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자(Adoption)
예전 유명 TV 연예프로그램에서 '책, 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당시 전 국민들의 독서열풍을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도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라는 책을 사서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로 부석사 무량수전하면 늘 친근한 느낌을 가지고 있고 몇 번 찾아가보기도 했습니다. 단청을 하지 않은 무량수전의 수수함이 참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 가운데 성경적이지 않은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워낙 관행적으로 오랫동안 사용하여 오던 표현이라서 입에서 먼저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 말, 말, 말을 바꿉시다 >>>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
네번째 표현으로...
[양자(Adoption)]이라는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친 아들이지만, 우리들은 양자다. 맞는 말일까요? 혹시 이 부분에 대하여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친자냐? 양자냐? 그것이 문제로다...
성경에서는 우리들을 부르는 호칭들이 많이 있습니다.
1. 제자, 이는 예수님께서는 스승이요, 우리들은 그분을 따르는 사람, 곧 제자들이라는 것입니다.
2. 성도,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거룩히 구별하여 자신의 백성 삼으셨다는 의미로 곧 그분의 백성이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3. 그리스도인, 이는 사도행전에서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란 의미로 불리게 된 호칭입니다.
4. 형제, 이는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서로서로 형제라고 부릅니다.
5. 군사, 이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모집된 자들이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가운데 어떤 호칭으로 불리기를 가장 원하십니까? 물론 다 맞고 또 다 불리워져야 할 호칭들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운데 우리들의 근본 본질을 가장 잘 나타내는 호칭은 따질것도 없이 '형제'일 것입니다.
형제라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데에서 기인한 용어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녀는 자녀인데, 하나님의 친자인가, 아니면 양자인가 하는 부분에 대하여 혼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별로 고민해보지 않으셨다구요? 둘 다 아닌가요? 과연 그럴까요?
친자는 아버지가 직접 낳은(beget) 자녀를 말합니다.
반면 양자는 아버지가 직접 낳은 것은 아니고(not beget), 누군가가 낳은 자를 법적인 아들로 입양(입적)한 자녀를 말합니다.
이래도 친자와 양자, 둘이 같은 것인가요?
참고로 자녀를 '낳다'는 영어단어는 bear와 beget, 두 단어가 있는데 어머니가 자녀를 낳을 때 bear를 사용한다면 아버지가 자녀를 낳을 때 beget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에게서 유일하게 나신(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요 1:14) '독생자(the only begotten Son)'(요 1:18)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기록은 무엇이라고 증거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children or sons)'라고 증거하는 말씀들을 찾아보았습니다.
누가복음 20:34~36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the children of God)임이라"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the sons of God)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52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the children of God)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로마서 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the children of God)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로마서 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the children of God)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요한일서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the sons of God)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요한일서 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the sons of God)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의 의미가 친자인지 양자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럼 '양자(adoption)'라는 단어가 사용된 성경기록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로마서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the Spirit of adoption)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로마서 8: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the adoption)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갈라디아서 4: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the adoption of sons)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the adoption of children)이 되게 하셨으니"
법적으로는 '친자'든 '양자'든 누리게 되는 혜택은 동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성경기록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도 하고, 또 '양자'라고도 합니다.
문제는 시점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제가 분별하기로는 지금 현재, 우리는 친자(하나님의 친 자녀들)입니다.
그 근거로는 사도 베드로의 서신을 증거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베드로전서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1Peter 1:3 "Blessed be the God and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which according to his abundant mercy hath begotten us again unto a lively hope by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from the dead,"
이 본문 말씀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낳으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주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데, 영어성경을 보면 아주 분명하게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다시 낳으셨다는 것입니다.
‘거듭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씀이 있으시죠? 바로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께서 한 밤중에 찾아온 유대인의 관리이자 바리새인이었던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John 3:3 "Jesus answered and said unto him, Verily, verily, I say unto thee, Except a man be born again, he cannot see the kingdom of God."
