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천집 제4권 / 시(詩)○임인고(壬寅稿) / 회진촌에 있는 임백호의 옛 거처에서 감회가 있어 읊다〔會津村林白湖故居感賦〕
천리 가는 명마요, 백번 단련한 칼이거늘 / 千里名駒百鍊刀
강호에서 자적하며 시문이나 읊으셨지 / 翩翩湖海弄吟毫
풍진 속 책사는 용천처럼 늙어 갔고 / 風塵策士龍川老
막부의 시재는 두목처럼 호방했네 / 幕府詩才杜牧豪
미끄러운 둑 푸른 이끼는 묵은 길에 생기고 / 油埓蒼苔成廢徑
낚시터 단풍잎은 찬 물결에 떨어지네 / 釣磯楓樹落寒濤
영웅이여, 구천에서 한스러워 마소서 / 九原莫抱英雄恨
오늘날 조정에는 황제의 의자 드높나니 / 今日朝廷帝座高
[주-C001] 임인고(壬寅稿) : 1902년(광무6), 매천이 48세 되던 해에 지은 시들이다.[주-D001] 임백호(林白湖) :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문장가인 임제(林悌, 1549~1587)를 가리킨다. 자는 자순(子順)이고, 호는 백호(白湖) 또는 겸재(謙齋)이며,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2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학문에 뜻을 두어, 1577년(선조10)에 문과에 급제했다. 예조 정랑을 지냈다. 스승인 성운(成運)이 죽자 벼슬을 멀리한 채 전국을 떠돌며 음풍농월하다가 3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호방한 기질과 뛰어난 시로 당대는 물론 후대에까지 추앙을 받았다. 세조의 왕위 찬탈을 풍자한 《원생몽유록(元生夢游錄)》 등의 한문 소설과 시조 및 700여 수의 한시가 전한다. 문집으로는 《백호집(白湖集)》이 있다.[주-D002] 용천(龍川) : 중국 남송(南宋) 때의 학자인 진량(陳亮)의 호이다. 자는 동보(同甫)이고, 시호는 문의(文毅)이다. 효종(孝宗) 2년(1164)에 금나라와 화의를 맺을 때 홀로 반대하면서 《중흥오론(中興五論)》을 지어 바치는 등, 여섯 번이나 황제에게 상서하여 외침을 극복하고 나라를 중흥시킬 계책을 건의하였으나,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宋史 卷436 儒林列傳 陳亮》 《宋名臣言行錄 外集 卷16》[주-D003] 두목(杜牧) : 중국 당(唐)나라 때의 시인으로, 자는 목지(牧之)이고, 호는 번천거사(樊川居士)이다. 이상은(李商隱)과 함께 ‘소이두(小李杜)’라고 불릴 정도로 시에 조예가 깊었다. 고시(古詩)는 두보(杜甫)와 한유(韓愈)의 영향을 받아 사회와 정치에 관한 내용이 많다. 장편시는 필력이 웅장하고 장법(章法)이 엄정하며 감개가 깊다. 근체시(近體詩)는 서정적이며 풍경을 읊은 것이 많은데 격조가 청신(淸新)하고 감정이 완곡하고도 간명하다. 문집으로는 《번천문집(樊川文集)》이 있다.[주-D004] 영웅이여 …… 드높나니 : 고종(高宗)이 1897년(광무1)에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것을 가리킨다. 임제는 병이 위독하여 장차 죽게 되었을 때 아들들이 슬피 울부짖자, “사해(四海) 안의 여러 나라 중에 황제를 칭해 보지 않은 나라가 없는데, 유독 우리나라만이 예부터 그렇지 못했다. 이처럼 누추한 나라에 태어난 주제에 그 죽음이 애석할 것이 무엇이냐.”라고 하면서, 곡을 하지 말라고 명하였으므로,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星湖僿說 卷9 善戱謔》
ⓒ 한국고전번역원 | 권경열 (역) |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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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사설 제9권 / 인사문(人事門) / 선희학(善戲謔)
임백호(林白湖) 제(悌)는 기개가 호방하여 예법의 구속을 받지 않았다. 그가 병이 들어 장차 죽게 되자 여러 아들들이 슬피 부르짖으니 그가 말하기를 “사해(四海) 안의 모든 나라가 제(帝)를 일컫지 않는 자 없는데, 유독 우리나라만이 예부터 그렇지 못했으니 이와 같은 누방(陋邦)에 사는 신세로서 그 죽음을 애석히 여길 것이 있겠느냐?” 하며, 명하여 곡(哭)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는 또 항상 희롱조로 하는 말이 “내가 만약 오대(五代)나 육조(六朝) 같은 시대를 만났다면 돌려가면서 하는 천자(天子) 쯤은 의당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였다. 그래서 한 세상의 웃음거리로 전했었다.
