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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룡<중랑구청 평생학습관 인문학 전문강사>
인생은 짧고 할 일은 많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집중과 절제다. 필요한 곳과 원하는 바에 시간과 노력을 집중하고 그 반대편에 기웃거리지 않고 시간이나 땀을 투자하지 않는다. 이런 방식이 안빈낙도의 삶이라고 정의한다. 해마다 여름이면 해외여행을 즐긴다. 올해는 북유럽 5개국과 러시아로 이어지는 10박12일의 여정이다.
1일차
모스크바 공항을 경유하여 오슬로의 숙소로 향하는 길, 한 여행객이 여권을 분실했다. 이렇게 여행은 시작되었다. 김해공항에서 비행기 연착으로 혼이 나간 상태로 오다 보니 여권을 어디에 두고 온지도 모르고 공항에 내렸다. 일행들은 노심초사하지만 마음뿐이지 도와 줄 방법이 없다. 불법체류자 신세로 이민국에 갇히게 되었고 잠시 불안과 초조의 시간을 경험했단다.
노르웨이 오슬로의 외곽에 위치한 숙소에 짐을 풀고 Rome lake 주변을 5KM를 뛰었다. 이곳은 백야白夜기간이라 밤 11시가 되어도 밝다. 청춘들은 밤이 깊은 줄 모르고 호수주위에서 젊음을 만끽하고 있다.
2일차
오슬로-비겔란드 조각공원-오따로에 이르는 여정.
노르웨이는 피요르드-빙하가 산 아래로 밀려가면서 육지의 바닥을 긁어 깊은 골을 내고, 그 자리에 바닷물이 차올라 만들어진 협만-의 나라로 교육제도·의료혜택·실업수당·노후연금 등 복지가 잘 되어 있으나 EU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6·25전쟁 때 한국에 의료지원단을 보냈고 귀국시에는 입양을 많이 했으며 현재는 300여명의 교민과 150여명의 체류자가 있다.
아침 식사부터 설렌다. 떡갈비형태로 나온 고등어 요리를 한 점 입에 넣으니 즐겨먹던 고등어의 고소함과 질근하게 씹히는 식감은 없고 기름기와 물기가 촉촉한 물호떡 맛이다. 익숙한 맛은 뒤로하고 혀끝의 촉감에 의미를 두었고 참치와 요거트, 갓 구운 빵으로 배를 채웠다.
첫 관람지는 비겔란드 조각공원이다. 입구에 세워진 비겔란드의 동상은 어딘가를 노려보는 눈빛과 꽉 다문 입, 손에 쥔 끌과 망치는 그의 작품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듯하다.
작품은 도로 좌우로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인생사를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떼쓰는 아이와 체념한 여자, 분노를 표출하는 아이-초콜렛을 주었다가 뺏고 난 표정을 묘사했다는데 관람객들이 가장 관심을 많이 두고 있는 작품-, 율동하는 남녀의 형상, 삼각관계를 연출한 조각상에 잠시 눈길을 주다가 121인의 갖은 표현을 한 돌기둥 조각, 6대 주를 상징하는 수반을 이고 있는 조각상, 상식-머리를 치켜들면 목뒤에 주름이 그려져야 하고 자살하려고 떨어지는 형상의 여자는 머리가 아래로 쳐져야하는데 중간쯤 머물고 있다.-을 파괴하는 조각상이 눈에 띈다. 조각상은 선악희비善惡喜悲로 요약된다. 선한 자와 악한 자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고 즐거움과 슬픔의 표정으로 구분 지어진다.
허브향이 나는 정원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달리기하는 사람들….
얼굴이나 몸매를 잘 태워야 건강미가 넘치고 재력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내 얼굴은 구릿빛을 넘어 깜둥이 수준에 미치니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공원을 나와서 옛 조선소 일대의 항구를 둘러보았다. 일과 휴식의 균형에서 행복을 느끼는 나라. 까페촌과 해수욕, 요트를 타는 사람들….
까페에 앉아서 그들이 즐기는 여유를 잠시 흉내내어보기도 한다.
오슬로 시내에서 최고 번화한 카롤 요한거리로 들어선다. 국립극장 앞에 좌우로 나란히 서있는 헨리 입센과 뵈른손 동상. 입센은 중후한 신사의 표정이지만 밝지가 않고 동상전체에 얼룩이 졌다. 반면에 노벨상을 받은 뵈른손은 양손을 옆구리에 대고 덤빌 테면 덤벼보라는 식으로 승자의 여유로운 표정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자리를 옮겨 오슬로대학교. 대리석 기둥이 파르테논 신전형태로 우뚝 솟아 있다. 정면에는 뭉크의 태양이 자리를 잡고 있다. 태양은 진리를 상징한다고, 한편에서는 사람이 미워질 때 태양을 감상하면 에너지가 솟는다고.
점심을 먹고 오슬로 항구 동쪽의 아르케르스후스 성으로 들어섰다. 요새 앞에는 거대한 크루즈선이 방어막을 한 겹 더해 주는 느낌이다. 아케르스후스 성을 지배하는 자가 노르웨이를 지배한다고 하며 군사 요충지로 활용하고 있다. 지금은 나토연합군이 지키고 있어 자유를 만끽하는 나라. 늘 안보가 문제이고 안보 때문에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는 우리의 현실과 너무 대조를 이룬다.
