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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2년 별봉황대신부(別鳳凰臺神賦) 전주인(정종후손) 이면승(李勉昇,1766~1835)
◾<김산군읍지,1759년간> 新增봉황대 在蓮花提上
◾<김산군읍지,1899년간> 봉황대 二去. 辛卯(1771년) 春 郡守 金恒柱 重建. 在蓮花提傍去. 壬子(1792년) 夏 君守 李性淳 改建
◾이면승(李勉昇,1766~1835)[진1789][문1794]字계래(季來), 號문헌(文獻) 諡號문헌(文獻)
配반남인 박정엄(朴廷淹)[進]의 딸
*김산군수(1788.12.~1793.4.) 이성순(李性淳)의 아들로 *김산 봉황대상량문을 남김
*전라도 암행어사, 황해도 감사, 이조판서, 형조판서 역임.
<김산군읍지,1899> <국역김천역사지리지> p327 참조 김진곤 번역
내용 : 봉황대의 정령이 말하는 모습으로 봉황대의 역사를 은유적으로 표현
별봉황대신부(別鳳凰臺神賦)
봉황대의 신과 헤어지며 지은 부
이면승(李勉承,1766~1835)
歲彤馬孟夏二十有二日夜 夢有一神人 被芙蓉之衣 執碧梧之扇 乘鳳凰而翱翔兮 來揖余而繾綣曰, 吾今日將去兮 聊與子而相見, 因歔欷而慷慨兮 若將別而遐舉. 余怪而問曰, 而吾所與居者 惟漁父與樵女, 夫何神人之倐來兮 曰捨余而將去. 如非九華之靈 無乃高城之神
붉은 말의 해, 여름(4월) 22일 밤 꿈에, 한 신인이 부용의를 입고 벽오동 부채를 잡고 봉황을 타고 빙빙돌며 날다가, 나에게 와서 읍하며 견권하게 말하기를, “내가 오늘 가서 오로지 그대와 서로 보고자 한다.”하고, 한숨을 쉬며 탄식하면서 이별을 고하며 날아 올랐다.
내가 괴이하게 여겨 묻기를, “내가 함께사는 사람은 오직 어부와 나무하는 여자뿐인데, 어찌 신인께서 갑자기 와서는 나를 버리고 간다고 말하는가? 구화산의 신령이 아니라면 고성산의 신이 아니겠겠는가.”하였다.
*동마(彤馬) : 오행의 붉은색(화)은 丙(+),丁(-)이며, 午(+)로 병오년(1786년)에 해당 *고상(翺翔) : 날개를 펼치고 뜻을 얻은 듯이 노닐음. *견권(繾綣) : 생각하는 정이 두터워 서로 잊지 못하거나 떨어질 수 없다 *초녀(樵女) : 땔 나무하는 여자 *구화산(九華山) : ①중국 안후이 성(安徽省) 남부에 있는 산. 아홉 개의 산 봉오리가 연꽃처럼 보이는 것에서 유래한 이름. ②김산 관아가 소재한 산.
於是神人指天中之明月兮曰, 吾獨與此而相親.
이에 신인이 중천의 명월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나는 오직 저 달과 친하다네.” 하며 말하였다.
余昔在於江南兮 擅高名於四隣. 내가 전에 있었던 강남은 사방에 높은 이름 떨쳤다.
枕黃金之高陵兮 帶靑錢之方塘. 황금의 높은 언덕을 베고 누우면, 방당에서 출중한 인재들이 둘러싸고 있었고
二水流於階除兮 三山峙而藩墻. 이수는 섬돌을 돌며 흐르고, 삼산은 우뚝하게 울타리와 담장이 되었기에
中余立而翼然兮 允塵邈而不忘. 나는 가운데에 서서 나는 듯하였으니, 참으로 속세의 모습이라도 잊지 못했네.
*청전(靑錢) : 재능이 출중한 급제자를 일컫는 말. 당나라 장작(張鷟)이 진사(進士)에 등제(登第)하자, 고공원외랑(考功員外郞) 건미도(騫味道)가 그의 문장을 마치 청동전(靑銅錢) 같다고 칭찬한 뒤로 그를 ‘청전학사(靑錢學士)’라고 불렀다는 고사가 전한다. 《新唐書 卷161 張薦列傳》
若溯余之攸起兮 所不談乎六籍 지난 날의 흥기를 거슬러 올라가서 육적을 말하지 않겠는가.