임진(壬辰)의 변란에 이르러, 한음(漢陰) 이 정승(李政丞)이 명(明) 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을 반접(伴接)하자, 그는 한음의 인물을 대단히 추앙하여 심지어는 감히 말하지 못할 말까지 하는 것이어서, 일은 비록 진정이 아닐지라도 역시 스스로 편안하지 못했다.
이백사(李白沙)는 회해(詼諧)를 잘하는데 어느 날 야대(夜對 밤에 경연을 베푸는 일)가 있어 시골 구석의 누한 습속까지도 기탄없이 다 아뢰는 것을 즐겁게 여겼으며 마침내 임(林 임백호)의 일에까지 미치자 주상은 듣고서 웃음을 터트렸다. 백사는 또 아뢰기를 “근세에 또 웃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니 주상이 “누구인가?”고 묻자, 대하기를 “이덕형(李德馨)이 왕의 물망에 올랐답니다.” 하여, 상은 크게 웃었다. 백사는 이어 아뢰기를 “성상의 큰 덕량이 아니시라면 제놈이 어찌 감히 천지의 사이에 용납되오리까?” 하자, 상은 “내 어찌 가슴속에 두겠느냐?” 하고 드디어 빨리 불러오게 하여 술을 내려 주며 실컷 즐기고 파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희학(戱謔)을 잘하도다.” 하였는데 백사가 그 재주를 지녔다 하겠다.
善戯謔
林白湖悌氣豪不拘檢病將死諸子悲號林曰四海諸國未有不稱帝者獨我邦終古不能生扵若此陋邦其死何足惜命勿哭又常戯言若使吾值五代六朝亦當為輸逓天子一世傳笑及壬辰之變漢隂李相伴接天將天將獎許之至有不敢言之說事雖非情亦不自安李白沙善詼諧一日夜對閭巷俚俗無不奏陳以為樂仍及林事上為之發笑白沙又白云近世更有可笑之人上曰誰也對曰李徳馨擬扵王望矣上大噱白沙仍白曰非聖上之大徳深仁渠安敢容貸覆載之間乎上曰吾豈置懷耶遂促召錫爵盡歡而罷詩云善戯謔兮白沙有焉
[주-D001] 선희학(善戲謔) : 희학(戲謔)을 잘한 이야기. 《類選》 卷9下 經史篇8 論史門.[주-D002] 오대(五代) : 당(唐)과 송(宋)과의 사이 53년 동안에 흥망했던 다섯 왕조. 곧 후량(後梁)ㆍ후당(後唐)ㆍ후진(後晉)ㆍ후한(後漢)ㆍ후주(後周) 등이 흥망했던 시대.[주-D003] 육조(六朝) : 후한(後漢) 멸망 이후 수(隋)가 통일할 때까지 건업(建業)에 도읍했던 여섯 왕조(王朝). 곧 오(吳)ㆍ동진(東晉)ㆍ송(宋)ㆍ제(齊)ㆍ양(梁)ㆍ진(陳)의 육조. 이 시대를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라고도 하는데, 이는 오ㆍ동진……등의 남조와 후위(後魏)ㆍ북위(北魏)……등의 북조를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주-D004] 감히 말하지 못할 말 : 국가의 기휘(忌諱)에 저촉되는 말. 곧 아무개의 용모가 임금처럼 생겼다든가, 왕자(王者)의 기상이 있다든가 하는 등의 말.[주-D005] 회해(詼諧) : 희학(戲謔)과 같은 말. 하후담(夏候湛)의 《동방삭화찬(東方朔畫讚)》에 “明節不可以久取安也 故詼諧以取容”이라 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역) | 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