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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伯端,「心爲君論」︰心者衆妙之理而宰萬物과 朱熹 明德과 神明의 具衆理而應萬事
2025년 6월 22일
왕양명은 44살에 아우에게 써준 「입지설(立志說)」에서 “精神心思,凝聚融結”이라는 응신론(凝神論)을 강조하여 정기신(精氣神) 삼보의 수련(修煉)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취지가 『莊子、達生』:“用志不分,乃凝於神”이라는 응신론을 닮았습니다. 그러나 속뜻이 무엇이고 구체적인 수련방법이 무엇인지는 따져보아야 합니다.
또 왕양명이 귀주에 있는 동안에 석서(席書)의 요청을 받아 귀양서원에서 강연하고 석서와 토론하면서 밝힌 심즉리(心卽理)는 사실상 장백단이 말한 “心者衆妙之理而宰萬物”과 주희가 말한 “神明,所以具衆理而應萬事者”를 닮았습니다. 그러나 장백단과 주희의 말뜻은 대승불교를 반영하였으나 대승불교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심지어 왕양명이 48살 추석날 학생들과 토론하면서 확정한 양지(良知) 글자와 의미도 사실상 장백단의 『오진편(悟眞篇)』에 “양지는 본래부터 있고 현행(現行)한다.(良知自在)”에 있습니다.
물론 왕양명이 30대 초반에 양명동에서 요양하면서 수련한 공부는 수진도(修眞圖)를 걸어놓고 도교의 존사법(存思法)을 수련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시기에 왕양명은 보태(普泰) 스님과 사귀었는데 보태 스님이 왕양명에게 능엄정(楞嚴定)도 가르쳐주었다고 추정합니다. 따라서 왕양명이 『오진편(悟眞篇)』에 관한 시를 짓고 또 황관(黃綰)은 왕양명이 학생들에게 정좌 방법을 가르치면서 장백단의 「오진편 후서(悟眞篇 後序)」부터 읽고 이해하라고 시켰다고 비판하였습니다. 따라서 왕양명 “精神心思,凝聚融結”이라는 소위 응신론(凝神論)의 구체적인 내용에는 도교와 불교 두 가지 방법을 포함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북송시기 전진교(全眞敎) 장백단(張伯端, 984-1082)은 왕안석이 변법을 실행하던 신종(神宗) 희녕(熙寧, 1068-1077) 연간에 활동하고 1075년에 『오진편(悟眞篇)』을 지었습니다. 그가 지은 『玉淸金笥青華秘方』의 「心爲君論」에서 “心者衆妙之理而宰萬物”이라고 말하면서 정기신(精氣神) 삼보를 수련하는 응신론(凝神論)을 설명하였습니다. 응신론의 수양방법이 정심(靜心)이라고 밝혔습니다. 정심 상태에서 선천의 의지(先天之意, 眞意, 靜中有動)가 삼보를 운행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설명한 것도 중요합니다.
장백단이 말한 “心者衆妙之理而宰萬物” 구절에서 “마음이 모든 묘리를 타고났다.(心者衆妙之理)”고 묘리(妙理)의 본유(本有)와 만물의 주재를 밝혔습니다. 그런데 당나라 양숙(梁肅, 753-793)은 『마하지관(摩訶止觀)』을 요약한 『산정지관(刪定止觀)』의 「지관통례(止觀統例)」에서 “止觀공부는 일체법(一切法)의 삼체(三諦)를 깨달아 실상(實際, 實相)을 이르는(復, 至) 것(夫止觀, 導萬法之理而復於實際者)”이라고 시유(始有, 導者啓迪也)를 비롯하여 보살의 실상상정(實相常定)과 대자비심을 설명하였습니다. 만법지리(萬法之理)는 보살의 삼체(三諦)를 말하고 실제(實際)는 대승불교의 제법실상(諸法實相)을 말합니다.
