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렵채집인의 삶(농업혁명 이전의 삶)
농업혁명 이전 지구에 살던 5백만~8백만의 수렵채집인은 수천개의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를 지닌 수천개의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석기시대는 목기시대라 불러야 할 것, 수시로 이동하는 수렵채집인들의 유물은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유적과 흔적으로 추정해선 안된다)
지금의 옥스퍼드대 지역에 3만년전 살던 수렵채집인 무리는 케임브리지에 살고 있던 무리와 다른 언어를 사용했을 것이고, 한무리가 호전적이고 다른 무리는 평화적이었을 수 있다.
한 쪽은 공유공동체, 한쪽은 핵가족을 기반으로 했을지 모른다. 각기 종교나 우상도 다를 수 있다.한쪽은 동성애가 용인되고, 다른 쪽은 금기였을 수도 있다. 한쪽은 환생을 믿고 다른 쪽은 다를 수 있다. (오로지 인류학적인 관찰을 통해 어떤 가능성이 있었을지 이해할 수 있다. 고대엔 그 가능성의 지평이 훨씬 더 넓었고, 대부분 우리 시야에서 가려져 있다)
1)대부분 수십명, 기껏해야 수백명으로 구성된 작은 무리에 속해 살았으며 무리 속의 개체 모두 인간이었을 것.(농경, 산업사회의 구성원은 가축회된 동물이 대부분)
2)같은 무리의 구성원들은 서로 매우 잘 알았으며 평생, 친구와 친척에 둘러싸인채 살아갔다.(고독과 프라이버시는 없었다)
3)이웃 무리들과 자원을 놓고 경쟁, 싸우기도 했을 것,
우호적 접촉도 있고 서로 구성원을 교환하고 함께 사냥, 사치품 매매, 종교적 축제도 벌였다.(이런 협력은 싸피엔스의 중요한 트레이드마크였고, 다른 종들에 비해 결정적 우위를 누리게 해 주었다.)
4)이웃 무리와 워낙 가까운 관계가 되어 하나의 부족을 구성하고 동일한 언어, 신화, 규범과 가치를 공유하기도 했다.
5)사피엔스 집단은 넓은 지역에 희박하세 퍼져있었다. 농업혁명 이전 지구 전체 인구수는 오늘날 카이로 인구보다 적었다.(2천만)
6) 무리는 억거리를 찾ㄴ아 떠돌며 길위의 삶을 살았다.(계절의 변화, 동물의 이동, 식물의 성장주기에 따름)
7)사피엔스의 주된 활동은 채집이었다.(대부분의 칼로리)
8)생존을 위해 주변환경에 대해 좀 더 넓고, 깊고 다양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개인 수준에서 보자면 고대 수렵채집인은 역사상 가장 아는 것이 많고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사피엔스의 뇌용적은 수렵채집시대 이래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증거가 일부 있다. 살아남으려면 누구나 뛰어난 지적 능력을 지녀야했다.
9)신체를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 사용한 덕분에 마라톤 주자처럼 건강했다. 신체적 기민성은 요즘 사람들이 요가, 태극권을 수십년 수룐해도 따라갈 수 없는 수준.
10) 그들의 후손인 농부, 양치기, 노동자, 사무원에 비해 훨씬 안락하고 보람있는 생활을 영위.(지금의 사람들이 일주일에 40~45시간, 60시간 이상 일하는것에 비해, 비교가 될만한 칼라하리 사막의 수렵채집인들은 사흘에 한번 사냥에 나서고 채집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하루 3~6시간에 불과하다, 식량자원이 더 풍부했을 고대 수렵채집인들은 이보다 더 적은 시간을 썼을 것이다)
11)고대 수렵채집인은 영양실조에 걸리는 일이 적었으며(다양한 식단으로인해), 화석뼈의 증거로 보면 키가 더 크고, 신체도 건강했을 것이다. 영아사망율이 높아 평균기대수명은 30~40년, 보통 60세, 일부는 80세까지 살았다)
*많은 전문가들은 농경이전 수렵채집 사회를 최초의 풍요사회라 불렀다
12)삶은 거칠고 힘든 부분이 있었다(사고로 인해 쉽게 사망, 노인이나 장애인을 버리거나 죽이고, 어린이 살해, 인신공양사례도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