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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리즘 수필 : 원고지 2.5매 정도의 짧은 수필,
윤재천 교수는 그의 저서 <수필 아포리즘, 2012>에서
"'아포리즘'이란 용어는 신념화된 확신을 대중에게 알려 계도할 목적으로 외치는 함성으로 그 기원은 히포크
라테스가 저술한 <아포리즘>에서 시작된다." "이 말은
후세에 격언, 금언, 잠언 또는 경구로 해석되고 있다."
함축적이며 시적인 수필로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짧은
수필을 아포리즘 수필이라고 한다.
http://dsb.kr/detail.php?number=12406&thread=12r04
아포리즘 수필
윤재천 엮음 / 소소리 刊
많은 형태의 실험수필을 거쳐 ‘아포리즘 수필시대’를 눈앞 에 두고 있다.
고정된 것은 진화할 수 없다.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발전한 것이 인류의 역사다.
'변화'는 '성장'의 다른 표현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그동안 다른 것에 비해 수필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보수적 인상이 강하게 각인되었다.
관념에 묶이고 타성에 길들어 있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시도는 '의거'라고 불러도 좋다. 원고지 매수로 환산해 2.5매 - ‘아포리즘 수필시대’의 문을 연다.
이 일이 단순한 물리적 변화로 비칠지 모르지만, 화학적 대변혁으로 그 충격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 글을 읽는 사람만 아니라 쓰는 사람에게까지 당황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이 상황은 지속발전 되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독자가 즐겨 반겨야만 발전에 한 발 더 다가가는 일이 된다.
한마디 말이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회자되는 말이 ‘촌철 살인(寸鐵殺人)’이다. 설명하고 설득하는 데서 표현하는 것으로 성격이 바뀌는 일인 만큼 이것은 수필이 문학의 궤도 위에 한층 더 올라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구름카페문학상' 수상자도 함께 참여한 이 작품집이 첫술에 만족할 수는 없어도 자연스럽게 연착륙하여 많은 성과를 수확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힘을 모아 또 하나의 업적을 우리의 이름으로 각인할 수 있도록 도와준 '현대수필' 후원이사님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의미에서 이 책을 발간한다.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정진하는 작가가 되길 기원한다.
― 윤재천(한국수필학회 회장), 책머리글 <아포리즘 수필시대를 열며>
아포리즘 수필의 가능성에 대하여
https://naver.me/xLWl08rJ
(중략)
4. 수필에서의 '아포리즘' 출현
여타의 문학 장르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아포리즘적인 글이 있었으나 수필을 소재로 한 아포리즘은 기술이 없었다. 기이한 일이다. 운정 윤재천의 [수필 아포리즘과 아포리즘 수필] 출간을 기점으로 한국 문단에 첫 '수필 아포리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수필은 인간학
인간 내면의 심적 나상을 자신만의 감성으로 그려내는 한 폭의 수채화. 한 편의 수필에는 자신의 철학과 사유 현재와 과거의 행적, 미래를 예시하기 위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야 수필은 진솔한 자아 혁신을 위해 종전의 굴레를 과감하게 벗어나 관념의 벽을 헐어내야 진정한 자아가 형성. 문학의 힘은 진솔한 자아의 발견에서 비롯돼 수필은 성찰
0 과일의 상큼한 맛이 나면서도 막 피어난 꽃처럼 싱그러 움을 내재하여야. 성찰의 진지함으로 뼈대가 이루어져야. 논리에 함몰되어 목청 높이면 수필의 맛과 향기를 잃 게돼
운정은 그의 <수필 아포리즘>의 모두에서 이러한 화두가 창조의 초석이 되기를 바라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오랜 숙고를 통해 얻은 깨달음이 근간이 되어 상재 되는 땀방울이 가치 있는 조언이 되기를 기원한다. 모든 것은 시대적 추세를 무시할 수밖에 없고, 무시한 상태에서는 관심의 외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기술하고 있다.
