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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는 엄마 등에서 행복했다
김 사 빈
내 친구 나미꼬는 일본에서 살다가 해방이 되어 한국으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나미꼬는 까만 단발머리에 단정한 용모에 조용조용한 말하는 것을 보면 천사 같다고 느낀다. 나는 나미꼬에게 함부로 말을 못 한다. 흔히 쓰는 계집애 소리 한번 못하였다. 나미꼬의 커다란 눈 속에 까만 눈동자만 보면 괜히 슬퍼지고, 쓸쓸하여 내 것을 전부 다 주고 싶어진다.
우리 집에서 동네까지 가려면 한참 걸리고, 나미꼬네 집은 동네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나미꼬네 집은 우리 동네에서 가장 좋은 집이다. 특히 높다란 뜰 방이 다른 집과 다른 것을 느끼게 한다. 뜰방 위에서 내려다보는 마당은 위엄이 있다. 사람들은 나미꼬 엄마가 뜰 방에서 서 있는 얼굴만 보면 은 엄숙 해 진다고 한다. 엄마는 별로 말이 없는데, 한번 그 눈과 마주치면 위압을 느끼어 말을 더듬게 된다. 나도 나미꼬 엄마만 보면 괜히 주눅이 들어 웃고 떠들다가도 입을 다물게 되고, 슬그머니 꼬리를 감춘다.
그래도 우리는 즐거웠다, 나미꼬 집 뒤로는 작은 뫼가 있다. 우리는 학교가 끝나면 그 뫼에 올라가서 각시 풀을 뜯어서 꽃 대궐 만들고, 클로버 잎을 따서 머리띠를 만들어, 머리에 달고, 목에다 걸고, 가락지도 만들고, 팔지도 만들어서 놀았다.
내 동생은 왜 그리 날 따라다니기를 좋아하는지, 안 데리고 가면 동생이 "엄마" 하면 무슨 말을 할지 알기 때문에 아무 소리 안 하고 손목을 잡아낚아 채어 데리고 다닌다,
내 동생은 놀이할 때는 공주만 항상 하려고 든다. 그게 보기 싫어 소꿉놀이할 때는 언제나 동생은 식모 언니 시킨다. 밥하라고 하면, 사금파리 위에서 진흙을 개어 놓고 밥 만들고. 나는 아빠고 나미꼬는 언제고 엄마였다.
여름에는 셋이서 뒷동산에 올라가서 개암을 따서 먹고, 더 나가면 뽕나무 밑에 나가서 오돌갱이를 따먹어 입술이 빨개 가지고 다녔다. 그렇게 한여름을 지내고 있었다.
나미꼬 오빠가 가끔씩 집에 울적엔 근사한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나타나면 나미꼬 엄마는 치마에 바람이 일고 있었다.
새언니가 있는데 같이 안 오고 오빠 혼자 올 때가 더 많다. 나도 나미꼬 오빠를 보면 덩달아 즐겁다. 나는 오빠가 없어서 나미꼬 오빠를 내가 더 좋아했다. 오빠가 빙긋이 웃으면 하얀 이가 여간 예뻐 보이는 것이 아니다. 나미꼬 오빠는 나미꼬와 나를 데리고 강가에 데리고 가서 가재도 잡아 주고, 피라미를 잡아 주기도 한다.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놀아 준다.
나미꼬 엄마가 피곤한 오빠를 왜 귀찮게 구느냐 하고 야단치시지만 우리는 아랑곳없다. 오빠는 어디 경찰이라고 한다. 나도 이담에 크면 경찰한테 시집을 가야지 하고 마음속으로 다짐하였다.
오빠는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것 같다. 화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조용조용하게 말을 하는데 그 목소리는 나미꼬 엄마 목소리와 똑같다.
그해 겨울 나미꼬 오빠가 언니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오빠의 데리고 온 언니의 배가 남산만 하여 가지고 힘들게 걸어서 집으로 왔고, 오빠는 혼자서 금방 갔다. 언니는 천사 같았다. 하얀 얼굴은 시골 사람 같지 않았다. 서울 부잣집 딸인가 옷 입은 것도 고급이다. 엄마는 언니가 오니까 절절매고 있다.
"애야 어떡하니 이런 시골에서 애를 낳게 되어서."
.병원도 없는데 말했다. 나도 생각하니 서울에서 아기를 낳지 시골에서 낳으려고 하나 싶었다.
그러나 조금 있으면 아기를 볼 생각을 하니 저절로 신이 난다. 나는 나미꼬가 부러웠다. 나도 저런 언니가 있으면, 나도 오빠가 있으면, 하고 얼마나 부러워하였는지 모른다. 나는 하나 있는 동생은 욕심쟁이라서 내 옷을 동생이 먼저 입어보고 내게 주어 가끔가다 동생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아니지 누구랑 놀아, 잘못한 것이 생각이 나 아니야 한다.