자작나무를 비롯한 차창 밖의 자연의 풍부함을 눈으로 만끽하면서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이 열린 장소로 들어섰다. 스키점프대에 올라 마치 선수가 된 양 사진 몇 컷 찍으며 산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저 먼발치의 피요르드인지 강인지 분간이 가지 않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3일차
오따-게이랑에르-송네-레르달에 이르는 여정.
아침운동을 하는데 숲속에서 방울소리가 들린다. 양과 소의 무리별로 가장 큰 놈의 목에 방울을 달아놓았다. 주인이 이들의 소재를 확인하기위해서 매단 것으로 생각된다.
게이랑에르를 가는 길에 들른 롬스타브 교회. 이 교회는 12세기 후반에 지은 것으로 1933년에 중건했다. 못을 사용하지 않고, 지붕은 널판지를 층층히 쌓은 노르웨이 전통 방식. 지붕에는 십자가와 함께 용머리를 볼 수 있고 대문 양쪽에 호랑이 문양이 우리의 사찰과 겉모습이 비슷하다. 정원에는 묘비로 가득 차 있고 계곡의 물은 빙하가 녹아내린 물줄기를 따라서 그로릴리 요정의 길로 흘러간다. 동화속의 주인공 요정이 나올듯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굽이 길과 낭떠리지는 가슴을 철렁이게 하지만 아찔한 기분이 여행의 맛을 더해준다.
게이랑에르 마을. 1800m 이상의 고지군으로 둘러싸인 16km에 이르는 세계최대의 피요르드를 유람한다. 하얀 구름과 만년설 아래 바위, 푸른 숲과 흘러내린 아득한 빙하의 흔적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강렬한 태양의 빛을 받아 호수의 표면에는 윤설이 반짝이고 있다. 182m에 이르는 칠자매 폭포와 군데군데 역사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가파른 산중의 외딴 농장. 산양을 기르는 농부가 세무서 직원이 방문할 때는 줄 사다리를 치워버려 농장까지 진입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방송멘트를 들으면서 그 옛날 공자가 살던 시대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가혹한 정치는 호랑이 보다 무섭다-의 아낙네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빙하가 녹아내린 바위의 얼룩들은 유구한 세월을 읽을 수 있고 명암과 굴곡된 바위의 흔적들 틈새에 난 크고 작은 초목들을 보면서 어떤 화가도 묘사할 수 없는 수채화를 연상케 하고 자연의 생명력을 보고 있노라니 인간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이 우습게 와 닿는다. 건너편에서 보트놀이 하는 가족들을 보고 반가운 손짓을 하는데 다정다감한 모습을 시샘이라도 하는 듯 산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뵈이야 빙하는 아득하기만 하다. 줄줄이 흘러내리지만 저마다 목적을 가지고 녹아내리는 것일까? 물은 회색빛을 띠고 있다. 물에 손을 담그고 주위를 쭉 둘러본다. 이름 모를 이색 식물들….
피얼란트 빙하박물관은 노르웨이 공주가 거금을 투자하여 설립하였다는데 만년설과 푸른 초원은 태초의 모습을 상상케 한다. 빙하의 원리와 전력을 생산하는 구조물. 물방울이 떨어져서 표면에 구멍을 내는 수적천석水滴穿石-물방울이 돌을 뚫는다-의 원리를 설명하는 구조물을 보면서 작은 물방울도 모이고 집중하면 단단한 바위를 뚫을 수 있다는 진리를 확인한다.
송네 피요르트 가는 길, 배를 타고 버스를 타고 가는 길,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피요르드의 나라는 휴양 그 자체다.
4일차
레르달-플롬-베르겐-하당에르-아일로에 이르는 여정.
시원한 계곡과 전원주택단지를 끼고 한 바퀴 달리고 식사를 한다. 갓 구운 꼬들꼬들한 빵맛이 일품이다.
플롬 산악열차에 몸을 싣는다. 해발 2m에서 시작하여 866m 마달역 까지 약 1시간을 왕복으로 다니는 협곡열차. 차창밖에는 자전거로 종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자작나무숲 사이로 흘러내리는 폭포수, 자라목같이 생긴 산봉오리는 자라가 승천하는 모습이다. 140m의 르노안네폭포, 해발 669m의 코스포젠의 무지개를 보고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다. 하지만 키요센 폭포에 이르러 몸이 멈춰버리는 듯하다. 230km에 이르는 산 전체가 4단계를 이루어 하나의 폭포다. 신선이 지금이라도 달려 나올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훌드라 요정의 전설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여자가 한 번은 붉은 옷을 한 번은 흰옷을 입고 신기어린 목소리로 연출을 한다.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 북해와 발트해를 주름잡는 해상무역이 이루어지는 상업의 중심도시를 플뢰인 산에서 조망해본다. 중세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목조건물과 즐비한 요트, 번잡한 어시장은 시대를 공유하고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보여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브뤼겐 지구에는 폰다코 방식의 삼각형 지붕 목조 건축물이 서 있다. 공터에는 대구인지 명태인지 목어木魚 조각물이 있다. 뒷골목에는 허름한 목조건물과 칸칸이 저마다의 작품을 전시해 놓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하당에르 피요르드를 가는 길은 배와 버스를 이용하는데 터널의 길이 24km(?)로 세계에서 2번째다. 터널 내에서 교차로를 접하게 된다. 끝없는 자연은 태초의 모습이다. 어느 듯 툰드라 지역 해발 900m 수목한계선을 지나고 있다. 도로 좌우측에는 적설량을 표시하는 긴 작대기가 있다.