5. 수필 아포리즘과 아포리즘 수필에 대한 이해
[수필 아포리즘] 과 [아포리즘 수필] 이란 두 책은
거의 동시에 나왔다. 이 용어를 주창한 운정의 의도는 각
각 다르다고 판단하였다. 두 책이 모두 아포리즘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혼란스럽긴 하지만, 운정의 의도는 그가
펴낸 책으로 구별해 보면 확연해진다. '아포리즘'과 '수필'의 어순이 달라짐에 따라 책의 내용도 전혀 달랐다.
가. 수필 아포리즘
[수필 아포리즘]은 수필에 관한 한 가지 주제를 놓고
쓴 아포리즘들이다. 이런 방대한 분량의 아포리즘은 필자가 알고 있는 한 이 분야에서는 운정이 효시가 될
것이다.
나. 아포리즘 수필
[아포리즘 수필] 은 아포리즘 만큼 짧은 형태의 수필
을 표방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단편 보다 더
짧은 초단편:을 지향하고 있었을 것이다. 5매 수필보다 더 짧은 수필을 쓰도록 해서 이 수필집을 이름 하여 [아포리즘 수필] 이라 제목을 붙였을 것이다.
6. '아포리즘 수필'의 필요성 대두
운정은 늘 변화를 강조하는 편이다. 문학에서 변화에 인
색한 모든 것은 소멸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것은 창조적 의지가 모자란 상태이고 대중의 기대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머물러 있는 것은 곧 썩는 것을 의미한다.
운정은 때로는 진리라 생각하는 것마저도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세상의 모든 것은 지속적인 변화를 통해서만 창조적 발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운정의 시선이다. 운정의 새로운 수필 형태인 '아포리즘 수필'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위의 책 [아포리즘 수필] 의 머리말에 보인 설명 이상으로 잘 기술된 것이 없다. 아직 이론적인 전개나 체계화된 설명이 없는 상태여서 여기서는 위의 책 머리말을 인용하기로 한다
고정된 것은 진화할 수 없다.
0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발전한 것이 인류의 역사다. 변화'는 '성장'의 다른 표현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그동안 다른 것에 비해 수필은 외적으로 내적으로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보수적 인상이 강하게 각인되었다. 관념에 묶이고 타성에 길들어 있었다. 이런 점에서 우리 의 시도는 '의거'라고 불러도 좋다.
"원고지 매수로 환산해 2.5매-'아포리즘 수필시대'의 문을 연다."
운정은 한마디로 우리 문단의 향도이다. 변화를 부르짓고 실제 작품 창작에서 이를 실행에 옮기면서, 제자들로 하여금 그런 창작적 기법을 실험토록 하고 있다.
7. '단수필'과 '아포리즘 수필'은 어떤 관계인가?
가. 단수필
수필의 길이는 정해진 바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작가와 비평가들은 전통적인 수필의 분량이 원고지 12매에서 2 0매 사이라는 데 대체로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03 이런 점에서 단수필은 일반 수필보다 짧은 분량, 원고지 5매 정도의 작품을 일컫는 용어로 이해된다. 즉 원고지 분량에 의해 생긴 명칭이다. 단수필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고 용어 선택도 각양각색이어서 짧다는 의미의 단. 또는 손바닥 장, 또는 단형(단형 형태)으로 부르고 있다. 대체로 단수필이란 용어를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나. 아포리즘 수필
'단수필'과 '아포리즘'의 두드러진 차이는 원고지 매수에 있다. 단수필은 200자 원고지 5매 정도로 한정했지만 '아포리즘 수필'은 그 절반인 2.5매로 절반을 줄이고자 한다.14)
다. 상호관계
길이 면에서 본다면 단수필에서 더 짧아진 초단수필이 아포리즘 수필이다. 보편적인 생각보다는 기발한 생각이나 기지를 표현한 짧은 글로 쓰겠다는 의도가 더해진 것 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8. 아포리즘의 두 가지 형태에 대한 필자의 실험과 결과
가. 수필 아포리즘'에 대한 실험
수필은 발싸개 추위를 이기는 방법은 서로 다르다. 개는 코를, 소는 등을 따습게 해 주어야 한다. 사람에게는 발이다. 우리의 육신을 덥혀줄 최소한의 보온 장구가 발싸개라면, 수필은 영혼을 따뜻하게 감싸줄 마음 싸개다. 누가 거지발싸개를 허섭스레기라 욕할 것인가? 그들에게는 유일한 월동장구인 것을. 수필은 대단한 문학이기 전에, 마음이 허한 사람 들을 위한 미온의 위로다. (필자의 졸작)
수필에 대한 평소의 소회를 기술한다는 차원에서 '수필 아포리즘'은 누구나 가능하다. 작가에게 있어서 글쓰기는 자기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독자를 위한 것 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이러한 경지에 있어서 이런 정도의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자. 착각은 자유다. 내가 쓴 글을 누가 금언이나 경구로 보아 줄 것인 가를 생각하면 그 시도가 무모한 것인지 아닌지는 스스로 알게 된다. 위의 글은 필자가 운정의 수필 아포리즘을 읽고 흉내 내어 본 것에 불과하다. 누구나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서 아무나 아포리즘을 탄생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평생을 수필에 몸담았던 노교수의 아포리즘이라면 몰라도. 이름 없는 작가의 수필 아포리즘을 누가 읽어나 줄 것인가. 무명작가의 허세라고 해 두자.
