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장산제를 마치며 ➍ 마고할미의 시초와 변천
마고 천신에서 영험한 마고신으로 격하
마고할미를 모신 장산의 마고당은 언제 어디서 출발한 것일까?
현재 1924년에 기록된 <장산신당중건모연문(萇山神堂重建募緣文)>이 <동하면 고문서>와 함께 전하고 있다. 하지만 <동하면 고문서>에는 장산신당을 언급한 대목이 일절 없다. 왜 그럴까?
먼저 <장산신당중건모연문>의 내용을 살펴보자.
장산은 군 내의 거대한 명산이다. 수백 년 전에 산 아래 좌 · 우 · 중동 세 동에서 신당을 조용한 곳에 창건하여 정월과 유월 두 차례에 세 동네에서 치성을 드리고 제사를 올렸다. 바라는 바 있으면 무엇이든 필히 이 신당에 빌어 우리에게 수명과 복을 주며 여귀*를 멀리 몰아내고 오곡을 풍성하게 하였으니 신이 참으로 영험하다.
오늘에 이르러 이 신당은 해가 오래되어 낡고 상하여 위로는 비가 새고 옆으로 바람이 통하기에 세 동의 사람들이 꼭 중건해야겠다고 뜻을 모았으나 모자라는 것이 금전이다. 이에 초고의 글을 지어 단월(亶越 )의 보시를 바란다.
엎드려 비옵나니 여러 군자들은 조그마한 돈 한 푼을 아끼지 마시고 십시일반을 이루게 하여 이 신당이 썩지 않고 영구히 전해지도록 한다면 복을 구하고 신을 섬기는 도리에 천만다행이라 여긴다.
*여귀 : 불행하고 억울한 죽음을 당했거나 제사를 지낼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어 전염병과 같은 해를 일으킨다고 여겨지는 귀신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위 내용에서 언급된 장산신당인 마고당현판은 장산마고당이 아니라 상산마고당으로 되어 있다.
◇ 장산과 상산
상산은 장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조선시대 고지도를 살펴보면 장산에는 상산과 장산이 나란히 표기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상산과 장산 중 어느 것이 더 오래된 표현일까?
장산을 장산국의 등장과 연계시켜 본다면 장산 이전부터 ‘높고 거룩한 산’이란 뜻의 웃뫼란 이름이 있었다고 보인다. 웃뫼가 상산으로 변천하면서 상산은 장산국이 등장하기 전부터 붙여진 이름이다.
◇ 거칠산국의 마고신앙
장산국 이전에 해운대 지역은 거칠산국으로 칭해지는 국가의 영토였다. 거칠산국은 청동기 문명을 지닌 고조선의 유민으로 고조선으로 전해지던 마고신앙이 거칠산국 전체에 퍼져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마고신앙이 깃든 해운대 지역 장산 일원에서의 마고당이라 장산이 아닌 상산마고당이 되었을 확률이 높다.
상산마고당은 장산국의 불교가 전파되었어도 여전히 상산마고당이란 이름을 고수했을 것이고 1924년까지도 계속 이어져 왔다고 본다. 다만 천신의 반열에 있었던 마고할미가 불교 및 유교 등의 영향으로 민중 속에 영험한 신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즉, 민중들은 마고할미를 기복 신앙 대상으로 여긴 나머지 천신과 산신의 중간쯤에 자리매김한 것이리라.
이런 현상은 현 상산마고당 안의 ‘장산마고령신신위(萇山麻姑靈神神位)’란 위패에서도 보이듯이 마고할미를 영신(靈神)이라 칭해 ‘영험한 신’ 정도로 여겼던 것이다.
/ 예성탁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