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반포했을 때 최만리를 비롯한 유생들은 반대를 했다고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자에 대한 지식이 곧 내 재산인데 글자를 못배운 평민들과 지식을 함께 나누어 가질 수는 없었겠지요. 그게 바로 선비들의 모순이겠지요.
훈민정음 사용을 적극 반대하는 학자들이 많아 세종대왕 이외에는 신상을 노출 시키기 어려웠을 것입이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단독으로 창제하였고 그를 위한 음운연구는 가족들에게 시켰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성삼문, 신숙주, 정인지, 신숙주, 박팽년 이분들 기록을 보면 결코 세종대왕 혼자서 창제한 것이 아님을 알 수있습니다. 세종대왕이 과제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세종대왕은 성격이 꼼꼼하여 주어진 과제를 준 후에는 일일이 모든 걸 챙겼다.. 예를 들어, 용비어천가도 세종이 확인 후 찬술을 허락하였고 고려사 개찬은 권제, 안지 등에게 시켰다가 그 결과를 확인한 후 권제는 파면당했고 안지와 남수문은 해임당했다. 고려사는 김종서에 의해 세종 사후에 완성된다.
한글 창제도 세종대왕의 의도가 없으면 안되었을 것이고 최종 결재도 세종이 내었을 것이다. 집현전 학자들은 세종의 명을 따랐고 동참을 한 것이라는 용어가 정확하다. 요즘시대로 보면 세종은 연구과제 책임자이고 신숙주, 성삼문, 등등 집현전 학사들은 연구과제 참여연구원이다.
당연히 우리의 미래를 바꾼 이들 참여연구원들의 공헌도 기억해야 한다. 연배로 봐서는 신숙주와 성삼문은 연구원, 정인지와 안지는 수석연구원 급.
신숙주 (1417-1475)
능통한 외국어로 훈민정음 창제에 기여하다. 신숙주는 3년 동안 세종의 뜻을 받들어 훈민정음 창제에 심혈을 기울였다. 최항(崔恒) · 박팽년(朴彭年) 그리고 성삼문 등과 함께 밤잠을 자지 않고 이 일에 매달렸다. 임금은 신숙주와 성삼문을 요동에 귀양 와 있는 중국의 음운학자 황찬(黃瓚)에게 보내 중국의 음운을 연구하게 했는데, 이때 이들은 시도때도 없이 요동길을 드나들었다.
마침내 1445년(세종 25) 훈민정음이 완성되었다. 그러자 한문으로 글을 지으며 행세를 하던 벼슬아치와 유학자들이 들고일어나 크게 반대했다.
“몽골 · 서하(西夏) · 여진 · 일본 · 서번(西蕃)과 같이 중국 문자를 버리고 새 문자를 만드는 것은 오랑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종은 이들의 어리석음을 타이르고 신숙주를 중심으로 한글을 활용하는 방안을 세우라고 했다. 신숙주는 《운회(韻會)》를 번역하고 이어 〈용비어천가〉 등 훈민정음을 사용한 글이나 번역을 도맡아 했다.
성삼문(1418-1456)
집현전의 가장 큰 업적은 훈민정음의 창제라 할 수 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만들기 위해 정음청(正音廳)을 설치하고 성삼문과 정인지, 신숙주, 최항 등에게 우리글을 연구하도록 명했다. 성삼문은 신숙주와 함께 여러 번 랴오둥을 방문하여 유배되어 있던 명나라 한림학사 황찬(黃瓚)을 만나 정확한 음운(音韻)을 배워 오고, 음운과 교장(敎場)의 제도를 연구해 와서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정인지 (1396~1478)
1428년(세종 10년) 12월, 그는 김효정과 함께 집현전 부제학에 제수되자 세종의 뜻을 받들어 신숙주, 성삼문, 정창손 등과 함께 《훈민정음》의 창제와 편찬에 참여했다. 《용비어천가》와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다
1445년(세종 27년) 4월 5일 권제, 이개, 박팽년 등과 함께 《용비어천가》 10권의 초고를 지어 바쳤다. 목조에서 태종에 이르는 6대의 사적을 직접 자료를 찾아 조사하여 이룬 결실이었다.
이를 일독한 세종은 집현전의 최항, 박팽년, 신숙주 등에게 명해 초고의 보완을 명했다. 그리하여 1447년(세종 29년) 3월에 이르러 국문과 한글이 섞여있는 《용비어천가》가 최종 완성되었다.
안지 (1384-1464)
안지는 세종 30년까지 오랜기간 집현전에서 세종임금을 옆에서 봉사한 학자이다. 세종대왕이 하시는 거의 모든 업무에 참여하였습니다. 신숙주나 성삼문보다는 한 세대 정도 연배가 많아 요동을 직접 오갈 직급은 아니었다. 요즘말로하면 집현전 수석연구원이라고 할까. 세자 문종의 스승으로서 같이 음운연구에 참여했을 것이다. 그리고 훈민정음 반포 전에 훈민정음을 사용하여 용비어천가를 권제, 정인지와 함께 저술하였습니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조선 세종 27년(1445) 편찬되어 세종 29년(1447)에 발간된 악장·서사시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 훈민정음을 시험하기 위해 권제, 정인지, 안지 등에게 맡겨 펴낸 책이다. 따라서 훈민정음으로 쓰인 현존하는 최초의 책이자 한글 반포 이전에 지은 유일한 한글 작품이다. 제목은 '용(임금)이 날아올라 하늘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조선 왕조 건국의 정당성을 선전하고 찬양하는 내용인데 한국어 가사 - 한문 번역가사 - 한문 주석으로 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