양숙은 천태종 담연(湛然, 711-782)의 학생으로서 조정 관원들 가운데 불교를 가장 잘 이해하였다고 평가받았습니다. 또 양숙은 고문(古文)운동을 일으켰고 정원 8년(792)에는 육지(陸贄, 754-805)를 도와 한유(韓愈, 768-824)와 구양첨(歐陽詹, 755-800)을 과거시험에 합격시켰고 다만 한유는 양숙과 달리 불교를 배척하였습니다.
앙숙(梁肅)은 천태종의 지관공부 관점에서 일심삼관(一心三觀)과 대자비심(大慈悲心)을 설명하였습니다. 묘리(妙理)의 본유(本有)는 선종에서도 만법귀일(萬法歸一)을 말합니다. 물론 도교에서는 원신(元神)을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고 말하였으나 불교의 불성과는 다릅니다. 장백단과 양숙의 말을 비교해보면 표현방식(語法)이 서로 닮았으나 크게 다른 것은 만물을 주재하느냐 아니면 응대하느냐는 것입니다. 주재하려는 것은 소승불교에서 말하는 신통력(神通力)에 가깝고 응대하려는 것은 중생 구제에 가깝습니다.
양숙(梁肅)이 「지관통례(止觀統例)」에서 “止觀공부는 일체법(一切法)의 삼체(三諦)를 깨달아 본성(實際, 實相)을 회복하는 것(夫止觀, 導萬法之理而復於實際者)”이라고 요약한 명제에는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중국 불교 역사에서 보면 후한 이래의 소승불교에서 벗어나서 일어난 대승불교의 삼체(三諦)와 제법실상(諸法實相)을 반영하였습니다. 구마라습은 『사유약요법(思惟略要法)』의 「제법실상관법(諸法實相觀法)」에서 제법실상을 관(觀)하는 심심청정관(甚深淸淨觀)을 얻었더라도 대자비심을 일으켜 일체중생을 구도하기 위하여 중생인(衆生忍)과 법인(法忍)을 수행하여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當興大悲誓度一切,常伏其心修行二忍,所謂眾生忍、法忍也。)
후한시기 안세고(安世高)가 번역한 『불설안반수의경(佛說安般守意經)』(148-170년간에 번역)은 소승불교의 육묘문(六妙門 : 數息, 相隨, 止, 觀, 還, 淨) 중심의 참선 공부방법입니다. 그런데 구마라습이 405년에 『대지도론(大智度論)』 번역을 마치고 다시 대승 반야(般若)에 의거하여 406년에는 『주유마힐경(注維摩詰經)』 주석서를 내놓고 제법실상(諸法實相)과 실상상정(實相常定)을 주장하였습니다. 그의 제자 승조(僧肇)는 408년에 주석한 『유마힐경주(維摩詰經註)』 「제자품(弟子品)」에서 “보살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실상 선정(實相定) 상태에 있으며 심지(心智)가 영원히 사라졌기에 형체가 팔극에 채우고 또 기회가 닥치면 조업하며 응대하는 데 제한(方)이 없다.(大士入實相定,心智永滅而形充八極,順機而作,應會無方。)”고 보살의 신통 대용(神通大用)을 설명하였습니다. 물론 천태종 혜문(慧文)과 혜사(慧思) 두 스님도 제법실상을 깨닫는 공부에 치중하였고 혜사 스님이 깨우쳤다고 말하고 지의(智顗) 스님에게 대승의 제법실상 선법(禪法)를 전수하였습니다.
남송시기 주희(朱熹, 1130-1200)는 『대학』의 명덕(明德)과 『맹자』의 “마음을 다한다(盡心)”의 마음(心)의 신명(神明)을 설명하면서 명덕과 신명이 “具衆理而應萬事者”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마음에서 신(神)이 최고단계(精義入神)의 주인공이고 신(神)의 작용이 밝음(明德)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장백단의 “心者衆妙之理而宰萬物” 설명이 그대로 주희의 “心者,人之神明,所以具衆理而應萬事者”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도교의 응신론(凝神論)이 그대로 주자 성리학의 심신론(心神論)에 반영되었습니다.