盖鳳凰之高飛兮 自天降而翼翼 대저 봉황은 높이 나는데 하늘에서 내려와 활짝 펴는데,
捿軒皇之阿閣兮 舞虞帝之韶楽 헌황제의 아각에 둥지를 틀고 우황제의 소악에 맞춰 춤추다가
及軒虞之殂落兮 悲哀鳴而靡托 헌황제와 우황제 돌아가시니, 슬피 울며 의탁할 곳 없었다.
*육적(六籍) : 육경(六經). *아각(阿閣) : 4층으로 된 명당(明堂)을 말하는데, 황제(黃帝) 때 이곳에 봉황이 깃을 쳤다는 기록이 전한다. 《帝王世紀》 *소악(韶樂) : 우순(虞舜)의 음악.
嗟孔聖之道不行兮 捲雙翩而邈邈 아! 공성의 도가 행해지지 않아 두 날개 접고 아득히 날아가다가
帝眷顧扵江左兮 曰形勝之可居 상제가 강좌(낙동강 왼쪽)를 돌아보시고 좋은 경치가 살만하다 말하기에
先令靈鳥翱翔兮 下春塘兮水碧 먼저 신령스런 새가 높이 날다가, 춘당에 내려오니 푸른 물 이었다.
初伴逶迤之洲鷺兮 櫬嬋娟之他蕖 처음은 위이하여 물가 백로였으나, 고운 빛 가까이 하여 다른 연꽃이 되었네.
*위이(逶迤) : 구불구불함. 비실비실함
曾聯翩而上下兮 臺遂起於其上 일찍이 날개 펄럭이며 오르내리니 대가 비로소 그 위에 세워졌고,
雖灵禽之己遠亏 名以志乎不忘 비록 령조는 이미 멀어졌지만, 뜻으로 이름 지어 잊지 않고자
效少昊之記官兮 類岐山之名嶂 소호씨가 기록한 것을 본받으니 기산의 높은 이름과 비슷하였다.
若夫風煙之佳麗兮 冠神洲之山河 대저 경치의 아름다움이 신주의 산하에서 으뜸이었다.
*기산(岐山) : 주나라 문왕이 나라를 세운 곳.
彼鳷鵲與黃鶴兮 罔不失其峨峨 저 뭇새와 황학 들을 그 우뚝함을 잃지 않고 가두니
惟騷人與曠客兮 競就我而吟哦 시인과 관광객들 나를 쫓아와 노래하길 다투고
携綠壶而挈榼兮 泛彩舫扵駐驢 술병과 술통 들고와 나귀 세우고 채방을 띄우는데
惟靑蓮之曠達兮 最好余而知余 오직 푸른 연잎 펼쳐있어 나를 좋아하고 나를 아는 것을 최고로 여겼었다.
*설합(挈榼) : 술통 *채방(彩舫) : 예전에 대궐에서 정재를 베풀 때에 선유락에 쓰는 배를 이르던 말
嗟伊人之不可復覿 望鲸波而愁余 아. 저 사람들 다시 볼 수 없구나. 일렁이는 물결 보며 나를 근심하는데
江東流而不盡兮 唯盛衰其不可常 강은 동으로 흘러 끝이 없지만, 오직 성쇠는 정해진 게 없구나.
呉花草而冷烟兮 晋衣冠而夕陽 오나라 화초도 차가운 연기되었고 진나라 의관도 석양에 저물었구나.
乃胡元之末運兮 帝醉醒於鶉次 원나라도 마지막 운에 이르렀고, 상제는 취했다가 순의 차례에서 깨어났다.
*순차(鶉次) : 성차(星次)의 이름인 순수(鶉首)를 나타냄.
眞人起於浙江兮 千一淸於塘水 진인이 절강에서 일어나 천년 만에 못의 물 맑게 하여
述雨露之霈澤兮 載山下之圖誌 우로의 은택을 기록하고 산하의 지지도에 등재하였었지만,
吁嗟乎天命之難諶亏 萬事悲扵煤閣 아! 안타깝게도 믿기 어려운 것이 천명이라. 집을 태워 만사가 슬프고,
紛胡馬而纒洛亏 恐餘波之流及 호마가 분주하게 단단히 메여 있어 여파가 미칠까 두려워했다.
*천일(千一) : 황하수가 1천 년 만에 한 번씩 맑은데, 이 물이 맑으면 천하가 태평하고 성인이 난다는 전설이 있다. *천명지난심(天命之難諶) : 《서경(書經)》 함유일덕(咸有一德)에 “아, 믿기 어려운 것은 하늘이요, 무상(無常)한 것은 명이로다.[嗚呼 天難諶 命靡常]”라는 말이 나온다.
