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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獻公實紀
凡例大槩略倣景賢錄亦有未能盡然者盖彼此所聞所得旣有詳略之不同而亦不敢太拘拘於必同也云爾
先生詩文
岳陽
風蒲泛泛弄輕柔四月花開麥已秋看盡頭流千萬 疊孤舟又下大江流 花開縣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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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蠹先生遺集卷之一 / 詩 / 岳陽
風蒲泛泛弄輕柔。四月花開麥已秋。看盡頭流千萬疊。孤舟又下大江流。
일두유집 제1권 / 시(詩) / 악양(岳陽)
물 위 부들 잎은 바람 따라 흔들리고 / 風蒲泛泛弄輕柔
사월 화개 땅엔 보리가 다 익었네 / 四月花開麥已秋
두류산 천만 봉을 두루 다 돌아보고 / 看盡頭流千萬疊
배는 또 섬진강을 강물 따라 내려가네 / 孤舟又下大江流
[주-D001] 악양(岳陽) : 정여창(鄭汝昌)은 모친상을 치른 뒤, 1488년(성종19)에 섬진강(蟾津江) 어귀에 악양정(岳陽亭)을 짓고 생활하였고, 이듬해 4월에 두류산을 유람하였다. 이 시는 이때에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주-D002] 물 …… 흔들리고 : 중국 송(宋)나라 때 문장가 소식(蘇軾)과 친분이 두터웠던 참료자(參廖子)라는 스님의 시에 “바람에 부들 잎이 가벼이 흔들리니, 앉으려는 잠자리 앉지를 못하네. 오월 임평 땅 산 아랫길에는, 무수한 연꽃이 물가에 가득하네.〔風蒲獵獵弄輕柔 欲立蜻蜓不自由 五月臨平山下路 藕花無數滿汀洲〕”라고 하였는데, 첫 구절은 이 시에서 차용한 듯하다. 《欽定四庫全書 585集 西湖遊覽志 西湖遊覽志餘 卷14》[주-D003] 두류산(頭流山) : 지리산(智異山)의 다른 이름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박헌순 (역) |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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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손(金馹孫)1464년(세조 10)~1498년(연산군 4)
세조 10 1464 갑신 天順 8 1 1월 7일, 淸道郡 雲溪里 少微洞에서 태어나다.
성종 20 1489 기유 弘治 2 26 4월, 藍溪에 가서 鄭汝昌을 방문하고 함께 頭流山을 유람하다.〈頭流紀行錄〉
연산군 4 1498 무오 弘治 11 35 ○ 6월, 風疾이 있어 靑溪精舍에서 調養하다. ○ 7월, 김종직의 〈吊義帝文〉을 史草에 실은 일로 국문을 받다. ○ 7월 27일, 저자에서 權五福ㆍ權景裕ㆍ李穆ㆍ許磐과 함께 처형되다. ○ 楊州의 石橋에 가매장하다.
중종 13 1518 무인 正德 13 - 2월, 자손을 錄用하게 하다. ○ 4월, 淸道의 儒生이 선생의 故宅인 雲溪精舍를 고쳐 紫溪祠를 세우다.
선조 11 1578 무인 萬曆 6 - 가을, 紫溪祠를 書院으로 만들다.
선조 41 1608 무신 萬曆 36 - 봄, 紫溪書院이 중건되다.
현종 2 1661 신축 永曆 15 - 4월, 도승지에 추증되고, 紫溪書院으로 賜額되다.
현종 5 1664 갑진 康熙 3 - 3월, 木川 竹林祠에 배향되다.
숙종 2 1676 병진 康熙 15 - 가을, 竹林祠가 道東書院으로 사액되다.
