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지
229년 손권이 오나라를 건국하며 위, 촉, 오의 삼국지 완성
223년 유비가 사망하여 아들 유선이 황제에 오르고 제갈량이 유비의 뜻을 이어 위나라를 정복하기 위한 전쟁 시작
(북벌이란 이름으로 위나라를 공격 : 위나라의 사마의는 위기때마다 방어에 성공)
- 여러차례 북벌 실패 후 234년 지갈량 오장원에서 사망
251년 위나라 최고 권력자가 된 사마의 사망, 그 후손들이 계속 권력 이어감
263년 사마의 아들 사마소가 촉을 정복하며 유비의 꿈이 역사속으로 사라짐.
265년 사마소 병사, 아들 사마염이 정권을 잡다
* 진나라 건국
사마염이 위나라 마지막 황제 조환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받아 진나라 건국
* 진의 삼국통일
280년 사마염이 오나라의 마지막 황제 손호로부터 항복을 받아냄 : 삼국통일
사마염은 위나라 멸망 이유로 조씨의 힘이 약해서라고 판단, 일족 27명을 지방 통치 왕으로 봉하고 다른 호족들을 철저히 견제
*사마충(혜제)
사마염 55세로 사망, 아들 사마충이 황제에 오른다(혜제로 불리는 사마충은 선천적으로 지증이 떨어졌으나 부인인 가남풍이
시험관을 매수 혜제를 황제로 만드는데 성공)
- 권력을 차지한 가남풍이 동생이 낳은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속여 차기 황제로 만드는 작전 시작
- 후궁이 낳은 황태자 사마휼을 죽이려고 독살 시도, 실패한 후 결국 절굿공이로 무참히 살해
- 이 소식을 들은 사마씨 왕들이 낙양으로 달여와 수도를 점령하기 시작
- 사마씨 8명이 서로 황제가 되기 위해 싸우다(팔왕의 난, 291~306)
- 이과정에서 왕들이 승리하기 위해 북방의 유목민족들을 불러들이는데 이것이 진나라 멸망의 결정적 이유가 된다
*팔왕의 난, 동진시대
팔왕의 난이 일어나자 북쪽의 흉노족이었던 유연이 한황실의 후손임을 차칭하며 한나라를 세운다
- 병력을 모아 진나라의 수도 낙양을 공격 진나라가 막아내지만 권력을 이어받은 유총에게 311년 함락된다
- 사마염의 조카였던 사마예가 양쯔강 지역으로 내려가 오나라 옛수도 건강에 근거지를 잡고 새 황제에 오른다
(이때의 진을 동진이라 하고, 이전을 서진이라 한다)
*5호16국
유총이 다스리던 한나라를 흉노, 저, 갈, 강, 선비의 다섯 이민족에 멸망, 이후 북쪽 한나라 지역에 16개의 나라가 생겨난다
(이 시기의 나라들을 5호16국이라 한다)
*5호16국 통일, 효문제, 남북조시대
439년 선비족이 세운 북위가 화북을 통일 전란이 일단락
-북위의 효문제는 뤄양으로 천도 후 선비족의 복장과 언어를 금지하고 한족과의 결혼을 장려하는 적극적 한화정책을 펼치다
(이로써 북방민족의 문화와 한족의 문화가 섞이며 이를 호한융합이라 부른다)
-효문제는 15세 이상 남여에 토지를 나누어주는 균전제 실시(균전제는 이후 수, 당에도 계승)
-효문제의 개혁은 귀족들의 반발을 사고, 효문제 사후 내분으로 인해 동위와 서위로 분열
(동위와 서위는 다시 북제와 북주로 나뉘는데 이 둘을 북조라 부른다)
*위진남북조
동진은 기존 토착민들과 북에서 내려온 이주민의 대립, 문벌정치의 폐단으로 인해 멸망
- 이후 송, 제, 양, 진나라로 왕조가 바뀌는데 이를 통틀어 남조라 부르고, 남북조시대가 된다)
- 이전 조조의 아들 조비가 세운 위나라와 사마염이 세운 진나라를 합쳐 위진남북조 시대라 한다
북조의 문화는 유목미의 강건하고 소박한 기풍, 유교에 입각한 정치
남조는 귀족중심의 자유분방한 문화, 혼란스러운 정치상황을 빗댄 노장사상과 청담사상(귀족들이 세속을 떠나 인물평론과
철학적 논의 등을 나누는 풍조, 속세를 떠난 7명의 선비 죽림칠현이 대표적 인물) 유행
- 지식인들의 현실도피 성향은 도연명의 시 귀거래사에 잘 나와있고
- 귀족들의 생활상은 고개지의 그림 여사잠도에 반영
- 남조와 북조 모두 불교가 유행(북조에서 윈강, 룽먼같은 대규모 석굴 사원이 만들어짐, 동진의 법현등이 인도와 중국을 오가며
불경을 한자로 번역)
- 태평도, 오두미교 같은 민간 신앙이 도교로 발전, 황실과 민중으로 퍼지다
*수문제
수나라를 건국한 양견(문제)이 남북조 통일
- 북주의 고위직이었던 아버지를 이어 높은 지위에 오르고, 양견의 딸이 북주의 황후가 되자 실권 장악
- 9살 외손자가 북주의 마지막 황제에 오르자, 선위를 받아 수나라의 초대황제, 문제가 된다(제위에 오르자 중국 통일 준비)
- 둘째 아들 양광에게 50만 군사를 주어 남조의 마지막 나라였던 진나라 정벌(20일도 못 버티고 함락)
- 이로써 300년간 분열되었던 중국 통일
통일 후 문제의 본격적 개혁
- 당시 관리선발제는 지방관 추천에 의해 임명하는 9품 중정제(유럭가문의 기득권 유지에 이용) 과감히 이를 폐지, 과거제 실시
(문벌귀족 견제, 중앙집권 강화)
- 북위 이후 시행되던 균전제, 조용조, 부병제 등 정비, 국가재정 안정, 군사력 증강(개황의 치라 부른다)
*수양제
둘째 아들 양광이 일으킨 정변으로 64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수의 두번째 황제 양제)
- 즉위하자마자 대운하 사업(진시황의 만리장성과 더불어 중국역사상 가장 큰 규모)
- 오나라때부터 분격적 개발된 양쯔강 유역은 경제의 중심지, 북쪽의 황허강은 정치의 중심지
(양제는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를 잇는 대운하 필요하다 판단)
- 운하 건설에 수백만 동원, 수나라 멸망의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되지만 지금까지 사용되므로 양제의 가장 큰 업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