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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나 타
고린도전서 16:21-24 2019/12/22 강림절 4주
16:21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16: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16:24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강이 강림절을 기다리는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강림절 네 번째 주일입니다.
성탄을 삼일 앞 둔 오늘 우리가 부를 찬양은 강림절 찬양의 고전, 찬송가 104장 ‘곧 오소서 임마누엘’입니다.
불러보겠습니다.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의로운 사람 요셉에게 증거 한 아들의 이름은 둘이었습니다.
하나는 육신의 이름, 예수입니다.
마1: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
다윗의 자손이자 요셉의 아들로 붙여진 육신의 이름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여호수아’라고 부르는데 ‘구원하신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그 어느 때 보다도 가장 절실 할 때,
그래서 나사렛뿐만 아니라 갈릴리에 속한 여러 동네에서 아들만 낳으면,
너도 나도 예수라는 이름을 지으며 메시아를 간절하게 갈망했던 시절.
요셉이 주의 사자로부터 받은 이름 역시 예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붙여진 수식어가 ‘나사렛 사람’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 ‘나사렛 예수’입니다.
다른 동네에서 태어난 예수와 분별하기 위해 붙여진 수식어들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세 곳만 찾아보겠습니다.
마 2: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마 21:11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마 26:71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이신 이가 이 땅에서 얻는 호적의 이름이 바로 예수입니다.
두 번째 주어진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그 뜻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
‘임마누엘’
사실 이 이름은 메시아를 갈망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 낯선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할 때,
하나님의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이미 700년 전에 예언했던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700년 전에 예언 된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오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크게 두 가지 사건으로 나타나는 데, 서로 상반되게 나타납니다.
첫째 심령이 가난한 자들.
그들에게는 모자람이 없는 축복이 임합니다.
사7:15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버터)과 꿀을 먹을 것이라
7:21 그 날에는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르리니
7:22 그것들이 내는 젖이 많으므로 엉긴 젖을 먹을 것이라 그 땅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는 엉긴 젖과 꿀을 먹으리라
(새)7:21 그 날에는, 비록 한 농부가 어린 암소 한 마리와 양 두 마리밖에 기르지 못해도,
7:22 그것들이 내는 젖이 넉넉하여, 버터를 만들어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모두 버터와 꿀을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어린 암소 한 마리와 양 두 마리밖에 기르지 못하는 가난한 농부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것들을 통해 내는 엉긴 젖(버터)와 꿀이 넉넉해서, 모자람이 없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예언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힘센 자들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7:16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
7:23 그 날에는 천 그루에 은 천 개의 가치가 있는 포도나무가 있던 곳마다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라
(새)7:23 그 날에는, 은 천 냥 값이 되는 천 그루의 포도나무가 있던 곳마다, 찔레나무와 가시나무로 덮일 것입니다.
은 천 냥 값이 되는 천 그루의 포도나무가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
곧 찔레나무와 가시나무가 덮여 아무 소용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교만한 자의 힘을 빼시겠다는 것입니다.
누가 오시면요?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시며, 하나님의 아들로 오시는 분.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그가 오셔서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할 줄 아는 나이가 되면 곧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면,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고 선지자 이사야는 예언합니다.
실제로 700년 전에 있었던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은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살피보자 하는 본문은 바울의 친필입니다.
대필로 고린도 교회에 꽤 긴 편지를 쓴 후 마지막에 바울이 친필로 직접 기록한 글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입니다.
몇 줄 되지 않지만 꾀 무게감이 있는 본문입니다.
바울이 대필로 쓴 편지의 내용을 보면 참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파당과 신앙의 이견을 어떻게 좁힐 것인지?’
‘결혼과 독신 중에 어떤 삶이 경건에 유익한지?’
‘우상에게 드린 고기를 담대하게 먹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할 것인지?’
‘창녀들과 몸을 섞는 음행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
‘교인들 간의 송사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이방인과는 어떻게 접촉하고 관계를 맺어야하는지?’
‘바른 성만찬이란 무엇인지?’
‘예배의 질서를 어떻게 회복할 것이지?’
‘하나님의 은사를 어떻게 받고, 이해하고, 쓸 것인지?’