성종 20 1489 기유 弘治 2 26 4월, 藍溪에 가서 鄭汝昌을 방문하고 함께 頭流山을 유람하다.〈頭流紀行錄〉
濯纓先生文集續上 / 詩○七言絶句 / 與鄭伯勖 汝昌 同遊頭流。歸泛岳陽湖。己酉
滄波萬頃櫓聲柔。滿袖淸風却似秋。回首更看眞面好。閒雲無跡過頭流。
附
風蒲獵獵弄輕柔。四月花開 地名 麥已秋。看盡頭流千萬疊。孤舟又下大江流。鄭伯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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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집 제8권 / 동군록(東郡錄) / 대나무에게 넙죽 절하는 창포[蒲拜竹]
가녀린 잎새 한들한들 그 자태 또한 볼만한데 / 輕柔獵獵也風姿
차군에 재배를 올리건만 차군은 아는 체도 않네 / 再拜此君君不知
구절포(九節蒲)의 장년 따위를 과시할 틈이 있으리요 / 九節長年何暇詑
탄우의 기상에 얼룩덜룩 죽순이 절로 터지는걸 / 呑牛氣自籜斑披
[주-D001] 가녀린 …… 볼만한데 :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의 〈악양(岳陽)〉이라는 칠언 절구(七言絶句) 첫머리에 ‘풍포렵렵농경유(風蒲獵獵弄輕柔)’라는 표현이 있어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송(宋)나라 도잠(陶潛)의 〈임평도중(臨平道中)〉 시에 “가녀린 잎새 한들한들 바람과 장난치니, 잠자리 앉혀 보려 한들 마음대로 되겠는가.[風蒲獵獵弄輕柔 欲立蜻蜓不自由]”라는 절창(絶唱)이 전한다. 《一蠹集 遺集 卷1》[주-D002] 차군(此君) : 대나무의 별명이다. 동진(東晉)의 왕휘지(王徽之)가 대나무를 무척이나 좋아하여 “하루도 차군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何可一日無此君]”라고 말한 데에서 대나무의 별칭이 차군(此君)으로 되었다. 왕휘지가 어느 날 어떤 사대부의 집에 멋있는 대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는 그 집에 들르자, 그 집주인이 술자리를 마련해 놓고 기다렸는데, 왕휘지가 곧장 대숲으로 가서 감상한 뒤에 바로 떠나려고 하니, 주인이 당황하면서 그를 끝내 만류하여 술자리를 함께했다는 고사가 있다. 《晉書 卷80 王羲之列傳 王徽之》[주-D003] 구절포(九節蒲)의 장년(長年) : 구절포는 1촌(寸)에 아홉 마디 이상 되는 창포로, 장수(長壽)하는 선약(仙藥)으로 일컬어져 왔다. 《抱朴子 仙藥》[주-D004] 탄우(呑牛) : 대나무 줄기의 반점(斑點)을 범의 무늬로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호랑이나 표범의 새끼는 아직 무늬가 제대로 갖추어지기 전부터 소를 집어삼킬 기상[呑牛之氣]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 있다. 《尸子 卷下》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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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집 제2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 일 상인의 시권 중에 있는 시에 차운하다〔次一上人卷中韻〕
쇠한 모습 참으로 가을 맞은 갯버들 같아 / 衰容眞似望秋蒲
백발로 무심하게 술병만 마주 했네 / 白髮無心對酒壺
멀리 맑은 경쇠 소리 그친 푸른 산을 상상하니 / 遙想碧山淸磬後
불당에는 등잔불만 달빛 속에 외로우리 / 一龕燈影月中孤
임평산 아래에서 바람결의 부들을 읊고 / 臨平山下詠風蒲
혜검을 새로 가니 옥호처럼 맑았어라 / 慧劍新磨湛玉壺
듣건대 참료처럼 훌륭한 시 남겼다니 / 聞說參寥留綺語
후세에 의발 전해져 외롭지 않으리라 / 流傳衣鉢未應孤
[주-D001] 쇠한 …… 같아 : 진(晉)나라 때 고열(顧悅)이 간문제(簡文帝)와 같은 나이로 머리가 일찍 희었으므로 간문제가 이르기를, “경은 어찌하여 머리가 먼저 셌는가?” 하니, 고열이 대답하기를, “갯버들〔蒲柳〕의 자질은 가을이 막 들면 시들어 잎이 떨어지고 송백의 자질은 서리를 겪어도 더욱 무성한 것입니다.〔蒲柳之姿, 望秋而落, 松柏之質, 經霜彌茂.〕”라고 하였다. 《世說新語 言語》[주-D002] 임평산 …… 읊고 : 송나라 시승 도잠(道潛)의 시 〈임평도중(臨平道中)〉에, “바람에 부들잎 하늘하늘 가벼이 흔들리니, 잠자리가 앉으려 해도 자유롭지 않아라. 오월 맞은 임평산 아래 길을 걷자니, 연꽃이 무수하게 물가에 가득해라.〔風蒲獵獵弄輕柔, 欲立蜻蜓不自由. 五月臨平山下路, 藕花無數滿汀洲.〕”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詩話叢龜 後集 卷44》[주-D003] 혜검(慧劍) : 불교 용어로 일체의 번뇌를 베어 내는 지혜를 말한다. 《維摩經 菩薩行品》[주-D004] 참료(參寥) : 도잠(道潛, 1043~?)으로, 송(宋)나라 항주(杭州) 오잠(於潛) 사람이며, 호는 참료이다. 도잠은 시를 잘하여 시승(詩僧)으로 일컬어졌는데 특히 소식(蘇軾)과는 시우(詩友)가 되어 많은 시를 창화하였다.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 김영봉 (역)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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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립(崔岦) 1539년(중종 34)~1612년(광해군 4)
간이집 제6권 / 습유(拾遺)
명종 16 1561 신유 嘉靖 40 23 문과에 장원급제하다. 전적이 되다.