주희는 『朱子語類』에서 불교가 허령불매(虛靈不昧 : 虛靈이 神이고 不昧가 明입니다)를 강조하고 具衆理와 應萬事를 소홀히 한다고 비난하였는데 특별한 뜻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비난은 오히려 송대 성리학은 춘추전국시기 이래로 논의하여온 신(神)이라는 주재자(불교의 虛靈, 도교의 神)를 빼고 논의하지 않는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주희는 “마음의 신(神)이 衆理를 本有(具)하고 萬事에 작용(應)한다.”고 분명히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신(神)의 명덕(明德) 곧 신의 속성을 말하였을 뿐이고 신의 주재자 역할은 빠뜨렸습니다. 따라서 人心처럼 활동력이 강력한 氣質之性을 억압하여 없애고 道心처럼 미약한 본연지성을 서서히 회복하는 과정을 관리하고 주재할 주재자가 없습니다.
아무튼지 북송시기 장백단이나 남송시기 주희 모두 대승불교의 삼체(三諦)와 제법실상(諸法實相) 뜻을 알건 모르건 반영하였습니다. 다만 이들은 대승불교의 목표로서 중생을 구도하는 보살의 대자비심을 반영하지 못하였습니다.
왕양명은 48-49살에 감주(竷州)에서 『대학』의 明明德과 『중용』의 愼獨을 학생들과 집중 토론하였고 48살 가을 추석날에 양지를 확정하였습니다. 사실상 왕양명은 明明德과 愼獨에서 明德과 獨을 주재하는(明, 愼) 신(神)을 회복하였고 神明이라는 역할이 良知라고 여기고 맹자의 良知를 經學의 근거로 삼아 설명하였습니다. 따라서 왕양명이 도교 정기신(精氣神) 삼보 가운데 원신(元神)을 빌어 心學의 근거로 삼은 것에는 타당성이 있습니다.
북송시기 장백단과 남송시기 주희 또 명나라 왕양명 모두 응신(凝神)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수양방법에서 장백단은 정심(靜心), 주희는 궁리(窮理), 왕양명은 정좌(靜坐)를 주장하였습니다. 장백단과 왕양명은 정(靜)을 강조하여 사마타에 치중하였고 주희는 궁리(窮理)는 비파사나에 가깝습니다. 물론 불교에서는 정혜(定慧)는 兼修하는 것이고 어느 것에 선후(先後) 또는 경중(輕重)을 두어 구분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북송시기 장백단의 응신론(凝神論)과 정심(靜心, 定心)공부는 북송시기 성리학의 심신론(心神論 : 精義入神 해석과 凝神論)과 성명론(性命論) 및 주정(主靜)공부, 남송 주희의 심신론(心神論) 및 명나라 왕양명의 심신론과 수양공부(靜坐)에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따라서 당나라 종밀(宗密)선사의 교판(敎判)에 따르면 장백단, 북송 성리학, 남송 주희, 명나라 왕양명 모두 인천교(人天敎)에 속합니다. 왕양명이 응신론에 근거한 삼교합일(三敎合一)은 불교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기에 합일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왕양명이 30대 초반과 40대 초반에는 송대 도교와 성리학의 응신론에 근거하여 심신론과 정좌공부를 주장하였고 47살 가을 남창(南昌)에서 진구천(陳九川)의 건의를 받아들인 뒤부터 양지(良知)를 제시하였습니다. 왕양명은 50살 이후에 여러 곳에서 양지가 마음(心)의 신(神)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왕양명의 양지는 송대 심신론을 뛰어넘지 않았고 불교의 심성론에 가까이 가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명나라 말기에 유식학(唯識學)이 부흥한 뒤에는 스님들과 일부 양명 후학자들은 양지가 정식(情識)이라고 폄하하였습니다.