거대한 고원지대는 신이 버린 땅인데도 겨울을 사는 사람들은 썰매견을 활용한 사냥하는 영상물을 보니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함을 느낀다.
초원은 말라있고 중간중간에 작은 웅덩이와 돌덩이리들. 버스에서는 ‘You raise me up'이 흘러 나온다. 내가 아프고 힘들 때 즐겨 들으며 위안이 되어주었던 그 노래. 누가 내 마음을 훔쳐본 듯 하다.
산중의 GEILO 호텔. 1890년 최초 설립한 사람은 많은 흔적을 남겨두었고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들어간 기분속에 잠이 든다.
5일차
아일로-오슬로-DFDS로 이어지는 여정.
곤드라를 보면서 아침운동으로 5km를 달렸다. 길 어귀의 담벼락에는 우체통이 총총히 매달려 있고 산속 언덕위에 집들은 색깔이 제각각이다. 번지가 없던 시절 언덕까지 올라가기 힘드니 우체부를 위한 배려인 것 같다.
서둘러 뭉크미술관에 도착하니 관람객을 15~16명 단위로 통제해서 입장을 시킨다. 작품이 도난당했던 적이 있어 예약제로 관람을 허용하고 보안과 감시가 철저하다. 뭉크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아버지가 의사였는데 생활력이 없었고 어머니는 폐결핵환자. 5남매 중 둘째인 뭉크의 누나도 폐결핵으로 죽었다. 스스로 자신에게는 악마의 피가 흐른다고 생각하여 결혼을 하지 않았단다. 삶이 그래서인지 작품들이 어둡다.
친구들과 함께 걷던 뭉크는 갑자기 공포를 느끼며 신의 저주가 자신에게 미치는 것을 ‘절규’라는 작품에 담았다. ‘불안’과 ‘절망’ 같은 작품 속에서도 불우했던 가정환경과 병에 대한 두려움이 그림에 반영되어 있다. ‘눈 치우는 노동자들’ 작품은 지금이라도 작품 속에서 사람이 씩씩거리며 달려나올 듯 생동감이 넘친다. 정신이 혼미하고 우울했다지만 ‘태양’같은 작품을 보면서 일견 의욕적으로 활동한 흔적도 보인다. 인간 뭉크는 불행했을지 몰라도 그의 작품으로 인해 노르웨이 사람들은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오슬로 시청사 내부관람.
노벨평화상을 시상하는 장소라 보안이 철저하다. 내부는 벽화들로 가득 차 있는데 전쟁의 참혹사를 그린 파노라마식 작품을 보노라면 일제 침탈의 뼈아픈 역사가 스쳐간다.
남쪽 창문 너머로 피요르드가 눈에 들어오고 ‘인생’이라는 작품을 보면서 삶에 너무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노르웨이에서 여정을 마치고 안드레센의 나라 덴마크로 가기위해 DFDS에 승선하여 이동하고 있다. 갑판 밖으로 나와 주변을 돌아본다. 수영장에서 물놀이 하는 가족들, 맥주한잔 마시면서 휴대폰에 의지해 뭔가 열심히 조작하는 사람들, 그냥 멍 때리기 하는 사람들, 나름 다 지켜볼 수 있는데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흡연자들이 내 뿜는 담배연기다. 개인의 자유와 공공의 이익에서 합의점을 찾아내야 할 법도 한데 공익보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다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다. 해는 어둑어둑 저물고 있다.
저녁식사를 위해서 식당으로 들어서니 환영인사를 하는 아가씨와 수많은 종업원들이 각자 맡은바 위치에서 소임을 다하고 있다. 음식은 약간 투박한듯하면서 먹을 것이 많다. 육고기를 먹고 해산물을 먹으려고 했는데 일행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요리를 즐기기는 뒷전이고 한바탕 웃음으로 어느 듯 밤이 깊어간다.
6일차
DFDS-코펜하겐-헬싱괴르-헬싱보리-왼쇠핑에 이르는 여정.
아침에 갑판 위를 달렸다. 선상의 갑판위에서 달리는 기분이 상쾌하지만 뿜어대는 연기 때문에 상쾌함은 반감되고 말았다. 덴마크에 도착을 알리는 뱃고동이 울리다. 굴뚝산업이 없는 대신에 지적재산권-감기약 상처치료제 등 -을 많이 보유하여 로얄티를 받아서 사는 나라. 도시전체가 3-500년 된 건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나라. 덴마크는 6.25전쟁 때 병원선을 지원했고 이후 900명을 입양한 우방국이다.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①청렴정치 ②효율적인 정부운용 ③신뢰를 꼽고 있단다. 신뢰받는 청렴정치는 우리나라에도 도입되고 정치인들이 실천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국회의원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자유와 평등의 기치아래 4개의 정당이 합의체로 운영한단다. 거대양당의 당리당략에 의해서 좌지우지하는 우리나라 패거리정치에 변화를 기대해본다.
코팬하겐 시내는 평지이고 최고 높은 곳이 해발 170m밖에 되지 않아 인구의 30%가 자전거를 이용하는 자전거 천국이다.