銀臺二十詠。己未(1559,명종14)春。有直赴殿試之命。于時以新恩。故注書李靑蓮公出題韻。令急製以呈。
은대(銀臺) 이십영(二十詠). 기미년 봄에 직부전시(直赴殿試)의 명이 내려졌는데, 그때 신은(新恩)을 받았다는 이유로, 주서(注書) 이청련(李靑蓮) 공이 시운(詩韻)을 출제한 다음에, 급히 지어 올리도록 하였다.
창포(菖蒲)
창포 화분 마주하니 나도 몰래 그윽해져 / 對却盆蒲意自幽
푸른 떨기 길다란 잎 간들간들 장난치네 / 綠叢脩葉弄輕柔
산들바람 불어오는 저녁나절 보기 좋고 / 看宜獵獵輕風夕
가을비 후두두둑 듣기에도 참 좋아라 / 聽愛泠泠急雨秋
서리와 눈에 끄떡없다 요자가 읊었던가 / 不變雪霜寥子頌
샘과 돌에 맹세했다 사공도 노래했지 / 同盟泉石謝公謳
어찌 끝내 정원 섬돌 감상으로만 그칠쏜가 / 終然豈止庭階玩
뿌리 캐어 먹어 보소 머리도 희지 않을 테니 / 採服令人不白頭
[주-D029] 서리와 …… 읊었던가 : 요자(寥子)는 참료자(參寥子)의 약칭으로, 소동파의 절친한 벗이었던 승려 도잠(道潛)의 호이다. 그의 〈창포(菖蒲)〉 시에 “서린 뿌리 아홉 마디, 서리와 눈에도 시들지 않네.[根盤九節 霜雪不槁]”라는 구절이 나온다. 《參寥子詩集 卷11 孔平子書閣所藏石菖蒲》[주-D030] 샘과 …… 노래했지 : 사공(謝公)은 송(宋)나라 사방득(謝枋得)을 가리킨다. 그의 〈창포가(菖蒲歌)〉에 “특이한 그 뿌리는 먼지와 티끌을 띠지 않고, 외로운 그 절조는 천석과 맹세하길 좋아한다오.[異根不帶塵埃氣 孤操愛結泉石盟]”라는 구절이 나온다. 《古文眞寶 前集 卷8》[주-D031] 뿌리 …… 않을 테니 : 숭산(嵩山)의 선인(仙人)이 한 무제(漢武帝)에게 창포 뿌리를 캐어 먹으면 장생(長生)한다고 일러 주자 무제가 3년 동안 먹어 보다가 싫증을 내고 그만두었는데, 왕흥(王興)이라는 사람이 그 말을 듣고는 오래도록 계속 복용한 결과 장생했다는 전설이 있다. 《神仙傳 卷3 王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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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의 〈악양(岳陽)〉이라는 칠언 절구(七言絶句) 첫머리에 ‘풍포렵렵농경유(風蒲獵獵弄輕柔)’라는 표현이 있어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송(宋)나라 도잠(陶潛)의 〈임평도중(臨平道中)〉 시에 “가녀린 잎새 한들한들 바람과 장난치니, 잠자리 앉혀 보려 한들 마음대로 되겠는가.[風蒲獵獵弄輕柔 欲立蜻蜓不自由]”라는 절창(絶唱)이 전한다. 《一蠹集 遺集 卷1》
도잠(陶潛)->도잠(道潛)
요자(寥子)는 참료자(參寥子)의 약칭으로, 소동파의 절친한 벗이었던 승려 도잠(道潛)의 호이다. 그의 〈창포(菖蒲)〉 시에 “서린 뿌리 아홉 마디, 서리와 눈에도 시들지 않네.[根盤九節 霜雪不槁]”라는 구절이 나온다. 《參寥子詩集 卷11 孔平子書閣所藏石菖蒲》
송나라 시승 도잠(道潛)의 시 〈임평도중(臨平道中)〉에, “바람에 부들잎 하늘하늘 가벼이 흔들리니, 잠자리가 앉으려 해도 자유롭지 않아라. 오월 맞은 임평산 아래 길을 걷자니, 연꽃이 무수하게 물가에 가득해라.〔風蒲獵獵弄輕柔, 欲立蜻蜓不自由. 五月臨平山下路, 藕花無數滿汀洲.〕”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詩話叢龜 後集 卷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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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집 제8권 / 동군록(東郡錄)
소나무에게 고개만 끄떡하는 잣나무.[柏揖松] 이하는 나머지 경물(景物) 여섯 가지를 읊은 것이다. 백(柏)은 해송(海松)을 가리키는데, 소나무와 멀리서 서로 바라보고 있었다.