嗟吾身之靡托兮 惓局蹙而誥曲 아! 이 몸 의지할 곳 없고, 상황이 막혀서 삼가고 완곡하게 고하며
睠鰈域之一區亏 保皇明之日月 조선의 한 구역 돌아보니 명 황제 일월을 보전하고 있었다.
春秋凜於報壇兮 禮敬修扵望闕 오래도록 대보단에 늠름하게 모시며, 경건히 망궐례 수행하기에
儘兹土其可居兮 聊逍遙而托吾 이 땅이 살만하다 여기고, 오로지 소요하며 나를 의탁 했었다.
*접역(鰈域) : 가자미 형국과 같은 지역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를 일컫는 말이다.
循太師之東出兮 法孔聖之乘桴 기자가 동쪽으로 나아간 것을 따르며, 공자의 ‘승부’를 규범으로 삼았는데
矧彼湖嶺之所交兮 乃有州名之相孚 하물며 저 영호남이 교차하니, 고을 이름이 부합하는 바가 있고
金湧黃於門外兮 錢溢碧扵塘陬 금이 문밖에서 누렇게 솟아나고, 돈이 넘쳐 연못 모퉁이가 푸르렀다.
臺之高而慣眼兮 宛江南之名區 대가 높이 눈에 들어오니 강남의 경치 좋은 곳으로 완연하였다.
*태사(太師) : 상(商)나라 태사(太師)였던 기자를 말함. *승부(乘桴) : 난세를 피해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것을 말함. 《논어》 〈공야장(公冶長)〉에 “나의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로나 나갈까 보다.〔道不行 乘桴浮于海〕”라고 탄식한 공자(孔子)의 말이 실려 있다.
爰居爰處兮 盖亦有年 여기저기 거처하며 편안한지가 여러 해 되었다
噫風俗之尚雅兮 最誰與我而好焉 아! 풍속이 일찍이 우아하여, 나와 함께 좋아한 이 중에 누가 최고였던가.
幸子居之莽蒼兮 時與子而聮翩 다행히 자네가 사는 곳이 아득하여 때때로 자네와 잇달아 날아다녔는데
今吾來而子莫省兮 子亦不可謂眞知我 지금 내가 와도 자네는 살피지 않으니, 자네 역시 진실로 나를 안다고 말할 수 없구나.
*원거원처(爰居爰處) :《시경(詩經)》 소아(小雅) 사간(斯干)에 “여기에서 편안히 거하고 저기에서 편안히 처하며 여기에서 즐거이 웃고 저기에서 즐거이 말하도다.[爰居爰處 爰笑爰語]”라고 하였다. *연편(聯翩) : 잇달아 날아다님.
余扵是瞿然而稱謝 唉然而感慨曰 내가 이것에 두려워하며 사례를 표하고, 한탄하며 감개에 젖어 말하기를
子是鳳凰之靈也 “자네가 바로 봉황의 정령이구나.
吾與子而共托兮 結江山之幽盟 나는 자네와 함께 의지하여 강산의 그윽한 맹세를 맺었네.
今胡爲而跼蹐兮 遽告別而將行 지금 어찌하여 조심스럽게 걸어와 갑자기 이별을 고하며 가고자 하는데
雖象人之莫我知兮 亦何足懷夫不平 비록 나무인형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어찌 불평할 수 있겠는가.
苟余情其信芳兮 雖糞壤而難凂 참으로 나의 정은 향기를 분명히 하기에 비록 똥 덩어리로도 더럽히기 어렵네.
况吾逍遥而共逰兮 豈可謂全不能知 하물며 나와 소요하며 함께 놀았는데 어찌 전혀 모른다고 하겠는가.”하였다
*국척(跼蹐) : 황송하거나 두려워 몸을 굽히고 조심스럽게 걸음 *상인(象人) : 나무인형. 아무 능력이나 재주가 없는 사람.
乃神曰, 余不爲此也. 마침내 신이 말하기를, “나는 이것을 하지 못했다.”라고 하면서
盖自吾之在此 閲年久而屢危 나는 여기에 있으면서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위험을 보았다.
幸金候之哀我兮 重緝修而扶持 다행히 김 군수가 나를 슬피 여겨 거듭 수리하여 부지하면서
樑畫龍而桷鳯兮 更生色乎軒楣 들보에는 용을 그리고, 처마에는 봉황을 그려 처마를 다시 새롭게 했다.
