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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 바다의 여정은 저 멀리 태양에서 부터 시작된다. 수소 핵융합반응을 일으키며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는 태양, 태양의 내부 온도는 섭씨 1500만도, 표면 온도도 섭씨 6000도 정도가 된다. 태양은 적도의 바닷물을 섭씨 30도까지 끌어올린다. 따뜻한 적도의 바닷물은 심해의 차가운 물과 뒤섞이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바람은 바닷물을 흘러가게 하는 중요한 원동력이다. 바람의 마찰력은 수면의 바닷물이 흘러가고 기울어져 자전하는 지구는 바닷물이 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영향을 미친다. 거대한 바닷물의 흐름과 해류가 시작되는 것이다. 해류를 따라 거대한 먹이사슬이 함께 움직인다. 어부들은 바닷물이 일정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길목을 잘 지키면 바다의 풍요를 건져 올릴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선장: 여기 (제주도에) 있던 물고기가 흑산도로 올라가고 추자도 쪽으로 해서 또 흑산도로 올라가기도 해요.
내레이션: 수많은 생명을 품은 채 지구 곳곳으로 흘러가는 해류, 해류를 따라가는 긴 여정이 시작된다. 태양은 지구의 모든 생명들에겐 꼭 필요한 에너지다. (팔라우 공화국), 지구 생명체 그 누구도 태양의 빛과 열에 기대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여기 누구보다 햇빛 한 줄기가 간절한 바다 생물이 있다. 적도에서 멀지 않은 팔라우 공화국, 팔라우 섬에는 오래 전 지각 변동으로 인해 바닷물이 갇혀 있는 호수가 있다. 이 호수의 해파리들은 독침이 없다. 오랫 동안 격리되어 천적없이 살다 보니 공격 촉수가 필요 없게 된 것이다. (황금 해파리류), 그렇다면 먹이 사냥은 어떻게 할까? 그들이 사는 방법은 놀랍다. 먹이를 사냥하는 대신 종일 햇빛을 따라 다닌다.
루터루엄/국립공원 해양관리 담당: 해파리는 몸 안에서 공생하는 조류를 먹고 그 조류는 햇빛의 광합성으로 만들어집니다.
내레이션: 해파리는 햇빛을 받으며 몸에 미세 조류를 키우는 것인데 몸에서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셈이다. 해류가 따뜻한 에너지를 품고 극지방으로 가는 길목, 해류는 팔라우 340여 개 섬과 좁은 협곡을 거치며 흐른다. 해류의 온기를 따라 이동하는 어류 중 일부는 협곡에 흘러 들어 터를 잡는다. 햇빛이 잘 드는 협곡, 바닷물이 부딪치며 풍부한 산소를 만들어내는 이곳은 물고기들이 쉬기에는 그만이다. 어릴 때 프랑크톤을 먹는 참치도 이곳을 찾았다. 좀 더 자라면 아기가 젖을 떼듯 다른 물고기를 먹을 것이다. 참치는 입을 열고 유영하며 산소를 얻는 데 일생 동안 일억 킬로미터가 넘는 수역을 해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해류를 따라가던 참치는 멀리까지 못가고 수난을 맞는다. 바다 속 최고 사냥꾼인 참치지만 미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덫에 걸리고 말았다. 참치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 단번에 기절시켜야 한다. (어부가 몽둥이로 참치 머리를 두 세 번 내리침), 자칫 잘못하면 힘이 센 참치가 당기는 힘에 어부가 바다에 빠지기도 한다. 오늘은 어부가 승리다. 더 많은 참치를 잡기 위해서는 적도 근처 먼 바다로 나가야 한다. 밤낮 없이 일주일을 달려가야 하는 먼 거리다. 낚시에 필요한 돌은 물론 엄청난 기름과 식량까지 실어야 한다. 작은 배들은 갈 엄두도 못내는 먼 거리다. 배가 가는 동안 선원들은 만반의 준비를 한다. 참치를 유인해줄 오징어 먹물이다. 선원들 머리 속엔 오직 참치와 가족 생각뿐이다.
루빈다노/선원: 만약 참치를 많이 잡아서 돈을 번다면 우선 빚을 갚고 식료품을 사고 싶어요. 그리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저축하고 싶어요.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니까요. 아이들은 아직 공부하고 있으니 저는 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야죠.