용의 비늘 들쭉날쭉 학 새끼 처음 털이 돋듯 / 龍鱗錯落鶴襹簁
정원에 얻은 자네의 자리 잘못됐다 하랴마는 / 庭院得之誰不宜
정자 향해 아양만 떠는 그 자태 너무도 부끄러워 / 一向□亭恥姿媚
혼자 잘난 척 다 하라고 멀리서 장읍만 해 주노라 / 離然長揖任君奇
[주-D001] 용의 …… 돋듯 : 어린 소나무 한 그루가 마치 털이 갓 돋기 시작해서 후줄근한 모습의 학 새끼처럼 궁상스럽게 서 있다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용의 비늘은 소나무의 껍질을 형용한 말이다.[주-D002] 정원에 …… 하랴마는 : 소나무는 원래 깊은 산속의 기암절벽 위에 서 있어야 마땅하지만, 신분상으로 우월한 소나무의 입장에서는 정원에서 귀여움을 받는 것도 오히려 당연하리라는 뜻의 풍자 섞인 표현이다.[주-D003] 정자 …… 해 주노라 : 소나무에 비해 조금 격이 떨어진다고 평가되는 해송, 즉 잣나무의 입장에서는 귀공자의 대접을 받는 소나무에게 절을 해 주어야 온당하겠지만, 너무 아부만 하는 그 모습이 밉살스러워서 그저 장읍불배(長揖不拜)로 그친다는 말인데, 평생 동안
서얼(庶孼) 출신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서럽게 지내 온 간이의 심정이 경물을 통해서 은연중에 표출된 것이 아닌가 한다. 장읍(長揖)은 장읍불배의 준말로, 무릎 꿇고 절을 하지 않고 길게 읍만 한다는 뜻인데, 역이기(酈食其)가 패공(沛公)인 유방(劉邦)을 보러 갔을 때 유방이 두 여자에게 발을 씻기면서 거만하게 대하자 역이기가 장읍불배했다는 고사가 전하고, 또 급암(汲黯)이 대장군 위청(衛靑)에게 장읍불배했다는 고사가 있다. 《史記 卷97 酈生列傳》 《史記 卷120 汲黯列傳》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2000
최립 서얼(庶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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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 광해군 10년 무오(1618) 5월 3일(경인)
10-05-03[11] 기준격의 무함하는 상소에 대해 좌참찬 허균이 변명한 상소문
신이 정미년 겨울에 혼자서 보려고 본조(本朝)의 시를 뽑았는데 정도전(鄭道傳)과 권근(權近)은 모두 국초(國初)의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자료를 조사하여 써넣다 보니 자연 두 사람의 것을 제일 앞에 수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감히 그 사람들을 사모한 나머지 기필코 뽑아내어 앞에다 두려 한 것이겠습니까. 지금 《동문선(東文選)》이나 《청구풍아(靑丘風雅)》 등의 책을 보아도 국초의 시문에는 도전의 작품이 으레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찌 신이 다른 사람을 팽개친 채 꼭 이 사람을 앞자리에 놓으려 한 것이겠습니까. 더구나 신은 무술년에 송도(松都)의 포은(圃隱) 고택(古宅)을 들러 시편을 지으면서 그 끝 부분에 도전을 극력 배척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삼군부 앞에 무기 벌여놓고는 임금 잊고 적자 바꿔 강상(綱常)을 어긴 일을. 계책을 세우자 마자 도전이 죽었으니
다리에서 폭사한 것 사람의 재앙 아니라오[君不見 三軍府前羅劍鋩 忘君易嫡違天常 搆締纔訖道傳死 中橋暴屍非人殃].’라 하였는데 차운로(車雲輅)가 보고 늘 아름답다고 하였습니다. 이밖에 또 도전과 권근에 대한 논을 지어 배척하였는데 이에 대해서는 본 사람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이를 트집잡는 것은 정말 아이들 장난같기만 합니다. 그리고 생존자로는 최립(崔岦)과 이달(李達)을 제외하고는 또한 많이 뽑지 않았으니, 어찌 얼족을 위해 그들의 졸렬한 시를 뽑아주려 했겠습니까. 이 책이 지금 박엽의 집에 있으니 가져다 조사해 보면 알 것입니다. 또 신이 남쪽으로 옮겨갈 때에는 옥에서 나와 몹시 급한 때였는데 당시 우영의 자취가 이미 신의 집과는 소원해져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 상태였고 보면 비록 그가 신을 찾아와 시를 주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할 형편이었습니다. 이는 대체로 우영의 집에 신이 준 시편이 없다는 것을 그가 알고서 이런 말을 지어내어 신을 모함하려 한 것이니 또한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까.
