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촌역 평화 공원의 벚꽃들이 팡팡 터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꽃들이 차례를 지키지 않고 한꺼번에 피어버리네요. 이 꽃 보랴, 저 꽃 보랴 눈이 바쁜 봄날입니다.
옛날엔 벚꽃의 꽃말이 '중간고사'였는데... 다 옛말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3월에 벚꽃이라니... ㅉ
오늘도 소금빵과 사과와 커피와 함께 행복하고 여유로운 아침을 열었습니다. 장명희 샘, 백성예 샘, 이희자 샘, 저 4명이 함께 했습니다. 왠 남정네가 마지막으로 진행하는 '김미숙의 가정 음악'이 연주하는 멋진 왈츠에 맞춰 색을 들고 쿵짝짝, 쿵짱짝~~~ 한바탕 춤을 추었습니다. 물론 Szabo 샘의 안무에 맞춰 부담 없이 즐겁게...
오늘은 '목재에 비친 햇살'과 '거미줄'을 따라 그렸습니다. (위의 1,2번째 사진)
1. '목재에 비친 햇살'
목재의 나무결이 어머어마 하지요? 이걸 어떻게 따라 그려~~~ 그랬는데 그 결과에 모두 깜놀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목재 말고 바위나 보도블럭이나 나무껍질 등 모든 바탕의 무늬 위에 그림자를 그릴 수 있겠구나, 엄청 유용하겠다~~~ 감탄했습니다.
중요한 팁은 얼룩이 지는 물감(stainning)과 얼굴이 지지 않는 물감(unstainning)을 잘 활용하는 거랑 Szabo샘의 비장의 무기인 강모 사선붓입니다.
먼저 얼룩이 지는 어두운 물감(세피아가 적당한데 다른 색으로 만들어 써도 됩니다.)을 진하게 만들어서 마른 강모 사선붓(드라이 붓)으로 쭉 그려 나무 결을 표현하고 짙은 무늬는 사선붓으로 굵기를 조절하여 짙게 표현합니다. 다 그리고 나서 깨달은 점은 그림자 표현을 위해 지워내기를 하기 때문에 이 바탕 무늬는 좀 짙게 표현되어야 나중까지 잘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말린 후에 얼룩이 지지 않는 물감(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울트라마린 딥과 번트 시에나, 골드 오커 없으면 옐로 오커)을 적절히 섞거나 배치하여 전부 발라줍니다. 시행 착오 끝에 알게 된 점은 Szabo샘은 진하게 그리라고 하는데 너무 두텁고 진하면 나무결을 아예 다 덮어버려서 심폐소생술을 하느라 괜한 수고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진하지 않게 전체 칠해줍니다. 그 후에 젖은 붓으로 지워주고 휴지로 닦아내면서 햇빛이 비치는 부분을 표현하면 그림자가 남습니다. 이때 하드 엣지와 소프트 엣지를 잘 표현해야 합니다. 기둥과 가지는 하드엣지로 잎 부분은 소프트 엣지로...
이렇게 하고 나니 목재의 바탕에 은은하게 색이 배면서도 잘 벗겨져 의외로 빠르고 쉽게 폼나는 표현이 가능해졌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애란샘과 함께 연습했던 잘 벗겨지는 물감, 잘 벗겨지지 않는 물감의 활용도를 더욱 깊이 있게 알게 되었습니다. 물감의 세계는 참으로 무궁구진하군요.
그러고 보니 목재에 비친 햇빛은 그림자로 표현 가능하다는 점이 의미심장했습니다. 세상 이치가 다 그렇겠지요. ^ ^
2. '거미줄'
다음으로 '거미줄'에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했습니다.
