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제3장 절대절명 어느 틈엔가 봄이 되어 있었다. 절진이 대기(大氣)를 기이하게 변화시키고 있는 잠룡비전이었으되, 오는 봄만은 막지 못하고 있었다. 짙붉다기보다 투명한 연분홍색으로 피어난 영산홍(映山紅)은 무더기 무더기 피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자욱한 안개가 서러운 손길처럼 일대를 애무하고 있었다. 높은 하늘은 묵룡(墨龍)의 군무(群舞) 같은 먹장구름에 의해 휘어 감기고 있었으며, 한철(寒 鐵)로 만든 화살촉처럼 차가운 빗줄기가 투둑거리는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꽃잎이 빗줄기를 이기다 못해 떨어져 내렸다. 마치 붉은 날개를 가진 나비 떼가 죽어 널브러진 듯이, 호수 근처는 핏빛 꽃잎에 뒤덮여 있 었다. 이 날, 기이하게도 잠룡비곡의 대기는 고요한 편이었다. 빗줄기가 뿌려지기는 하였으나, 그 리 세차지는 않았다. 허공을 보라! 거대한 원통이 단장애(斷腸崖) 위에 세워져 있지 않는가. 그것은 실로 기기묘묘한 구름의 조화였다. 하늘로 들어가는 동굴처럼. "폭풍(暴風)의 눈(眼)에 들어선 것이다. 그러하기에, 한 시진 정도는 검으나마 하늘이 보이는 것이다."맑은 목소리이다. 힘이 있고 강하며, 그리고 실로 뜨거운 인간의 열정이 스미어 있 는 목소리였다. "안다, 바보 자식!" 또 하나의 목소리. 두 개의 목소리는 비슷한 나이 또래의 소년(少年)들의 목소리였다. 빗물이 떨어질 때마다 동그란 파문이 번지는 호수. 그 가운데, 희끄무레한 두 개의 물체가 오래 전부터 머물러 있었다. "훗훗… 늘 이 곳을 탈출하려 했었는데, 그 기회가 실로 기묘하게 닥쳐 오는구나!"하이얀 치 열이 한 소년의 입매에서 드러난다. 사기(邪氣)라고는 전혀 없는 맑은 표정이다. 그것은 그 아무리 사악한 것이라 하더라도 허물 어뜨리지 못할 순수한 인간의 열정이었다. 그는 상의를 벗은 채 결가부좌를 틀고 머물러 있었다. 배꼽 부분까지 차가운 한천수(寒泉水)가 차오르고 있었다. 그의 뒤쪽, 그와는 대조적으로 체격이 크고 강인한 인상을 가진 미소년 하나가 머물러 있었 다. 그는 번뇌(煩惱)에 가득 찬 표정을 하고 있었으며,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소년의 등을 밀 어 주고 있는 실정이었다. "조운(照雲), 다시 생각해 봐라. 아직도… 한 시진 정도의 여유는 있다.""옥린(玉鱗), 너는 나 를 잘 알지 않느냐? 나란 놈은 성질이 고약해. 한 번 하고 싶다 결정한 것은 무엇이든 다 하고 마는 녀석이다.""안다. 너무나도 잘 안다. 너는… 가장 강한 녀석이다. 비록 너의 혈관 (血管)을 흐르는 피가 의혈(義血)이지, 마혈(魔血)이 아니라 하더라도… 너는 강한 녀석이 다."뒤쪽에 있는 소년, 그의 가슴에는 검흔(劍痕)이 한 자 길이로 새기어져 있었다. 그것은 새기어진 지 얼마 되지 않는 것으로, 본래는 흰 뼈가 들여다보일 정도로 깊은 검상 이었다. 하나 한천수에 목욕을 하는 가운데 그것은 거의 다 아물었고, 지금은 분홍색 상흔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초옥린(超玉鱗). 이 곳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혈통을 지니고 있다. 철목진, 징기스칸은 바로 그의 외조부(外祖父)가 된다. 또한 북방(北方)에서 악마동맹(惡魔同盟)을 구축하고 있는 악마무후(惡魔武侯) 사엽풍(史葉 風)이라는 인물은 그의 숙부(叔父)가 된다. 그는 여타한 소년소녀들과는 완전히 다른 악마의 혈통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지난 십 년의 연무 가운데, 칠 년째 되는 해까지는 서열 제일위를 누구에게도 내주지 않았었다. 기실, 이 곳 잠룡비전은 그를 초인(超人)으로 기르기 위한 장소라고도 할 수 있었다. 두 살 때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외웠으며… 네 살 때에는 태극(太極), 팔괘(八卦)의 검도(劍 道)를 능숙히 펼치었다. 그의 나이 여덟 살 때 이 곳에 들어섰는 바, 그 때에도 무려 이백 권의 무공비급을 줄줄 외 우고 있는 실정이었다. 만에 하나, 지금 그의 바로 앞에 앉아 그에게 잔등을 떠맡기고 있는 소년만 없었더라면… 그는 패배감이라는 것을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을 것이다. 