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승환 선생님과 함께 구씨네마를 진행할 개략적인 일정표를 작성해보았습니다.
슈퍼바이저 선생님께서 주신 이전 사업 일정표를 바탕으로 과업을 최대한 쪼개어 보고, 또 이전에 이가영 선생님께서 강조하셨던 '주인답게, 어울리게, 소박하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함께 고민해보았습니다.
당사자와의 만남 방식, 구씨네마 진행 사항 (영화 고르기, 장소 섭외하기, 홍보 방법 정하기, 초대할 사람 정하기 등)을 함께 차례대로 이야기해보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당사자에게 묻고, 그와 의논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을 일정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상기하려 노력했는데요, 저희가 공통적으로 느낀 어려움은 아직까지 저희가 당사자 선생님을 거의 모르고, 또 자주성과 공생성의 실현 방법을 잘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분이 어떻게 말을 하는 분일지, 무엇을 원하실지, 어디까지 하는 것이 과연 거드는 것일지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정표 작성을 마치고 나서 슈퍼바이저 선생님과 통화를 하며 새로이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이번 동계 실습에서 저희의 목표가 구씨네마를 성공적으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무언가를 기획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 앞에 서는 과정 자체가 가장 중요한 목표이자 이번 사업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오든, 그 사업이 얼마나 상영회 행사답든 결국 구씨네마는 당사자가 자신의 삶을 살도록 하는 구실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한결 '행사 기획'에 관한 마음이 놓인 것 같습니다.
그간 대학을 다니면서 해본 게 프로그램 기획, 실행이라는 다소 산출지향적인 활동들뿐이라, 저도 모르게 비슷한 태도로 임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더 어려운 고민이 생긴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은 무엇일지, 그리고 그것을 온전한 조력자로서 돕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한덕연 선생님께서는 강의 때 줄곧 '~ 하면 됩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는데요.
어렵고 거창하게 할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당사자의 존재와 환경이 있는대로 그렇게 되도록 도우면 된다는 뜻인 것 같은데, 이렇게 생각하니 더 어려울 것도 같습니다. 계속해서 보고 또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이에 기반한 구씨네마의 진행 시나리오를 상상해본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사자와의 첫 만남
첫만남은 많이 어색합니다. 실습생 본인은 지적 장애를 가진 분과 오래 대화해본 적이 없고, 또 중년 남성이시라 조금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도 영화 보는 걸 좋아하기에, 영화 이야기로 대화를 물꼬를 터 봅니다.
낯을 가리실 거라 생각했던 당사자 선생님이 열정적으로 본인이 좋아하시는 영화 이야기를 하십니다.
영화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럼 DVD는 어떻게 구하러 다니시는지, 영화를 보지 않으실 땐 무얼 하시는지, 아버님도 영화를 같이 보시는지, 공통의 주제에서 당사자의 일상으로 대화의 주제를 뻗쳐나갑니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의 일상을 간접적으로나마 파악합니다
당사자의 둘레사람 만나뵙기
성현동이라는 동네 자체가 낯선 상태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사는 동네인지, 당사자님이 자주 가시는 이발소와 모모카페는 어떤 곳인지 묘연합니다.
당사자와 가장 가까운 주민분들을 만나 뵙고, 동네를 돌면서 어떤 사람들이 사는 곳인지 파악해갑니다.
이분들과 당사자님이 어떠한 관계를 맺어왔는지, 그리고 둘레사람들이 말하는 당사자님은 또 어떠한 분인지 이야기 듣습니다.
당사자님과 상의하여 아버님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낯선 청년들이라 많이 걱정하실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반겨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드님과 함께 할 만한 사람들이라는 믿음을 드리기 위해 자주 얼굴을 비추고 당사자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또 함께 나눕니다
구씨네마 의논하기, 계획하기
당사자님은 공포 영화를 상영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렇지만 본인뿐만 아니라 호스트로서 관객들을 초대하는 입장에서 어떤 영화를 고르는 게 좋을지 신중히 상의합니다.
그 결과 애니메이션 / 가벼운 코미디 영화 / 가족 영화 가 선정되었습니다.
어디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좋을지 이야기합니다. 대화를 진행하면서 모모카페 이야기가 나오고, 카페 사장님께 부탁드려 봅니다.
어떤 분들을 초대하면 좋을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면 좋을지 함께 의논합니다. 가까운 이발소 사장님, 모모카페 사장님은 꼭 초대하기로 하고 다른 이웃분들도 오셨으면 하여 홍보지를 제작하기로 합니다. 홍보지에는 어떤 내용을 적을지, 어떤 색으로, 어떤 폰트로 디자인할지 이야기합니다. 실습생의 노트북으로 같이 제작해봅니다.
홍보지를 어디에 얼마나 붙일지 이야기해봅니다. 복지관, 이발소, 모모카페, 그리고 당사자의 동네 게시판에 부착하기로 했습니다. 인쇄는 복지관에서 하고, 같이 홍보지를 부착하러 다닙니다.
영화 상영을 마친 후에는, 작은 이벤트를 하기로 합니다. 뽑기를 통해 선물을 주기로 합니다. 선물은 당사자님의 애장 DVD, 모모카페 이용권 등이 있습니다.
모든 과정을 당사자가 진행하기로 합니다.
보다 능숙한 진행을 위해 전 날 같이 대본을 만들고, 카페에서 연습도 해봅니다. 실습생들이 관객, 당사자님이 MC역할로 리허설을 해봅니다.
구씨네마 당일
당일 당사자와 함께 테이블을 배열하고, 시설 세팅을 마칩니다. 화면이 잘 나오는지, 음량은 어느 정도로 하면 좋을지 당사자가 결정합니다.
관객들이 하나 둘 들어옵니다. 당사자는 앞에서 방역 관련 수칙을 지킬 것을 당부하는 등 호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입니다.
관객들이 모두 착석하고 상영 직전, 본인에 대한 소개와 영화에 관한 소개를 합니다.
영화 상영 이후 불이 켜지고, 뽑기 행사를 진행합니다. 기뻐하고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며 당사자도 함께 즐거워합니다.
퇴장 전 관객들의 잘 봤다는 인사, 이런 면모가 있었냐는 인사에 뿌듯하면서도 쑥스럽습니다.
구씨네마 이후
참여해주신 분들과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인사를 하러 다닙니다.
그리고 실습생들이 프로그램 진행과정을 틈틈이 촬영한 영상을 아버지와 함께 보며 당사자는 보람을 느끼고 아버지는 아드님을 대견해하십니다.
그리고 구씨네마 당일 퇴장 전 관객들께 부탁드린 후기 포스트잇을 전지에 붙여 당사자에게 전달합니다.
"잘 봤어요", "이런 기회 마련해주셔서 감사해요"와 같은 후기들을 보며 다시 그 날을 떠올립니다.
행사 이후 종종 동네, 모모카페, 이발소, 복지관에서 관객들을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근황을 서로 묻기도 합니다.
-
상상하는 데에 서툴러서 이렇게밖에 적지 못했습니다.
당사자의 자주성과 공생성을 계속해서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어찌 되었든 당사자님이 뿌듯함을 느끼셨으면, 또 다른 이웃과 인사를 주고받고 본인이 나서 관계를 맺는 경험을 하셨으면 합니다.
아직 그 분의 얼굴도 말투도 모르지만요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