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흡 수행 시 5가지 조절기능(오근)의 균형을 잡는 방법
바왕가에 떨어짐을 피하고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5가지 조절기능이 필요합니다.
5가지 조절기능은 마음을 빠띠바가 니밋따에 밀어 넣고 고정시킵니다.
1. 믿음(信根, saddhā)
2. 정진(精進根, vīriya)
3. 알아차림(念根, sati)
4. 삼매(定根, samādhi)
5. 지혜(慧根, pañña)
5가지 조절기능은 마음을 조절하고, 사마타(평온)와 위빳사나(통찰지)의 길에서 마음이 벗어나려는 것을 막는 5가지 힘입니다.
첫 번째는 삼보의 믿음, 업의 믿음, 인과의 믿음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수행은 퇴보할 것입니다.
4가지 도(道), 4가지 과(果) 그리고 닙바나 등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수행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 단계에서는 가르침의 완벽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수행자가 이렇게 생각한다고 합시다.
‘단지 호흡만 바라봄으로써 실제로 선정(jhāna)을 얻을 수 있을까?,
욱가하 니밋따(익힌 표상)는 목화솜과 같고 빠띠바가 니밋따(닮은 표상)는 깨끗한 얼음이나 유리 같다고 말하는 것이 사실일까?’
이러한 생각을 고집한다면, ‘선정은 금생에 얻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러면 수행자는 가르침의 믿음이 퇴보하고, 사마타의 수행은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호흡수행와 같은 수행 주제를 가지고 삼매를 수행하는 사람은 강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무런 의심 없이 호흡수행를 수행해야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따른다면 선정을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생각해야합니다.
그러나 빠띠바가 니밋따 수행의 믿음이 과도하게 되면, 삼매는 오히려 퇴보할 것입니다.
과도한 믿음은 과도한 기쁨을 불러오고, 그것은 마음을 동요하게 만듭니다.
수행자의 마음은 기쁨에 가득 찬 흥분으로 혼란스럽게 되고, 지혜는 빠띠바가 니밋따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과도한 믿음이 대상을 결정하기 때문에, 지혜는 분명하지 않고, 나머지 정진, 알아차림, 삼매의 기능 또한 약해집니다.
정진은 빠띠바가 니밋따의 마음부수를 일어나게 하거나 유지시킬 수 없습니다.
알아차림은 빠띠바가 니밋따의 알아차림을 확립할 수 없습니다.
삼매는 마음이 다른 대상으로 가려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지혜는 빠띠바가 니밋따를 꿰뚫어 볼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과도한 신념은 믿음을 떨어뜨리게 합니다.
그리고 만약에 정진이 너무 강해지면 나머지 요소들, 즉 믿음, 알아차림, 삼매, 지혜가 결정하거나 확립하거나 마음이 산만해지는 것을 막거나 꿰뚫는 식별력을 수행할 수 없게 됩니다.
이같이 과도한 정진은 마음이 빠띠바가 니밋따에 고요히 집중하지 못하게 합니다.
소나 존자의 경우가 좋은 예입니다.
부처님께서 라자가하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신다는 소식을 들고 그는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 출가하였습니다.
그는 부처님에게서 수행 주제를 배운 후 시따와나(Sītavana) 수도원으로 갔습니다.
그는 아주 열심히 수행했으나, 너무 과도한 노력으로 경행했기 때문에, 발에서 고통스런 종기가 생겨났습니다.
그래도 눕거나 자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때, 그는 손과 무릎으로 기어 다녔습니다.
경행대가 피로 얼룩이 질 정도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성취가 없자 그는 절망했습니다.
깃자꾸따(Gijjhakūta, 영취산 독수리봉)에 계시는 부처님께서 그의 절망을 아시고 그에게 가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가 세속에서 비파를 연주했을 때, 비파 줄이 너무 팽팽하거나 너무 느슨하면 연주를 할 수 없고, 균형이 맞아야 아름다운 소리가 났던 기억을 상기시켰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같은 방식으로 너무 많은 힘과 노력은 혼란을 일으키고, 너무 작은 힘과 노력은 게으름을 초래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소나 존자에게 그 가르침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 가르침을 따라 수행했고 얼마 되지 않아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믿음과 지혜의 균형 그리고 삼매와 정진의 균형은 성인들에게 칭송받아왔습니다.
믿음이 강하고 지혜가 약하면 잘못된 믿음이 수행될 것이고, 쓸모없고 실체 없는 대상을 숭배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신령이나 신의 숭배와 같이 정통 불교 이외의 종교를 믿고 따를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지혜가 강하고 믿음이 약하면 교활하게 됩니다.
수행을 하지 않고 단지 알음알이를 일으키고 평이나 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일어난 병은 고치기 힘든 것처럼 치료하기 힘듭니다.