능조운(凌照雲). 웃음이 많은 녀석이다. 이 곳에 들어온 기재들 중 가장 약골로 알려졌으나, 무공 성취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 허했다. 그는 초옥린에 비해 한 살 아래이며, 무공을 익히기 시작한 시기도 초옥린에 비해 사 년이 뒤지는데… 잠룡비전에 안배된 초인무관을 가장 빨리 통과하는 기적을 이룩한 바 있었다. "너는… 내게 졌다. 삼천팔백사십오 초(招) 만에……!"능조운은 팔짱을 끼고 있었다. 해맑은 웃음이다. 하나, 너무나도 맑고 밝은 웃음 뒤편에는 실로 짙은 우수가 서리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네가 내게 도전했을 때, 나는 네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패자(敗者)는 승자(勝者)의 말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고…….""그… 그렇다." "훗훗… 그리고 우리는 아무도 모르는 지하궁에서 격돌했고, 결국 너는 내게 지고 말았다. 너의 잠마비류검(潛魔飛流劍)이 능수능란하였으나, 너의 심기가 틀어진 상태이기에 나의 산 화표묘식(散花飄妙式)에 의해 너의 철목검(鐵木劍)은 잘리고 너의 가슴이 베어진 것이다."" 으음……!" "훗훗… 너와 나는 이제까지 백팔 차례 싸웠고… 훗훗! 어렸을 때 육십 번에 걸쳐 네가 연 승(連勝)한 이후, 이제까지 쭈욱 내가 너를 이긴 것이다."히죽……! 능조운이라는 녀석, 그의 웃음은 무사의 웃음치고는 너무 헤퍼 보인다. 그는 언제나 탈속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이 곳에 안배된 모든 신공괴초(神功怪招)를 모조리 터득한 두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나머지 하나는 바로 초옥린! 그와 초옥린은 운명의 경쟁자라 할 수 있었다. 혈통계보를 따진다면 초옥린이 존귀하며, 개인적인 자질을 따진다면 능조운이 훨씬 앞섰다. 비(雨)는 세우(細雨)로 화하고 있었다. 아마도 빗발이 빠르게 스러지는 이유는, 이 곳이 폭풍의 눈 속으로 빠르게 접어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두 녀석의 어깨 위로 빗물이 흘러 내렸다. "조운, 네가 승자다. 나는… 너를 승자로 인정했다. 그러한 이상, 너는 유일한 생존자(生存 者)가 될 수 있다.""훗훗… 나는 가 봤자 소용이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으음……!" "교두들이 나를 선택했음을 아는 사람은 너와 나, 두 사람뿐이다. 우리 두 사람만이 천시지 청술(天視地聽術)로 평의회를 엿들었다. 훗훗……!"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능조운과 초옥린은 운명의 마지막 선택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긴 이들은 진실된 무공에 있어 이미 교두들의 경시를 월등히 능가하고 있었다. 이 년 전, 교두들은 두 천재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천명한 바 있다. 두 천재는 그 날 이후, 비급을 보며 무공의 경지를 스스로 높여 오곤 했던 것이다. 능조운은 도초(刀招)와 검초(劍招)를 연구했고, 그 나머지 시간에는 제반 잡학(雜學)을 연구 하며 출관의 날을 기다렸었다. 반면 초옥린은 신법(身法)과 장안술(障眼術), 환술(幻術) 등의 마공(魔功)을 주로 연마하며 훗날의 군림야망(君臨野望)을 기르고 있었다. 능조운은 한족(漢族)이고, 초옥린은 몽고족(蒙古族)이었다. 초옥린은 원황실의 인물이었으며, 능조운은 송황실의 후예라 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원이 망했다는 것은, 초옥린의 가문이 무너졌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교두들은 헌신적이며 대제왕(징기스칸)에 대한 충성심이 지대하신 분들이다. 모두 사려 깊 으신 분들이나, 그들의 선택은 잘못되었다!"능조운은 웃음을 멈추고 있었다. 개성이 강한 얼굴이다. 그리고 그의 어조는 기이한 침투력을 지니고 있어, 그의 말을 듣다 보면 저절로 그의 말에 혼백을 빼앗기게 된다. "나를 선택해서는 아니 되는 일이었다. 의당… 옥린, 네가 선택되어야만 했었다!""