‘은사 중에 은사인 사랑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참된 가치인 부활의 실제와 실체가 무엇인지?’
등 참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고린도전서’라는 편지를 마무리 짓는 곳에 이르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6장입니다.
여기에 보면 이런 내용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첫째 연보의 문제입니다.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한 연보를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다룹니다.
16: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16:2 매주 첫날(주일)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십일조)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둘째 개인의 신상을 밝힙니다.
어떻게든지 고린도에 가서 머물고 싶었던 개인적 바람을 아주 솔직하게 기술합니다.
16:7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
셋째 나 대신 디모데를 잘 영접해 달라는 부탁과 아울러 아볼로의 근황을 친절하게 전합니다.
16:10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16:12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넷째, 고린도교회가 바울에게 파견했던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가 얼마나 귀한 사역과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지를 전하면서 이런 부탁을 합니다.
16:18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
(새) 이 사람들은 나의 마음과 여러분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어야 합니다.
16장에 나오는 내용들만 보면 참 훈훈합니다.
교회공동체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성도가 있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알아주고 높여주는 교회가 있다는 것 칭찬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아주 훈훈한 미담이지요.
고린도 교회가 가진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의 모습.
분명 그것은 사도 입장에서 자랑일 것입니다.
이렇게 따뜻한 문안 인사를 건넨 후,
사인하듯 친필로 바울이 덧붙인 마지막 설교가 오늘의 본문입니다.
16:21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이제부터 ‘잘 새겨들으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권면의 말씀입니다.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으라.’
‘저주를 받으라.’
‘정말 이 말을 바울이 직접 기록했을까?’
사실 의심이 들 만합니다.
왜냐하면 16장 20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아주 훈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22절,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는 말에 앞서 16장 21절에서 자신의 친필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말 맞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잘 새겨들으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저주’
‘저주’라는 거친 말은 바울이 종종 사용했던 말이기는 합니다.
이단에게 한정적으로 사용했거나, 가급적 자기 자신에게만 사용했던 거친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 대상을 분명히 합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저주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고린도전서에서 사용되었던 어조와 사뭇 다를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낯설기까지 합니다.
‘설마 바울이 그런 말을 했겠어?’
‘그것도 인사말로 마치는 편지의 말미에서 설마 그런 말을 했겠어?’
‘다시 읽어 봐 잘못 읽은 것 아니야?’
여기서 한 가지 합리적인 의문을 갔게 됩니다.
‘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이런 거친 말을 친필로 남겼을까?’
‘왜 환영 받지 못할 인기 없는 말을 굳이 더 했을까?’
그것은 바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 때문입니다.
사도라는 정체성 때문입니다.
바울, 바울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고전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름 받은 자
이것이 바울의 정체성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 곧 진리를 거스르는 자들을 교회 안에서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
그 거짓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가만 둘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과 어떤 타협의 여지를 가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친필로 남겨둔 말이 "누구든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 곧 진리를 거스르는 사람은 저주를 받으라!"입니다.
또 하나 바울이 기록한 말이 있습니다.
16장 22절 말미에 나옵니다.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이 부분을 새 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마라나 타, 우리 주님, 오십시오.’
'마라나 타' 익숙한 단어 이지요.
'주님'이란 뜻의 '마르mar'와 '오다'라는 뜻의 '아타ata'가 결합된 말로 청유형입니다.
번역하면 '주님, 오시옵소서.'가 됩니다.
바울이 친필로 기록한 두 번째 말 바로 ‘마라나 타’입니다.
사도행전 1장 11절입니다.
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이 약속을 있는 그대로 믿는 신앙이 마라나타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 마라나타 신앙 때문에 아주 험악한 세월을 보냅니다.
많은 학문으로 인해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동족 유대인으로부터는 배교자라는 낙인 속에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마라나타, 그 신앙 하나 때문에 겪지 않아도 될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11: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11: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11: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말씀을 마칩니다.
마라나 타, 주님의 오심, 정말 기대가 되십니까?
그렇다면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진리를 거스르는) 저주의 길에서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한 걸은 더 나아가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신 우리 주님처럼 아파하는 형제의 이웃이 되어주십시오. 고난 받는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십시오.
우리 장정교회가 이 거룩한 소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와 간구를 멈추지 마십시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