믿음과 지혜가 균형을 이룬다면, 삼보(三寶), 업, 인과 등 믿음을 가져야만 하는 대상에 믿음을 가질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을 한다면 빠띠바가 니밋따(닮은 표상) 또는 선정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삼매가 강하고 정진이 약하면 게을러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행자의 삼매가 증가하면, 그는 느슨한 마음으로 빠띠바가 니밋따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는 꿰뚫어 보듯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게으름에 떨어집니다.
선정의 다섯 요소는 삼매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자주 바왕가에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정진이 강하고 삼매가 약하면, 마음이 들뜨게 됩니다.
삼매와 정진이 균형을 이루게 될 때, 게으름에도 떨어지지 않고 들뜨지도 않아 선정을 이룰 것입니다.
사마타 수행을 수행하는 사람은 매우 강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빠띠바가 니밋따에 대해 삼매를 수행하면, 나는 선정에 도달할 것이다’라고 확신한다면, 그 믿음의 힘과 빠띠바가 니밋따의 집중 때문에 확실히 선정을 이룰 것입니다.
선정은 주로 집중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빳사나를 수행하는 사람은 지혜가 강한 쪽이 좋습니다.
지혜가 강할 때, 무상⋅고⋅무아의 세 특성을 꿰뚫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삼매와 지혜가 균형을 이룰 때에만 세간의 선정(lokiya jhāna)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출세간의 선정(lokuttara jhāna)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삼매와 지혜가 정진과 믿음과 균형을 이루는 것은 출세간의 선정에서 더욱 필요하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알아차림은 모든 상황 하에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도한 믿음, 정진, 지혜로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보호하고, 과도한 삼매로 마음이 게으름에 빠지는 것을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알아차림은 믿음과 지혜, 삼매와 정진, 그리고 삼매와 지혜의 균형을 잡습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은 모든 양념에 들어가는 소금처럼, 약방의 감초처럼 모든 상황에서 필요합니다.
옛 주석서에 의하면 ‘알아차림은 모든 수행 주제에서 필요하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알아차림은 수행하는 마음의 의지처이고 보호처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이 이전에 한 번도 도달하거나 본 적이 없는 특별하고 높은 상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입니다.
알아차림 없이 마음은 특별하고 비범한 상태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알아차림은 마음을 보호하고 수행 주제를 잃지 않도록 합니다.
그것은 수행자의 마음뿐만 아니라 수행 주제를 보호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알아차림 없이 마음을 끌어올리거나 마음을 억제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알아차림이 모든 경우에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참 조
바왕가(bhavaṅga)
바왕가는 한 개체가 삶의 과정에서 생명이 끝날 때까지 그 연속성을 유지시켜주는 생명연속체입니다.
이 바왕가는 표면 아래에 흐르는 잠재의식이나 무의식이 아닙니다.
바왕가는 대상이 없어서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때 이 바왕가가 생멸을 거듭하며 흘러갑니다.
이것은 꿈 없는 숙면 속에서도 계속 흘러갑니다.
바왕가도 모든 마음처럼 대상을 갖습니다.
그것은 전생에 죽는 순간에 일어난 생각, 즉 업, 업의표상, 재생의 표상 중 하나입니다.
이 표상은 금생에서 죽는 순간까지 변하지 않습니다.
모든 인식과정은 이 바왕가를 거쳐 다음 인식과정으로 넘어갑니다.
To avoid dropping into bhavaïga and to develop further, you need the help of the five controlling faculties (pa¤cindriyà) to push the mind and fix it on the pañibhàga-nimitta. The five controlling faculties are:
Faith (saddhà)
Effort (vãriya)
Mindfulness (sati)
Concentration (samàdhi)
Understanding (pa¤¤à)
The five controlling faculties are the five powers that control the mind, and keep it from straying off the path of Samatha (tranquillity) and Vipassanà (insight) that leads to Nibbàna. If one or more of the controlling faculties are in excess, there will be an imbalance.
The first controlling faculty is faith in what one should have faith in, such as the Triple Gem, or faith in kamma and its results. It is important to have faith in the enlightenment of The Buddha, because without it, a person will regress from his work in meditation. It is also important to have faith in the teaching of The Buddha, namely the Four Paths, the Four Fruits, Nibbàna, etc. The teaching of The Buddha shows us the way of meditation, so at this stage it is important to have complete faith in it.
Let us say the yogi thinks, `Can jhàna really be attained by just watching the in-breath and out-breath? Is it really true that the uggaha-nimitta is like white cotton wool, and the pañibhàga-nimitta like clear ice or glass?' If these kinds of thought persist, they result in views such as, `Jhàna cannot be attained in the present age,' and the yogi's faith in the teaching will decline, and he will be unable to stop himself from giving up the development of Samatha.
So a person who is developing concentration with a meditation subject like ànàpànasati needs to have strong faith. He should develop ànàpànasati without any doubts. He should think, `Jhàna can be achieved if I follow the instructions of The Fully Enlightened Buddha systematically.'