도심을 잠시 걷다가 뉘하운 운하투어에 나서 잘 보존된 도시를 탐방한다. 오페라하우스, 군함, 왕립도서관 등 수많은 시설들이 운하를 주변으로 발달되어 있다. 운하투어의 반환점을 돌아오는 길에 구세군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교회 첨탑까지 회오리 식으로 설치되어 있고 맨 위에는 지구본. 그 위에 예수상이 있다. 인간세상의 최고 위에 존재한다는 의미로 설계된 듯하다. 제자 안회가 공자를 평가할 때 앙지미고仰之彌高- 바라볼수록 더욱 높아지는 절대지존 같은 그 모습-라는 말이 연상된다.
운하에서 내려 1차 세계대전 때 희생된 선원들을 추모하기위해 설치한 게피온 분수에 도착했다. 분수는 여신이 황소 4마리를 몰고 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덴마크의 건국신화에 등장하는데 여신은 스웨덴의 왕이 게피온에게 하룻밤에 갈아엎을 수 있는 만큼의 땅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이에 게피온은 네 명의 아들을 황소로 바꾸어 밤새 밭을 갈아 약속한 땅을 얻었는데 이 땅이 오늘 날 코펜하겐이 있는 셀란섬이 됐고, 땅이 파인 곳은 스웨덴에서 가장 큰 베네른 호수가 됐다고 전해진다. 분수대는 쏟아져 나오는 물줄기만큼 힘이 넘친다.
인어공주 동상으로 이동한다. 동상은 칼스버그 2대 회장 칼 야콥센이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여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인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에서 착안하였다. 높이 1.25m, 무게 175㎏의 청동 조각품. 지금은 덴마크의 명물이 되어 수만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조그마한 조각상에 이름을 붙이고 사연을 더하니 명물이 된 것이다.
페리를 이용하여 헬싱괴르에서-헬싱보리로 이동하여 버스를 타고 스웨덴으로 넘어간다.
7일차
왼쇠핑-스톡홀롬--바사박물관 -SILZA에 이르는 여정.
스웨덴은 중세 초기 스베아족이 중부지방에 촌락을 형성하면서 9∼11세기의 바이킹시대를 거쳐 13세기 초에 신왕조를 창시한 비르에르얄(Birger Jarl)이 통일국가의 기초를 닦았다. 6·25전쟁 당시 야전병원선을 파견했으며, 1만 여명의 교민과 150여명의 체류자가 있다. 대부분의 교민들은 스톡홀름 등 대도시에 거주하고 있으며, 북유럽 최고의 복지국가로 안정된 생활을 자랑하고 있다.
왼서핑의 호텔은 무인시스템으로 운용하고 있다. 어렵사리 문을 열고 들어가서 저녁 산책을 나갔다. 수평선 아득한 저곳은 어딘가 궁금하기도 하고 일행들과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 농담을 건네며 산책 후 각자의 자리로 가서 잠을 청한다.
아침이 밝아 호수를 한 바퀴 달리기로 마음먹고 뛰는데 숲속으로 들어서니 으스스한 분위기에 화약냄새 같은 매스꺼움이 입으로 들어온다. 출입금지판은 온몸을 오싹하게 하고 머리카락이 쭈삣해진다. 설마 대명천지에 무슨 사고가 날까 하면서 이를 악물고 달리니 악몽같은 시간은 지나가고 간간히 지붕위에 잔디를 심어 놓은 집들이 보인다. 보온유지와 겨울에 눈이 왔을 때 지붕 균열방지목적이란다.
회토리예트 광장에 도착하여 스톡홀롬 시내로 들어서니 안내자가 “노벨이 화약을 만들었고 몇 가지 특징적인 상품으로 부국이 된 나라”라며 자신도 선택받아서 이민 온 몸이라고 자랑 한다. 역시 한 명의 인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광장을 가득 메운 꽃과 과일을 파는 가게를 기웃거리다 역사驛舍 쪽으로 걷다보니 찌그러진 총열에 폭력은 없다No Violence는 글자가 새겨진 조형물이 있다.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상징하는 의미로 보인다. 거리를 지나던 핀란드 여성과 사진을 찍고 몇 마디 나누다가 유쾌하게 웃으며 갈 길을 간다.
노벨상을 시상한다는 콘서트홀, 황금의 방을 보니 웅장한 그들의 모습에 우리 선조들의 족적은 너무나 미미하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짧은 기간에 이룬 경제발전은 앞으로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1923년 벽돌 100만장으로 12년에 걸쳐 공사를 한 시청사와 의회는 내부시설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실제 회의도 진행한다고 한다. 1~2년 단위로 도로를 파 부수고 내부집기류를 교체하는 우리의 풍토와는 사뭇 다르다. 왕자의 방의 오석烏石과 말은 출세와 행운 상징한다고 한다. 하기야 제나라 경공도 말 천 필을 보유하였고 몇 년 전 국정농단의 주범인 ㅇㅇ씨도 말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것을 보면 말은 힘과 재력을 상징하기에 충분하다. 건물 밖에 황금와상이 있다. 비르에르얄(BIRGER JARL)로 13세기 초에 신왕조를 창시하고 통일국가의 기초를 닦은 인물이다.
전쟁을 종식하고 내치와 문화부흥에 힘썼던 구스타프 III세-1772년에 즉위한 그는 주로 음악, 미술, 문학 등을 진흥시키는 데 노력하여, 문학과 예술 부문에서 꽃을 피웠다. 스웨덴 한림원과 왕립 오페라 극장, 그 밖의 문화관들이 이 시기에 설립 -의 코트가 바람에 휘날리는 동상은 바이킹의 후예로 품격과 자부심이다.