나. '아포리즘 수필'에 대한 실험
수필은 직구다.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하는 변화구가 아기의 손끝으로 재주를 부리려 들지 않는다. 꿍꿍이속을 두거나 함정을 파는 일이 없어 타석에 들어서면 누구나 칠 수 있는 공을 내 보낸다. 수필은 요란한 함성을 동반한 홈런의 흥분을 기대 하는 것이라기보다 독자의 조용한 반향을 바라는 쪽이어서, 애써 태를 내거나 환청 속에 헤매게 하지 않는다. 곧이곧대로 읽고, 보는 대로 느껴도 좋을 이유는 수필이 제정신 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던지고 있는 꾸밈없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아포리즘 수필] 작품집에 실린 필자의 졸고다. 대단히 미안하지만 '수필 아포리즘'과 '아포리즘 수필'을 구분할 수 없어 '수필 아포리즘'을 '아포리즘 수필'로 여기고 제출했던 것이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수필 아포리즘' 류지, 아포리즘 수필'은 결코 아니다. 단지 2.5매 이하 라는 길이에서 합격점을 받아냈을 뿐이다. 아포리즘 수필 에 실린 다른 작품들은 개인 비평이 될 것 같아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진정한 참모습의 '아포리즘 수필'이 어떤 것인지는 지금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설령 다시 똑같은 원고 독촉을 받는다 해도 필자의 재간으로서는 아포리즘 수필을 쓰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9. 아포리즘 수필'에 대한 평가
위 7. 다 항에서 '단수필'과 '아포리즘 수필'의 상호관계를 글의 길이와 '아포리즘'이란 차이에서 찾아보았기 때문에 '아포리즘 수필'에 대한 평가도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아포리즘 수필을 필자의 논리 전개를 위해 단수필 보다 더 짧다는 의미에서 길이를 설명함 에서 이 글에서는 편의상 '초단\초수필'로 이름 해 보겠다.
가. 길이로본 평가
'아포리즘 수필' 소위 '초단수필'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작은 그릇에다 충분히 수필이란 장르를 소화해 낼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문학의 미니화'가 이미 실패로 끝난 마당에 뒤늦게 수필에서 미니화가 논의되고 있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에서다. 500자도 안 되는 제한된 글자 수로 주제를 내면화하고, 문장을 형상화하기는 역부족이다. 2.5매 수필은 글의 원리에도 위배될 가능 성이 많다. 글의 기본단위인 문단의 원리에는 완결성이란 것이 있다. 한 문단에 있는 모든 문장은 그 문단의 중심사상을 충분히 뒷받침해야 한다. 그러려면 '초단수 필'은 글의 형식상 두 문단 구성이 불가능할 정도로 짧다. 이는 글의 가장 기본적인 구도인 삼단구조를 본질에서 갖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다. 처음, 중간, 끝 중에 어느 하나가 없어지거나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불완전한 문장이 될 수밖에 없다.