끝으로 북송시기 주돈이(周敦頤, 1017-1073)가 창밖에 있는 풀을 베어내지 않았다(周茂叔窗前草不除)는 고사를 보고 정명도는 측은한 마음을 뜻하는 어진 마음(仁)이라고 평론하였다고 전해옵니다. 그런데 장백단은 오히려 “무성한 들풀을 베어내지 않았더니 가시덤불까지 무성하네(野草不除荆棘堆)”라고 시를 읊었습니다. 북송시기 성리학자(周敦頤, 邵雍) 등이 도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 명백하기에 두 고사에는 서로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다만 정명도처럼 풀을 베지 않는 것이 측은한 인(仁)이라는 뜻보다는 오히려 창문 앞의 풀을 베지 못할 만큼 수양공부에 매진하였다는 것이 인(仁)을 깨달으려는 절실한 마음 자세를 나타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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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伯端(984-1082),『玉淸金笥靑華秘文金寳内鍊丹訣』,卷上
紫陽眞人張平叔撰
『悟眞篇』︰熙寧八年(1075)著成。
神宗 熙寧(1068-1077)
張伯端(984-1082),字平叔,號紫陽,後改名用成(誠),天台(今屬浙江)人。
邵雍(1012-1077)
周敦頤(1017-1073)
司馬光(1019-1086)
王安石(1021-1086)
程顥(1032-1085)
程頤(1033-1107)
蘇軾(1037-1101)
朱熹(113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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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伯端(984-1082),『玉淸金笥靑華秘文金寳内鍊丹訣』,卷上
紫陽眞人張平叔撰
「마음(心)이 주재자(君)이라는 주장(心爲君論)」︰
마음(心)은 신(神)이 거주하는 집이며 마음(心)에는 모든 신묘한 도리(理)를 갖추고 있고 또 만물을 주재(宰)합니다. 사람이 하늘로부터 타고난 본성(性)도 마음 안에 있고 타고난 천명(命)도 마음 안에 있습니다. 도학(道學)을 배우는 지식인들은 가장 먼저 마음(心) 글자부터 이해하여야 하며 이 밖에 신(神), 리(理), 만물(萬物), 성(性), 명(命) 모두 나중 일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주재자라는 글」(「心爲君論」)을 짓습니다.
장백단(張伯端, 984-1082) 선생은 관원에서 평민(野人)으로 강등되어 누더기옷을 걸치고 성도(成都)에서 태주(台州, 天台, 현재 절강성) 고향으로 돌아와서 산 좋고 물 맑은 곳(山靑綠水)에 집을 지었습니다.(1070년) 마음속에서 온갖 생각들(萬物)이 씻은 듯이 깨끗하게 없어지자 은근히 기쁜 가운데 『오진편(悟眞篇)』을 지었습니다.(1075년)
장백단 선생을 아는 사람이 시장에 가서 “귀양 가셨던 장백단 선생께서 고향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소식을 알렸습니다. 선생께 배우던 사람들이 떼를 지어 찾아와서 마당에 서서 울기도 하고 절하기도 하며 “선생님께서는 정말로 건강하시고 괜찮으십니까?” 안부를 여쭙거나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광동지역(嶺南)에 멀리 귀양 가신지(1057) 벌써 10년 지났는데(1070) 겉모습은 조금도 늙지 않으시고 몸은 조금도 피곤해 보이지 않으신데 무슨 방법이 있으십니까?” 여쭈었습니다.
장백단 선생께서 말하길 “아! 제가 여러분께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이 마른 고목처럼 늙어가고 지쳐가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마음(心)입니다. 많은 일을 하는 동안에 한 생각(一念 : 一剎那=一念, 0.018초)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생각(一念)이 뒤를 잇는데 낮 동안에는 조금도 쉬지 않습니다. 밤에는 깊은 잠(寐)에 빠졌을 때는 마음(心)이 없으나 신(神)마저도 없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특별한 방법을 아는 것이 아니고 다만 마음을 안정시키는 방법(定心)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건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귀신이 우리 마음을 엿볼(測度) 수 있는 까닭은 우리 마음에 생각(念)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생각(念)이 없으면 귀신의 작용(靈)도 우리 마음을 엿볼 수 없습니다. 귀신이 우리 마음을 엿볼 수 없는 까닭과 저 자신도 저의 마음을 엿볼 수 없는 까닭이 마음을 안정시키는(定心) 기본 방법입니다!’”
