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연대기

[최미나]

아기 미나]
#순함
엄마는 허니문 베이비로 나를 가졌다. 결혼한지 1년이 안되어 태어난 아이는 잘먹고 잘잤다. 엄마도 잘먹고 잘자는 편이었다. 어느날 엄마도 잘자고 일어나 보니 나는 똥과 함께 놀고 있었다. 똥을 누고도 울지 않았고, 똥귀저귀를 풀었는지 똥귀저귀가 풀렸는지 세상 밖으로 나온 똥을 문질문질하며 놀고 있었다.(출처 엄마)

어린이 미나]
#겁쟁이
유치원에 처음 가는 날이었다. 또래 아이들이 낯설고 두려웠다. 나는 어린 시절 내내 초내향인이었다. 엄마와 덩치가 비슷한 어른, 유치원 선생님을 발견하고 그녀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며칠동안 선생님을 따라 다녔다.(출처 엄마)

초등학생 미나]
#망설임 #두려움
몇살 때인지 모르겠지만 8-10살 즈음이다. 사촌언니, 남동생과 함께 아파트 지하 슈퍼로 향했다. 거기엔 쇠창살로 가로막힌 어두운 공간이 하나 더 있었고, 거기에 할매 귀신이 산다고 믿고 있었다. 나는 가기 싫었고 1도 궁금하지 않았으나 호기심 많은 언니와 동생에게 끌려 함께 갔다. 그때 언니는 내 귀걸이(귓볼에 딱짚는 뽑기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하나가 (귀에서) 없어졌다며 ‘귀신이다!’를 외치고 도망갔다. 동생도 도망갔다. 나는 더 빨리 뛰고 싶으면서도 그러지 못해 울었다. 울고 나서뛰었는지 뛰고 나서 울었는지 모른다. 어쨋거나 나는 달리기에 잼병이었고, 억울했다. 난 안가고 싶었는데.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의 이야기다. 13살에는 뭘 못해서 담임 선생님에게 수시로 맞았다. 담임 선생님은 한달동안 모두가 달성해야 하는 발표횟수를 정해놓고, 매달 말, 발표하지 않은 수만큼 아이들을 불러 때렸다. 매 시간마다 나는 손을 들어야 하나, 틀리면 어떻게 하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한달이 다 지나가면 어떻게 하나 맘졸이며 지냈다. 그리고 밀대 막대기로, 단소로, 회초리로 여기저기 맞았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생각보다는 무섭다고 느꼈다. 명령에 잘 따르는 소시민이었다.

중학생 미나]
#친구
봉봉 타는 것을 싫어한다. 스릴 있는 것을 싫어한다. 중학생 때 친구들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나는 봉봉을 탔다가 오줌을 쌌다. 난 오줌싸개였다.

친구들과 좋아하는 가수 테이프나 팬시용품을 구경하러 다녔다. 나는 조성모, 성시경, 박효신 등을 좋아했다. 보통은 가수보다 배우를 훨씬 좋아한다. 유지태에 이어 강동원을 무지하게 좋아했다.

노래방을 가면 친구들의 노래를 듣기만 하고 부르지 않았다. 그건 나의 절대적인 원칙이었다. 나는 음치였다. 고음불가 계열. 내 노래를 누가 듣는 다는 것은 굉장한 공포였다. 그건 매우 예민한 문제였다.

친구들과 대부분 누군가의 집에 모였고, 그건 보통 우리 집이었다. 술래가 눈을 가리고 사람들을 잡는 게임, 카드게임, 공기를 많이 했다. 가끔 같이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거나 운동을 배우거나 교환일기를 썼다. 만화를 만들어 읽어주고, 그림을 그려 선물하고, 편지를 쓰고 받았다.

#그림 #수학
쉬는 시간에 만화그림 배껴 그리기, 만화 캐릭터 그리기를, 귀가 후에는 친구들과 놀거나 티비 드라마를 보는 게 최애 활동이었다.

중1 때 담임 선생님이 수학공부를 하는 나를 칭찬해줬따. 수학은 어른이 나에게 잘한다고 인정한 두번째 무언가였다. 첫번째는 청소이다.