나. 아포리즘의 의미로 본 평가
'아포리즘 수필'은 아포리즘 적으로 쓴 수필이 되어야 한 다. 그렇지만 아포리즘적으로 수필을 쓸 수가 없다. 아포 리즘으로 수필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럿의 아포 리즘을 한곳에 모아놓아 큰 아포리즘을 만들 수도 없다. 위 2항에 소개한 '사랑'에 대한 아포리즘들을 한 곳으로 묶어 놓아보았다. 작은 것 여럿을 나열한다고 해서 큰 아 포리즘을 만들거나 수필로 재가공 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예)사랑에 대하여
사랑은 두 사람이 마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랑은 골동품 같아서 눈에 잘 띄지도 않을 뿐 아니라 부서지기도 쉽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은, 태양의 양면을 다 느끼는 것이다. 사랑은 지성을 넘어선 상상의 승리이다. 남자는 사랑의 첫 증상은 소심함으로, 여자는 대범함으로 나타난다. 사랑받길 원한다면, 사랑하라! 그리고 사랑스러워져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 사랑에 대한 치료는 더 사랑 하는 것밖에는 없다. 사랑은 습관이 되는 부드러움이며 끝없는 용서의 행위이다. 사랑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 도 같이 치료하는 묘약이다.
다. '아포리즘 수필'은 존재할 수 없을까?
아랫도리는 물고기이면서 위는 사람의 형태를 한 상상의 인간이, 아니면 물고기가 곧 `인어공주'이다. 바닷속 용왕의 딸로 물과 물을 오가면서 물고기와 어울리기도 하고 인간과 사랑도 하는 동화 속의 소녀다. 인어공주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2.5매의 '아포리즘 수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아포리즘 수필'은 희망 사항일 뿐 세상에 없는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며 기대이다.
당나귀와 말에서 노새가 나온다면 그것은 당나귀도 아니고 말도 아닌 노새라는 새로운 변종이 생긴 것이다. 누가 노새를 보고 당나귀라 할 것이며 아니면 말이라 할 것인가. 당나귀를 아포리즘으로, 말을 수필로 대입해 보면 '아포리즘 수필'은 당나귀와 말을 결합하는 일이다. 노새 가 더는 말이 아니듯 '아포리즘 수필'은 더는 수필이 아니 다.
10. 아포리즘 수필의 실현 가능성
가. 장르를 초월하는 수필문학으로서 퓨전 수필과 융합문학의 필요성에 대해 운정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어떤 장르냐 하는 것이 관건이 아니라,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고, 그로 해서 독자가 관심을 집중하는가가 독서의 풍토를 주관한다. 과거와 달리 시와 구별이 모호해진 수필이나 동화 같은 순수함을 지닌 수필, 소설 이상으로 독자를 긴장시킬 수 있는 수필작품과 비평적 성격이 강한 수필의 모습이 등장하여 문학적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퓨전수필'이며, 시적 수필, 소설적 수필, 비평적 수필, 희곡적 수필, 동화적 수필을 확장 발전시켜야 한다. 이 모두가 아우러져 녹아 내릴 때 '퓨전수필'이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연유 때문이다."@ 운정은 장르의 구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다
기존의 것과 이에 반하는 것이 녹아내려 또 다른 새로운 합을 형성하는, 즉 정반합의 논리가 문학에서도 적용 되는 것 같다. 결국, 문학의 퓨전화는 이종배합으로 혼용, 혼합을 의미한다.18 이런 점에서 보면 당연히 아포리즘과 수필은 같이 융합되어 '아포리즘 수필'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다.