그해 겨울 가장 추운 날 나미꼬 언니는 아기를 낳았다고 나미꼬가 달려왔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집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들어오지 말라 하여 문 앞에서 서서 기다리다가 그냥 오고 나니 심통이 나서 괜히 동생에게
"너는 내 물건을 왜 손대니" 하고 꿀밤을 하나 주니,
"언니 왜 때려" 하고
"엄마" 소리 지르려고 한다.
"그래 내가 잘못했어, 일러바치면 나미꼬 언니 아기 보러 가는데 안 데리고 간다." 엄포를 하니 그냥 넘어갔다. 일요일이 세 번 지나고, 나미꼬가 엄마가 인제 아기 보아도 된다고 하여 손을 씻고 들어갔다. 아기는 쌕쌕 잠들어 있고, 눈을 감고 자는 아이는 꿈을 꾸는지 웃고 있었다. 아기와 새언니는 그해 겨울은 나미꼬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아기가 보고 싶어, 날마다 나미꼬야 하며 찾아가, 아기방으로 들어가서 아기와 같이 놀았다.
봄은 빨리 왔다. 이른 봄에 피던 개나리가 노란 얼굴을 하고 물이 오른 것을 꺾어다 아기가 자는 머리맡에 꽂아 주었다. 아가는 아는지 모르는지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4월이 되면서 아가는 얼굴을 밖을 내어 볼 수가 있었다. 앞산에 진달래가 아기 얼굴처럼 붉게 물이 들어 우리들은 진달래를 따 먹느라고 해가 지는 줄 모르게 다녔다. 아기도 나미꼬 집에서 봄을 지나니, 새언니와 아기는 아빠에게로 가고, 아기가 누운 자리는 봄바람만 간혹 왔다가 방 문풍지를 흔들어 놓고 지나갔다.
나미꼬 엄마는 아기가 보고 싶은지, 먼 산을 바라보기가 일쑤였다. 그런대로 여름이 와서 들로 산으로 다니면서 더덕도 캐고 퍼런 깨암도 따다가 먹고, 산딸기 막 익어 갈 무렵 동네에서 난리가 났다.
우리 집에는 군인들이 많이 모여들어 와서 우리 집과 옆집 김 선생님 집이 군인들 사무실이 되고 우리 식구는 한방에 모여 자야 하였다.
엄마는 쉬쉬하면서 인민군이라고 하는데 인민군이 무엇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나라가 바뀌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바꾸어 졌는지 모른다. 아버지 학교는 문을 닫고 동네 사람들은 어디론지 가버리고 없다. 나미꼬 오빠는 경찰이라서 벌써 집을 떠나 소식이 없다고 한다. 나미꼬 언니는 어린아이를 업고 먼 데를 못 간다고 구천동으로 돌아왔다. 아기를 업고 온 나미고 언니는 사색이 되어 방안에만 갇혀 있었다.
그런 것 나는 모르지만, 인민군이 경찰과 군인 가족은 다 죽인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인데 피난을 안 갔다. 아무도 아버지더러 피난 가라고 하지 않았고, 인민군도 아버지를 보아도 선생 동무 잘 있으시기요, 하며 농담을 하며 집에 들렀다 간다.
아버지 학교에 하 선생님은 육이오 되니 그는 빨갱이가 되었다 한다. 그 하 선생님이 완장을 차고 우리 집에 와서
"교장 선생님 걱정 마시오"
"다 잘될 것입니다."
"곧 좋은 세상이 올 것입니다." 하였다.
나는 무엇이 좋은 세상인지 알지 못하지만 싸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싸우는 것은 싫었다. 죽는 것이 싫었다. 나미꼬 언니가 7월도 무사히 지나고 8월에 들어서서 인민군은 자꾸만 나미꼬 오빠를 찾아왔다. 나미꼬 엄마는 벌벌 떨면서
"우리 집에 한 번도 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손을 싹싹 빌지만 그 다음 날 다시 오고, 매일처럼 찾아오더니, 어느 날은 신작로에 인민군 병사들의 긴 행렬이 줄을 잇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거기에는 열세 살 먹은 남자아이도 끼어 있고 발은 퉁퉁 부어서 광목으로 칭칭 감고 우리 집 마루에 쪼그리고 자는 것을 볼 때, 나는 그 소년이 불쌍했다. 나중에 가만히 강냉이를 몰래 가져다주고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 아이는 옆을 두리번거리더니 얼른 받아서 들고 "“병수라고 해" 옥수수를 우물우물 먹으면서, 얼굴을 땅에 푹 박고서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다.
"너희들 지금 어디로 가는데"
"고향으로 가는 길이야."
"그러면 왜 우니 곧 집에 갈 텐데"
"그러게 말이야"하고 울먹이면서 말한다. 그다음 날 병수는 인민군과 같이 칭칭 감은 발을 절뚝거리면서 따라가면서
“수진아 잘 있어." 하며 손을 흔들고 갔다.
