霽夜秋窓坐咏(제야추창좌영) - 비그친 가을밤 창가에 앉아 읊다.
月窓細影簷前樹 월창세영첨전수
처마 앞 나무 그림자 달빛 어린 창에 희미하고
靜夜寒聲霽後難 정야한성제후나 難-寒
고요한 밤 찬바람 소리 비 그치니 먹먹하네
欲喚小師同此樂 욕환소사동차락
제자 불러 이 즐거움 함께 하고 싶지만
恐將情見起邪觀 공장정견기사관 觀-寒
정에 매여 사견을 잘못 일으킬까 염려되네
月窓(월창) ; 자주 쓰이는 시구(詩句)지만 한글로 풀자면 애매하다.
어차피 뜻으로 풀어야 하고, 경우에 맞아야 하니 서정을 넣어야 맛이 난다. 창에 비친 달빛이다.
細影(세영) ; 가느다란 그림자가 아니라 작은 바람에 흔들리는 희미한 그림자다.
寒聲(한성) ; 차운 소리는 어떻게 날까? 겨울바람을 한풍(寒風)이라하고 한풍으로 나는 바람소리를 한성(寒聲)이라 한다. 기구(起句)의 세영(細影)을 흔드는 바람이다.
霽(제) ; 비가 개다. 비가 그치다. 노여움을 풀다.
霽後難(제후난) ; 이 시의 최고 난제다. 본디 4+3절 형식이다. 제후는 비 그친 후가 되지 만 난(難)을 어떻게 풀어야
뜻이 통할까. 드물게 우거지다라는 뜻이 있다. 우거지 다는 울울하다와 동의어다. 숲이 우거지다는 뜻을
제후와 어떻게 한 짝을 맞출까. 제(霽)가 한성(寒聲)을 수식하면 뜻이 순조롭다. 밤바람 소리가 더욱
커진 것 같다. 고요가 주는 먹먹함 이라 할까.
小師(소사) ; 제자를 스승이 되는 승려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변변치 못한 승려라는 뜻으로, 승려가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
금강산의 가을밤을 선적(禪寂) 정취로 담담하게 표현하였다. 대사는 제자와 이 장면을 함께 바라보고 싶지만 아직 공부가 덜된 제자가 잘못된 편견에 빠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걱정까지 동시에 하고 있다. 그리움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같은 자연을 보아도 그것을 보는 사람 마음에 따라 다르다.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인다는 말은 선(禪)의 체험경지에 따라 다르게 느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무학다운 선답(禪答)이다. 세상 밖을 두루 돌아본 후 보우대사는 「허응당집」에 주로 스님들과 교류하는 글을 많이 실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