나. 수필 장르 내에 존재해야
"수필이 변해야 한다.'라며 실험수필이라는 형태로 수필의 본질을 벗어나는 글을 쓰고 있다. ~중략~ '시는 시의 형식으로 써야 하고 소설은 소설의 형식으로 써야 한다."(9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문학 장르는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는 시여야 하고, 수필은 수필이 어야 하고, 소설은 소설의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필자가 정리해 보는 장르 간의 변화가 불가능한 이유를 다음의 예 3가지로 설명해 보고자 한다
예) 1) 피천득의 <수필>은 훌륭한 수필이다. (시->수필 ) 피천득은 수필가 이전에 시인이었다
20"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 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이 글은 시가 갖추어야 할 운율이나 메타포와 문장의 간 결함이 시가 되고도 충분하다. 아울러 수필이 갖추어야 할 구비조건도 모두 갖추었다. 비록 시의 형태를 빌려 수필이란 글을 썼지만 아무도 이 글을 피천덕의 시라고 부 르지 않고 수필이라고 부른다
예 2) 신경숙의 자전적 소설 (수필->소설)
[외딴방] 2은 소설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주가 된다. 이야기 속 주인공도 실제 작가 신경숙으로 등장한다. 열여섯에서 열아홉까지 산업체 특별학교를 거쳐 서울예대에 진학한 신경숙 . 교딴방] 은 그가 살아왔던 삶의 여정을 다시 밟아보는 작품이다. 대부분이 신경숙 작가의 세상을 보는 수필적 자기 술회와 세상 보기로 연결되어 있다. 다소간의 허구는 수필에서 인정하는 문학적 상상의 허구 수준에 불과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도 이를 수필이라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분류는 소설이다
예 3)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은 시다. (수필->시)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중략.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 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윤동주 시인은 쓸쓸하고 고적한 가을밤에 별을 헤아리며 자신을 찬찬히 되돌아보는 명상 혹은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진다.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부끄러운 내 이름자를 '흙으로 덮어 버리'고 그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것이다. 이 시를 줄바꾸기를 하지 않고 산문형태로 이어 쓰면 요즈음 부쩍 늘어나는 소위 단편 수필 작품에 못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윤동주의 시를 수필이라 말하지 않는다.
내용에서는 여러 가지를 섞은 퓨전 작품으로 효과를 높일 수는 있겠지만, 최소한 외형적인 면, 즉 장르 분류에서는 시는 시로, 수필은 수필로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이 말의 의미는 결국 아포리즘은 아포리즘일 뿐이고 수필은 수필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아포리즘도 하나의 문학 장르이기 때문에 이 장르를 끌어다가 수필을 쓴다는 것은 시로 수필을 쓴다거나 소설로 시를 쓰겠다는 시도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아포리즘을 쓰는 작가와 수필을 쓰는 작가는 아래와 같이 용어에서도 구분 되고 있다
23아포리즘을 쓰는 이는 아포리스트이며 수필을 쓰는 사람은 에세이스트로 구분되어 있다.
1) 아포리즘 (aphorism) -> aph-o-rist (금언 또는 격 언작가)
2) 수필 (essay) -> es-say-ist (에세이스트, 평론가)
3) 소설 (novel) -> nov.elist (소설작가)
다. 2.5매는 통한의 벽이다
수필에 2.5의 벽이란 단거리 선수의 10초 벽 허물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이 매수는 수필 작가들이 올려다볼 넘지 못할 통한의 벽이다. '아포리즘 수필 (초단 수필)'에 대한 평가는 이미 학자들 간에 논쟁이 되었던 단수필보다 훨씬 더 심각해질 것이다. 쉽게 써서 독자 대중이 읽어주기를 바란다면, 그런 심정으로 작품 활동을 한다면, 글은 무수히 많이 쓸지 몰라도 혼없는 글을 누가 읽을 것인가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 편의 수필 작품은 소재와 소재의 의미화가 이루어지고 메시지가 확연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짧은 수필이 수필문학으로 보기에는 독자들이 혼란스러워할 것이다. 짧은 시보다는 약간 길고 연는시보다는 더 짧아야 하는 초 단형의 '아포 리즘 수필'이란 수필 형태는 결코 누구도 넘지 못할 수필 가의 벽이 될 것이다
11. '아포리즘 수필'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가. 마당 수필에서의 경험
운정은 수필에서의 변화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다. 변화 방법론 중 하나가 '마당 수필'이다. 마당놀이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독특한 놀이 문화이다. 처음에는 양반들을 꼬집고 비판하는 역기능도 있었지만, 서민들의 힘든 삶을 달래주는 돌파구였다. 한바탕 놀고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주는 것이 마당놀이다. 마당 수필이라면 마당놀이를 생각하게 되고, 이는 곧 마당놀이를 위한 수필, 즉 희곡적 수필을 쓰라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수필을 아무리 희곡적으로 쓴다 해도 수필이 될 수 없다. 마당이란 공간에서 공연이라도 할 수 있는 정도의 글이라면 이것은 이미 수필이 아니라 희곡이란 영역으로 넘어가 버린다. 필자는 '마당 수필에 관한 소고'에서 운정의 뜻을 이렇게 설명해 놓았다.