바다 건너편에는 귀족의 섬, 백만장자의 거리, 깃발이 펄럭이는 동성애자 아파트, 정박해 있는 요트, 고풍스런 건축물과 잔잔한 바다, 구왕궁일대와 대성당을 둘러보고 한림원건물 뒷골목으로 이동하여 와플에 초콜렛과 아이스크림을 올려 맛을 본다.
바사 박물관은 구스타프 2세-1611년에 왕위에 오른 구스타브 바사의 손자인 구스타브 아돌프 2세는 북방의 사자로 불렸는데, 그는 리보니아를 정복해 스웨덴 동부를 발트 해 유역까지 확장하고 Breitenfeld 전투에서 카톨릭 연방을 패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 -때인 1625년 건조하여 1628년 처녀출항 때 함포에 포문을 32개에서 2층으로 64개로 개조하여 출항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함포에 물이 들어와 승선인원 150명-귀족 50명 승선- 중 30명이 수장되었다가 333년 만에 인양되었다. 전문가들이 함포를 1층으로 설계하였는데 왕이 2층으로 개조토록 한 것이 문제였다. 부재기위불모기정不在其位不謨其政-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에 대해서는 논하지 말라-이라는 말이 있다. 지위를 이용 할 것이 아니라 전문가에게 맡겼더라면…. 한편 귀족 50명이 참가했다는 것은 가진 자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높이 평가할 만한 대목이다. 그리고 매표소에 18세 이하 무료관람-노르웨이 뭉크미술관도 마찬가지-한다는 사실은 교육적 차원에서 학생들에 대한 배려로 보인다.
8일차
SILZA -헬싱키-탈린에 이르는 여정.
크루즈 SILZA에서 저녁을 먹고 쇼핑을 하다가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도착을 알리고 1시간의 시차를 적용한다.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있는 핀란드는 인구가 약 552만이며 전국토의 72%가 침엽수림으로 임산업이 발달되어 있고 세계 사회보장제도가 최고수준이다. 헬싱키 대성당과 원로원광장을 돌면서 사진을 찍어본다. 광장에 우뚝 선 러시아 황제의 동상이 이색적이다. 피지배국으로 있을 때 인권을 중시하고 문화부흥을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하여 동상을 건립하였다고 하니-일본의 만행과 아베의 보복적인 행동을 보면서- 우리의 처지와는 대조를 이룬다.
암석교회는 자연석의 바위가 입구에 벽면처럼 서 있고 정문 쪽은 다듬어진 바위로 설치되어 있다. 지붕은 소리를 잘 전달하기 위해 구리를 재료로 하여 원형으로 만들었다. 내부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지만 관광객들의 소음으로 어떤 곡을 연주하는지 알길 없다.
시벨리우스의 조각공원에는 파이프 오르간 형태의 조각물과 시벨리우스의 조각상이 있다. 작곡할 때 배려로 비행기와 자동차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였다고 하니 그는 핀란드의 국보급임에 틀림없다. 버스에서는 그의 대표곡으로 <핀란디아>가 흘러나온다. 어둠은 사라지고 햇살이 비치고 노예의 흔적을 버리고 새 세상의 주인이 되라는 메시지다.
이 곡을 공자의 음악에 대한 평가에 대비시켜 들으니 어쩜 그렇게 유사할까. 묵직하게 연주를 시작하여 고난의 역사를 말하듯 음산하면서도 장엄하게 연출翕한다. 이어서 탄식조의 선율을 연주한다. 차츰 연주가 고조純되면서 투쟁을 독려하는 것처럼 급박한 소리를 토해내고 현악기의 손놀림이 빨라진다. 이어서 맑고 안정적인 분위기를 자아噭낸다. 그러다가 호흡을 몰아치듯 강렬하게 악장을 마무리繹한다. 여행이 끝난 지금도 핀란디아를 즐겨들으니 시벨리우스와의 만남은 계속되는 셈이다.
핀란드는 산타크로스와 자이리톨, 사우나의 나라다. 설탕과 자이리톨은 단 것이 공통점이나 설탕은 따뜻한 기운이 나면서 균을 번식시킨다. 자이리톨은 찬 기운이 나면서 맑고 시원한 맛이 치아의 균을 죽이는 역할을 한다. 미세한 듯 하지만 몸에는 극명하게 갈라진다.
선착장으로 이동하여 2시간 정도 배를 타고 에스토니아의 탈린시에 도착하였다. IT강국, HOTMAIL, SKY LIFE의 나라 에스토니아.
하루 밤 사이에 스웨덴, 핀란드, 에스토니아 3개의 나라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이게 여행인지 행군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머리와 눈의 회전은 느림보 거북이인데 몸은 이미 폭풍구보로 달려와 버렸다. 탈린의 일정도 만만찮다. 숲이 많고 평지인 이곳은 교민이 15명 불과하고 정부청사가 우리의 면사무소 정도로 규모가 작다. 저 먼발치 발틱해를 바라보니 바쁜 여정에 한숨을 돌려 조망하기에 충분하다. 구도심으로 들어가 귀신 나오는 집, 고양이우물, 롱다리부츠로 만든 지붕 배수관이 눈에 쏙 들어온다. 구청사 뒤에 설치된 환형의 사형집행대도 있다. 건물 뒤쪽 이면도로에는 호객행위하는 모습과 아담한 정원, 손으로 악기를 두드리는 스님들의 모습, 약간 불량끼 있는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에게 말을 건네는 모습은 우리의 청춘들과 유사하다.
