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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부갓네살의 꿈과 다니엘의 해몽(2:31~49)
1. 느부갓네살이 꾼 꿈(2:31~35)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를 통해 자기가 본 꿈의 내용에 대해 말했다. 이는 단순한 사실 묘사나 설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속사에 연관된 중요한 선언적 의미를 지닌다.
다니엘의 환상 가운데 보인 것은 거대한 신상이었다. 그 신상은 크고 찬란한 광채가 났으며 그 모양은 보기에 무시무시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거대한 신상은 부위에 따라 서로 성질이 다른 재료들로 만들어져 있었다.
신상의 머리 부분은 순금으로 되어 있었으며 가슴과 두 팔은 은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배와 허벅지는 놋이었으며 무릎 아래 종아리는 철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발의 일부는 철이었으며 다른 일부는 진흙으로 제작되었다. 철과 진흙은 성질이 전혀 다른 재료로 결코 서로 섞일 수 없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 신상은 각기 다른 성질의 재료가 사용되어 머리에서부터 발까지 크게 보아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겉보기에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완전히 잊어버리기는 했으나 맨 처음 꿈속에서 그 거대한 신상을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던 느부갓네살은 그것이 필경 중요한 징조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 여기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무거운 부담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을 때 ‘손대지 아니한 돌’이 갑자기 나와서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신상의 발을 쳤다. 철과 진흙으로 제작된 발이 그 돌에 의해 타격을 받게 되자 그 신상 전체가 일순간에 부서지게 되었다.
철로 제작된 종아리와 놋으로 된 배와 허벅지, 은으로 된 가슴과 두 팔, 그리고 순금으로 만들어진 머리를 가진 거대한 신상이 마치 타작마당의 겨가 바람에 날려가듯 완전히 파괴되어 사라져버렸다. 대신 단번에 그 신상을 쳐부숴 버린 그 ‘손대지 아니한 돌’은 엄청난 규모의 태산을 이루어 전 세계에 가득 차게 되었다.
2. 다니엘의 해몽
(1) 네 왕국의 등장(2:36~43)
느부갓네살 왕에게 꿈의 내용을 알려준 다니엘은 뒤이어 그에 대한 해몽을 했다. 그는 신상 가운데 순금으로 된 머리를 바벨론 제국의 통치자인 느부갓네살 왕이라고 말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을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왕들 가운데 가장 높은 왕이라 표현했다.
다니엘은 또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왕에게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주셨음을 언급했다(37절).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나라 안의 인간들과 동물들과 조류를 비롯한 모든 것들을 통치하고 다스리도록 하셨음을 말했다(38절). 그런 느부갓네살 왕이 거대한 신상의 순금으로 된 머리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느부갓네살 이후에 여러 왕국들이 차례로 등장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바벨론 제국 다음에는 큰 신상 가운데 은으로 제작된 가슴과 팔로 묘사된 그보다 못한 나라가 일어날 것이다. 그다음에는 놋으로 만들어진 배와 허벅지로 상징되는 세 번째 나라가 일어나 세계를 다스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왕국을 정복하고 일어나는 발과 발가락이 철과 진흙으로 제작된 네 번째 나라는 매우 강력해서 모든 것들을 부서뜨리고 이기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 네 번째 나라를 상징하는 발과 발가락에 철과 진흙이 뒤섞여 있는 것은 그 나라가 철의 강인함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취약한 부분이 있음을 말해준다. 즉 그 발가락의 일부는 철이고 일부는 진흙인 것은 그 나라의 일부는 강력하지만, 일부는 부서질 만큼 취약하다는 것이다. 또한 느부갓네살이 꿈에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본 것은 그 나라에 속한 백성들이 다른 인종과 서로 뒤섞여 살게 되지만 피차 연합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했다.