운정의 '마당'을 장소 개념으로 볼 것이 아니라 마당이 가지는 상징성으로 보았다 .수필이 번성하기를 바란다면 열린 수필, 대중적인 수필, 재미와 유머가 있는 수필, 독자 친화적 수필로 가자는 주장으로 재해석한 바 있다
나. 아포리즘 수필의 재해석
운정의 '아포리즘 수필'은 수필을 아포리즘 형태를 쓰자는 의미가 아니라고 본다. 그보다는 짧은 문장, 간결함, 촌철살인의 의미를 담아내는 기지가 보이는 글을 쓰라는 권고로 재해석하고 싶다. 그렇다면 위에서 살펴본 위 9. 의 가, 나 항의 의미가 선명하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마 당 수필'에서의 마당이 실제 마당이 아니라 보다 독자와 가까워진 열린 수필을 의미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나가면서 (결론)
운정은 수필계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주도해 온 분이다 아방가르드 수필/ 메타 수필/ 마당 수필/ 반추상 수필실험 수필 등 여러 용어의 공통분모는 모두 변화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원고지 2.5매 분량이란 충분히 운정다운 제안이라 할 수 있겠다.
새로운 유형의 출현은 늘 신선을 충격을 주었고 반가운 일이다. 그렇지만 2.5매 분량의 '아포리즘 수필'에서 만큼은 적용 이전에 수필가의 공감대가 선행되어야 할 것 이다. 지금으로서는 격찬의 소리만 높을 뿐 실체가 보이지 않는 수필로 마치 신기루 같은 모습이다.
긍정적인 평가는 수필에서 문장이 더 간결해지고 의미 심장해지기를 바라는 운정의 소망이 담겨 있다는 생각에서 시도만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맹목적인 추종이나 호평은 개인을 위해서도, 수필 분야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성급한 사람들의 '아포리즘 수필'에 대한 환호 성은 필자에게 벌거숭이 임금을 생각나게 한다.
시대 조류에 뒤처지지 않는 사람만이 쓸 수 있다는 '아포리즘 수 필'은 마치도 착한 사람에게는 보이고 마음 나쁜 사람에 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임금님의 옷 존재와 같을 것이다.
세상에 보이지 않는 옷이란 없다. 보이지 않을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가 아이들의 놀림감이나 된 '벌거숭이 임금 님'과 '아포리즘 수필'을 쓸 수 있노라고 자랑삼는 수필가 의 모습이 필자의 눈에는 자꾸만 겹쳐져서 보인다
아포리즘 형식의 수필이론
https://naver.me/5vM1bwjE
수필 아포리즘 (요약)
윤재천
수필은 인간학이다. 한편의 수필은 자신의 철학과 사유, 현재와 과거의 행적, 미래를 예시하기 위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수필은 창의 문학이다 함축과 묘사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적절한 예시를 들어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문학이 다. 수필은 언어예술이다. 논설이나 훈계조의 직설화법이 아니라 정서가 흥건하게 배어있는 메타포이다. 수필은 신문고 작가는 세상을 향해 눈과 귀를 열어 놓는 자세가 필요하다. 수필은 큰 그릇, 열린 사고로 세상을 읽어가는 놋쇠그릇. 그 소재는 제한되지 않고 무엇이나 그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거대한 그릇이다. 수필은 해바라기.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수 필은 인간고찰. 과거를 비춘 미래의 통로로 '나'를 통한 우리'의 고찰. 수필은 마음수련. 지식을 넓고 고르게 습 득해야. 수필은 비망록. 차별성 있는 소재로 글감을 다루 고 남과 다른 목소리로 말할 줄 알아야.