내레이션: 항해 닷새째 참치 잡이는 시작도 못 했는데 선원들이 지쳐갑니다. 꼬박 일주일이 걸려 배는 적도 부근에 다달았다. 어느 나라의 소유도 아닌 공해상에 접어든 것이다. 그날 밤 뭔가 미끼를 물었다. 출항 후 첫 낚시, 길이 2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상어다. 거센 저항을 하며 잡히지 않는 상어, 어부들이 가진 도구가 총동원 되지만 쉽지 않다. 가까스로 밧줄을 묶는데 성공했다.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던 상어도 20분이 지나서야 지친 듯 하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수 없다. 몽둥이로 머리를 맞고서도 상어에겐 아직 힘이 남아 있다. 선원은 결국 칼을 빼들었다. 상어만큼이나 생존이 간절한 어부들이 첫 수확물을 얻었다. 먼저 꼬리와 지느러미가 잘려진다. 최고급 요리에 사용되는 상어의 지느러미는 킬로 그램당 우리 돈 1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린다. 지느러미 가격의 100분의 1도 받지 못하는 상어의 몸통은 선원들의 식량이 된다. 다음 날 배 곳곳에 상어가 빨래 처럼 널렸다. 잘 말려진 상어고기는 한 달 넘게 이어지는 조업기간 동안 선원들의 허기를 달래줄 것이다. 항해를 이어가던 배가 적도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부표를 찾았다. 빠야오라 불리는 부표다. 이곳은 수심 1000미터가 넘는 곳이다. 빠야오 줄은 바다 속에 콘크리트나 무거운 돌을 가라 앉혀 단단하게 고정시켜 놓았다. 망망 대해에서 배를 정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이제 참치 잡이 준비는 끝났다. 꼬박 1주일을 달려온 적도의 바다 속은 어떤 모습일까. 투명하게 스며드는 햇살을 받으며 물고기 떼는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곳이 어민들이 말하는 황금어장이다. 이제 부터가 진짜 사냥이다. 참치를 잡기 위해 앞 다투어 나가는 배들, 가장 먼저 낚시 줄을 내린 배에서 벌써 참치 한 마리를 잡았다. 이 정도 크기의 참치를 기절시키는 것은 어부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젊은 어부는 마음이 급하다. 작은 참치는 큰 거를 잡기 위한 미끼로 사용된다. 잘라낸 참치를 바늘에 끼우고 돌에 매단다. 그리고 비장의 미끼 오징어 먹물을 더한다. 오징어 먹물이 바다에 퍼지면서 참치의 시각과 후각을 자극할 것이다. 수심 90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돌은 빠져나가고 미끼만 남아 참치를 기다린다. 다시 부표가 흔들린다. 낚시 줄을 당기는 힘을 보니 이번엔 꽤 큰 놈이다. 참치의 힘을 이기지 못해 배가 끌려가는 일도 다반사, 어부는 숨 마저 죽이고 잔뜩 긴장한다. 어이쿠~ 빗 맞고 말았다. 놀란 참치가 사력을 다해 도망간다. 이럴 땐 성질 급한 참치가 제 체력을 다 소진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힘이 빠진 참치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정확히 가격 당한 참치가 이번에는 맥을 못 춘다. 기새 좋던 참치는 드디어 어부의 차지가 됐다. 노란 빛 지느러미를 반짝이는 황다랑어, 접전 끝에 얻은 굶직한 첫 수확이다. 이곳 저곳에서 미끼를 매단 부표가 흔들린다.
어부: (동료 선원에게) 같이 가, 같이 가,
피디: 큰 가요? 작은 가요?
어부: 음~ 큰 거요.
내레이션: 조업 첫날 부터 분주한 어부들, 이번 조업은 느낌이 좋다.
어부: 저는 밤 10시 쯤 잠을 자고 새벽 2시에 일어납니다. 그래야 참치를 많이 잡을 수 있어요. 이게 어부의 삶이죠. 만약 제가 열심히 하지 않는다면 참치도 잡지 못하고 돈도 못 벌죠.
내레이션: 35킬로그램 되는 참치 한 마리가 가격은 우리 돈 30만원 정도 그러나 선원들은 배의 기름 값과 식사비 낚시 도구 값을 제하고 나면 차치 한 마리당 우리 돈 2만원 정도 받을 뿐이다. 그나마 한 달이 넘는 조업 기간 동안 돈이 될만한 참치를 두 세 마리 밖에 잡지 못하는 어부도 있다. 승전보를 알리며 배가 모선으로 돌아온다. 20여 척의 배가 부지런히 참치를 잡아 나르는 동안 모선도 분주해진다. 오늘 하루 선원들이 잡은 참치는 모두 40 마리, 좋은 성과다.
피디: 몇 킬로인가요?
어부: 39킬로그램입니다.
내레이션: 무게를 재고 누가 잡은 것인지를 표시하고 꼬리표부터 단다. 성과가 좋지 않은 어부는 다음 항해 때 배를 못 탈 수가 있다. 다음은 목욕 시간, 항구에 도달하기 까지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참치의 위장까지 깨끗이 씻는다. 그리고 어름 창고에 넣고 입구를 막아 놓으면 돌아갈 때까지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적도의 기온은 섭씨 40도를 오른다. 피할 곳 없는 망망대해에서 햇빛은 고통에 가깝다. 구름이 몰려드는 것은 순식간이다. 적도의 열기가 계속해서 수증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뜨거운 햇빛을 견디기 힘들어질 때쯤 하루 한 두 번씩 쏟아지는 장대비, 참치잡이를 하던 선원들이 하나 둘 모선으로 돌아온다. 태양 아래서 사투를 벌여온 선원들이 오랫 만에 포식을 한다. 특히 상어 고기와 돼지 고기를 함께 볶은 음식은 잔뜩 허기진 선원들에겐 더 바랄 것 없는 만찬이다. 만찬 후에 휴식시간 한 선원이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참치가 많이 잡히면 기분이 좋아서, 잡히지 않은 날이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 춤을 춘다. 다시 작은 배가 모선에 실린다. 해류를 따라가는 참치와 그 참치를 뒤쫓는 어부들, 생존을 위해 어부들도 그렇게 해류를 따라 이동한다. (보홀-세부-마닐라), 따뜻한 해류는 필리핀 7천여 개의 섬과 협곡을 거치며 북쪽으로 계속 이동한다. 협곡을 거치며 속도가 더 빨라지는 해류, (말미잘), 해류를 타고 협곡에 흘러 들었던 수중 생물들은 다시 해류의 거친 물살을 타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페스카도르섬/모알보알), 수면 위에서 봤을 때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작은 섬도 해류에게는 큰 장애물이다. 심해를 흐르던 바다물은 거대한 산이나 다름 없는 산을 만나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른다. (정어리 떼), 햇빛을 받은 바닷물에서는 프랑크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섬 주변에는 물고기 떼가 구름처럼 몰려든다. 정어리 떼가 군무를 추는 것은 어딘가 포식자가 나타났다는 신호다. 포식자들을 피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정어리인데 이 환상적인 장관은 살아남으려는 생명의 강렬한 몸부림이다. 포식자의 정체는 몸길이 70센치미터 정도 되는 자이언트 트레발리다. 몇 번의 사냥으로 배를 채운 포식자들이 떠나고 나면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바다 속 거대한 생명의 숲, 기막히게 알아챈 사람들이 다시 낚시 줄을 드리운다. 그런데 그물로 잡으면 간단한 일을 왜 한 마리씩 낚시로 잡는 걸까.