신의 죄악이 이러하니, 조용히 조섭하고 계시는 전하를 이렇듯 귀찮게 해 드리는 것이 부당한 줄은 압니다만, 양사가 이미 ‘그에게 만약 죄악이 없다면 언관이 국문하도록 청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청해 옥(獄)으로 나와 기필코 해명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한다.’ 하였는데, 그 양사의 논이 지극히 의리에 합당하기에 어쩔 수 없이 어리석음을 무릅쓰고 진달드리게 된 것입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관심을 기울이어 너그러이 용서해 주소서.”
하니, 추국청에 계하하였다.
[주-D001] 그 아들 : 기준격(奇俊格).[주-D002] 곽영(郭瓔)의 옥사(獄事) : 곽영이 이이첨을 공격하는 상소를 올려 일어난 옥사임. 결국은 곽영이 형신을 받고 하옥된 뒤 천연두에 걸려 옥사하였는데, 그 상소 내용은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권127 10년 윤4월 갑자(甲子)에 보임.[주-D003] 기자헌 …… 서찰 : 이유홍(李惟弘)ㆍ허균(許筠)ㆍ송언신(宋言愼)ㆍ조호(曺浩)ㆍ이홍로(李弘老) 등의 서간 4장을 납지(蠟紙)로 모사(摸寫)한 뒤 왕에게 올린 것임.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권122 9년 12월 병진 예조 좌랑 기준격(禮曹佐郞奇俊格) 비밀 재소(祕密再疏)에 나옴.[주-D004] 신축년 : 1601 선조 34년.[주-D005] 해운 판관(海運判官) : 전라도와 충청도의 조운(漕運)을 맡은 군직(軍職).[주-D006] 국혼(國婚) : 허성의 딸과 선조(宣祖)의 제8 서자(庶子)인 의창군 이광(義昌君李珖)이 결혼한 것.[주-D007] 병오년 : 1606 선조 39년.[주-D008] 주사(朱使) : 중국 사신 주지번(朱之蕃).[주-D009] 계축년 : 1613 광해군 5년.[주-D010] 화근(禍根) : 영창 대군(永昌大君)을 가리킴.[주-D011] 송순(宋諄)의 일 : 선조(宣祖) 말년에 왕자 정원군(定遠君)과 하원군 부인(河原君夫人 하원군은 선조의 형) 집안 사이에 말썽이 일어났을 때 대사간으로 있던 송순이 정원군을 탄핵하는 등 이 사건에 개입했다가 선조에 의해 내쫓긴 일이 있었음.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권18 하원군가사(河原君家事).[주-D012] 갑인년 : 1614 광해군 6년.[주-D013] 안서(安西)의 옥사 : 안서는 해주(海州)의 옛 이름으로서 광해군 8년에 일어난 해주 목사 최기(崔沂)의 옥사를 말함.[주-D014] 진회(秦檜) : 남송(南宋) 고종(高宗) 때의 간신.[주-D015] 공성 왕후(恭聖王后) : 광해군의 생모인 공빈 김씨(恭嬪金氏).[주-D016] 양시(兩尸) : 두 구의 시체라는 말로 광해군과 동궁을 가리킨 말임.[주-D017] 포은(圃隱) : 정몽주(鄭夢周).[주-D018] 이대엽(李大燁) : 이이첨의 아들.[주-D019] 큰 뱀 : 유영경(柳永慶)과 김직재(金直哉)의 귀신을 가리킴.[주-D020] 심이기(審食其)에 대한 말 : 심이기는 한 고조(漢高祖)의 부인 여후(呂后)와 정을 통한 자로 승상이 된 뒤 궁중에 있으면서 모든 일을 처결하였음. 《사기(史記)》 권56. 준격의 소 끝 부분에 “허균이 또 말하기를 ‘내가 권력을 잡고 대비가 수렴 청정을 하면 나 자신이 심이기가 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니 원상(院相)이 되어 안에서 온 나라의 일을 처결하겠다.’ 하였다.” 하였음.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권122 9년 12월 기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1993
다리에서 폭사한 것->폭시(暴屍)의 율(律)을 시행한 것
*폭시(暴屍) 시신(屍身)을 거리에 내놓아 사람들에게 보임. 헌종실록(憲宗實錄)
의금부에서 아뢰기를,
“이파(李坡)ㆍ송흠(宋欽)ㆍ윤채(尹埰)ㆍ두대(豆大)의 시체를 매장한 데가 모두 동서 금표 안에 있으니, 전교대로 파내어 폭시(曝屍)하도록 하소서.”
