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지론
또 장자는 불가지론으로 인위적 지식을 배격하고자 하였다. 지식에 의한 절대적 가치판단을 극복하고 상대성의 세계에서 사실판단을 내리고 있다. “네가 꿈에 새가 되어 하늘에 이르기도 하고, 꿈에 물고기가 되어 연못 속으로 가라앉기도 한다.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도 깨어있는 것인지, 꿈꾸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처럼 ‘현실이 꿈인가, 꿈이 현실인가?’라는 식의 판별적 지식만으로는 독단의 가치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 장자의 견해이다. 그리하여 장자는 분별적 인식을 거부하면서 보다 확신을 가지고 가치판단 불가의 불가지론에 다가선다.
설결(齧缺)이 왕예(王倪)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모든 존재가 하나같이 옳다고 인정하는 것을 아십니까” 왕예가 대답했다. “내가 어찌 그것을 알겠나”, “선생님은 자신이 모르는 바를 아십니까?” “내가 어찌 그것을 알겠나” “그렇다면 모든 사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단 말씀입니까?” “내가 어찌 그것을 알겠나. 하지만 그것에 대해 일단 말은 해보자. 내가 알고 있다고 한 것이 실은 알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내가 모른다고 한 것이 실은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가치판단을 유도하는 제자의 질문에 장자는 한사코 모른다고 답한다. 심지어는 ‘알고 있는 것이 모르는 것이 아닌가’라는 회의론을 제기하며 불가지론의 핵심적 경지에 도달한다. 위의 언급처럼, 설사 지식인들이 보편타당한 인식이라 하더라도 장자에 있어서 불가지론적 견해는 보편타당한 지식을 설정할 수 없다고 한다. 그것은 인간이 상정한 시비판단의 인식론상의 한계 때문이다. 장자의 불가지론적 입장은 인간의 인식 능력의 한계로 인해 인간은 사물들에 보편타당한 지식을 가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이 보편타당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알고 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의 구별을 할 수 없으니 이 같은 불가지론적 틀에서 장자의 철학은 숨 쉬고 있다. 다시 말해 장자는 종종 부분으로 분할되지 않는 일자(一者)로서 존재의 세계를 이해하고, 인식론 상에서 피차·시비·선악·미추가 구별되지 않는 정체적(整體的) 사유를 피력하고 있다. 이것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아, 인간의 가치 이입을 허용하지 않고 사물의 객관성을 관조하는 사실적 판단으로 이끌어온 장자의 성향에서 기인된 것이다. 이처럼 장자가 말하는 불가지론은 일반 지식으로 구성되는 인식론을 거부하고 있다.
실제 장자의 독특한 인식 방법은 객관적 자연물 투영에 있어 그 상대성을 면하지 못하기 때문에 형성된다. 불가지론적 입장이 전개된 것도 이 때문이다. 불가지론은 시비의 절대적 가치판단보다는 상대성을 고려한 사실 인식에 바탕하고 있다. 장자에 있어 인간의 감관에 의해 나타나는 인식 주관은 그 상대성을 면치 못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호접몽은 장자가 꿈을 꾸는 것인지, 나비가 장자 꿈을 꾸었던 것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인간은 간교한 지식으로 장자가 꿈을 꾼다고 절대화해버린다. 장자는 이러한 절대 판단을 거부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장자는 불가지론적 접근 원인은 도가 꾸며지고 언어가 화려한 수식에 가려진 사실 때문이라 한다. 그는 이에 말한다. “도는 잔재주에 가려지고 말은 화려한 수식에 파묻힌다. 그러므로 유가와 묵가의 시비가 벌어져 상대가 나쁘다는 것을 좋다하고, 상대가 좋다고 하는 것을 나쁘다고 한다. 상대가 나쁘다는 것을 좋다, 상대가 좋다는 것을 나쁘다고 하려면 차라리 明(智)에 서는 것보다 못하다.” 이처럼 춘추전국 시대 제자백가의 백가쟁명에 환멸을 느낀 장자는 도에 진입하는 최후 수단으로 불가지론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요약 : 시비는 하는 주체에 따라 달라 절대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문제로 옳고 그름을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을 주장한다. 이는 피차·시비·선악·미추 등을 구별하지 않는 정체적(整體的) 사유론자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듯이, 시비에도 인간의 가치 이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물의 객관성을 관조하는 장자의 성향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