다수의 신학자들은 금 머리를 상징하는 첫 번째 나라인 느부갓네살의 바벨론 제국을 뒤이어 두 번째 등장하는 나라는 은으로 된 가슴과 팔로 상징되는 메대(M edia)와 페르시아(Persia) 제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놋으로 제작된 세 번째 나라를 메대와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고 세계를 제패한 헬라(Greece) 제국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네 번째 왕국은 헬라 제국을 정복하고 강철같이 강대한 나라를 세우게 되는 로마 제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2) 인간들이 세우지 않은 영원한 왕국의 등장에 대한 예언(2:44,45)
느부갓네살의 꿈을 통해 다니엘이 언급하고 있는 나라들은 하나같이 세계적인 대제국들이다. 그 나라들은 결코 패망하지 않고 영원토록 세력을 펼칠 수 있을 듯이 천하를 호령하던 막강한 나라들이었다. 그러나 인간들이 세운 그런 나라들은 결코 영원할 수 없으며 반드시 종말의 때를 맞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세상의 왕국들이 마치 영원할 것처럼 생각하거나, 또는 낙관주의자들이 얘기하듯 역사가 계속 발전하여 결국 이 세상이 낙원과 같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믿고 행동하는 자들이 있다면 지극히 어리석은 인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히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금에서 은으로, 은에서 놋으로, 놋에서 철로 그 가치가 점점 떨어지는 역사이다. 사람의 눈에는 막강한 힘을 가진 철이 세상의 발전으로 보일지 모르나, 그러나 그 철은 진흙과 섞인 매우 불안한 나라이다. 철은 강하지만, 그러나 그 강함이 하나님과 유리되어 사용될 때는 결국 멸망의 길로 치닫는 것이며, 철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지만 사상누각처럼 진흙 위에 세워진 철은 영원할 수 없는 것이다.
느부갓네살 왕은 꿈에 본 신상에서 금 머리에 해당되는 자였다. 그에게 하나님은 사람과 들짐승과 새들이 살고 있는 이 땅에 대한 통치권을 맡기셨다. 느부갓네살의 권세와 능력과 영광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에 의해 통치되던 나라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통치권을 가지고 이 세상을 좀 더 사람이 살만한 세상,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잘 수행하고 지키는 세상으로 만들어야 했으나, 하나님을 떠나 무력과 힘을 우선하는 질 낮은 나라를 후대에 물려 주었다. 그 이후로 세상은 점점 더 질이 떨어져 나중에는 힘만이 난무하는 질 낮은 철의 나라가 되었던 것이다. 결국 느부갓네살에게 주어진 나라는 하나님에 의해 멸망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도 종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숙고해야 한다. 결국 우리도 이 세상 종말 때 멸망할 나라를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영원히 지속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 가고 있는가? 우리에게 심각한 질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의 질서를 지키며, 그 창조의 세계를 잘 보존하며 지키고 있는가? 아니면 이 세상이 우리 것인 양 마음대로 하고 있지는 않은가? 주인 되신 하나님께 물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며 살기를 원하시는데, 우리는 폭력이 난무하고 힘 있고 권력 있는 자가 마음대로 주무르는 질 낮은 철과 같은 나라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나라는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다.
다니엘은 특별히 네 번째 등장하게 되는 막강한 세계적인 왕국이 통치하는 시기에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직접 ‘한 나라’를 세우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나라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나라이며 어떤 인간들과 백성이라 할지라도 그 나라의 국권을 장악할 수 없음을 말했다. 그 나라는 도리어 인간들이 세운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쳐서 멸망시키게 되리라고 예언했다.
“이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실 터인데, 그 나라는 영원히 망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백성에게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 나라가 도리어 다른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입니다.”(단2:44, 표준새번역)
느부갓네살 왕은 꿈속에서 사람이 손대지 않은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으로 된 거대한 신상을 부서뜨리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것은 느부갓네살에게 장래에 일어날 세상의 막강한 세력을 지닌 왕국들과 하나님께서 세우실 영원한 왕국에 관해 알려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강력한 메시지였다. 따라서 그 새로운 왕국은 앞으로 반드시 설립될 것이며 세계적인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나라로 세워지게 될 것이다.
느부갓네살이 본 꿈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사람이 손대지 않은 돌’이다. 그것은 다니엘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소망인 돌, 곧 메시야를 상징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의 꿈과 다니엘의 해몽을 통해 앞으로 전개될 역사적인 과정들과 더불어 인간의 몸을 입고 임하시게 될 메시야의 역할과 그의 궁극적인 사역을 보여주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놀라운 사실을 미리 알려주신 것은 누구를 위해서였는가? 느부갓네살 왕을 위해서였는가? 아니면 바벨론 제국과 그 이후에 따라오게 될 세계적인 여러 대제국들로 하여금 미리 그 사실을 알고 잘 대처하도록 기회를 주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에게 그 꿈을 보여주신 후 다니엘을 통해 다시금 보여주고 해몽하도록 한 것은 언약의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바벨론 제국에 의해 패망의 길을 향해 달음질치고 있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실의에 빠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의 땅으로부터 쫓겨나 부정한 이방인의 포로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뼈아픈 고통이었다. BC 586년 바벨론 제국의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된 후에는 더욱 깊은 좌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외형적으로 볼 때 엄청난 비극적인 형편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느부갓네살이 그런 꿈을 꾼 후 이스라엘 민족의 기대주로 인식되던 선지자 다니엘에 의해 그의 꿈이 해몽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커다란 희망이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그 꿈을 꾸게 하셨던 것은 메시야와 그의 왕국을 기다리는 언약의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다.