하였다.
헌종실록 헌종 5년 기해(1839) 12월 26일(무자)
평양인(平壤人) 권처호(權處祜)에게 폭시(暴屍)의 율(律)을 시행하도록 명하였다. 권처호는 광망(狂妄)하여 상성(常性)을 잃은 자인데, 술에 취해 그 어미를 죽인 후 곧 스스로 쓰러져 죽었기 때문이다.
[주-D001] 폭시(暴屍) : 시신(屍身)을 거리에 내놓아 사람들에게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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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莊館全書卷三十五 / 淸脾錄[四] / 理學諸先生詩
偶思諸先生絶句可誦者。鄭一蠧先生遊頭流山。風蒲獵獵弄輕柔。案侯鯖錄宋詩僧參寥詩。風蒲獵獵弄輕柔。欲立蜻蜓不自由。 四月花開麥已秋。案花開縣名。 看盡頭流千萬疊。孤舟又下大江流。李栗谷先生題金沙寺。松間引步午風凉。手弄金沙到夕陽。千載阿郞無處覔。蜃樓消盡海天長。成牛溪先生溪上春日。五十年來卧碧山。是非何事到人間。小堂無限春風地。花笑柳眠閒又閒。宋尤菴先生道峯書院。蒼崖削立洞門開。澗水潺湲幾曲回。堯舜君民當世志。廟前空有後人來。金農巖先生江行。蒹葭岸岸露華盈。篷屋秋風一夜生。卧遡淸江三十里。月明柔櫓夢中聲。李陶菴先生春興。園花寂寂一鶯鳴。野水翻翻雙鷺明。扶杖溪西春日夕。數村桑柘看烟生。此外理學諸先生詩。亦多可誦。偶未之考爾。
청장관전서 제35권 / 청비록 4(淸脾錄四) / 이학(理學)을 하는 여러 선생의 시
우연히 여러 선생의 절구(絶句) 가운데 독송할 만한 것을 생각하였다. 정일두(鄭一蠹 일두는 정여창(鄭汝昌)의 호) 선생의 ‘유두류산(遊頭流山)’ 시에,
창포잎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데 / 風蒲獵獵弄輕柔
《후청록(侯鯖錄)》을 상고하건데, 송(宋) 나라 시승(詩僧) 참료(參寥)의 시에 ‘창포잎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니[風蒲獵獵弄輕柔] 고추잠자리 앉으려 해도 자유롭지 못하네[欲立蜻蜒不自由]’ 하였다.
사월 화개엔 보리 이미 익었구나 / 四月花開脈已秋
상고하건대 화개는 고을 이름이다.
