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곡의 프리마돈나, 김영임 명창
아리랑보존회 김영임 이사장(1953~)
뿌리 없는 나무 없듯이 조상 없는 자손도 있을 수 없다. 오늘 우리의 존재는 조상 덕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조상의 은덕을 까맣게 잊고 살기 일쑤다. 전통적인 효도사상이 희미해지고 물질만능의 탐욕 사회가 도래하면서 부모님의 망극한 은혜를 너나없이 잊고 사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만 있는 찰나의 인생들이 아니기에 가끔은 내일도 생각해 보고, 인연의 인과율도 음미해 가며 부모님이라는 뿌리에 대한 막중한 연분도 재삼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일상적으로 느끼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음에 틀림없다.
아리랑보존회 김영임 이사장(1953~)
자식은 마음으로는 부모를 공경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삶의 일상 속에서는 본심과는 달리 적지 않은 괴리가 생긴다. 그러니 옛 선인들의 시조처럼 영별永別 후에 남는 후회만이 되풀이되기 십상이다.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길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전통음악 중에서 부모님의 은덕이나 효행에 관련한 악곡을 꼽으라면 단연 회심곡回心曲이 아닐 수 없다. 회심곡은 원래 불교 계통의 음악이었지만,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가사를 윤색하고 여기에 서도소리조 가락을 입혀서 노래하는 곡이다.
한때 조선일보사에서는 매년 5월 8일 어버이날에 어김없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어버이들을 위한 국악대공연을 치러왔다. 이때 단골 메뉴로 편성되던 곡이 바로 회심곡이었으며, 그 회심곡은 으레 김영임 명창이 불렀다. 그만큼 경기민요의 김영임 명창은 회심곡의 대명사랄 만큼 회심곡의 절창이었으며 프리마돈나였다. 지금도 연세가 지긋한 분들의 뇌리 속에는 붉은 띠를 두른 하얀 가사袈裟에 고깔을 쓰고 꽹과리를 치며 낭랑한 성음으로 숙연하게 회심곡 한 자락을 불러제끼는 김 명창의 인상적인 모습이 한 폭의 정물화처럼 선명히 박혀 있을 것이다.
회심곡의 가사에 스스로 감화가 되어서인지, 김영임 명창은 잘 알려진 효부다. 공연예술계에서 인기를 좀 얻으면 우쭐한 기분에 알게 모르게 자만심이 앞서며 주변을 얕보는 경향이 있는데, 김 명창은 그 같은 세태와는 아예 거리가 멀다. 그 바쁜 일정과 화려한 무대생활 속에서도 시부모님을 비롯한 친척분들과 주위 사람들을 정성껏 보살핀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나(한명회교수)와의 인연도 얕지 않아서 내가 치러 오는 현충일 추모음악회에 헌신적으로 출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며, 덕소 이미시문화서원에 내외분이 들러 담소를 나누며 그가 좋아하는 능이버섯탕을 함께 즐긴 적도 꽤 있다.
예부터 효도는 백행지본百行之本, 즉 모든 인간행위의 토대요 근본이라고 했다. 효심孝心 없이 성실한 사람 없고, 효도하는데 남에게 지탄받는 사람 없다. 효도는 곧 일종의 수기修己다. 효를 통해서 사람 됨됨이를 닦았는데 지탄받을 일을 할 리가 만무하다. 그러고 보면 효도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긴요하기 짝이 없는 현재진행형이다.
사실인지 아닌지 여기 김영임 명창의 회심곡 일부를 조용히 음미하며 생각의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성싶다.
일심一心으로 정념精念 아하아미로다 보호옹오…
아리랑보존회 김영임 이사장(1953~)
억조창생億兆蒼生은 다 만민시주萬民施主님네 이내 말삼을 들어보소, 인간세상人間世上에 다 나온 은덕恩德을랑 남녀노소男女老少가 잊지를 마소, 건명전乾命前에 법화法華도 경經이로구나, 곤명전坤命前에도 은중경恩重經이로다.
우리 부모 날 비실 제 백일정성百日精誠이며 산천기도山川祈禱라 명산대찰名山大刹을 다니시며 온갖 정성精誠을 다 드리시니 힘든 남기 꺾어지며 공功든 탑塔이 무너지랴.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부모님전의 복福을 빌고 칠성七星님전 명命을 빌어 열달배설한 후 이 세상에 생겨나니 우리 부모 날 기를제 겨울이면 추울세라 여름이면 더울세라 천금千金 주어 만금萬金 주어 나를 곱게 길렀건만, 어려서는 철을 몰라 부모 은공을 갚을소냐, 다섯하니 열이로다. 열의 다섯 대장부라 인간칠십 고래희古來稀요 팔십 장년長年 구십 춘광春光 백살을 산다 해도 달로 더불어 논論하며는 일천一千하고 이백二百달에 날로 더불어 논論하며는 삼만육천일三萬六千日에 병든 날과 잠든 날이며 걱정근심 다 제除하면 단사십單四十을 못 사는 인생人生 어느 하가何暇 부모 은공 갚을소냐. 청춘靑春 가고 백발 오니 애닯고도 슬프도다, 인간공로人間空老 뉘가 능히 막아내며 춘초연년록春草年年綠이나 왕손王孫은 귀불귀歸不歸라 초로草露 같은 우리 인생 한번 아차 돌아가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김영임은 아침 햇살처럼 밝고 가을하늘처럼 청아한 성색과, 춘설이 잦아진 냇가의 버들개지처럼 삽상颯爽하고 유연柔軟한 창법으로 만인의 심금을 공명시키는 대표적 스타 가객이다. 특히 그녀는 한국 전통문화의 좋은 덕목의 하나인 효도를 몸소 수범해 가는 자상하고 사려 깊은 여인으로 널리 칭송되기도 하는데, 효행을 주제로 한 ‘회심곡’이 바로 그녀의 대표적인 인기곡이라는 사실 또한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