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새해 첫날을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낼까 고민했어요. 좋아하는 사람과 버스를 타고 들뜬 사람들이 모이는 읍내로 나왔어요. 이층 카페에 앉아서 서로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2024년의 너에게 한 통, 2025년 1월 1일의 나에게 한 통 쓰기로했어요. 편지를 쓰기 전에 문득 지금 이 순간이 좋아서, 탱자 글쓰기를 해야겠더라구요.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서 각자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 사람은 시집을 읽다가 천장을 보다가 다시 시집에 눈길을 두네요. 차분한 그 사람 앞에서 저는 핸드폰과 연동이 잘 되지 않는 블루투스 키보드와 씨름을 했어요.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는 걸 깨달았고 은근한 성취감과 또 후련한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에 이 내용을 담아야겠다 생각하며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뒷 좌석에는 방실방실 볶은 머리를 하신 어르신 세 분이 앉아 계십니다. “나는 소, 돼지는 먹지만 개는 안 먹는다.” 운을 띄우며 잠시 육식과 개 식용에 열띈 토론을 나누시다 어느 순간 상차림이 4,000원이라는 횟집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이어서 밥을 단 한번도 차려본 적이 없는 신랑, 본인이 방불을 켜놓고 잠시 이동하면 귀신 같이 와서 불을 끄는 신랑, ’그렇게 전기를 아끼면서 밤새 테레비를 보는‘ 신랑이야기를 열 띄게 하십니다. 어르신들의 ’말맛‘을 그대로 글로 옮길 수 없어 아쉬울 따름입니다. 애인도 읽던 책을 상에 내려놓고 뒤에서 오가는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하이라이트로 다다를 때마다 동시에 소리 없이 미소 짓게 되는 이 순간이 좋습니다.
계획대로 일찍 눈이 떠진 날에만 들을 수 있는 클래식 라디오 <출발 FM과 함께>, 저녁을 준비하며 듣는 <세상의 모든 음악>이 좋아요. 제 일상의 배경음악을 만들어주는 라디오 제작자, 진행자에게 감사합니다. 친구들과 글쓰고 나누는 모임이 좋아요. 글을 맛있게 만드는 건 정확한 맞춤법, 완벽한 문장만큼이나 진솔한 말로 쓰인 삶의 생생함이라는 걸 배울 수 있는 게 좋아요. 마디가 굵어지고 주름진, 지난 계절동안 볕에 그을린 내 손을 내려다 보는 게 좋아요.
무엇보다 좋은 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는 일이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는 요 며칠 간 제 산책길의 동행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앞서 걷는 개 님들의 두 궁댕이를 보면서, ‘아 그건 그래서 좋지. 이런 순간도 좋아하지. •••’를 떠올립니다. 산책길에 멈춰 서 두툼한 발로 땅을 긁는 반반이(강쥐)를 따라 땅 가까이 앉았습니다. 그제서야 마른 몸 위에 흰 눈을 소복이 쌓은 논둑의 풀이 보였어요. 몸을 낮춰야만 겨우 보이는 작은 세계를 발견하는 걸 좋아한다는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문장을 만들고 기록하는 건 나를 배불리는 일과 닮은 것 같습니다.
첫댓글 '진솔한 말로 쓰인 삶의 생생함'과 '몸을 낮춰야만 겨우 보이는 작은 세계를 발견하는 걸 좋아'하는 조조샘의 마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