두류산 천만 봉우리 다 구경하고 / 看盡頭流千萬疊
조각배 몸 싣고 큰 강물로 내려오네 / 孤舟又下大江流
하였고, 이율곡 선생이 금사사(金沙寺)에 쓴 시에,
소나무 사이로 거니니 낮 바람 서늘하고 / 松間引步牛風涼
손으로 금모래 희롱하노라니 석양이 되었네 / 手弄金沙到夕陽
천 년 아랑의 자취 찾을 곳 없고 / 千載阿郞無處覓
신기루 사라지니 바다가 넓구나 / 蜃樓消盡海天長
하였고, 성우계(成牛溪 우계는 성혼(成渾)의 호) 선생의 ‘계상춘일(溪上春日)’ 시에,
오십 년간 푸른 산에 누웠으니 / 五十年來臥碧山
시비 많은 세상에 뭣하러 나가리 / 是非何事到人間
작은 집에 봄바람 끝없이 불어 오니 / 小堂無限春風地
웃는 꽃 자는 버들 한가롭기만 하네 / 花笑柳眠閒又閒
하였고, 송우암(宋尤菴 우암은 송시열(宋時烈)의 호) 선생의 ‘도봉서원(道峯書院)’ 시에,
푸른 절벽 깎아세운 듯한 곳에 동구(洞口)가 열렸는데 / 蒼崖削立洞門開
시냇물 졸졸 흘러 몇 구비를 돌았는가 / 澗水潺湲幾曲回
요순 시대 이루는 일 당세의 뜻이었는데 / 堯舜君民當世志
텅 빈 묘당 문에 후인들만 찾아오네 / 廟門空有後人來
하였고, 김농암(金農巖 농암은 김창협(金昌協)의 호) 선생의 ‘강행(江行)’ 시에,
갈대 자란 언덕마다 빛나는 이슬 맺혔고 / 蒹葭岸岸露華盈
뱃지붕에 가을 바람 밤새도록 불어 오네 / 篷屋秋風一夜生
배에 누워 푸른 강 삼십 리를 거슬러 오르니 / 臥遡淸江三十里
달은 밝은데 노젓는 소리 꿈결인 듯하네 / 月明柔櫓夢中聲
하였고, 이도암(李陶菴 도암은 이재(李縡)의 호) 선생의 ‘춘흥(春興)’ 시에,
동산의 꽃 적적하니 꾀꼬리 한 마리 울고 / 園花寂寂一鶯鳴
들 물 출렁이니 백로 한 쌍 분명쿠나 / 野水翻翻雙鷺明
봄날 저녁 지팡이 짚고 시냇가 거니니 / 扶杖溪西春日夕
두어 마을 뽕나무 밭에 저녁 연기 어렸네 / 數村桑柘看煙生
하였다. 이 외에도 이학(理學)을 하는 선생의 시 가운데 독송할 만한 것이 많으나 아직 상고하지 못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정태현 (역) |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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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사설 제28권 / 시문문(詩文門) / 정일두 시(鄭一蠹詩)
일두당(一蠹堂) 정 선생의 시에,
바람 탄 부들 잎 나불나불 하느작거리는데 / 風蒲獵獵弄輕柔
사월이라 화개에 보리 이미 가을일레 / 四月花開麥已秋
두류산 천만 겹을 남김없이 다 구경하고 / 看盡頭流千萬疊
외론 배로 또 큰 강을 따라 가노라 / 孤舟又下大江流
하였고, 송(宋) 나라 중 참료(參寥)의 시에도,
바람 탄 부들 잎 나불나불 하느작거리니 / 風蒲獵獵弄輕柔
잠자리 날아 앉으려도 자유롭지 못하다오 / 欲立蜻蜓不自由
오월이라 임평 땅 산 밑의 길에 / 五月臨平山下路
하많은 연꽃들이 물가를 어지럽히네 / 藕花無數亂汀洲
하였다. 정 선생의 기구(起句)는 생각이 있어 쓴 것이니 서로 같대서 해로울 것이 없고, 끝 글귀의 수쇄(收殺)가 매우 좋으니 이야말로 백달보검(白獺補臉)의 솜씨라 하겠다. 참료의 시로 말하면, 제2구가 비열(卑劣)하며 호정교(胡釘鉸)ㆍ장타유(張打油)의 투를 벗어나지 못했으니, 동파(東坡)의 이른바,
시가 저광희 같아야만 / 詩似儲光羲
소순의 기를 씻어 버리게 된다 / 洗去蔬筍氣
라는 것도 꼭 정확한 논평은 못 된다.