으음……!" "훗훗… 악마동맹(惡魔同盟)의 저력(底力)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되, 그들은 머지않은 장래 에 대륙으로 접어들 것이다.""……." "적어도… 오만 고수(高手)가 있을 것이다. 십대잠룡은 그들을 지휘하도록 안배되어 있었다. 나는 그들을 증오하나, 너는 그들을 만나고 싶어하며 지난 십 년을 보냈다.""……." "한데, 무너지고 만 것이다. 우리를 기른 나으리들이… 훗훗! 늘 그들이 파멸하기를 바랬었 는데… 막상 그들이 파멸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묘하게도 섭섭한 마음이 든다. 훗훗! 그들 의 직계후손인 너는 다를지 모르나, 나는 그들에게 많은 빚을 졌다고 여기고 있다."능조운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초옥린은 이제까지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강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옥린, 네가… 가라!" "네가 가야 한다. 네가 더 강하니까!" "어리석군." "으음……!" "너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네가 가야 문제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마(魔)를 증오하고 있다. 내가 악마동맹을 다스리게 된다면… 그 곳의 우두머리들은 모두 내게 죽을 것이다. 훗훗!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너다. 그러하기에, 너 는 네 손으로 교두들의 결정을 바꾸어 보고자 내게 도전했던 것이다.""……!" "교두들은 최후의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철사자(鐵獅子)가 곧 당도할 것이다. 훗훗! 나는 괜 찮다. 네가… 가라! 그뿐이다! 더 이상 말한다는 것은 피차에게 피곤한 일일 것이다. 나는 네게 생존 기회를 줌으로써, 나으리들이 내게 해 준 모든 것을 빚 갚고자 하는 것이다."능조 운은 또다시 웃고 있었다. 지난 십 년에 걸쳐, 적어도 사백 번 정도는 탈출하고자 시도했던 녀석. 그리고 번번이 절진 의 위시에 휘말려 좌절하곤 했으면서도 도망치겠다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은 녀석이다. 어디 그뿐이랴? 그는 실로 혹독한 마공 수련을 받으면서도, 체질적인 신기(神氣)만은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 었다. 초옥린은 처음에 그의 나약함과 고집을 비웃었으나, 차츰차츰 그의 개성과 천재성을 두려워 하게 되었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그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에게 묘한 우정(友情)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 다. 두 소년의 사이는 이렇듯 복잡미묘한 사이였다. "조운, 너도 고집이 있으나 나도 있다. 나는 가지 않겠다. 나는 여기 남아 끝까지 싸우다 가… 화약이 터지는 가운데, 산화하겠다.""어리석군. 가야 할 사람은 너다. 그리고 남아야 할 사람은 나다. 너는 그 진정한 이유를 알지 못하느냐?""진정한 이유?" "훗훗… 네가 남으면 모두 죽을 가능성이 십중십(十中十)이다. 하나, 내가 남는다면 조금이 나마 생존의 가능성이 있다. 적어도 현재 이 상태에서는 내가 너보다 강하니까!"능조운은 늘 자신만만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초옥린의 눈빛이 미묘해졌다. 산다는 것은 귀중한 것이다. 특히 이 곳에서는……. 여기 남는다는 것은 지옥에 들어서는 것이고, 살아난다는 것은 무림제일인의 지위를 보장받 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능조운은 초옥린을 대신 보내고, 자신이 남고자 하는 것이다. "그뿐이냐?" 초옥린이 오랜만에 반문했다. 능조운은 피식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는 오른손을 초옥린의 왼쪽 어깨 위에 슬쩍 올려놓았다. "진정… 그뿐이냐?" 초옥린은 다시 한 차례 물었다. 