Szabo샘의 색감이 좀 울적하면서 진중하잖아요. 그래서 국적을 봤더니 역시 '헝가리' 출신이더라구요. 이건 말도 안되는 편견일 수도 있겠는데 왠지 '헝가리 무곡'이랑, 좀 비슷한 데가 있는 거 같아요. '헝가리 광시곡'이랑도... 이번 그림에서도 오래 되고 낡은 목재 창고를 배경으로 하니 그 낡은 느낌을 내는 게 중요했습니다. 우리 모임엔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땡큐하면서 쓱쓱 힘 빼고 그렸습니다. 어스름한 배경 위에 예리한 칼 끝으로 거미줄과 맺힌 이슬, 그리고 젖은 붓과 휴지로 닦아내서 거미줄에 쌓인 먼지를 표현했습니다. 이슬을 표현하는 순간엔 칼끝을 튕겨 올리면 됩니다.
오늘은 쭉쭉 가로로 뻗는 선들이 많아서 그런지 마음이 참 평화롭고 차분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낡고 오래된 면과 공간에 깃들이 햇살도 어쩐지 더욱 감성을 자극했습니다. 마음껏 누추해질 수 있다니 얼마나 편안한지요. ^ ^
오늘 저희가 연습한 부분은 꼭 도전해 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3. 오늘은 금방 그릴 수 있어서 쉬는 시간에 여유 부리며 긴 수다가 이어졌습니다.
수채화는 흐릿하고 아련하고 연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던져졌습니다.
수채화의 종류도 다양한데다 저마다의 개성이 있는 것이니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이는 불투명 수채화도 그리더라. 특히 벨류 표현을 위해서는 초보 때부터 과감하게 짙고 연한 대조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덜어내는 건 그 뒤에 해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수채화의 소프트 엣지는 너무 매력적이라 경계를 침범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수채화가 매력적인 지점은 물의 특성 그 자체, 번짐을 통한 경계 없음에 있었다. 이걸 그리다 보면 나도 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기대감이 있었다. 재료와 매체의 특성을 닮아가지 않을까 하는...
드로잉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저마다 드로잉을 연습하는 과정을 스케치 북이나 저장된 사진으로 공유했습니다. 선을 주로 하는 드로잉이 수채와와 어떻게 연관될까 하는 저마다의 경험담을 나눴습니다. 구도와 색채가 중요한 수채화지만 선이 주는 정서와 기운은 분명 대단합니다. Szabo샘이나 애란샘의 나무를 보면 가지가 그려내는 선이 확실히 다릅니다. 선이 감성을 건드리는 신비는 정말이지.... 한 줄 찍-------- 이게 뭐길래 이 선의 움직임에 따라 심장이 반응하는 걸까요? 그리고 드로잉을 연습하면 사물의 세부를 보는 눈이 생기고 빛에 민감해집니다. 특히 한붓 그리기를 할 때면 수채화도 역시 몸으로, 기운으로 그리는 거로구나 실감하게 되면서 흥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열심히 체력단련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 필라테스 이야기, 잘 먹자, 뭐 먹을까 이야기로 흘러갔습니다. 그래서 결국 오늘은 잘 먹기 위해서, 아니 그림을 기운차게 그리기 위해서 '울릉도 횟집'에서 바닷의 기운을 영접했습니다.
아... 청소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네요. 오늘은 스터디가 끝나고 청소기를 돌렸습니다. 많은 이들이 다녀가다 보니 모르는 사이에 먼지가 많이 쌓였더라구요. 청소가 뭐라고 청소기만 돌려도 공간이 환해지는 건 또 왠 신비... ㅎㅎ
활동이 끝나고 잠시 바닥을 보아주세요. 먼지가 보이면 청소기 돌리고 퇴장하는 센스~~~~
아차, 다음에는 98쪽~101쪽 '나무껍질' 연습부터 '나무를 느낀대로 표현하기' 까지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오늘 목재 표현을 쭉 이어가 보기로...
오늘 같이 생명이 약동하는 날, 한 시절 제 뇌리에 꽂혔던 글 귀 인용하면서 이만 총총.
"이론은 모두 잿빛이며, 영원한 생명의 나무는 푸르다."
- 괴테<파우스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