어부: 그물은 불법이라 낚시로만 잡을 수 있어요. 한 마리에 50페소 (약 1130원)인데 오늘은 이거 한 마리 잡았어요.
피디: 50페소(약1130원), 오늘 이거 한 마리요?
내레이션: 풍요를 이어가기 위해 욕심을 내지 않기로 한 약속이다. 밤이 되면 동물성 프랑크톤이 수면 가까이 올라온다. 식물성 프랑크톤을 먹기 위해서다. (블루핀 트레발리), 물고기들에겐 포식의 기회다. 해수면의 식물성 프랑크톤을 동물성 플랑크톤이 먹고 이를 새우나 물고기가 먹으며 먹이사슬이 이어진다. 먹이가 풍성한 보홀(Bohol) 협곡은 고래 상어의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3~4일을 오가든 고래 상어들이 부쩍 줄어들었다. 무슨일일까. 세부(Cebu)섬 남쪽 끝, 오슬롭(Oslob)의 작은 어촌 마을 타나완, (고래상어), 몸 길이 5미터가 넘는 거대한 고래 상어가 사람들 가까이에서 유영을 한다. 고래상어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서도 고래상어는 배 곁을 떠나지 않는다. 배에서 주는 새우를 받아먹기 위해서다.
어부: 고래상어한테 하루에 20킬로그램의 먹이를 줘요.
피디: 20킬로그램요?
어부: 네
내레이션: 이빨이 3밀리미터 밖에 되지 않는 고래 상어는 바다 물을 들이킬 때 휩쓸려 들어오는 새우와 프랑크톤을 걸러서 먹는다. 애완동물이라도 된 듯 먹이를 주는 사람 곁에서 떠나질 않는 고래상어, 몸 길이가 18미터까지 자라는 고래상어는 현존하는 어류 중 덩치가 가장 크지만 성격은 온순하다. 5년전 마을 앞바다에서 어부들이 장난 삼아 먹이를 주었는데 지금은 수가 늘어 10마리 정도가 계속 앞 바다에 머물게 됐다. 고래상어를 보기 위해 마을에는 하루 수백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관광객1: 어떤 때는 고래 상어가 옆에 바짝 붙어 지나가는데 깜짝 놀라기도 해요.
관광객2: 무척 신기하고 좋아요.
내레이션: 마을에서는 관광객들에게 우리 돈 7천원 정도의 입장료를 받고 배를 태워 준다. 처음에는 서로 사람들이 나뉘어 경쟁도 했지만 지금은 공동으로 운영하며 큰 수익을 올린다. (2015년 타나완 해변 모습), 마을에 마구 생겼던 식당과 상가들도 하나 둘 정리가 됐다. (2017년 타나완 해변 모습), 그리고 5년이 흐른 지금 작은 어촌이었던 오슬롭은 고급 호텔과 리조트가 들어선 관광지가 됐다. 해류가 품고 온 생명체가 섬 전체를 바꿔놓은 것이다. 적도 근처에서 시작된 해류는 필리핀 북쪽 해상에서 보다 큰 해류로 합류하며 북상한다. 바로 쿠로시오 해류다. (북태평양 해류-> 캘리포니아 해류-> 북적도 해류-> 쿠로시오 해류), 태평양에는 네 개의 큰 해류가 시계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데 그중 한반도로 향하는 것이 쿠로시오 해류다. 우리나라 동해와 서해까지 (이시카키, 오키나와, 대한민국, 일본), 따뜻한 바닷물을 전하는 쿠로시오 해류, 해류를 따라 수많은 물고기들이 우리나라로 흘러온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앞바다), 적도 근처에서 시작해 2000킬로미터를 넘게 흘러 제주에 다달은 해류, 해류를 따라 끊임없이 물고기들이 올라온다. (파랑돔-자리돔과), 따뜻한 바다가 고향인 파랑돔과 범돔도 (범돔-황줄깜정이과), 제주 바다에 도착했다. (멸치 떼) 바다 속에 평화는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멸치 떼를 따라온 방어들이 탐색전을 벌이는가 싶더니 이내 공돌림이 이어졌다. 쫓고 쫓기는 상황도 잠시, 배를 채운 방어들은 곧 사라졌다. (삼치 떼), 뒤이어 이번에는 삼치 떼가 등장했다. 삼치는 따뜻한 해류를 따라 멀리 서해로 이동할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서쪽 해안), 대형 어선들은 늘 해류의 길목을 찾아 다닌다. 해류의 흐름을 알면 물고기 떼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임가옥/어로장: (어군탐지기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지금 저기 지나가는 게 물고기 떼예요, 물고기
피디: 네, 점으로 보이는 거요?