今纔逾扵十稔兮 又傾仄而將圯 지금 겨우 곡식이 열 번 익었는데 또 기울어 무너지려 한다.
惟危邦之不居兮 固聖訓之所示 생각해보니 위태한 나라에서 살지 않는 것이 한결같이 성인들이 가르침이니
火將焚扵棟宇兮 豈區區如鸞雀 불이 장차 집을 태우려하는데 어찌 난새나 참새처럼 구구하겠는가.
雖吾子其欲留我兮 奈禍伏扵朝夕 오직 자네가 나를 머물게 하려 하니 조석으로 숨어 있는 화를 어찌하리
固顕晦之有数兮 豈無期扵重覿 한결같이 명암에는 운수가 있으니 어찌 다시 보는 것을 기약하지 않겠는가. 하며
因倐起而擧袂兮 指南雲之漠漠 갑자기 일어나 일어나 소매를 들어 남쪽 구름을 가리키며 멀어졌는데,
余亦驚而寢寤兮 起彷徨而頭擡 나 역시 놀라 잠에서 깨어나 방황하며 머리를 들었다.
*현회(顯晦) : 벼슬과 은둔 등 명암에 관한 일
朝來童子自湖而臺頹. 아침이 되자 동자가 호수에서 와서 대가 무너졌다고 하는데
噫嘻異哉. 神固先覺. 아 매우 이상하구나. 신이 오래전부터 먼저 깨달았구나.
色斯舉矣 臺其重起 색리들 이 것을 받들어 대를 다시 일으키니
神無遐去 去且何之 신이여 멀리가지 마오. 가면 어디로 가리오.
神姑扵我處兮 必欲其去 내 처소에 신고가 반드시 가려하네.
噫吾知之莫及兮 處濁世而不能違. 아 내 지작이 미치지 못해 혼탁한 세상에 살면서 어길 수 없구나.
此卽邑人鄭上舍約光作也. 臺毁於丙午四月二十二日 子之夢適在是夜. 異哉. 夢幻境也 不可凖. 然夢之前無是事 而有是事扵方夢之日 則夢之不可不凖也. 余遂家大人來遊干兹 子居在迮齒 又五年差遂以文字相來往. 一日袖斯作出以示余. 道夢事甚悉 慨其不能重建. 後七年 君不幸病死 而臺於是成.
이 글은 읍에 사는 진사 정약광이 지었다. 봉황대는 병오년(1786년) 4월 22일에 무너졌고, 자네의 꿈은 바로 이날 밤에 있었다. 기이하지만 꿈은 환경이니 따를 수가 없다. 그렇지만 꿈을 꾸기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꿈을 꾸던 날 이런 일이 생겼으니 꿈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아버님을 따라 이곳에 와서 유람하였는데, 자네는 이 곳에 살면서 나이가 들었다. 또 오년의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글을 주고 받았다.
하루는 소매속에서 지은 것을 꺼내어 나에게 보여주며, 꿈 이야기를 매우 상세하게 일러주고 중건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그리고 7년 뒤 그대는 병으로 죽고 대는 이렇게 완공되었네.
*정약광(鄭約光,1761~1793경) [생1792] 김산거주. 연일인. 字동첨(東瞻).
嗚呼 成毁存亡 曾未十年 而人物之不可齊如此. 把酒臨風 安得不測愴懷人也. 偶閱遣藳 得所甞示者 見物思人 因文想事 何忍使泯没而無傅也. 臺之毁而有子之夢 臺之成而有子之文, 隨臺之成毁而子之名 將永與之傳矣. 玆用刊揭于壁 因記其事. 是壬子仲冬一日也. 友人 完山 李勉承 識.
아! 이루어지고 무너지고, 있다가 없어진 것이 일찍이 10년이 되지 않았데, 사람이 사물과 가지런히 할 수 없으니 이와 같구나. 술잔 들고 바람 쐬는데 어찌 그리워하는 마음에 슬퍼지지 않으리오. 우연히 유고를 보다가 나에게 보여주었던 글을 얻게 되니, 사물을 보고 사람을 생각하고 글로 인해 지난 일들을 생각하니, 어찌 없어져 전해지지 않게 하겠는가.
대가 무너질 때 자네의 꿈이 있었고, 가 지어지니 자네의 글이 있으니, 대의 성쇠에 따라 자네의 이름은 영원히 함게 전해질 것이네. 이에 글을 새겨 벽에 걸어 그 일을 기록하네.
임자년(1792년) 중동(11월) 1일 완산인 이면승이 기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