[주-D001] 정일두 시(鄭一蠹詩) : 일두는 조선조 학자 정여창(鄭汝昌)의 호. 자는 백욱(伯勗). 그는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성리학(性理學)에 밝았고, 저서에는 《용학주소(庸學註疏)》ㆍ《주객문답설(主客問答說)》 등이 있었으나 무오사화 때 그의 부인이 모두 소각(燒却)했고, 지금은 정구(鄭逑)가 엮은 《문헌공실기(文獻公實記)》 속에 그 유집(遺集)이 일부 전할 뿐이다. 《類選》 卷十下 詩文篇 論詩門.[주-D002] 화개(花開) : 경상남도에 있는 지명.[주-D003] 기구(起句) : 첫 글귀.[주-D004] 수쇄(收殺) : 거두는 것.[주-D005] 백달보검(白獺補臉) : 오(吳) 나라 손화(孫和)가 등 부인(鄧夫人)을 총애하는데, 어느날 술에 취해 유쾌히 춤을 추다가 등 부인의 뺨을 상했다. 의원이 백달(白獺)의 뼈를 구해서 옥(玉)가루와 호박(琥珀)가루를 섞어서 바르면 상처가 없어진다고 하니, 손화는 당장에 백금(百金)을 내어 구해 발라서 나았다 함. 《酉陽雜爼》[주-D006] 호정교(胡釘鉸) : 《남부신서(南部新書)》에 의하면, 호생(胡生)이란 자는 만두 만드는 것으로 업을 삼으며 백빈주(白蘋州) 가에서 사는데, 그 곁에 고분(古墳)이 있어서, 매양 차를 마시게 되면 반드시 한 잔을 올리곤 하였다. 하루는 꿈에 어떤 사람이 말하되, “나의 성은 유(柳)인데, 평생에 시(詩)를 잘하고 차마시기를 즐겼었다. 그대가 차를 나눠 준 은혜 감사하고 있으나 갚을 길이 없으므로 그대에게 시를 가르쳐 주고자 한다.” 하므로, 호생은 능하지 못함을 들어 사양하자 유(柳)는 강권하며, “다만 그대 뜻대로만 하면 된다.” 하여, 호생은 마침내 시를 잘하게 되었다. 그래서 호생의 시체를 후인들이 호정교체(胡釘鉸體)라 일렀다 함.[주-D007] 장타유(張打油) : 저속한 시(詩)를 뜻함. 《양승암집(楊升庵集)》에 의하면, 당(唐) 나라 장타유(張打油)가 눈[雪]에 대한 시를 지었는데 그 시는 이러하다. “노란 개는 몸 위가 하얗게 되고, 하얀 개는 몸 위가 부어올랐다[黃狗身上白 白狗身上腫].”고 했다 함.[주-D008] 저광희(儲光羲) : 당 현종 때 감찰어사(監察御史)를 지냈고, 저서에 《정론(正論)》 등이 있음.[주-D009] 소순(蔬筍)의 기(氣) : 방악(方岳)의 시에, “소순의 기가 있어 시는 더욱 좋아지고, 비단옷 입은 사람 없어 산은 다시 그윽하이. “[有蔬荀氣詩逾好 無綺羅人山更幽] 하였음. 말하자면, 탁한 육식의 맛이 없다는 뜻임.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역) | 1976
鄭一蠧詩
一蠧堂鄭先生詩云風蒲獵獵㺯輕柔四月花開麥已秋看盡頭流千萬疊孤舟又下大江流宋釋參寥詩亦云風蒲獵獵㺯輕柔欲立蜻蜓不自由五月臨平山下路藕花無數亂汀洲其起句意到不妨相襲收殺得完好是白獺補臉手參寥則苐二句卑劣不脫胡釘鉸張打油套中東坡所謂詩似儲光羲洗去蔬筍氣者未必是的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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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ēng pú]
风蒲
风蒲,指蒲柳。 [1] 唐杜牧《赴京初入汴江晓景即事先寄兵部李郎中》诗中:“露蔓虫丝多,风蒲燕雏老。”
风 蒲,指蒲柳。 (蒲公英)唐 杜牧 《赴京初入汴江晓景即事先寄兵部李郎中》诗中:“露蔓虫丝多,风蒲燕雏老。” 宋 范成大 《满江红》词:“罨画溪山,行欲遍,风蒲还举。” 清 厉鹗 《召伯埭》诗:“稍喜湖天阔,风蒲舞鷾鸸。”
蒲柳--即水杨。“蒲柳之姿”这个标题则似有讥讽之意,枝叶易凋,故有“蒲柳之姿,望秋而落,松柏之质,经霜弥茂”之说,早衰的意思
갯버들
다른 표기 언어
wild rye
동의어
포류, 蒲柳, 세주류, 細柱柳, 등류, 藤柳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관목. 학명은 'Salix gracilistyla'이다. 버들강아지라는 이름으로도 흔히 불리는데, 개울가에 자라는 버들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어로는 포류(蒲柳), 수양(水楊), 세주류(細柱柳)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