임기옥: 네
내레이션: 어군 탐지기를 보며 배는 고기 떼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임기옥: 지금은 물고기들이 다 흩어져서 분산되어 있어요 (지금은) 탐색 중이죠, 탐색 중
내레이션; 고등어 잡이 준비가 한창인 어부들, 그런데 선원 대부분이 외국인이다.
이재철/부어로장: 이 일처럼 좋은 직업이 어디 있어요? 공무원은 몇 살까지 합니까? 우리는 80세까지 배타는 사람도 있거든요.
내레이션: 힘든 뱃일을 하려는 이가 갈수록 줄고 있지만 그래도 뱃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있다. 안 해본 고등어 요리가 없는 주방장이 단연 최고로 꼽는 건 싱싱한 고등어의 껍질 아래 쫄깃한 살만 뜬 고등어 회다. 아주 신선하지 않으면 비린 맛 때문에 회로 먹을 수 없다는 고등어, 막 잡아 올린 고등어 살을 갖은 채소와 함께 초고추장에 삭삭 비빈다. 고등어 잡이 배 위에서만 허락된 쫄깃하고 고소한 맛이다. 밤이 되고 흩어졌던 고등어들을 다시 모우기 위해 등불을 단 배가 불을 밝힌다. 모든 선원이 갑판 위에서 대기한다. 정확한 순간을 놓치면 고등어 떼가 흩어져 버리기 때문에 모두 숨을 죽이고 지시를 기다린다. (호루라기 분다), 드디어 때가 됐다. 지름 1.5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그 물이 순식간에 바다 밑으로 내려간다. 고등어 떼가 흩어지기 전에 빙 둘러쳐야 한다. 기다릴 새 없이 바로 그물을 끌어올린다. 순식간에 내려갔던 것과 달리 그물이 올라오는 속도가 더디다. 좋은 징조다. 고등어 떼가 제대로 걸려들었다. 해류를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던 고등어 떼를 제대로 포착한 것이다. (어마어마한 고등어 떼가 그물에서 펄럭임), 저 멀리 태평양 넓은 바다를 누려온 고등어들이 거친 바다에 눈부신 생명력을 과시합니다. 굵고 튼실한 고등어들은 스트레스를 받기 잔에 바로 퍼담아야만 고등어 맛이 변하지 않는다. 놀란 고등어들은 지쳐 죽을 때까지 뛰는 걸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단체로 튀어 오르던 비상의 꿈도 잠시 모두 얼음 창고로 직행한다. 오늘 싱싱하게 잡은 고등어는 내일이면 전국 곳곳 식탁에 올라갈 것이다. 바다 날씨가 심상치 않다. 태풍이다. 해마다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태풍은 대부분 해류를 따라 북상한다. 따뜻한 해류는 태풍의 세력을 키우는 에너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바탕 태풍이 물러가고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연도 앞바다), 이른 아침부터 정치망 그물을 들어올리느라 분주하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물이 당겨지지 않는다.
어부: 뒤에~ 뒤에~ 감아 올려, 감아 올려
내레이션; 잘 올라오지 않는 그물, 웬일일까 (노무라입깃 해파리), 바닷 속에는 불청객이 대거 몰려왔다. 태풍과 해류에 밀려온 오무라입깃 해파리 떼다. 도저히 엄두가 안나는 양이다. 조업은 둘째치고 이 많은 해파리를 처리하는 게 더 큰 문제가 되었다. 거북이도 꼼짝없이 갇혔다. 해파리는 거북이가 좋아하는 먹이, 하지만 해파리 떼 속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결국 사람들의 도움으로 십여 분만에 거북이는 무사히 그물을 빠져 나갔다. 무게가 40킬로그램이 넘는 해파리는 독이 강해서 손으로 들어올릴 수도 없다. 방법은 그물 밖으로 다시 내보내는 것, 어민들은 고기잡이 대신 해파리와 힘겨운 씨름을 한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전쟁이다.
박점수/선장: 글쎄요. 가을철 추석 지나고 겨울쯤 되어야 해파리가 많이 없을 거예요.
내레이션: 목숨을 부지한 녀석들은 해류를 타고 더 멀리 흘러갈 것이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건져 올린 그물에는 죽은 물고기들 뿐이다.
박점수: 지금 이만한 삼치들이 많이 들어올 때인데 해파리 때문에 없잖아요.
내레이션: 인건비는 고사하고 기름값도 안 되는 현실에 어민들의 시름도 더 깊어간다. (인천광역시 강화도 연안), 하지만 이 맘 때 해파리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물살이 강한 이곳은 돈이 되는 해파리가 밀려 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흐르는 물살을 향해 그물을 벌려 놓으면 채 10분도 안 돼 묵직하게 해파리가 걸려든다. (기수식용 해파리), 기계가 아니면 감당하기도 힘든 작업이다. 진보라 색의 기수식용 해파리는 황해와 중국해에서 서식하는 종으로 이 맘 때 해류를 타고 이곳 강화도 해역으로 흘러든다.
어부!: 이런 거는 14킬로그램 쯤 나가요.
어부2: (해파리) 내장이잖아요, 내장 이거.. 다 먹을 수 있죠.
