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104주년에 생각나는 신규식 선생의 공화제 민족국가 건립과 대종교의 민족과 역사지리 인식
2023년 3월 1일
신규식(1880-1922, 현재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인차리 출생) 선생은 서울에서 자라면서 1898년 관립한어학교(官立漢語學校)에 입학하여 중국어·한국사·지리 등을 배웠고 1900년 육군무관학교에 다녔고 1902년 보병 참위(參尉)로 임관되어 부위(副尉)까지 진급하였습니다. 선생은 처음에는 서울에서 가족을 따라 기독교를 믿었습니다. 1905년 국권을 잃자 국권을 되찾으려고 사회운동을 하다가 1909년 7월에 대종교에 가입하여 대종교 교인이 되었습니다.
신규식 선생은 일찍부터 독립사상을 영향을 받아 영국 명예혁명, 프랑스 혁명, 미국 독립전쟁 등에 관심을 갖고 ‘공화제 민족국가를 세우려고(The Building of Korea Republican National State)’ 결심하였습니다. 특히 그가 믿고 전도한 대종교는 한민족 민족국가(Korea Nation State) 건립에 정치사상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서양 근대에 이루어진 민족국가를 참고하여 한민족 중심의 국가를 세우기 위하여 한민족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신규식 선생은 1911년 초겨울 중국 상해에 도착하여 당시 중국혁명을 이끌던 손문(1866-1925)과 혁명당 지도자들을 만나 이들을 정치적으로 지지하고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중국 혁명가들이 죽을 때마다 크게 슬퍼하고 아쉬워하였습니다. 신규식 선생은 조선의 민주혁명가들이 손문 중심의 중국 혁명가들과 소통하고 상호 평등하게 지지하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따라서 중국 공산당 지도부 당원들조차 과거 중국역사의 봉건왕조들이 조선의 역사를 책봉하였다고 오해한 것을 사과하였습니다.
신규식 선생은 1917년 7월에 주도하여 14분이 결의하고 조소앙 선생이 「대동단결 선언」을 지어 각지에 전파하였습니다. 선언문에는 “二千萬의 生靈과 三千里의 舊疆과 四千年의 主權”을 계승하여 이끌어나갈 공화제 민족국가를 세우기 위하여 “임시정부기구(總機關)” 건립을 주창하였고 1919년 상해 임시정부 탄생에 기초를 놓았습니다.
대종교 교인들은 한민족이 살았던 북방지역(고조선 고토와 부여 및 고구려 고토)에서 한민족뿐만 아니라 부여와 발해의 후손들에게도 삼신(三神)과 단군을 알려주어 민족 통일과 영토 통일에 힘썼습니다.
현재 우리는 남북한이 갈라서고 또 북방지역에는 연변자치구(현재는 축소되어 연변자치주)가 세워져서 남한, 북한, 연변자치구 2국1구(2國1區)의 정체(政體, government)를 이루었으나 21세기에도 아직 통합하지 못하여 온전한 민족국가 건립을 완성하지 못하였습니다.
독립운동에 참여한 종교인들이 많습니다. 특히 대종교 교인들은 ‘한민족 민족국가(Korea Nation State)’ 건립에 힘썼는데 신규식 선생의 일생 활동이 대표적입니다.
대종교 나철 선생이 대종교를 서울 취운정(翠雲亭, 현재 종로구 재동초교 교정 안에 있음)에서 단군교(1910년 8월 단군교 이름을 대종교로 바꿈)를 세워 중광하고 다시 북간도 지역에서 선교하였으나 1916년 8월 15일 한가위날 황해도 구월산 삼신사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신규식 선생은 상해에 머물면서 1916년에 홍남 나철 선생을 애도하는 칠언율시 5장을 짓고 1907년 3월 15일에는 추도문(「홍암(나철)선생 추도문」)을 짓고 그의 사상과 행적을 상세하게 읊었습니다.
선생께서 서울에 대종교 천궁을 중창하시고, 重闢天宮,
신령스러운 서궤를 다시 열어 펼치셨네. 再啓靈簏.
남쪽 한반도에서 대종교를 중광하시고, 跡始南疆,
북쪽 간도지역에서 대종교를 선교하셨습니다. 聲施北陸.
많은 사람들이 대종교에 귀의하였는데, 群來飲河,
사람마다 그릇 가득히 대종교를 믿었습니다. 或升或斛.
부여 발상지의 후손들과, 扶餘之裔,
발해국 영토의 백성들입니다. 渤海之育.
이들 모두 그동안 꿈꾸듯 모르다가 처음으로 삼신과 단군을 깨닫고서, 若夢初悟,
단군께서 교화를 펼치신 단목에 모여서 경배합니다. 仰集檀木.
선생께서 대종교 교리를 크게 밝히니, 闡發大明,
참배하는 사람들의 왕래가 아주 많습니다.(往來輻輳) 攸系來輻.
(「弘岩先生追悼文」)
* 2022년 7월부터 조남호 선생이 신규식 선생의 문집에 실린 시문(詩文)을 번역하여 발표하는 논문작업에 자문을 해주면서 선생의 문집을 자세히 읽었습니다. 저는 대만대학 대학원에서 중국현대사를 공부하는 동안에 한국 공화제 민족국가의 정치이념을 가진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손문 중심의 혁명가들과 어떻게 교류하였는지에 관하여 궁금하여 국민당에서 장개석과 대립하였던 호한민(胡漢民, 1879-1936) 선생을 연구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규식 선생의 시문을 자세히 읽으면서 당시 상황을 조금이나마 넓게 알았고 그동안 가졌던 생각들을 조남호 선생에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신규식 선생은 한민족의 공화제 민족국가를 세우는데 일생을 바친 정치가이며 독립운동가이었고 한민족의 민족국가를 건립하기 위하여 대종교의 정치적 사상과 역사 인식을 강화하셨던 분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