식당에 들어가니 중세시대의 전통복장을 한 직원들이 서빙을 한다. 스테이크는 질기지만 꼭꼭 담백하고 고소하다. 여정을 마치고 돌아와 숙소 주변 해변을 산책하는데 부녀로 보이는 사람이 요트를 즐기고 있다.
9일차
베테르 부르크-여름광장-모이까운하-민속공연관람.
호텔방은 넓고 깨끗하여 편한 밤을 보냈다. 아침운동은 짧게 달리고 나르바 강을 건너서 러시아로 들어가는데 군인과 경찰이 검문을 하고 있다. 점심을 먹으러 도착한 식당의 층고가 높다. 대다수의 건물이 층고를 높게 지었다.
베테르 부르크관광이다. 인구는 5백만 명으로 러시아 2대도시다. 제정러시아 때 2백여 년간 러시아의 수도였다. 도스토예프스키, 차이코프스키 등 수많은 러시아 문호와 음악가들이 이곳에서 활동하고 묻혔으며 푸틴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곳은 철저한 계획도시로 1703년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표트르 대제가 건설했다. 혼란스러운 러시아. 표트르 대제는 천도를 결심하고 페테르부르크를 낙점했다. 도시건설을 위한 재원은 상인으로부터 통관세를 받아 마련하고 인력은 죄수들을 동원하였다. 입지는 좋은 편이 아니었다. 네바강 하구 삼각주 지역이라 수많은 섬으로 나뉜 데다 땅이 물러 지반을 다진 후 건물을 세웠고, 수로를 정비하고 섬과 섬을 4백 여 개의 다리로 연결하여 러시아에서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만든 것이다.
첫 관람지 여름궁전은 발트해 동쪽 핀란드만 해변가에 있다. 러시아 황제와 귀족들의 여름휴양지로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을 본따 러시아와 유럽의 색채가 어우러진 독특한 건축물이다. 대궁전 앞 삼손분수지역은 60여개의 분수가 있다. 사자 입을 찢는 사내의 모습,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모습, 곳곳에 설치된 익살스런 모습, 수로와 양옆으로 이어진 푸른 숲이 장관이다. 이곳은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구한말 민영환 선생이 처음 방문하고 천국의 모습이 아닐까 소회했다고 한다.
유람선을 타고 모이까 운하의 7km 구간을 유람한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녀가 배의 이동방향에 따라 처음부터 끝까지 맞춰서 뛰고 있다. 나중에 이유를 물으니 한국이 좋고 근면 성실한 한국인을 좋아 한다고 한다. 푸시킨박물관을 지나고 도스도예프스키가 다녔다는 공병학교와 구해군성을 지난다. 배에서는 이렇게 좋은날, 배사메무초 등 귀에 익은 음악이 나온다. 여유와 삶과 존재의 이유를 느끼게 하는 시간이다.
저녁에는 민속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극장으로 들어서는데 층고가 높은 대리석 건물에 양탄자가 깔려 있다. 계단을 오르니 마치 왕이 된 기분이다. 바사족의 청년들이 전쟁터로 나가는 친구를 보내며 격려하는 내용 민속극이다. 중간에 배우들과 어울려 춤도 추고 스탠딩파티를 하면서 보드카와 와인한잔씩 돌린다. 파티문화에 익숙한 그들과 잠시 동화되면서 여행의 재미를 느끼는 밤이다.
10일차
에리미타지 박물관-성이삭성당--헌법재판소-피터대제 동상-카잔성당.
눈을 떠보니 호텔주변은 아름드리 자작나무가 숲을 이루고 강에는 요트가 정박해 있다. 아침운동으로 5km를 달렸다. 저 먼발치는 세계최대의 가스공사 건물-외형이 롯데월드와 유사-이 있고 숙소 뒤편에는 월드컵 경기장도 보이고 거리를 청소차가 지나간다.
네바다강에는 요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권력자가 아니면 누리지 못한다고 한다. 소수의 특권층이 부와 권력을 쥐고 있는 나라.
에리미타지 박물관을 관람하기 위해 궁전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중앙에는 나폴레옹과 승리를 기념하기위해 설립한 탑이 우뚝 서 있고 오른쪽에는 구참모부건물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광장에는 마라톤대회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데 갑자기 오토바이족들이 굉음을 울리면서 몰려든다. 푸틴대통령도 이런 행사를 즐긴다고 하는데 가칭 ‘밤의 늑대들’이다.
에르미타쥬박물관은 루브르,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이다. 예카테리나 2세가 2백26점의 회화를 구입한 것을 계기로 규모가 커졌다. 3백50개의 방으로 구성된 이곳은 동선 길이만 해도 10키로에 달한다.
작품을 평가할 능력도 안목도 없는데 설명 듣고 몇 작품을 정리해 본다.
