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확행(小確幸)
손 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처음 세상에 알린 뒤, 감염돼 숨진 중국인 의사 리원량(李文亮, 당시 34세) 이야기가 새롭다. 그의 전염병 확산 경고를 무시한 당국과 젊은 의사의 죽음이 안타깝다. 사후에 그의 아내가 정리한 병상 일기의 한 부분이다. "삶은 참 좋지만 나는 갑니다. 나는 다시는 가족의 얼굴을 쓰다듬을 수 없습니다. 아이와 함께 우한 동호(東湖)로 봄나들이를 갈 수 없습니다. 부모님과 우한대학 벚꽃 놀이를 할 수 없습니다. 흰 구름 깊은 곳까지 연을 날릴 수도 없습니다."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두 아이의 엄마는 죽기 직전 자신의 블로그에 마지막 글을 남겼다.
"살고 싶은 날이 참 많은데 저한테 허락되지 않네요. 내 아이들 커가는 모습도 보고 싶고, 남편에게 못된 마누라가 되어 함께 늙어 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을 안 주네요. 죽음을 앞두니 그렇더라고요.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일어나라고 서두르라고, 이 닦으라고 소리소리 지르는 나날이 행복이었더군요. 딸아이 머리도 땋아줘야 하는데, 아들 녀석 잃어버린 레고의 어느 조각이 어디에 굴러 들어가 있는지 저만 아는데, 앞으론 누가 찾아줄까요.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22개월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1년 보너스를 얻은 덕에 아들 초등학교 입학 첫날 학교에 데려다주는 기쁨을 누리고 떠날 수 있게 됐습니다.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세요. 두 손으로 삶을 꽉 붙드세요.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미처 몰랐던 평범한 일상이 행복이란 것을 일깨워 준 글이다. 나 역시 이 정도를 행복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일상적인 것보다 특별한 그 무엇이 행복인 줄 알았다. 욕심이 과하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 어느 누구도 욕심을 다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노후에 와닿는 말이 있다. "내려놓고 비우라"는 것이다. 그러기는 쉽지 않지만, 시늉이라도 내고 보니 효과는 있는 듯하다. 내려놓고 비우면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진다. 우선 마음이 편하다. 일상이 행복이고 지금이 내게 최고의 날이라는 말이 와닿는다.
살아오는 동안 행복했던 때를 반추해 본다. 특별히 도드라진 행복은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여태껏 행복했던 때가 없었던 걸까? 대신 기억에 남는 몇 가지가 떠 오르고 그리워진다.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하고 넉넉해 지기까지 한다. 그것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즉 소확행이 아닐까 싶다. 잊히지 않은 한때, 생각할수록 즐겁고 다시 맞이하고 싶은 그런 기억들이다. 한여름 밤, 고향 집 마당에 멍석을 깔고 온 식구가 함께 저녁 먹고, 초롱초롱한 별을 보며 도란도란 얘기하던 그때가 그립다. 객지 생활을 하면서 가끔 부모님 댁을 찾아 사립문을 들어서면서 "엄마"하고 부르던 그때의 행복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여름날, 부모님 모시고 계곡에 피서갔던 기억들이다. 소중한 한때지만 되돌릴 수 없다는 생각에 서글퍼진다. 그 또한 행복했던 한때였음은 분명하다.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한 때는 지금이라고 한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면 그만이다. 은퇴를 하면 자칫 소극적이고 우울해지기 쉽다고 한다. 역할이 줄어들고, 내려놓는 상실감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나 또한 퇴직을 앞두고 이런 점을 걱정했고, 비로소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맞닥뜨린 노년, 길게는 향후 40년을 살아갈 제2의 인생이다. 은퇴교육과 선배의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난날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워라. 취미생활, 봉사활동에 참여하라 등이다. 실천하는 만큼 행복도 찾아오는 듯하다.
소확행이면 그만이다. 소확행은 단발성이 아니고 일상적이어서 좋다. 먼저 손자 돌보기다. 보람 있고 즐겁다. 지인 중에 은퇴 후 자신의 삶을 위해 말렸으나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 부부가 손자 둘을 돌보고 있지만 다소의 자투리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다만 은퇴 후 꿈꾸었던 부부 동반 해외여행은 못 하고 있다. 다음은 글쓰기다. 수필동호회에 가입하여 활동한다. 글쓰기는 수양이 되고 즐겁다. 틈틈이 글 쓰는 늦깎이 작가의 길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생각보다는 만족스러운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나의 작품을 읽고 공감하는 이가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저녁 운동으로 심신을 단련한다. 활발히 걸을 수 있어 행복하고, 걸으면서 사색하는 즐거움도 있다. 소확행은 일상의 행복에서 온다. 그러고 보니 일상의 행복과 소확행은 일맥상통하고, 다다익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일상의 행복 즉 소확행이 이 뿐이겠는가. 텃밭 가꾸기, 구순의 아버님 돌보기도 나의 일상이다. 그러고 보니 행복은 늘 가까이 있는 평범하고 소박한 일들이다. 평소 등한히 여기던 주변의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아보자. 일상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다.
《 좋은글 중에서 》
두 눈이 있어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두 눈'이 있어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두 귀'가 있어 감미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고,'두 손'이 있어 부드러움을 만질 수 있으며,'두 발'이 있어 자유스럽게 가고픈 곳 어디든 갈 수 있고, '가슴'이 있어 기쁨과 슬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이 있으며,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날 필요로 하는 곳이 있고, 내가 갈 곳이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하루하루의 삶의 여정에서 돌아오면 내 한 몸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을 날 반겨주는 소중한 이들이 기다린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내가 누리는 것을 생각합니다 아침에 보는 햇살에 기분 맑게 하며 사랑의 인사로 하루를 시작하며,아이들의 해맑은 미소에서 마음이 밝아질 수 있으니 길을 걷다가도 향기로운 꽃들에 내 눈 반짝이며, 한 줄의 글귀에 감명받으며 우연히 듣는 음악에 지난 추억을 회상할 수 있으며,위로의 한 마디에 우울한 기분 가벼이 할 수 있으며, 보여주는 마음에 내 마음도 설레일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누리는 행복을 생각합니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건강한 모습으로 뜨거운 가슴으로,이아름다운 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오늘도 감사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