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산사의 겨울채비=10월 5일
원주스님의 지휘로 메주 쑤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대중 생활이고 보니 언제나 분업은 철저히 시행된다. 콩을 씻어 삶는 것으로부터 방앗간을 거쳐 메주가 되어 천장에 매달릴 때까지의 작업과정에서 대중 전체의 손이 분업 형식으로 거치게 마련이다.
입이 많으니 메주의 양도 많지만 손도 많으니 메주도 쉽게 천장에 매달렸다. 스무 말들이 장독에는 수년을 묵었다는 간장이 새까맣다 못해 파랗고 흰빛까지 드러내 보이면서 꽉 차 있지만 어느 때 어떤 종류의 손님이 얼마나 많이 모여 와서 간장을 먹게 될지 모르니까 언제나 풍부히 비축해 두어야 한다는 원주스님의 지론이다.
동안거를 작정한 선방에서 겨울을 지내자면 김장과 메주 작업을 거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 선객들의 불문율로 되어 있는 관습이다. 김장과 메주 울력이 끝난 다음에 온 스님들은 송구스럽다면서 낮 시간에 좌선을 포기하고 땔나무 하기에 열중했다. 그러자 전체 대중이 땔나무를 하기에 힘을 모았다.
상원사는 동짓달부터 눈 속에 파묻히면 다음 해 삼월 초까지는 나뭇길이 막혀버린다. 눈 속에서는 나무와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에 땔나무는 많을수록 좋았다. 상원사를 기점으로 반경 2킬로미터 이내의 고목 넘어지는 굉음이 며칠 동안 요란하더니 20여 평의 장작이 13일 날 오후에 나뭇간에 쌓여 졌다.
4 결제=10월14일
결제를 하루 앞둔 날이다. 결제란 불가 용어로서 안거(安居)가 시작되는 날을 말하고, 안거가 끝나는 날을 해제라고 한다. 안거란 일 년 네 철 중에서 여름과 겨울철에 산문 출입을 금하고 수도에 전력함을 말한다. 하안거는 4월15일~7월15일이고 동안거는 10월15일~1월15일이다.
흔히 여름과 겨울은 공부철이라 하고, 봄과 가을은 산철이라 하는데 공부 철에는 출입이 엄금되고, 산철에는 출입이 자유롭다. 그래서 결제를 위한 준비는 산철에 미리 준비 해야 한다.
선방생활과 병영생활은 피상적인 면에서 극히 유사한 점이 많다. 출진을 앞둔 임전태세의 점검이 무인의 소치라면 결제에 임하기 위한 제반 준비는 선객이 할 일이다. 선방에 입방하면 침식은 제공 받지만 의류나 그 밖의 필수품은 자담(自擔)이다. 월동을 위한 개인장비의 점검이 행해진다. 개인장비라야 의류와 세면도구 및 몇 권의 불서 등일 뿐이다. 바랑을 열고 내의와 양말 등속을 꺼내어 보수하면 끝난다. 삭발을 하고 목욕을 마치면 물적인 것은 점검이 완료된다.
오후에 바람이 일더니 해질녘부터는 눈발이 날렸다. 첫눈이어서 정감이 다사롭다. 오늘도 선객이 여러분 당도했다. 어둠이 짙어갔다. 결제를 앞두고 좌선에 든 스님들은 동안거에 임할 마음의 준비를 마지막 점검해본다. 밖은 초설이 분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