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전이병주교수묘비
충북 괴산군 청안면 청용리 510-2
송우암 신도비 및 묘소
충북 괴산군 청천면 청천8길 19 (우)28063
지번 청천면 청천리 산 7-1
사적
괴산 송시열 유적 (槐山 宋時烈 遺蹟)
Historic Site Related to Song Si-yeol, Goesan
괴산 송시열 유적 전경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역사사건 |
24,806㎡ |
1999.12.29 |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길 188, 외 (화양리) |
숙종 22년(1696년) |
괴산군 등 |
괴산군 |
종합안내판
괴산 송시열 유적 槐山 宋時烈 遺蹟 사적 우암 송시열(1607〜1689)이 말년을 지낸 곳으로, 화양서원(華陽書院, 우암 송시열 선생이 머물렀던 장소에 세운 서원으로 조선시대 기호학파 학자들이 많이 모이던 장소)과 만동묘(萬東廟, 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내준 중국 명나라 황제인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가 있던 조선시대 성리학의 중심지 중 한 곳이다. 송시열 선생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로서, 조선 효종(1649년〜1659년 재위)을 도와 북벌정책을 주진하는 등 자주적인 정치를 펼쳤으며, 주자학의 대가로서 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다. 이 유적은 송시열 선생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정신이 깃든 곳으로, 일제가 파괴하였으나 2006년까지 만동묘 7동과 화양서원 2동을 복원하였다. 유적 주변에는 송시열 선생과 관련된 암서재(巖棲齋), 읍궁암(揖躬巖)외에 ‘충효절의(忠孝節義)’, ‘비례부동(非禮不動)’등 바위에 새긴 글자(암각자)가 많이 남아 있다.
문화재 설명
조선시대 성리학 중심지 중 한 곳인 우암 송시열 유적이다. 송시열(1607∼1689)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이자 문신으로 조선 효종(재위1649∼1659)을 도와 북벌정책을 추진하는 등 자주적인 정치를 펼쳤으며, 주자학의 대가로서 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다.
화양서원은 우암 송시열이 잠시 머물렀던 장소에 세워진 서원으로 조선시대 학자들이 많이 모였던 장소이다. 만동묘의 자리는 중국 명나라 황제인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던 곳이다. 만동묘 주변에는 송시열과 관련된 암서재, 하마비, 읍궁암, 송시열 무덤 및 신도비 외에 암서재 근처의 암벽에 ‘충효절의’·‘비례부동’이란 글을 새긴 곳이 많이 있다.
송시열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정신이 깃든 곳일 뿐 아니라 조선 성리학의 중심지로서, 한때는 일제에 의해 파괴되었던 곳이다. 민족 정기회복을 위한 교육 장소로서의 중요성이 인정되는 곳이다.
※괴산우암송시열유적 → 괴산 송시열 유적(2011.7.28 명칭변경 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