그리고 능조운은 돌연 옥지(玉指)를 빳빳이 세웠으며, 초옥린은 문득 몸이 찌릿해짐을 느꼈 다. "어… 어이해… 나를 점혈(點穴)하지? 찢어 죽일 놈!" 초옥린은 격하게 소리치며 스르르 의식을 잃어버렸다. 능조운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묘하게도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라는 것이 흔적도 남아 있 지 않았다. "꼭 그뿐은 아니다. 사실… 나는 네가 늘 부러웠다." "……." 초옥린의 몸뚱이는 축 늘어져 능조운의 팔과 허리 사이에 끼워졌다. "네게는… 어머니가 있음을 안다. 그분은 네가 돌아오기를 늘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안다." "……." "누군가 자기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훗훗……!"슷슷-! 능조운은 천천히 떠올랐으며, 등평도수(登萍度水)를 발휘해 물을 디디며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우리들을 기른 나으리들은 성공하지 못했다. 철저히 실패 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나나 너나모두 초인은 되지 못했으니까!"능조운은 천천히 손을 목덜 미로 갖고 갔다. 그 곳에는 구슬 목걸이 하나가 걸리어 있었다. 그것은 제일교두가 은밀하게 능조운에게 전한 것으로, 과거 징기스칸의 목에 걸리어 있던 천랑벽(天狼壁)이었다. 그것은 신수(神獸) 철사자(鐵獅子)를 부르는 표식이기도 했다. 철사자는 거대한 푸른 이리를 말한다. 철사자는 독(毒)도 두려워하지 않고, 불(火)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루에 만 리(里)를 달리 며, 한 번 울부짖으면 구천을 들썩거리게 한다. 성질이 지극히 잔혹해, 천랑벽을 지니고 있지 않는 사람을 본다면 즉시 물어 죽이고 만다. "옥린, 내게 미안해 할 것 없다. 왜냐하면… 내가 죽건 살건, 앞으로 쭈욱 미안해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이기에!"슷슷-! 그는 이윽고 영산홍 가득한 화원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내가 이 지옥에서 산다면, 제일 먼저… 바로 너를 죽일 것이다. 그리고… 악마동맹을 붕괴 할 것이다. 훗훗! 그들은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 자들이다. 나를 강하게 기르기는 하였 으나, 그들은 나를 파멸시켰다. 그래, 그것이 바로 내가 여기에 남고자 하는 진정한 이유이 다!"그는 단애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지금은 빗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보라! 하늘이 실로 푸르게 깨어나고 있지 않은가. 창궁(蒼穹), 이제는 진정한 푸른 하늘이었다. 폭풍의 눈(暴風之眼). 잠룡비전은 폭풍의 눈 한가운데 들어간 것이다. "저리도 맑은 하늘은… 꼭 십 년 만이군. 폭풍이 절진의 독기를 모조리 말아 올렸기 때문이 리라!"능조운은 힐끗 하늘을 바라봤다. 햇살을 오랜만에 강하게 느끼기 때문인지, 그의 눈가가 찌푸려 들었다. 순간, 어디서 들려 오는 포효일까? 우우우……! 너무나도 머나먼 곳에서 이리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었다. 아련한 곳에서 들려 오는 포효성, 그 소리는 바로 철사자의 포효 소리였다. 창궁 아래, 능조운은 천랑벽을 초옥린의 목에 조용히 걸어 주고 있었다. "가라, 너의 가문으로! 그 곳은 너의 대지(大地)이지, 나의 대지는 아니다. 그래서 내가 남고, 네가 가야 하는 것이다!"능조운은 초옥린을 흰 바위 위에 반듯이 눕혀 두고 천천히 뒤로 물 러나고 있었다. 슷슷슷-! 몇 줄기 선(線)이 파고든다. 짙은 안개를 가르며 사방에서 괴영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까마득히 높은 마천정(摩天頂). 그 곳에서 천 장 아래되는 지옥의 분지에 잠룡비전이 세워져 있다. 이제까지 마천정에 외부인이 모습을 나타내기는 십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었 다. 속속 모여드는 무림기인들. 