If, however, a person lets his faith become excessive, and here it is faith in the meditation pañibhàga nimitta, his concentration will decrease. Excessive faith contains excessive joy (piti), which leads to emotions. This means the yogi's mind is disturbed by joyful excitement, and wisdom is unable to understand the pañibhàga nimitta. Then, because excessive faith has decided on the object, wisdom is not clear and firm, and also the remaining faculties, effort, mindfulness and concentration are weakened: effort is unable to raise associated mental formations to the pañibhàga nimitta, and keep them there; mindfulness is unable to establish knowledge of the pañibhàga nimitta; concentration is unable to prevent the mind from going to another object; and wisdom is unable to see the pañibhàga nimitta penetratively. Thus excessive faith leads actually to a decrease in faith.
If effort is too strong, the remaining faculties, faith, mindfulness, concentration, and wisdom, will be unable to respectively decide, establish, prevent distraction, and develop penetrative discernment. Thus excessive effort causes the mind not to stay calmly concentrated on the pañibhàga-nimitta.
This can be illustrated by the case of the Venerable Soõa. In the city of Ràjagaha, he heard the Buddha teach, and winning faith, he got his parents' consent and ordained. The Buddha taught him a subject for meditation, and he went to the monastery Sãtavana. He worked very hard, but pacing up and down in meditation with great energy, he developed painful sores on his feet. He did not lie down and sleep, and when he could no longer walk, he crawled on his hands and knees. He worked so hard that his meditation path was stained with blood. Even so, he won no attainment and was filled with despair.
The Buddha, on Gijjhakåta (Vulture Peak mountain), became aware of his despair and visited him. And The Buddha reminded him that when he as a layman had played the vãõà (a type of Indian lute), the lute was not tuneful or playable if the strings were strung either too tight or too loose: they had to be strung evenly. The Buddha explained that in the same way, too much energy or effort ends in flurry, and too little energy or effort ends in idleness. The Venerable Soõa profited from the lesson, because not long afterwards, having reflected on the lesson, he became an Arahant.
To balance faith with wisdom, and concentration with effort, is praised by the wise. If, for instance, faith is strong and wisdom is weak, a person will develop faith in, and respect for objects without use and essence. For instance, he will develop faith in, and reverence for objects revered and respected by religions outside orthodox Buddhism, such as guardian spirits or protective deities.
If, on the other hand, wisdom is strong and faith is weak, a person can become quite crafty. Without meditating, he will spend his time simply passing judgements. This is as difficult to cure as to cure a disease caused by an overdose of medicine.
If faith and wisdom are balanced, however, a person will have faith in objects he should have faith in: the Triple Gem, kamma, and its effects. He will believe that if he meditates in accordance with The Buddha's instructions, he will be able to attain the pañibhàga-nimitta, and jhàna.
Again, if concentration is strong and effort is weak, a person can become lazy. For example, if, when the yogi's concentration improves, he pays attention to the ànàpàna pañibhàga-nimitta with a relaxed mind, without knowing it penetratively, he may become lazy. The five jhàna-factors will in that case not be strong enough to maintain the high level of concentration, which means his mind will very often fall into bhavaïga.
But if effort is strong, and concentration weak, however, he can become agitated. When concentration and effort are balanced, he will become neither lazy, nor agitated, and will be able to attain jhàna.
When a person wishes to cultivate a Samatha subject, it is in any case good to have very strong faith. If he thinks, `I will certainly reach jhàna, if I develop concentration on the pañibhàga-nimitta', then by the power of that faith, and by concentrating on the pañibhàga-nimitta, he will definitely achieve jhàna. This is because jhàna is based primarily on concentration.
For a person developing Vipassanà it is good that wisdom be strong, because when wisdom is strong he will be able to know and see the three characteristics of impermanence, suffering, and non-self penetratively.
Only when concentration and wisdom are balanced can mundane jhànas (lokiya jhàna) arise. The Buddha taught that this applies equally to supramundane jhànas (lokuttara jhàna), which further require that concentration and wisdom be balanced with effort and faith.
Mindfulness is necessary under all circumstances, because it protects the mind from agitation due to excess faith, effort, or wisdom, and from laziness due to excess concentration. It balances faith with wisdom, concentration with effort, and concentration with wisdom.
So mindfulness is always necessary, as is the seasoning of salt in all sauces, and a prime minister for all the king's affairs. Hence the ancient commentaries say the The Blessed One said, `Mindfulness is always necessary in any meditation subject.' Why? Because it is a refuge and protection for the meditating mind. Mindfulness is a refuge, because it helps the mind arrive at special and high states it has never reached or known before. Without mindfulness the mind is incapable of attaining any special and extraordinary states. Mindfulness protects the mind, and keeps the object of meditation from becoming lost. That is why to one discerning it with insight-knowledge, mindfulness appears as that which protects the object of meditation, as well as the mind of the yogi. Without mindfulness, a person is unable to lift the mind up or restrain the mind, which is why The Buddha said it is necessary in all instances.
- 파욱 사야도 법문 중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