내레이션: 특히 이 해파리는 고혈압이나 기관지염에 좋아 귀한 약재나 고급 식재료로 이용되는 데 전량 중국으로 수출된다. 8월 한 달 반짝 일하면 가구당 돈 천만원 쯤은 벌 수 있어 이곳 어민들에게는 해파리가 큰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가진리 앞바다 2016년 10월 20일), 10월의 동해 앞바다, 북쪽에서 차가운 해류가 내려오는 시기다. (섬유세닐 말미잘), 찬 해류는 바다 속 환경을 한 순간에 바꾸어 놓았다. 차가운 물을 좋아하는 말미잘도 수온이 내려가니까 기지게를 켜기 시작한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노무라이끼 해파리들의 떼 죽음이다. 그동안 어민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던 해파리들은 차가운 수온 앞에서 모두 맥없이 기력을 잃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앞바다), 일년 내내 쿠로시오 해류의 영향을 받는 제주도, 동해 바다와는 사뭇 다른 환경이다. 수온이 내려가자 동해에서 자취를 감춘 열대성 어종들이 그물 가득 걸려들었다. 얕은 바다에 정치망을 쳐두고 매일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 어부들, 그런데 오늘은 그물에 뭔가 큰 놈이 들어왔다.
어부: 삼치, 삼치, 1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삼치다. 그물이 올라오면서 작은 멸치는 빠져 나가고 구물 안에는 잔뜩 살이 오른 정갱이와 고등어가 가득하다. 정치망에 갇힌 물고기들을 종류대로 건져내는 어부들, 값 나가는 녀석들이 우선 선택을 받는다. 배에 가장 큰 창고를 차지하는 것 정갱이다. 뜰채 그물이 찢어질 만큼 퍼올리기를 수 차례, 기분 좋은 수확이다. 특히 쿠로시오 해류가 가장 왕성한 6월에서 9월, 바다는 풍년이다. 이 때 어민들은 하루에 두 번씩 그물을 들어올리며 풍성한 계절을 보낸다. 지구 생명체의 80% 이상이 살아가고 있는 바다, 바다 속 해류는 지금 이 순간도 마치 우리 몸을 도는 혈액 처럼 쉴새 없이 전 지구를 순환하며 곳곳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해류는 살아 있는 지구의 뜨거운 동맥이다. 끝. (EBS 다큐프라임 1350회 1부 지구의 동맥 적도 해류에서 정리).
① 바다의 여정은 저 멀리 태양에서 부터 시작된다. 수소 핵융합반응을 일으키며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는 태양, 태양의 내부 온도는 섭씨 1500만도, 표면 온도는 섭씨 6000도 정도다. 태양은 적도의 바닷물을 섭씨 30도까지 끌어올린다. 따뜻한 적도의 바닷물은 심해의 차가운 물과 뒤섞이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바람은 바닷물을 흘러가게 하는 중요한 원동력이다. 바람의 마찰력은 수면의 바닷물이 흘러가고 기울어져 자전하는 지구는 바닷물이 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영향을 미친다. 거대한 바닷물의 흐름과 해류가 시작되는 것이다. 해류를 따라 거대한 먹이사슬이 함께 움직인다. 어부들은 바닷물이 일정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길목을 잘 지키면 바다의 풍요를 건져 올릴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② 수많은 생명을 품은 채 지구 곳곳으로 흘러가는 해류, 해류를 따라가는 긴 여정이 시작된다. 태양은 지구의 모든 생명들에겐 꼭 필요한 에너지다. 지구 생명체 그 누구도 태양의 빛과 열에 기대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여기 누구보다 햇빛 한 줄기가 간절한 바다 생물이 있다. 적도에서 멀지 않은 팔라우 공화국, 팔라우 섬에는 오래 전 지각 변동으로 인해 바닷물이 갇혀 있는 호수가 있다. 이 호수의 해파리들은 독침이 없다. 오랫 동안 격리되어 천적없이 살다 보니 공격 촉수가 필요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먹이 사냥은 어떻게 할까. 그들이 사는 방법은 놀랍다. 먹이를 사냥하는 대신 종일 햇빛을 따라 다닌다. 해파리는 몸 안에서 공생하는 조류를 먹고 그 조류는 햇빛의 광합성으로 만들어진다. 해파리는 햇빛을 받으며 몸에 미세 조류를 키우는 것인데 몸에서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셈이다.
③ 해류가 따뜻한 에너지를 품고 극지방으로 가는 길목, 해류는 팔라우 340여 개 섬과 좁은 협곡을 거치며 흐른다. 해류의 온기를 따라 이동하는 어류 중 일부는 협곡에 흘러 들어 터를 잡는다. 햇빛이 잘 드는 협곡, 바닷물이 부딪치며 풍부한 산소를 만들어내는 이곳은 물고기들이 쉬기에는 그만이다. 어릴 때 프랑크톤을 먹는 참치도 이곳을 찾았다. 좀 더 자라면 아기가 젖을 떼듯 다른 물고기를 먹을 것이다. 참치는 입을 열고 유영하며 산소를 얻는 데 일생 동안 일억 킬로미터가 넘는 수역을 해류한다. 그러나 해류를 따라가던 참치는 멀리까지 못가고 수난을 맞는다. 바다 속 최고 사냥꾼인 참치지만 미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덫에 걸리고 만다. 참치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 단번에 기절시켜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힘이 센 참치가 당기는 힘에 어부가 바다에 빠지기도 한다.