17세미나]
#적응
부모님에게 공부하가는 말을 들어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가니 하루종일 나에게 공부를 하라고 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면서 공부할 시간은 주지 않았다. 0교시부터10교시까지. 저녁 먹기 전까지 수업을 하고 저녁 먹고 두시간 남짓동안 배운 것을 정리해야 한다. 이상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치고 싶다고 말했고, 부모님께 까였다. 부모님은 학교를 그만두는 것에 대해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고, 두려워했다. 나도 두려웠고, 나는 내 생각을 밀고 나갈 힘이 없었으며, 도움받을 어떤 곳(혹은 사람)도 알지 못했다. 결국 학교에 적응했다. 그때부터 학교가 지긋지긋해졌다.

20세 미나]
#한발짝
19세까지 시도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하게 되었다. 연애, 알바, 땡땡이, 술,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는 것 즐기기, 남자인 친구들이 생긴 것, 친구들과 자체적으로 여행가기 등이다.

첫사랑을 만났고, 그 다음해에 차였다. 그것은 나에게 꽤 오래 상처를 남겼다.

24세 미나]
#중단
19세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공부하고, 시험에 붙어서 교사가 되기 위해 아등바등했다. 그렇게 지긋지긋해 하던 학교에서 일하려고. 온 마음과 몸을 갈아 넣어. 큰 시험 앞에서 나는 매번 초라한 나를 마주해야 했다.

24세까지 해오던 모든 노력들을 중단하기로 했다.

25세 미나]

#전환

내 인생의 전환기에 들어섰다. 뜻깊은 방황기를 거치며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의 기대나 사회적인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온전히 내 의지로 선택하기 위해 집 나갈 준비를 했다. (타지 가서 살 돈을 모았다.) 새로운 진로탐색을 하려고 이것저것 배우러 다녔고, 그동안 해보지 않은 종류의 일, 봉사활동, 운동 등을 했다.

29세 미나]

#신세계

제2의 전환점. 새롭게 복지를 배우고 졸업한 뒤 청소년단체에 취업을 했다. 전라도로 갔다. 28세까지의 내 인생에서 상상만 하고 해보지 않았거나 상상해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이때부터 하기 시작했다. 캠페인, 책 만들기, 동아리, 캠핑, 토론회 진행, 방송, 정신줄 놓기 등이 그것이다.

33세 미나]

#책

퇴사 후 내 고민을 모두 털어넣은 이야기를 일 년 반 동안 글로 썼다. 여러 출판사에 투고했고, 계약을 하게 되었다. 내 인생 첫 책이 나왔다. 글이 나에게 어울린다는 것을 알았고, 수학을 다시 내 삶에 들여놓기로 했다. 완성한 것 자체가 뿌듯했다.

34세 미나]

#창업 #꿈

내가 상상하던 것들을 쏟아내기로 했다. 창업을 했다. 책을 만들고, 학습모임도 한다. 이때부터 나만의 스타일대로 열일 중이다.

지금 미나]
요즘 나의 키워드는 #존엄 #자유 #자립 #대안 이다. 

[박지인(설)]

시기별로 키워드를 정해서 풀어낸 방식이 재밌고 이해하기 편해요! 막힘없이 술술 읽히고 재밌어서 피식한 부분도 있었네요ㅎㅎ 전환기에 들어선 미나님의 에피소드가 인상에 깊게 남아요. 제가 지금 미래에 대해 가장 고민하는 시기라 그런 듯 합니다.. 저는 제 얘기를 정리해 풀어내는 게 너무 어려운데..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이대로도 좋은 것 같아요! 딱 깔끔하고.. 보기 좋은 것 같아요. 소제목 아이디어를 슬쩍 내놓는다면 ‘나연대기’.. ‘나’연대기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고 ‘나연’연대기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최미나]

댓글 감사합니다 설님^^ 이해하기 편했다니 다행이에요! 제가 보기에는 설님도 충분히 본인 이야기를 풀어가고 계신것 같은데요?ㅎㅎ 저는 이 이야기를 여러번 이야기했어서 그렇게 보이는것일수도 있겠어요. 제목 아이디어 좋은것 같아요! [나 연대기] 요렇게 말이지요? 감사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