요한복음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John 3:5 "Jesus answered, Verily, verily, I say unto thee, Except a man be born of water and of the Spirit, he cannot enter into the kingdom of God."
베드로전서 ---- have begotten again(거듭남, 다시 태어남): 헬라어 ἀναγεννάω(아나겐나오)
요한복음 ---- be born again(거듭남, 다시 태어남): 헬라어 γεννάω(겐나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으뜸인 두 제자 베드로와 요한이 나란히 다시 태어남에 대하여 기록하였다는 것은 참 의미심장한 것 같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아버지께서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셨다고 기록하였고, 사도 요한은 성령님에게서 우리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기록하였다는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초대교회의 두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동시에 강조한 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는 이 중요한 사실, 진리를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입양(양자삼으심)되었다고 증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양자삼으심(입양)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양자삼으심', 곧 '입양'은 사도 바울만이 사용한 용어인데, 이 말이 과연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사용한 '거듭남(다시 태어남)'과 같은 의미로 사용한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양자삼으심(입양)’이라는 단어가 쓰인 곳, 바로 로마서 8:15에서는 '우리가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로마서 8:23에서는 '양자될 것', 즉 '입양'은 곧 '몸의 속량(구속)'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거듭남이 아닙니다. 지금 현재,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았을 뿐, 양자가 된 것은 아닌 것입니다. 제가 시점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양자삼으심(입양)'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υἱοθεσία(휘오데시아)인데 이는 친자가 아닌 아들로의 입양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사도 바울이 양자삼으심(입양)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그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남을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갈라디아서 4:5에서는 '아들의 명분'이라고 한글성경이 번역하였습니다만, 로마서에서의 양자와 동일한 단어(υἱοθεσία)입니다. 즉 양자삼으심을 받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를 율법 아래에서 속량(구속)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마지막으로 ‘양자삼으심(입양)’이란 단어를 사용한 에베소서 1:5에서도 한글성경은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라고 번역하였지만, 헬라어 원어를 보면 역시 동일한 단어 아들로의 입양(υἱοθεσία, 양자삼으심)입니다. 즉, 에베소서 1:3부터 본문의 문액을 따져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미리 정하셨는데, 자녀로의 입양( the adoption of children)을 미리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창세 전에 선택(chosen)하시고, 미리 정하신(predestinate) '자녀로의 입양'은 언제 이루어지는가가 중요하겠지요. 그것은 바로 로마서 8:23에서 밝히 증거하고 있듯이, 우리 몸의 속량(구속)이 이루어질 때 입양 절차가 완료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υἱοθεσία(휘오데시아, 양자삼으심, 입양)이라는 단어를 선택하여 사용하였을 때에는 마지막 때, 우리들의 몸이 부활할 때, 즉 우리 몸이 속량(구속)을 받는 그 때를 하나님의 자녀들로 입양되는 것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는 이 땅에서 우리가 거듭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고, 또 그렇게 구분지어 이해해야할 진리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살다가 마지막 부활의 날에 우리 몸의 속량(구속), 곧 양자삼으심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누구입니까? 지금 현재시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친자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양자가 아닙니다. 양자가 될 것이 정해진 것은 맞지만, 아직 미래에 양자 될 절차가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 때를 소망합니다. 그 때는 바로 주님 다시 오실 날입니다.
첫댓글 에베소서 1:5과 갈라디아서 4:5를 볼 때 우리가 거듭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동시에 아들로서 입양 절차를 마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들의 지위와 특권을 갖게 되며, 몸의 구속이 칭의의 완성(영화)이듯이, 몸의 구속 때 양자됨이 완성되는 것으로 보아야 되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헬라어 원어를 보면 롬 8:15, 23, 갈 4:5, 엡 1:5이 모두 입양(양자삼으심, adoption)를 의미하는 단어인 υἱοθεσία가 쓰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사도 바울의 표현이고, 거듭남과는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는 표현이라고 봐야 한다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입양(양자삼으심)과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말한 거듭남(중생, 위로부터남)은 다른 것입니다. 즉 몸과 영의 신분상 변화를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