수필은 날개옷 상상의 폭만큼 강도이 증폭
수필은 영육의 훈련. 수필은 혁신자 뿌리 깊은 나무. 수필은 진실게임. 수필은 소신공양. 수필은 삼전지묘 수필은 등불. 수필은 아이러니. 수필은 수사학 수필은 아이패드. 수필은 독대. 수필은 글로벌 수필은 촌철살인 수필은 흐름. 수필은 창의성
수필은 새바람. 수필은 진국. 수필은 은유문학. 수필은 생각의 너비. 수필은 노정의 문학. 수필은 열린문, 모든 장르를 함의한 문학으로 포용력을 지니려면 융합적 사고로 종합에술로서의 당당함을 지켜야 한다.
수필은 마당발. 수필은 통섭. 수필은 아우르기. 수필은 포용의 용기. 수필은 깃발. 수필은 개성문학. 수필은 풍류문학. 수필은 화수분. 수필은 전천후문학. 수필은 시도. 수필은 마음의 길. 수필은 열린마음. 수필은 촛불문학. 수필은 천의무봉 구성이나 소재. 주제나 기법에 대해 디테일한 강의를 하지 않는 것은 선험의 이론 없이 열린 마음으로 글을 쓰라는 의도. 수필은 도전문학.
수필은 광활 홑눈, 두 개의 누늘 갖고도 세상을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시대에 한 개의 눈으로도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면 그눈은 개성적인 눈. 수필은 마당놀이 수필은 진경산수화, 사실 자체를 기록하는 것에서 벗어나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상상력을 통해 설정된 가상적 현실-상상이 내재된 정선 훼 의 림 같은 것이 되어야. 수필은 모색. 수필은 무궁무진. 수필은 갈등문학. 수필은 개성파. 수필은 화룡점정 수필은 치유은사 치료해가는 작업. 수필은 고이지신
과거의 것은 고루할 수 있지만, 조상의 슬기로움이 서린 것은 전통이 될 수 있고, 내일을 위해 형성되는 문화의 인 식은 자유의 산물이 돌 수도 있는 것이 수필이다.
수필은 이단자, 혁신을 위해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야. 수 필은 주제문학. 수필은 미래파, 과거에 얽매이지 말아야
수필은 끼, 확고한 자기 영역을 구축하는 열정과 몰입의 '끼'가 필요. 수필은 이미지. 수필은 생명력. 수필은 선지자. 수필은 진솔한 자아. 수필은 총천연색, 금기가 없는 문학. 수필은 난수표, 수필은 민주주의, 그것은 개성과 화합의 다의성률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수필은 융합 예술, 부수고 깨뜨려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다듬고 손질하며 독특한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이 수필의 행체주의. 수필은 절차탁마, 현재의 작법에서 과감히 탈피해 새로운 관점에서 문학적 진리를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 디자인 문학. 상징문학, 단순히 있었던 일을 기록해 후세에 전하는 사관이 아니어서 시대의 정신과 정서 유행까지 선도하는 역량과 확고한 소신이 필요.
수필은 시의성 원대한 꿈을 품은 사람의 하루 노역은 진리에 다가가는 결음걸이와 다르지 않아. 이것이 최고의 시의성이 유지되는 길. 수필은 과도기. 수필은 개방주의, 정체(에서 벗어나야. 통찰력. 다양화. 수필은 공감, 작가 자신의 부각과 노출에 지나치게 치중하지 않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을 언어화함으로써 일체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기여 하는 것이 필요한 덕목
수필은 명장, 자신만의 향기를 뿜어낼 때가지 오랜 시간 숙성의 기간을 거쳐야. 수필은 개성미, 문장의 생명은 의미없는 미문이 아니라 개성미. 수필은 시대정신, 흐 름을 거스르는 가운데 신선한 것을 찾아내야. 수필은 무한궤도, 자유로운 영혼의 창조 작업. 수필은 전위예술, 편협하지 않고 소통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수필은 혁신 예술, 기존의 것을 무조건 거부가 아니라, 전통을 끌어안으며 상상의 기폭을 증강해 확대된 시각으로 써야.