하나같이 흥분한 천하의 기인들은, 막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는 십색광채(十色光彩)를 볼 수 있었다. 너무나도 찬란한… 화려하기보다는 은은하며, 눈을 따갑게 하기보다는 눈시울을 붉게 물들 게 하는 신비한 굴복의 힘을 지니고 있는 빛깔이다. 창궁은 그 신비로운 빛에 휘어 감기고 있었으며, 소리보다는 빠르게 폭풍을 가르며 덮쳐 들 었던 강호계의 기인들은 그 놀라운 빛에 휘어 감기며 멈칫멈칫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마(魔)가 아니다. 신(神)의 기운이다!" "아아, 저리도 놀라운 빛이 있을 수가! 바로 전설상의… 천광신홀(天光神笏)이다.""오오, 십 칠 년 전 금릉(金陵)에서 저 빛이 떠올랐었다. 능가장(凌家莊)이라는 곳에서 그 때 누군가 태어났다는 말이 있었었지. 한데, 그 빛이 다시 나타나다니……?""저 기운의 임자는 능히 대 륙(大陸)을 얻으리라. 그를 얻거나, 그를 죽여 버려야 한다. 그래야 그에게 정복(征服)되지 않는다!"기인들의 숨결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천광신홀(天光神笏),일컬어 운명의 빛이다. 그 빛은 천년천재(千年天才)의 골수(骨髓)에서 뿜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그는 대륙영웅(大陸英雄)이 되며, 그가 무공(武功)을 터득한다면 강호가 그에게 굴복하고, 병 법(兵法)을 터득한다면 천하가 그에게 정복당한다는 신화가 있다. 한데, 악마의 영토 안에서 천광신홀이 떠오르다니……? 같은 시각. 거대한 푸른 그림자가 훌훌 날아 내리고 있었다. 소리보다도 빠르게 다가서는 물체. 남는 것은 폐부를 찢어발기고 고막을 쥐어뜯는 긴 포효 소리뿐이다. 푸른 검(劍)이 허공을 끊고 날아 내리듯, 어떠한 거대한 푸른 물체는 잠룡비전 쪽으로 훌훌 날아 내려가고 있었다. 제일교두(第一敎頭). 그는 꽤 오랜만에 지상으로 나섰다. 그는 모든 것을 마무리진 듯, 그러나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며 암도(暗道)를 나서는 것이다. 그는 죽음을 잊어버린 듯, 편안한 표정 가운데 지상으로 나섰다. 나머지 구십구(九十九) 교두(敎頭)는 지하석전에 머물러 있는 상태이며, 그 이유는 십대잠룡 가운데 아홉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제일교두는 피곤하면서도 편안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고, 문 바로 밖에서 팔짱을 낀 채 히죽 히죽 웃고 있는 한 소년을 보면서 얼굴을 추악히 일그러뜨릴 수밖에 없었다. 풀잎을 질끈질끈 씹으며 싱거운 표정을 던지고 있는 녀석. 제일교두는 그의 유연한 시선을 받으며 입을 따악 벌리고 말았다. "조… 운! 어이해, 네가 남았지?" 능조운(凌照雲). 그는 제일교두가 걸어 나오는 것을 바라보며 몹시도 쾌활한 표정을 지었다. 핏물이 떨어져 내릴 듯 짙붉은 진홍(眞紅)의 입술이 가볍게 벌어지며, 그 누구라도 쉽사리 잊어버리지 못할 매력적인 그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오늘은… 날씨가 매우 좋군요." "……." 제일교두는 오랫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이틀 전, 그는 능조운을 은밀히 찾아서 그가 유일한 생존자로 발탁이 되었다는 것을 전했으 며… 그에게 천랑벽을 전한 바 있었다. 그는 능조운이 이 곳을 탈출했다고 여기고 있는 참이었다. 한데, 능조운이 히죽히죽 웃으며 그가 나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어, 어이해… 떠 나지 않았느냐?" 그는 넋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능조운의 쾌활한 표정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교두 나으리들의 가르침은… 완벽하지 못했던 것 같소이다. 가르침대로라면 의당 나는 초 인(超人)이 되어 날아올라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니……!"그의 웃음은 천성적인 소박함 을 지니고 있었다. 제일교두로 말하자면 능조운의 나이 일곱 살 되던 해, 그를 발견하고 잠룡오백호(潛龍五百 號)로 선발한 장본인이었다. 그는 꽤 오랫동안 혼이 나간 표정으로 능조운을 바라봤다. 