제자가 여쭙기를 “이렇게 말씀하시면 내단(內丹)을 수련하는 전진교(全眞敎) 도사들도 마음에서 생각을 꺼서 고요히 하여야(靜心)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장백단은 마음에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無心)이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定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내단을 수련할 때는 마음의 의지(意)가 선천의 기(氣)를 유도하여 운행하기 때문에 마음(心)에는 생각(意)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가 마음의 생각을 꺼서 고요히 하면 어떻게 선천의 기를 운행하는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장백단이 아래와 같이 설명하였고 나중에 명나라 말기에는 선천의 의(先天之意)를 말합니다.〕
장백단이 대답하길 “마음속에서 생각을 꺼서 고요히 할 수 있다면 금단(金丹, 大藥)을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속에서 생각을 꺼서 고요히 하는 것이 몹시 어렵습니다.”
제자가 말하길 “선생님의 현재 주장은 과거에 저희에게 가르치셨던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장백단이 놀란 듯이 무슨 까닭인지를 물었습니다.
제자가 대답하길 “선생님께서는 저희에게 금단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실 때마다 항상 마음속에서 의지(意, 先天의 意)가 나타나야 하며 의지가 정기신(精氣神) 삼보를 얻는 주인공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 마음에서 생각을 꺼서 고요히 하라(靜心)고 말씀하십니까?”
장백단이 대답하길 “자네는 하나(生意)만 알고 둘째(定心, 靜心, 無心)는 모릅니다. 내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마음의 주재자(君)가 평소에 마음을 쓰면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까닭을 생각해보세요. 『주역』에서 ‘(마음의 주재자는) 고요히 움직이지 않으나 외물이 닥치면 외물에 닿아 인지하고 주재한다.’고 말한 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마음 주재자의 작용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어떤 일이든지 하기에 끝내 마음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 것이 자네가 마음을 쓰는 작용입니다. 예를 들어 북극에 있는 북극성은 처음부터 움직이지 않으나, 북극성이 북두칠성을 움직이기 때문에 북극성을 중심으로 북두칠성이 움직입니다. 그런데 북두칠성이 쉬지 않고 움직이는데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은 북극성이 중심(天樞星)이 되어 움직이게 시키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定心, 靜心, 無心)에서 움직이는 것(動 : 生意)이 전진교 도사의 마음 사용 방법이고, 움직이는 상태(動心)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存不動 : 『論語』︰毋意)을 지키려는 것이 유가의 마음 사용 방법이고,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움직이는 마음도 없는 것이 흙과 나무 같은 사물입니다.
일반인은 마음을 단전(丹田, 黃庭)에 놓고 두 눈(火)을 부리고(服) 두 콩팥(水)을 부리고 삼교(口鼻舌)를 부리더라도〔두 눈은 陽神이 있기에 陰의 몸을 관찰하고, 두 콩팥에는 水가 있기에 煉丹하고, 삼교는 호흡(火)을 담당합니다.〕 셋 모두 최선의 기능(妙用)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내단(內丹)을 수련하는 도사가 두 눈, 두 콩팥, 삼교 모두의 기능을 잘 부릴 수 있는 까닭은 오직 신(神)이 명령을 잘 따르고 기(氣)가 삼교를 잘 따르고 정(精)이 부름을 잘 따르기 때문입니다. 신(神)이 명령을 잘 따른다는 말은 마음(心)이 외물에 매몰되지 않기에 신(神)이 마음(心) 안으로 되돌아와 자리 잡았다는 것입니다. 기(氣)가 삼교를 잘 따른다는 말은 마음(心)이 평화(和)롭기에 기(氣)가 평화로워지고 기가 평화롭기에 몸(形)이 평화로워지고 몸이 평화롭기에 천지(天地)의 평화로움이 맞대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기쁘거나 화날 때 기(氣)가 역행하는 까닭은 기쁨과 화냄이 마음에서 생겼기 때문입니다. 정(精)이 부름을 잘 따른다는 말은 예를 들어 남녀가 몸을 맞대어 정(精)이 방출되어 탕진되는 것도 마음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마음이 맑아져 없어지면 생각(念)도 맑아져 없어지고 생각이 맑아져 없어지면 정(精)이 방출되지 않습니다. 아! 마음이 고요해지면 밖의 외물에 끌려 매몰되지 않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기(氣)와 몸(形)이 평화로워지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마음과 생각 모두 맑아져 없어집니다. 한마디 말로 요약하면 요령은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靜)이며 마음이 고요해지면 정기신(精氣神) 삼보(三寶)를 잘 수련할 수 있습니다.