④ 더 많은 참치를 잡기 위해서는 적도 근처 먼 바다로 나가야 한다. 밤낮 없이 일주일을 달려가야 하는 먼 거리다. 낚시에 필요한 돌은 물론 엄청난 기름과 식량까지 실어야 한다. 작은 배들은 갈 엄두도 못내는 먼 거리다. 배가 가는 동안 선원들은 만반의 준비를 한다. 참치를 유인해줄 오징어 먹물이다. 선원들 머리 속엔 오직 참치와 가족 생각뿐이다. 항해 닷새째 참치 잡이는 시작도 못 했는데 선원들이 지쳐간다. 꼬박 일주일이 걸려 배는 적도 부근에 다달았다. 어느 나라의 소유도 아닌 공해상에 접어든 것이다. 그날 밤 뭔가 미끼를 물었다. 출항 후 첫 낚시, 길이 2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상어다. 거센 저항을 하며 잡히지 않는 상어, 어부들이 가진 도구가 총동원 되지만 쉽지 않다. 가까스로 밧줄을 묶는데 성공했다.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던 상어도 20분이 지나서야 지친 듯 하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수 없다. 몽둥이로 머리를 맞고서도 상어에겐 아직 힘이 남아 있다. 선원은 결국 칼을 빼들었다. 상어만큼이나 생존이 간절한 어부들이 첫 수확물을 얻었다. 먼저 꼬리와 지느러미가 잘려진다. 최고급 요리에 사용되는 상어 지느러미는 킬로 그램당 우리 돈 1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린다. 지느러미 가격의 100분의 1도 받지 못하는 상어의 몸통은 선원들의 식량이 된다. 다음 날 배 곳곳에 상어가 빨래 처럼 널렸다. 잘 말려진 상어고기는 한 달 넘게 이어지는 조업기간 동안 선원들의 허기를 달래줄 것이다.
⑤ 항해를 이어가던 배가 적도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부표를 찾았다. 빠야오라 불리는 부표다. 이곳은 수심 1000미터가 넘는 곳이다. 빠야오 줄은 바다 속에 콘크리트나 무거운 돌을 가라 앉혀 단단하게 고정시켜 놓았다. 망망 대해에서 배를 정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이제 참치 잡이 준비는 끝났다. 꼬박 1주일을 달려온 적도의 바다 속은 어떤 모습일까. 투명하게 스며드는 햇살을 받으며 물고기 떼는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곳이 어민들이 말하는 황금어장이다. 이제 부터가 진짜 사냥이다. 참치를 잡기 위해 앞 다투어 나가는 배들, 가장 먼저 낚시 줄을 내린 배에서 벌써 참치 한 마리를 잡았다. 이 정도 크기의 참치를 기절시키는 것은 어부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젊은 어부는 마음이 급하다. 작은 참치는 큰 거를 잡기 위한 미끼로 사용된다. 잘라낸 참치를 바늘에 끼우고 돌에 매단다. 그리고 비장의 미끼 오징어 먹물을 더한다. 오징어 먹물이 바다에 퍼지면서 참치의 시각과 후각을 자극할 것이다. 수심 90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돌은 빠져나가고 미끼만 남아 참치를 기다린다. 다시 부표가 흔들린다. 낚시 줄을 당기는 힘을 보니 이번엔 꽤 큰 놈이다. 참치의 힘을 이기지 못해 배가 끌려가는 일도 다반사, 어부는 숨 마저 죽이고 잔뜩 긴장한다. 어이쿠~ 빗 맞고 말았다. 놀란 참치가 사력을 다해 도망간다. 이럴 땐 성질 급한 참치가 제 체력을 다 소진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힘이 빠진 참치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정확히 가격 당한 참치가 이번에는 맥을 못 춘다. 기새 좋던 참치는 드디어 어부의 차지가 됐다. 노란 빛 지느러미를 반짝이는 황다랑어, 접전 끝에 얻은 굵직한 첫 수확이다. 이곳 저곳에서 미끼를 매단 부표가 흔들린다.
⑥ 35킬로그램 되는 참치 한 마리가 가격은 우리 돈 30만원 정도 그러나 선원들은 배의 기름 값과 식사비 낚시 도구 값을 제하고 나면 참치 한 마리당 우리 돈 2만원 정도 받을 뿐이다. 그나마 한 달이 넘는 조업 기간 동안 돈이 될만한 참치를 두 세 마리 밖에 잡지 못하는 어부도 있다. 승전보를 알리며 배가 모선으로 돌아온다. 20여 척의 배가 부지런히 참치를 잡아 나르는 동안 모선도 분주해진다. 오늘 하루 선원들이 잡은 참치는 모두 40 마리, 좋은 성과다. 무게를 재고 누가 잡은 것인지를 표시하고 꼬리표부터 단다. 성과가 좋지 않은 어부는 다음 항해 때 배를 못 탈 수가 있다. 다음은 목욕 시간, 항구에 도달하기 까지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참치의 위장까지 깨끗이 씻는다. 그리고 얼음 창고에 넣고 입구를 막아 놓으면 돌아갈 때까지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적도의 기온은 섭씨 40도를 오른다. 피할 곳 없는 망망대해에서 햇빛은 고통에 가깝다. 구름이 몰려드는 것은 순식간이다. 적도의 열기가 계속해서 수증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뜨거운 햇빛을 견디기 힘들어질 때쯤 하루 한 두 번씩 쏟아지는 장대비, 참치잡이를 하던 선원들이 하나 둘 모선으로 돌아온다. 태양 아래서 사투를 벌여온 선원들이 오랫 만에 포식을 한다. 특히 상어 고기와 돼지 고기를 함께 볶은 음식은 잔뜩 허기진 선원들에겐 더 바랄 것 없는 만찬이다. 만찬 후에 휴식시간 한 선원이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참치가 많이 잡히면 기분이 좋아서, 잡히지 않은 날이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 춤을 춘다.