능조운의 어깨 너머 맞은편 벼랑으로, 한 줄기 푸른 선이 치솟아 오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능조운의 얼굴을 향해 일 장을 후려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기수(奇獸) 철사자(鐵獅子). 일컬어 초원(草原)의 바람(風)이라 불리는 이리이다. 푸른 갈기털을 갖고 있는 철사자가 아니고서는 그 무엇도 유리의 벽을 치솟아 오르지 못할 것이다. 우우……! 산(山)이 허물어지는 듯, 포효 소리는 새벽의 적요를 깨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보라! 반나절 가량 중지되었던 대폭풍(大暴風)이 또다시 기세를 발휘하는 것이 아닌가?창궁은 일 순 묵궁(墨穹)으로 화하였으며, 선풍(旋風)이 내리덮치는 가운데 폭우(暴雨)가 다시 시작되 었다. 쏴아아… 쏴아아……! 장대비는 일대를 일순 우국(雨國)으로 만들었다. 폭우가 잠룡비전까지 떨어져 내린다는 것은 폭풍의 눈이 지나갔다는 뜻이며, 그 뜻은 바로, 이 곳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뜻이기도 했다. 기실 철사자라 하더라도 이 곳을 쉽사리 통과할 수 없었으며, 이 곳이 폭풍의 눈 안으로 들 어가는 순간만은 진세가 미약해지기에 철사자가 이 곳으로 쉽사리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이 다. "바보 자식!" 제일교두는 상체를 휘청거렸다. 그러나 그의 눈에 떠오르고 있는 것은 극한 실망의 빛이라기 보다, 실로 뿌듯한 인간의 눈 빛이었다. 그가 무사가 되어 느꼈던 모든 기쁨 가운데, 지금 이 순간 그가 느꼈던 기쁨보다 큰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능조운은 유일한 탈출자가 될 기회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여기 남은 것이다. 그것은 그가 잠 룡비전에 대해 한 최초이자 최후의 항명(抗命)일 것이다. 폭풍이 덮치기 시작하며 잠룡비전을 천연의 험지로 만들고 있는 호로병 모양의 단애 위쪽으 로 꽤 많은 그림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파팟팟-! 부유(浮遊)하는 유령의 그림자처럼 나타나는 무림의 기인이사들. 그들은 십 년 만에 처음으 로 잠룡비전을 방문하는 불청객이었다. 척마멸사(擲魔滅邪)를 위해, 그리고 복수(復讐)를 위해……!또 어떠한 이는 잠룡비전에 감추 어졌다고 믿어지는 기진이보(奇珍異寶)를 얻기 위해 모여들었다. 우르르르릉-! 광풍이 절벽에 부딪치며 경천동지할 굉음이 터져 나왔다. 새까맣게 모여드는 정사쌍도(正邪雙道)의 기인들. 원(元)이 유지하고 있던 최후(最後)의 연무관(緣武關)은 열 겹 넘게 포위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절대절명(絶對絶命)의 순간. 잠룡비전 안에서는 실로 미묘한 회합이 시작되고 있었다. 술(酒)이라니? 일대가 새까맣게 뒤덮이고 있는데, 잠룡비전의 교두들과 기재들은 술을 나누어 마시기 시작 한 것이다. 물론 구대잠룡 모두 다 참석한 것은 아니었다. 절반 가량은 이 곳이 포위되었다는 것을 느끼며 자리를 떠난 상태였다. 해어화(解語花)가 그러하고, 철태랑(鐵太郞)이 그러하다. 포약빙(鮑若氷)도 보이지 않았으며, 사앙(史仰)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여불군(呂不君), 철거(鐵巨),묘묘(猫猫),구양풍운(歐陽風雲),그리고 능조운이 있을 뿐이었다. 모여든 지 일각(一刻). 그러나 아직까지 한 마디의 말도 오고 가지 않았다. 다섯 기재는 하나같이 초인적인 무공을 지니고 있으며, 바보 거인소년 철거를 제외한 소년 소녀들은 모조리 천재적인 두뇌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아마도 지난 이틀 사이 벌어진 미묘한 항명사건(抗命事件)에 대해 어느 정도나마 파 악하고 있는 듯했다. '역시 자네는… 우리들의 영웅이다.' 여불군은 특히 감격해 하고 있었다. 그는 능조운의 천재성에 대해 묘한 역감을 지니고 있던 것도 사실이었는데, 그것이 모조리 씻겨져 버린 것이다. '자네는… 진짜 강한 사람이야.' 여불군은 능조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능조운은 아주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후 사정에 대해 모조리 알고 있는 능조운의 입가에 그리도 환한 미소가 머금어진다는 것은 실로 놀라 운 일이었다. 