정기신 삼보가 잘 수련되는 까닭은 마음이 지극히 고요해진 뒤에야 선천의 의지가 움직이기(生意) 때문입니다. 이것은 평상시(散心)에 말하는 움직임(生意)이 아니며 몸 안에서 정기신을 운행하는 선천 의지의 움직임(生意)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선천의 정(精)이 응고(凝固)되고 선천의 기(氣)가 응고되고 선천의 신(神)은 성(性)을 수련하는 기초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性)은 성인데 왜 기초(基)라고 말하겠습니까? 대체로 마음이 고요한 단계에 이르면 신(神)이 온전하게 되고(煉精化神) 신이 온전하게 되어야만 성(性)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 말로 요약하면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靜)입니다.
마음을 고요히 하려면(靜其所以爲靜者) 먼저 잘 반성하고 발원하여야(蓋亦有理) 합니다. 강물의 물길을 따라 배를 저어 평온하게 내려오다가 파도가 치고 솟구쳐오르는 바다에서 멀리 있는 섬으로 가겠다면 얼마나 고생이 많겠습니까? 그래서 먼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정하고 고향의 안정(安靜)을 상상하면서 얼른 뱃머리를 돌려고 돗 방향을 바꾸고 바람의 방향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서 마음을 고요히 하겠다(固靜, 篤靜)는 길은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있다가 이제야 돌아가겠다는 것이고 오랫동안 잊었다가 이제야 돌아갈 길을 찾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갑자기 마음을 고요히 하겠다는 것이 쉽겠습니까? 집에 돌아가 마음을 고요히 하겠다는 까닭부터 생각해본 뒤에야 고요히 할 수 있습니다.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오늘에야 올바름을 찾겠다는 것도 분명히 일상적인 일이 아닌데 올바름은 어디에 있습니까?
시(詩)를 지어 대답하길
‘좋은 사다리를 내려오다가 높은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아름다운 궁궐에서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누렸던 기억을 돌이켜 떠올립니다.
옛날에 다녔던 큰길은 지금 어디 있는가?
무성한 들풀을 베어내지 않았더니 가시덤불까지 무성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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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伯端(984-1082),『玉淸金笥靑華秘文金寳内鍊丹訣』,卷上
紫陽眞人張平叔撰
「心爲君論」︰
心者神之舍也,心者衆妙之理而宰萬物也。性在乎是,命在乎是。若夫學道之士,先須了得這一箇宇,其餘皆後段事矣,故爲之傳。
張子野人,身披百衲,自成都歸于故山,築室於山靑水綠之中。萬物罄然,而怡怡然若有所得。客傳於市,曰︰“遭貶張平叔,歸于山矣。”從淤之士,叢然而至,立于庭,且泣且拜,曰︰“先生固無恙乎?”且“夫奔涉山川,逾越險阻者,于兹十年,而貌不少衰,形不少疲者,其有術乎?”