수필은 재창조, 수필은 고유의 색, 기자처럼 글을 쓰는 사람을 '수필가'러 부르는 것도 옳지 않고, 기자가 수필 같은 기 사를 쓰면 기사라고 인정하지 않아
수필은 만물상, 세계가 하나가 되는 시점에서 서정수필 만을 고집하는것은 세계화의 흐름을 막는 '쇄국수필'.
수 필은 삼위일체, 마케팅경영의 전략이 필요. 수필은 내공 쌀기, 수련을 무시한 획기적 시도는 자칫 혼란을 자초 홍. 수필은 시각적 수사1, 음식도 모양이 좋아야 구미가 당기듯 문장도 시각적 효과를 살려야. 수필은 개발, 사실과 경험만을 기록하는 글은 회상문, 새로운 영지를 확보해야 수필의 영역이 넓어져. 수필은 우회의 여유, 마주앉아 차 한 잔으로 목을 축이며 정담을 나누고 견 해를 피력해 동의를 구하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
수필은 바다, 꿈기와 정답이 없는 문학. 수필은 열린음악회, 리듬 과 흐름을 유지하며 '열린 음악회 같은 글을 쓰도록. 수필은 퓨전, 21세기는 퓨전의 시대. 수필은 광야,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수필은 브랜드, 자기만의 상표가 필요. 수필은 융합주의, 사회현상도'해체'와 '융합' 수필은 반추 ,다의적 수필은 그 특색이 불투명한 메시지로 독자에게 다가가 이미지를 제공. 물결, 시대의 흐름에 맞도록 계발해야 젊은 독자가 나타나. 수필은 술이부작. 적기만 하고 짓지 않는 사실적 기록이 아님, 사유와 의미화가 있어야 문학성 있는 글.
수필은 탈장르, 모두가 뛰는 시대에 혼자 껏꼿한 자세를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 수필은 컨버전스, 서로.다른 상상력이 충돌할 때 발전적 방안이 모색된다, 현대는 하나만 고집하는 일방통행의 시대가 아님. 수필은 뮤지컬. 수필은 메타. 장르의 벽을 과감히 뛰어넘어야 진정한 수필문학 발전의 길. 수필은 수심의 본령. 수심은 수연에서, 깊숙이 내 안으로 들여다보는 성찰이 작가와 글을 깊이 있게 해. 수필은 보물창고. 수필은 형상화,인간다움을 발견해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일상의 사실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것,
수필은 시심, 수심과 시심은 한 뿌리에서 자라 상관 에 차별점이 없고 개념의 차이는 있지만, 그 근본은 감흥을 목적으로 하며 언어를 재료로 사용. 수필은 자기 영주 자기만의 길이 있어야. 수필은 승화, 무겁고 거친 주제라도 한바탕 춤사위를 통해 연기처럼 승화시켜야.
수필은 시대반영. 수필은 여정. 수필은 노래, 운율을 품은 산문. 수필은 자기면모. 이탈이며 도전. 흙탕물을 만들며 휘청거려도 이 길을 피하면 올바른 작가의 태도가 아닌 촌극에 불과. 수필은 성찰, 논리에 함몰되어 목청을 높이면 수필의 맛과 향기를 잃게 돼. 수필은 길손, 깨달은 자의 술회가 아닌 길을 가는 사람의 눈에 비친 풍경. 자초 지정을 설명하려 들지 말고 함께 걸으며 나누는 대화처럼 현장감을 느끼게 해야.
수필은 만화경, 사실+신화+상상, 될 수 있는 한 그 실상을 설명하지 않도록. 수필은 다 문학 뿐 모든 장르가 소재가 되는 종합. 수필은 파수꾼, 수필은 리모델링, 작가 자신의 문학적 리모델링이 필요. 수필은 첫 봉오리, 글 속의 자아는 개인에 한정되지 않고 모든 이가 돼. 공유할 수 없는 것은 생화가 아닌조 화에 불과. 수필은 사랑, 수필 발전을 위해 험한 길을 걸어온 도반에게는 가슴 적시는 온기로 남기를.
수필은 나의 외골수 행보, 수필에 대한 행보는 조용한 가운데 흐름. 어느덧 수필에 몰두해 온 지 57년!
자료출처 윤재천 [수필 아포리즘] (서울: 소소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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