느부갓네살의 꿈과 다니엘의 해몽은 그 당시 바벨론 지역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언약의 자녀들뿐 아니라 가나안 본토에 남아 있던 백성들에게도 커다란 희망이 되었다. 그리고 나중 메대와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를 받던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헬라 제국의 압제 아래 있던 언약의 백성들에게도 커다란 희망의 기능을 했다. 또한 로마 제국의 압제와 고통 가운데 힘겹게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그것을 통해 메시야와 그의 왕국을 간절히 기다릴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느부갓네살 왕의 꿈과 다니엘의 해몽이 ‘메시야 대망 사상’을 가지게 함에 있어 문자적으로 기록된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역사적인 다윗 왕국이 멸망한 후 나라를 잃고 왕이 없는 상태에서 새롭게 완벽한 왕이 와서 저들을 다스리며 통치하는 시대를 기다리게 되었다. 즉 그들은 거대한 신상을 파괴한 ‘돌’인 메시야가 도래해 완벽한 메시야 왕국을 건설하기를 학수고대했던 것이다.
3. 다니엘의 해몽에 대한 느부갓네살 왕의 반응(2:46~49)
다니엘의 꿈 해몽을 들은 느부갓네살의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예언은 이미 실현되기 시작했다. 당시 세계적인 대제국의 왕인 느부갓네살이 피지배국 출신의 신하에게 엎드려 절을 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는 다니엘 앞에 무릎을 꿇고 그 앞에 경배하는 자세를 취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꿈 해몽을 듣고 나서 다니엘에게 값비싼 예물까지 바쳤다.
“느부갓네살 왕이 엎드려서 다니엘에게 절하고,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주도록 명령을 내렸다.”(단2:46, 표준새번역)
대제국의 절대적인 권력을 지니고 있던 왕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에게 엎드려 절을 했다는 것은 바벨론 제국이 이스라엘 왕국 앞에 무릎을 꿇는 것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더욱이 바벨론 제국은 그 이후에 잇달아 등장하게 될 막강한 나라들과 왕국들을 대표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세속 국가에 대한 이스라엘 왕국의 지위를 예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니엘에게 예물과 향품을 준 것은 저들의 지위가 완전히 뒤바뀐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물론 느부갓네살이 그렇게 했던 까닭은 자신에게 꿈을 꾸게 하고 그에 대한 해몽을 한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때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을 모든 신들의 신으로 언급하면서 세상의 모든 왕들을 주재하는 존재임을 말했지만(47절), 그것은 순수한 신앙고백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자신의 꿈을 다니엘이 알게 하고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신상을 통해 자기가 연관된 미래의 상황에 대한 해몽이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는 점에 대해 일종의 두려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느부갓네살 왕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진정한 신앙인이 되었던 것으로 볼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신앙의 자리로 불러오시기 위해 그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한 것이 아니라 희망을 잃고 고통 중에 있는 자기 자녀들을 위해 그가 꿈을 꾸게 하셨던 것이다.
해몽의 결과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을 최고 관직에 등용했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애굽의 바로가 자기의 꿈을 해몽한 요셉을 최고위직에 등용한 것과 유사하다. 느부갓네살은 그것으로 인해 다니엘을 높여 바벨론 전역을 다스리는 통치관으로 세웠을 뿐 아니라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총괄하는 최고 지도자 임명했다. 그렇게 됨으로써 다니엘의 세 친구들도 고위직에 등용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참여했으며 다니엘은 왕궁에 머물면서 수도인 중앙부서에서 전국을 통치하는 일에 관여하게 되었다.
이처럼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의 위상이 급격하게 올라간 것은 포로가 되어 신음에 빠진 이스라엘 민족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나중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계시의 말씀과 더불어 이스라엘 민족의 소망이 되었다.
4. 다니엘이 꿈을 통해 예언한 왕국
느부갓네살이 꾸었던 꿈 가운데 핵심적인 내용은 ‘사람이 손대지 아니한 돌’이다. 그 돌은 앞으로 전개될 세상의 역사 가운데 존재하는 막강한 나라들을 궁극적으로 심판하게 될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그 돌과 더불어 세워지게 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꿈의 중요한 내용이었다.
