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典型的전형적인 文人 집안으로 9代祖는 權溥권보이고, 6代祖는 權近권근이며, 父親부친은 權擘권벽임. 安東權門안동권문 25代孫으로 朝鮮時代조선시대 詩시 때문에 죽은 唯一유일한 사람이다. 權韠권필은 漢陽한양의 서쪽 郊外교외인 玄石村현석촌에서 習齋습재 權擘권벽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玄石村현석촌은 지금의 麻浦區마포구 西江 附近이다. 權韠권필은 詩文시문에 뛰어났던 父親의 影響영향을 받아 7歲 때에 벌써 '驅車兒구차아'라는 長篇장편 古詩고시를 지을 정도였다. 벼슬은 童夢敎官동몽교관(요즘의 幼稚園敎師 정도)으로 推薦추천되었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 2. 鄭澈정철의 門下에서 東岳동악 李安訥(이안눌, 1571-1637)과 함께 修學수학하였고, 서로 주고받은 詩를 모아 '唱酬集창수집'을 만들었다. 詩才가 뛰어나 製述官제술관이 되었다. 江華府강화부에 있을 때 名聲을 듣고 몰려온 많은 儒生들을 가르쳤으며, 1601年 明나라의 大文章家대문장가 顧天俊(고천준, 꾸티엔쥔)이 使臣사신으로 왔을 때 迎接영접할 文士문사로 뽑혀 이름을 떨쳤다.
3. 科擧에 合格했으나 光海君의 뜻을 거슬러 取消취소된 事實을 듣고서 憤분함을 참지 못해, 光海君의 妃비 柳氏류씨의 동생 柳希奮유희분 등 戚族척족들의 放縱방종을 非難비난하는 「宮柳詩궁류시」를 지었는데, 光海君이 大怒대노하여 詩시의 出處를 찾던 중, 1612年 金直哉김직재의 獄옥에 連累연루된 趙守倫조수륜의 집을 搜索수색하다가 그가 發見되어 몽둥이찜질(棍杖곤장)로 親鞫친국 받은 뒤 海南으로 流配유배되었다. 歸養귀양길에 올라 東大門 밖에 다다랐을 때 그는 杖毒장독이 있는데 行人들이 주는 同情 술을 暴飮폭음하고 44歲의 나이로 客死함.
4. 權韠권필의 죽음 以後, 仁祖反正인조반정의 한 口實이 되었으며, 1623年 仁祖反正인조반정 後 司憲府사헌부 持平지평에 追贈추증되었고, 光州광주 雲岩祠운암사에 配享배향되었다. 權韠권필의 墓묘는 京畿道 高陽市 一山區 碧蹄邑벽제읍 城石3里성석3리에 있고, 墓碣묘갈은 宋時烈송시열이 贊찬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