①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집을 나가 재산을 탕진한 뒤 거지꼴로 돌아온 아들을 어루만져주며 눈을 지긋이 감은 아버지. 아들의 어깨 위에 얹힌 아버지의 두 손. 왼손은 투박하고 힘줄이 울퉁불퉁 남자의 손, 오른손은 여자의 손이다. 화가는 상식적 사실성을 무시하고 왼쪽은 아들을 어루만지는 손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오른쪽은 어머니의 자애를 담았다고 한다. 실제로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삶에 대한 고백이다. 렘브란트도 1658년 파산을 했다. 돈 관리에 실패하고 씀씀이가 컸기에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아내의 묏자리까지 팔아야 했다. 엄청난 상실과 쓰라린 아픔을 겪은 뒤 만년에 그린 것이 '돌아온 탕자'다. 한 인간으로서 패배를 아주 솔직하게 인정했다는 사실. 그는 아버지(신)에게 고해하고 안기는 것으로 인생의 실패를 인정하고 있다
②조르조네의 유디트. 유대인 과부가 민족을 위급한 상황에서 구하기 위해 아시리아군의 적진 속에 들어가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침소에서 그의 목을 잘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작품은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친 뒤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잠시 홀로페르네스의 잘린 머리를 밟고 서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화면에서 붉은 옷을 걸치고 있으며, 칼을 오른손으로 잡고 왼발로는 홀로페르네스의 잘린 머리의 이마를 밟고 서 있다. 논개가 생각나는 시간이다.
③로렌초 로토의 부부2. 중년의 부부를 묘사하고 있다.카페트가 깔린 실내에서 테이블을 앞에 두고 남편이 한 손으로는 메모지-HOMO NUMQUAM인간은 절대로-를 한 손으로는 다람쥐를 가리키고 있고 부인은 한 손은 남편의 어깨위에 한 손은 강아지를 안고 있다. 중년이 지나면 황혼기가 다가오기 마련이다. 부인은 살포시 남편에게 의지하고 강아지처럼 충직하게 살고 싶은 속내를 드러낸 것이고 남편이 가리키는 다람쥐의 속성은 겨울에 먹이가 떨어지면 암놈을 잡아먹는다고 하다. 이를 볼 때 남편은 절대로 아내를 버리지 않고 뒤를 봐 준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또한 다람쥐처럼 아내의 가진 것 모든 것을 팔아치우고 떠난다는 의미로 비치기도 한다. 눈과 코 주위가 붉은 것이 속내를 들켰다는 의미인가?
④루벤스의 작품 시몬과 페로. 늙은 남자가 쇠사슬에 손이 뛰로 묶인 채 젊은 여자의 젖을 빨고 있다. 이 그림속의 남녀는 부녀지간이다. 시몬(아버지)이 아사餓死형을 선고 받고 죽어가는 모습을 볼 수 없어 딸(페로)가 자신의 젖을 먹이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아버지를 면회가서 젖을 먹였다. 딸의 효심에 감동한 왕이 시몬을 옥에서 풀어주었다. 당시 로마에서는 이 주제가 대단한 인기였는데 자식이 부모를 공양하는 가장 고귀한 사례로 여겨 이 작품을 로마인의 자비라고 했다. 그러나 외설의 논란에 휘말린다. 그림 속 인물이 루벤스와 그의 아내 헬레나푸르망과 비슷하다고 한다. 당시 52세인 루벤스가 37살이나 어린 재혼한 아내, 루벤스의 성적 욕망이 그림에 투영되었다는 의견으로 분분하였다. 결국 루벤스는 이 일로 낙향을 하여 쓸쓸한 노후를 보냈다.
이삭성당.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황금빛 돔-1백kg의 순금을 입힘- 지붕.쇠말뚝을 박아 지반을 다진 뒤 1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대리석 기둥이 어마어마하다. 1818년 몽페란드가 설계하고 40년이 지난 뒤에 완공되었다. 성당 내부에는 성서 내용과 성인을 묘사한 러시아 화가들의 회화 작품 및 조각품 전시되어 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성스러운 성당에 전리품들이 가득차 있고 프랑스를 침공하여 승리한 기념으로 각 지역을 상징하는 키가 여러 개 전시되어 있다. 하기야 옛날 동양에서도 성인이라는 의미는 내성외왕內聖外王을 상징하니 한편 이해도 된다. 카잔성당. 건축가 바로니킨이 1801년부터 10년에 걸쳐 지었다. 석고대리석 기둥 94개가 성당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성당이 완성된 후 러시아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프랑스군에게서 빼앗은 107개의 군기와 승리의 트로피 등이 걸려 있다.
헌법재판소. 건물 지붕의 십자가를 보면서 정의는 신의 편이라는 의미인가 아니면 종교 편파적인 판정을 하는 것이 신의 계시인가?
표도르동상. 발밑에 뱀이 있다. 수험생들이 달려들어 말 엉덩이를 잡으면 합격하고 잘못하여 뱀을 잡으면 불합격한다나. 기복신앙은 지구촌 어디에나 다 있는가보다.
볼세비키혁명으로 러시아가 공산화가 되자 정교회의 시설은 모두 감자나 채소창고로 바뀌고 일부만 보존했다고 전한다. 결국 종교도 권력자의 자기 배 채우기 되었고 성직자 또한 권력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다.
저녁은 한국식으로 부대찌개에 가지조림과 김치로 해결하고 야경을 즐기다
가 비행기로 2시간 가량 이동하여 모스크바로 들어간다.
11일차
성바실리 성당- 크레믈린 궁전-붉은광장-아르바트거리-참새언덕.