張子曰︰“吁!吾與汝言︰‘人之所以憔悴枯槁者,誰使之然?心也。百事集之,一念未已,一念續之,盡日之中,全無頃暇。宵之寐也,則亦若無心焉,但神不存矣。吾本無他術,爲能定心故。夫鬼神之所以測度者,吾心之有念耳。心無念則神之靈不可得而施也。豈神不知吾心、吾亦自不知其爲心,乃定之根本也!’”
弟子曰︰“然則金丹之士,其靜心乎?勿靜心乎?”
(張伯端)曰︰“靜之一字,能靜則金丹可坐而致也,但難耳。”
(弟子)曰︰“夫子之言,其誤後學多矣。”
張子矍然而請其旨。
(弟子)曰︰夫子與人言金丹之道,常使人心中生意,以意爲造化之主,心其能靜乎?
(張伯端)曰︰子見偏耳,非吾言之所誤也。君尋其平日用心,爲何而動。‘寂然不動,感而遂通’,乃吾心之用也。奔役天涯,了無居止,子用心也。
夫斗極之北辰,固未始動,其所以為動者,拱辰之星耳。然拱辰之星,故不能不動,其所以動者,辰為之樞而運之耳。
唯其不動之中,而有所謂動者,丹士之用心也;唯其動之中,而存不動者,仁者之用心也;於不動之中,終於不動者,土木之類也。
心居於中,而兩目屬之,兩腎屬之,三竅屬之,皆未可盡其妙用。其所以爲妙用者,但神服其令,氣服其竅,精從其召。神服其令者,心勿馳於外,則神反藏於内。氣服其竅者,心和則氣和,氣和則形和,形和則天地之和應矣。故盛喜怒而氣逆者,喜怒生乎心也。精從其召者,如男女構形而精蕩,亦心使之然也。心淸即念淸,念淸則精止。吁!心惟靜則不外馳,心惟靜則和,心惟靜則淸。一言以蔽之,曰靜,精氣神始得而用矣。
精氣神之所以爲用者,心靜極則生動也,非平昔之所謂動也,用精氣神於内之動也。精固精,氣固氣,神亦可謂性之基也。性則性,而基言之,何也?蓋心靜則神全,神全則性現。又一言以蔽之,曰︰靜。
其所以爲靜者,蓋亦有理。順水行舟,滔滔騰拔,欲往海島,不曰勞形?一旦回家,思鄉安靜,急駕歸帆,求風逆返。還家固靜之道,但久違而始復,久失而始尋,一旦欲靜,其可得乎?當思歸靜之由,然後能靜。既悟昨非,當求今是,非固常爲,是在何處?
詩曰︰‘自下金梯墮碧崖,回思閬苑幾花開。向來大道今何在?野草不除荆棘堆。’”
「口訣中口訣」︰
心不留事,一靜可期,此便是覓靜底路。又詩曰︰得路欲歸休問遠,看看信步莫煩心。雲收將放金烏見,一點靈光眼内明。心之所以不能靜者,不可純謂之心。蓋神亦役心,心亦役神,二者交相役,而欲念生焉。心求靜必先制眼,眼者神遊之宅也,神遊於眼而役於心,故抑之於眼而使之歸于心,則心靜而神亦靜矣。目不亂視,神返于心,神返于心,乃靜之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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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熹 具衆理而應萬事者︰
『朱子語類』,卷十四,『大學』︰
明德者,人之所得乎天而虚靈不昧,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禪家則但以虚靈不昧者為性,而無以具衆理以下之事。(僴)
『四書章句集註』,大學︰
明德者,人之所得乎天而虚靈不眛,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但為氣禀所拘,人欲所蔽,則有時而昏,然其本體之明,則有未嘗息者,故學者當因其所𤼵而遂明之,以復其初也。
『孟子集註』,卷七,盡心章句上︰
心者,人之神明,所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性則心之所具之理,而天又理之所從以出者也。人有是心,莫非全體,然不窮理,則有所蔽,而無以盡乎此心之量。故能極其心之全體,而無不盡者,必其能窮夫理而無不知者也。既知其理,則其所從出亦不外是矣。以「大學之序」言之,知性則物格之謂盡心,則知至之謂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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