과 도박을 하였다면 더욱 빨리, 더욱 간단히 배웠을 것이네.”
“싯다르타, 그런 희롱의 말은 그만두게. 어떻게 그들 같은 부랑자들과 섞이어 명상의 법을
배웠을 것인가? 어떻게 호흡이 정지하는 법을 배웠을 것인가? 어떻게 굶주림과 고통을 잊는 법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인가?” 고빈다는 이렇게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