느부갓네살 왕이 꿈에서 본 ‘돌’은 외관상 보기에 하나의 돌덩이에 지나지 않았지만 무시무시한 모습을 띠고 있던 거대한 신상을 파괴하는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그 돌에 부딪혀서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가 아무것도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인간들의 눈에는 매끄럽게 다듬어지지 않아 세련된 모양을 하고 있지 않지만, 그 돌에는 세상을 심판하는 엄청난 위력이 담겨 있었다.
느부갓네살의 꿈 가운데 나타나 두려운 모습을 하고 있던 커다란 신상을 파괴한 돌이 거대한 태산을 이룬 광경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메시야 대망 신앙을 확고히 가지게 했다. 나라를 잃고 실의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으로 임하게 될 ‘돌’인 메시야를 간절히 소망하게 되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메시야가 등장하여 새로운 왕국을 설립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와 같은 기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놀라운 소망이 되었다. 그 예언에 따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으로 말미암지 않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오셨다. 그는 사탄에 속한 자들과 배도한 자들에 대한 무서운 심판주로 임하시게 된 것이다.
신약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돌아나 반석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며 그 돌이 곧 악한 자들을 심판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누구든지 그에 부딪히거나 저항하는 자들이 있다면 산산이 부서져 파괴될 수밖에 없다. 복음서에는 그에 관한 기록이 나타난다.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부스러질 것이요, 이 돌이 어떤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마21:44, 표준새번역)
이에 대해서는 다니엘의 예언이 있기 훨씬 전부터 이미 구약성경을 통해 분명히 예언되어 있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성소가 되실 터인데 그 성소가 돌, 곧 반석이 되어 존재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예언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악한 배도자들은 그 돌로 말미암아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되리라고 예언했다.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사8:13~15)
신약시대의 사도들도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며 교회와 그에 속한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예수께서 반석 곧 돌이 되어 궁극적인 구원과 심판의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면서 그와 연관된 그리스도의 역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롬9:33)
이 말씀들은 예수께서 친히 거룩한 성소가 될 것이며, 반석 곧 돌로서 뭇 백성들의 구원과 심판의 기준이 된다는 사실의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그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세워지는 새로운 왕국은 지상에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그의 사역으로부터 재림에 이르는 교회 시대를 일컫는다.
신약성경은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어 그것을 기초로 하여 하나님의 몸 된 교회가 세워지게 됨을 말하고 있다. 그 모퉁잇돌은 느부갓네살과 다니엘이 본 바 큰 신상을 파괴한 손대지 아니한 돌과 동일한 것으로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지칭하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모퉁잇돌이 되고 그 위에 놓인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언약의 터가 되며 그 위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에베소 교회에 보낸 바울의 편지 가운데는 그에 대한 의미가 잘 드러나고 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0~22)
다니엘이 선포한 ‘사람이 손대지 아니한 돌’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어 그 위에 교회가 세워진다는 사실과 더불어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그리스도의 재림까지의 보편 교회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거룩한 몸을 비유적으로 가리켜 예루살렘 성전이라고 여러 차례 일컬으셨다. 돌로 지어진 그 성전은 참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 가운데 로마 제국에 의해 완전히 파괴됨으로써 구약의 모든 언약을 성취하였다. 그 역사적인 사건을 통한 성취로 인해 지상에 약속된 보편 교회가 세워져 하나님의 심판이 구체적으로 실현되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손대지 아니한 돌이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신상을 무너뜨리고 그것이 엄청난 규모를 이루어 태산같이 된 느부갓네살 왕의 꿈은 교회론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전적으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몸 된 교회가 세워지게 됨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편지하면서 그에 연관된 기록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는 왕이 되며 교회의 머리가 되어 그 사역을 감당하시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능력을 그리스도 안에 역사하셔서, 그분을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쪽에 앉히셔서, 모든 정권과 권세와 능력과 주권 위에, 그리고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굴복시키시고, 그분을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함입니다.”(엡1:20~23, 표준새번역)
사도 바울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그는 십자가 사역을 통해 교회와 더불어 세상을 심판하여 복종시키는 사역을 감당하게 된다. 이는 처음 있었던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궁극적인 완성을 향한 의미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손대지 아니한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 교회를 설립함으로써 창세 전에 작정하신 우주 만물의 회복을 위한 완벽한 발판을 마련하셨다. 그 가운데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성도들에 대한 궁극적인 구원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은 이를 최종적으로 완성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신령한 왕국인 교회를 세워 그 놀라운 일을 진행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