묘묘는 아까부터 양 볼을 발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오만하고 요염한 소녀, 묘묘. 해어화와 포약빙으로 인해 능조운을 몇 걸음 밖의 남자로만 여겨 왔던 묘묘이나, 지금은 전 혀 달랐다. '여기서 산다면… 나는 능가(凌家)의 여인이 될 것이다.'묘묘는 호박색 술로 입술을 가볍게 적셨다. '조운이 팔다리가 잘린 불구자가 된다 하더라도, 나는 조운의 여인이 되고 말 것이다. 여기 서 살아나게 된다면…….'여인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따라 좌지우지되곤 한다. 묘묘는 감정의 기복이 변화막측한 미소녀였는데, 지금 능조운의 얼굴을 보며 자신의 운명을 정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살아난다면……. 능조운은 그의 최초(最初)의 남자가 될 것이고, 또한 최후의 남자가 될 것이다. 살아나기만 한다면……. 천재적인 손재주를 지니고 있는 구양풍운. 그는 냉막하고 고독한 소년인데, 지금 능조운을 보며 얼굴을 야릇하게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사람을 믿지 않았었다. 이 곳을 세운 사람들, 이 곳의 교두들, 그리고 보석처럼 반짝이되, 차갑기만 한 천재들을 무시했다. 한데, 저 녀석만은 늘 뜨거웠다. 아아, 저 녀석은 나의 유일 한 친구가 될 수 있는 녀석이다.'구양풍운은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반면, 거인소년 철거는 아까부터 배를 매만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이 곳에서 가장 뱃속 편한 소년이라 할 수 있었다. "뭐가 어찌 된 거야? 식사 시간이 지났는데도 밥을 주지 않다니! 술로는 허기가 매워지지 않는단 말이야."철거는 술을 가장 많이 마신 상태였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취기가 전혀 드리워 있지 않았다. "술은 밥과는 달라." 철거가 툴툴대고 있을 때였다. 능조운은 잔을 손에 쥔 채 눈길을 창 너머에 던지고 있었다. "……!" 그의 눈빛은 매우 미묘했다. 회노애락이 완전히 가라앉은 듯 허탈해 보이기도 했고, 어찌 여긴다면 그의 인생에서 가장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가히 용(龍)의 눈이다. 그는 함부로 마주 볼 수 없는 눈길로 먼 절벽 꼭대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녀석은 내게 늘 미안해 하겠지. 하나, 나를 이해하기 바란다. 사실 내게는 명분이 없다. 나를 선택하고 길러 준 나으리들을 위해 싸울…….'그는 천천히 잔을 입가로 갖고 갔다. '사실, 나를 선택한 사람들은 나의 가문을 무너뜨린 사람들이다. 나는 절대로 그들을 위해 싸울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그 곳으로 가지 않은 것이다. 하나 옥린, 너라면… 그들을 위해 싸울 수 있겠지.'능조운은 혈액처럼 따뜻한 술로 목젖을 적시기 시작했다. 아마도 잠시 후부터는 진짜 피를 볼 수 있으리라. 적어도 그냥 쓰러질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자신을 포함한 천재들을 무림초인으로 길러 준 나으리들에 대한 처음이자 마 지막 충성이 될 것이다. '죽음 따위는 조금도 두렵지 않아. 나으리들이 그렇게 길렀기 때문이지.'그는 술잔을 쭈욱 비웠다. '어렸을 때에는 농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 그의 눈빛이 미미하게 흐트러진다. 만에 하나, 그 일이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는 몹시 편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달게 맞이했을 것이며… 그의 이름은 무림사(武林史)에 영원히 기록되지 않은 채 묻혀 버렸을 것이다. 또한, 훗날 폭풍대장정(暴風大長征)이라 불리우는 그 처절한 복수는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 다. 삐이이이익-! 돌연, 묵궁이 날카로운 호각 소리로 인해 찢어지기 시작했다. 