인민군은 누런 군복을 입고, 힘없이 신작로를 따라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행렬은 끊어지지 않고 가는데 불쌍하게 보였다. 가끔가다 비행기는 하늘에서 씽씽 지나갔다. 무슨 일이 나기는 날 것 같았다. 우리 집에 있던 인민군들도 우리에게 어디로 간다는 말이 없이 떠났다. 그전에는
"야 수진아 이리와"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니, 8월 들어 방에 근처도 못 오게 하였다. 열심히 전화를 걸어 대더니 화를 자주 내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건넛방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언니 동생 다섯 식구가 한방인데, 밤이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고, 우리 셋은 방에서 자고, 안방과 가운데 방은 그들이 사무실로 쓰기 때문에 집에 있기 싫어 나미꼬 집에서 한여름을 지나면서 아기를 주로 내가 보아주었다.
밖에서 망보는 일은 나미꼬가 하고 나는 아이 보아주었다. 그해 여름 행복하였다. 나만 보면 아기는 샐 샐 웃으면서 기어서 무릎에 기어서 올라온다. 아기가 참 예쁘다.
그런데 나미꼬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지금까지 잘 숨어있던 언니가 아기가 울어서 인민군에게 들켰다 한다.
그 예쁜 아기와 엄마가 어제저녁에 갑자기 찾아온 인민군에게 조사할 것이 있으니 아기를 업고 따라오라고 하며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고 나미꼬는 울면서 달려왔다.
"우리 새언니 인민군이 잡아갔어“ ”아기는 “ ”언니가 아기를 업고 나갔어."
어디로 데리고 갔는지 모른다고 한다. 가슴이 꽉 메어 온다. 나미꼬와 나는 기도를 하였다.
"새언니와 아기 돌아오게 해 주세요." 날마다 기도하였다. 어디다 대고 할지 모른다. 눈을 감고 기도하였다. 나미꼬 엄마는 죽일 놈들 하시면서 방에 드러누워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미꼬가 미움을 만들어 엄마에게 갖다 드리지만 안 잡수신다. 나미꼬 언니와 아기는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언니의 등에 업히어 나간 아이와 언니는 소식이 끊어진 지 보름 되는 날, 나미꼬 오빠는 군인들 틈에 집에 들렀다.
"애비야 아기와 에미는 그놈들이 끌고 갔다" 하고 통곡을 하였다. 나미꼬도 나도 같이 울었다. 오빠가 일찍 와서 데려갔으면 인민군이 안 데리고 갔을 것인데 하고 집안에는 통곡 소리가 나미꼬 집을 에워 싸여있었다. 그 슬픔은 가실 줄을 몰랐다. 나미꼬 오빠는 그놈들이 그냥 끌고 가지는 못하였을 것이라고 하며 눈이 벌겋게 되어서 찾아본다고 나갔다. 나미꼬 엄마도
"애비야 나도 같이 가자" 하며 따라나섰다. 죽은 듯이 누워 있던 엄마는 기운이 어디서 났는지 부리나케 오빠를 따라나섰다. 그리고 사흘이 지났다. 나는 나미꼬 집에서 같이 잤다. 무서워서 밖을 못 나갈 것 같다. 귀신이 나올 것 같아 우리는 변소 갈 적에, 밖에서 망을 보고 들어갔다. 얼마나 무서운지, 오금이 저리다. 별빛은 등으로 쏟아지고, 달빛도 앞에 서서 길을 안내하여 주는데도 귀신이 보자기 쓰고 나타날 것 같았다. 사흘 지나서 오빠와 엄마는 돌아왔는데, 두 사람의 얼굴은 죽은 사람 같았다.
"엄마 오빠 언니 찾았어. 아기는" 하고 나미꼬가 물어보니 둘 다 허공만 쳐다보고 아무 말이 없었다. 말소리가 안 들리는 것 같았다. 더욱 집안은 어둠이 꽉 차고 슬픔이 스물스물 기어 나와서 온 가족을 꽁꽁 묶어 두는 것이다.
나중에 들은 말은 언니가 아기를 업고 있는 채로 엄마 등에서 죽어있더라는 말을 나미꼬가 말하여 주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에는 하얀 구름 뭉게뭉게 피어나고, 산 위에서 여전히 산새 울음이 흐르고 있었다.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와 이마에 덮인 머리카락을 날리고 있었다. 갑자기 병수가 생각이 났다. 병수는 고향에 잘 갔는지, 아기와 나미꼬 언니는 하늘에 갔다는데 저 많은 별 속에 어디에 있을까,
저렇게 하늘이 청정하니 오늘 밤에는 별이 더 많이 쏟아지겠지. 아기와 나미꼬 새언니는 별빛이 쏟아지는 밤에 더러 별빛을 타고 내려와 집에 왔다 갈까, 별을 쳐다보니 별빛은 아가의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다, 아가는 엄마 등에서 행복했다.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