⑦ 다시 작은 배가 모선에 실린다. 해류를 따라가는 참치와 그 참치를 뒤쫓는 어부들, 생존을 위해 어부들도 그렇게 해류를 따라 이동한다. 따뜻한 해류는 필리핀 7천여 개의 섬과 협곡을 거치며 북쪽으로 계속 이동한다. 협곡을 거치며 속도가 더 빨라지는 해류, 해류를 타고 협곡에 흘러 들었던 수중 생물들은 다시 해류의 거친 물살을 타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수면 위에서 봤을 때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작은 섬도 해류에게는 큰 장애물이다. 심해를 흐르던 바다물은 거대한 산이나 다름 없는 산을 만나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른다. 햇빛을 받은 바닷물에서는 프랑크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섬 주변에는 물고기 떼가 구름처럼 몰려든다. 정어리 떼가 군무를 추는 것은 어딘가 포식자가 나타났다는 신호다. 포식자들을 피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정어리인데 이 환상적인 장관은 살아남으려는 생명의 강렬한 몸부림이다. 포식자의 정체는 몸길이 70센치미터 정도 되는 자이언트 트레발리다. 몇 번의 사냥으로 배를 채운 포식자들이 떠나고 나면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바다 속 거대한 생명의 숲, 기막히게 알아챈 사람들이 다시 낚시 줄을 드리운다. 그런데 그물로 잡으면 간단한 일을 왜 한 마리씩 낚시로 잡는 걸까. 풍요를 이어가기 위해 욕심을 내지 않기로 한 약속 때문이다.
⑧ 밤이 되면 동물성 프랑크톤이 수면 가까이 올라온다. 식물성 프랑크톤을 먹기 위해서다. 물고기들에겐 포식의 기회다. 해수면의 식물성 프랑크톤을 동물성 플랑크톤이 먹고 이를 새우나 물고기가 먹으며 먹이사슬이 이어진다. 먹이가 풍성한 보홀(Bohol) 협곡은 고래 상어의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3~4일을 오가든 고래 상어들이 부쩍 줄어들었다. 무슨일일까. 세부(Cebu)섬 남쪽 끝, 오슬롭(Oslob)의 작은 어촌 마을 타나완, 몸 길이 5미터가 넘는 거대한 고래 상어가 사람들 가까이에서 유영을 한다. 고래상어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서도 고래상어는 배 곁을 떠나지 않는다. 배에서 주는 새우를 받아먹기 위해서다. 이빨이 3밀리미터 밖에 되지 않는 고래 상어는 바다 물을 들이킬 때 휩쓸려 들어오는 새우와 프랑크톤을 걸러서 먹는다. 애완동물이라도 된 듯 먹이를 주는 사람 곁에서 떠나질 않는 고래상어, 몸 길이가 18미터까지 자라는 고래상어는 현존하는 어류 중 덩치가 가장 크지만 성격은 온순하다. 5년전 마을 앞바다에서 어부들이 장난 삼아 먹이를 주었는데 지금은 수가 늘어 10마리 정도가 계속 앞 바다에 머물게 됐다. 고래상어를 보기 위해 마을에는 하루 수백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마을에서는 관광객들에게 우리 돈 7천원 정도의 입장료를 받고 배를 태워 준다. 처음에는 서로 사람들이 나뉘어 경쟁도 했지만 지금은 공동으로 운영하며 큰 수익을 올린다. 마을에 마구 생겼던 식당과 상가들도 하나 둘 정리가 됐다. 그리고 5년이 흐른 지금 작은 어촌이었던 오슬롭은 고급 호텔과 리조트가 들어선 관광지가 됐다. 해류가 품고 온 생명체가 섬 전체를 바꿔놓은 것이다. 적도 근처에서 시작된 해류는 필리핀 북쪽 해상에서 보다 큰 해류로 합류하며 북상한다. 바로 쿠로시오 해류다.