호텔주변에서 아침운동을 하는데 산책하는 사람은 개 목줄을 풀고 있다. 샌드위치가게 주인은 런닝차림으로 음식을 만들고, 역에서 내려 출근길을 서둘러가는 사람들 중에 담배를 물고 가는 사람이 많다. 반환점을 돌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경찰차가 서 있다. 알고 보니 경찰들이 불량하다고 한다. 호기심에 몇 마디 물었다면 나도 철창에 갇혀 협상의 대상이 될 뻔했다.
모스크바 관광길에 오른다. 크레믈린궁, 아르바트 거리로 이르는 여정이다. 바실리성당. 중앙의 첨탑을 중심으로 양파 모양의 돔으로 아홉 채의 독립된 건축물이다. 건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꼭 그림처럼 와 닿는다. 이반 4세에 명에 따라, 1555년에서 1561년까지 카잔의 타타르 칸 국國 정벌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반 4세는 성당이 완성된 후 성당의 아름다움에 필적할 만한 건물을 설계하지 못하도록 건축가 야코블레프의 눈을 멀게 했다고 한다. 이반 4세의 포악성을 대변하는 대목이다. 성당 앞의 정원에는 17세기 초에 폴란드인들이 침입해 왔을 때 러시아 의병대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러시아 영웅, 드미트리 포자르스키와 쿠즈마 미닌의 동상이 서 있다.
볼쇼이 극장. 하얀 대리석으로 웅장하게 솟은 중간지점에 말 4마리를 모는 장군의 조각물이중간에 배치되어 있다. 굼백화점입구는 들뜬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 주변과 내부 시설도 고급스럽게 배치되어 있다. 붉은 벽돌에 공격적으로 와 닿는 조국전쟁기념관, 역사박물관을 지나 레닌의 묘가 있다. 레닌은 공산주의가 몰락하면서 존재감이 없어 졌지만 역사적 가치로 파기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크레믈린궁전을 들어가는 입구는 현지가이드가 안내를 한다는 규칙 때문에 러시아 할머니 두 분이 동행한다. 노인일자리 창출차원 아닌가 생각된다. 입구에 들어서자 오른쪽에 병기고의 건물이 있다. 외부에 대포가 2단으로 진열되어 있는데 아래는 프랑스 무기를 위에는 러시아의 무기를 진열해 두었다. 러시아가 프랑스를 지배한다는 의미란다.
레닌의 집무실로 쓰였던 원로원 건물,1586년 청동으로 주조된 무려 40톤이나 되는 황제의 대포,1737년 주조된 황제의 종은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있다. 화재시 찬물을 끼얹어 떨어져나갔다고 하는데 아랫부분이 사람들의 손을 타서 반질반질하다.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나. 황제가 거주하다가 지금은 푸틴대통령 집무실로 쓰이기도 하는 크레믈린 궁전은 푸틴의 얼굴을 연상하니 온갖 비밀과 공작이 이루어지는 섬뜩한 공간으로 와 닿는다.
국보1호인 성모성천성당. 알렉산드1세가 나폴레옹 전쟁시 60만 대군 무찌르고 1만 명이 들어가는 성당을 만들도록 지시하였다. 5개의 양파모양 지붕으로 크레믈린궁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황제의 대관식 및 대통령의 취임식등 국가 중요 행사가 이곳에서 이루어지며 가장 신성시 여기는 곳이다. 황제 부부가 예배를 드리는 곳이라 규모도 크고 화려할 줄 알았는데 성당내부에 큼직한 의자 3개가 만 있고 소박한 느낌이다. 5단의 비콘화-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그림-가 그 명성을 유지하게 하고 있다.
지하철역사. 대리석인데 구조물이 투박하다. 전철은 승차감이 없고 탱크처럼 굉음을 울리며 전선에 투입되는 열차처럼 승객은 침묵하고 굳은 표정이다.
아르바트 거리에서 푸시킨이 살았던 집과 박물관을 둘러보고 그의 아내에 대한 극진한 사랑이야기-아내와 관계에서 프랑스 장교와의 결투를 신청하여 패하고 죽을 줄 알면서 미리 써 둔 유언장에 불륜을 더 이상 거론하지마라-는 길이길이 회자될 듯하다.
음유시인의 동상. 구부정하게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가는 형상은 파격 또는 일탈을 그리워하는 본심의 표출로 여겨진다.
참새언덕의 휴일은 우리의 일상과 비슷하고 저 먼발치 모스크바대학이 러시아의 지성을 대변하고 보드카와 차가버섯 그리고 무뚝뚝한 남성미가 러시아를 상징한다.
저녁은 모스크바 시민들이 즐겨먹는 전통식인 샤스린으로 해결한다. 야채샐러드가 나오고, 붉은 물로 담근 당근같은 채소, 닭곰탕에 이어 감자와 돼지고기를 먹고 포만감이 드는데 다시 판케익을 내놓는다. 배는 부르지만 호기심에 젓가락이 간다.
12일차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고 돌아온 길. 지난 일정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명상이라는 단어를 그냥 눈감고 조용히 내면으로 집중하면서 무념무상으로 알았는데 탐사-크게 보고 세심히 살핌-라고 유발하라리 교수는 주장한다. 이는 주제를 깊이 연구하여 통찰에 이르는 것이다. 지금껏 사고의 범주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쾌락에서 벗어나 책을 읽고 여행도 하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오만을 경계하고 지적희열을 느끼면 의미 있는 인생이려니 했는데….
명상-內省-을 통한 진정한 통찰의 경지를 맛보기 위해 또 다른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