⑨ 태평양에는 네 개의 큰 해류가 시계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데 그중 한반도로 향하는 것이 쿠로시오 해류다. 우리나라 동해와 서해까지 따뜻한 바닷물을 전하는 쿠로시오 해류, 해류를 따라 수많은 물고기들이 우리나라로 흘러온다. 적도 근처에서 시작해 2000킬로미터를 넘게 흘러 제주에 다달은 해류, 해류를 따라 끊임없이 물고기들이 올라온다. 따뜻한 바다가 고향인 파랑돔과 범돔도, 제주 바다에 도착했다. 바다 속에 평화는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멸치 떼를 따라온 방어들이 탐색전을 벌이는가 싶더니 이내 공돌림이 이어졌다. 쫓고 쫓기는 상황도 잠시, 배를 채운 방어들은 곧 사라졌다. 뒤이어 이번에는 삼치 떼가 등장했다. 삼치는 따뜻한 해류를 따라 멀리 서해로 이동할 것이다. 대형 어선들은 늘 해류의 길목을 찾아 다닌다. 해류의 흐름을 알면 물고기 떼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군 탐지기를 보며 배는 고기 떼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밤이 되고 흩어졌던 고등어들을 다시 모우기 위해 등불을 단 배가 불을 밝힌다. 모든 선원이 갑판 위에서 대기한다. 정확한 순간을 놓치면 고등어 떼가 흩어져 버리기 때문에 모두 숨을 죽이고 지시를 기다린다. 드디어 때가 됐다. 지름 1.5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그 물이 순식간에 바다 밑으로 내려간다. 고등어 떼가 흩어지기 전에 빙 둘러쳐야 한다. 기다릴 새 없이 바로 그물을 끌어올린다. 순식간에 내려갔던 것과 달리 그물이 올라오는 속도가 더디다. 좋은 징조다. 고등어 떼가 제대로 걸려들었다. 해류를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던 고등어 떼를 제대로 포착한 것이다. 저 멀리 태평양 넓은 바다를 누벼온 고등어들이 거친 바다에 눈부신 생명력을 과시한다. 굵고 튼실한 고등어들은 스트레스를 받기 잔에 바로 퍼담아야만 고등어 맛이 변하지 않는다. 놀란 고등어들은 지쳐 죽을 때까지 뛰는 걸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단체로 튀어 오르던 비상의 꿈도 잠시 모두 얼음 창고로 직행한다. 오늘 싱싱하게 잡은 고등어는 내일이면 전국 곳곳 식탁에 올라갈 것이다. 바다 날씨가 심상치 않다. 태풍이다.
⑩ 해마다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태풍은 대부분 해류를 따라 북상한다. 따뜻한 해류는 태풍의 세력을 키우는 에너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바탕 태풍이 물러가고, 이른 아침부터 정치망 그물을 들어올리느라 분주하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물이 당겨지지 않는다. 잘 올라오지 않는 그물, 웬일일까. 바닷 속에는 불청객이 대거 몰려왔다. 태풍과 해류에 밀려온 오무라입깃 해파리 떼다. 도저히 엄두가 안나는 양이다. 조업은 둘째치고 이 많은 해파리를 처리하는 게 더 큰 문제가 되었다. 무게 40킬로그램이 넘는 해파리는 독이 강해서 손으로 들어올릴 수도 없다. 방법은 그물 밖으로 다시 내보내는 것, 어민들은 고기잡이 대신 해파리와 힘겨운 씨름을 한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전쟁이다. 목숨을 부지한 녀석들은 해류를 타고 더 멀리 흘러갈 것이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건져 올린 그물에는 죽은 물고기들 뿐이다. 인건비는 고사하고 기름값도 안 되는 현실에 어민들의 시름도 더 깊어간다.
⑪ 하지만 이 맘 때 해파리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물살이 강한 이곳은 돈이 되는 해파리가 밀려 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흐르는 물살을 향해 그물을 벌려 놓으면 채 10분도 안 돼 묵직하게 해파리가 걸려든다. 기계가 아니면 감당하기도 힘든 작업이다. 진보라 색의 기수식용 해파리는 황해와 중국해에서 서식하는 종으로 이 맘 때 해류를 타고 이곳 강화도 해역으로 흘러든다. 특히 이 해파리는 고혈압이나 기관지염에 좋아 귀한 약재나 고급 식재료로 이용되는 데 전량 중국으로 수출된다. 8월 한 달 반짝 일하면 가구당 돈 천만원 쯤은 벌 수 있어 이곳 어민들에게는 해파리가 큰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⑫ 10월의 동해 앞바다, 북쪽에서 차가운 해류가 내려오는 시기다. 찬 해류는 바다 속 환경을 한 순간에 바꾸어 놓았다. 차가운 물을 좋아하는 말미잘도 수온이 내려가니까 기지게를 켜기 시작한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노무라이끼 해파리들의 떼 죽음이다. 그동안 어민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던 해파리들은 차가운 수온 앞에서 모두 맥없이 기력을 잃었다. 일년 내내 쿠로시오 해류의 영향을 받는 제주도, 동해 바다와는 사뭇 다른 환경이다. 수온이 내려가자 동해에서 자취를 감춘 열대성 어종들이 그물 가득 걸려들었다. 얕은 바다에 정치망을 쳐두고 매일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 어부들, 그런데 오늘은 그물에 뭔가 큰 놈이 들어왔다. 1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삼치다. 그물이 올라오면서 작은 멸치는 빠져 나가고 그물 안에는 잔뜩 살이 오른 정갱이와 고등어가 가득하다. 정치망에 갇힌 물고기들을 종류대로 건져내는 어부들, 값 나가는 녀석들이 우선 선택을 받는다. 배에 가장 큰 창고를 차지하는 것 정갱이다. 뜰채 그물이 찢어질 만큼 퍼올리기를 수 차례, 기분 좋은 수확이다. 특히 쿠로시오 해류가 가장 왕성한 6월에서 9월, 바다는 풍년이다. 이 때 어민들은 하루에 두 번씩 그물을 들어올리며 풍성한 계절을 보낸다. 지구 생명체의 80% 이상이 살아가고 있는 바다, 바다 속 해류는 지금 이 순간도 마치 우리 몸을 도는 혈액처럼 쉴새 없이 전 지구를 순환하며 곳곳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해류는 살아 있는 지구의 뜨거운 동맥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