동서남북 사방에서 들려 오는 아련한 호각 소리. 그 소리는 잠룡비전을 향해 짓쳐 들던 무림기인들의 움직임을 일제히 둔화케 했다. "호각이라니?" "안에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뒤쪽에서 들리다니……?""설마… 배후에도 악마의 무리가 있단 말인가?" "이 소리는 악마신전후(惡魔神箭吼)라는 것인데……?" 백도기인들의 몸놀림이 주춤거리기 시작한다. 인근 이십 리에 모여든 사람들의 숫자는 도합 이천사백여(二千四百餘). 그들은 이 곳을 향해 다가선 팔천여 무림기인들 가운데서 최고 대표자라 할 수 있는 사람들 이었다. 무림기인들이 주춤거리고 있을 때였다. 피이이잉-! 꽤 먼 뒤쪽에서부터 화살들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길이가 세 자에 달하는 핏빛의 화살로 촉에서 꼬리까지 모조리 강철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것은 완력(腕力)으로 발사해 내는 것이 아니라 기계 장치에 의해 발사해 내는 것으로, 무 려 오 리(里)를 떠오른다. 피잉- 핑- 핑-! 십 개 지역에서 동시에 떠오르는 화살들. 무려 만 발(發)의 화살이 일제히 날아오르고 있었 다. 제일교두, 그는 최후의 결전을 위해 애검(愛劍)을 무릎 위에 놓고 검집을 매만지고 있다가 화살이 까마득히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것을 바라봤다. 순간, 그의 얼굴은 실로 처절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악마화룡전(惡魔火龍箭). 저것은… 악마무후(惡魔武侯) 측근 장천마교주(藏天魔敎主)가 만든 화기(火器)인데……?"그는 저도 모르게 가부좌한 상태 그대로 세 자 떠오르고 있었다. "설마… 모든 것은 이중(二重)의 함정이었단 말인가?" 악마화룡전! 다른 사람은 그것의 내력을 정확히 알지 못할 것이나, 제일교두는 그것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대원의 수호를 담당하고 있는 악마무후(惡魔武侯) 사엽풍(史葉風)이 이끌고 있는 십 대마화세(十大魔花勢) 가운데 하나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알려 진 것이었다. 기실 대원의 마지막 세력은 잠룡비전 쪽과 악마무후 쪽으로 양분되어 있다 할 수 있었다. 제일교두는 악마무후의 부좌(副座)라 할 수 있으며, 정통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인물이 었다. 반면, 악마무후 사엽풍은 권모술수에 능한 효웅(梟雄)으로, 그의 내심이 어떠한 것인지 는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다. 피잉- 핑-! 무수히 떠오르는 악마화룡전! 그것은 허공을 가르며 떠오르다가 단애 위쪽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기계 장치에 의해 십방(十方)에서 잇따라 발사가 되는 악마화룡전의 위세는 가히 경천동지 할 정도였다. 하나 잠룡비전을 붕괴시키기 위해 모여든 사람이라면, 그 정도의 화살 공격 따위는 안하무 인으로 여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잡배들! 장난이 심하군!" 노인 하나가 훌훌 치솟아 올랐다. 그는 공동일노라 불리는 인물로, 쌍장진천하(雙掌振天下)라고 불리우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화산삼매(華山三梅)가 날아올랐고, 사천당가(四川唐家)의 당종화(唐鐘華) 노문주(老門主)도 떠올랐다. "어림없다!" "프핫핫… 이 따위 화살로 재롱을 부리다니……!" 호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쌍장이 흔들리고, 검이 뽑혀졌다. 벽공장력(劈空掌力)이 허공을 가르고, 검파가 하늘을 가르는 검무지개를 어지럽게 만들기 시 작한다. 바로 그 순간. 누군가 몸서리를 떨며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안 돼! 건드리면… 터진다!" "함정이다. 빌어먹을!" "잠룡비전을 노렸는데… 으으, 잠룡비전을 노리는 우리들을 노리는 자들이 있었다. 화탄이 터지면 절벽이 무너진다. 으으,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그러한 소리들이 터져 나올 때. 검기(劍氣)가 화살을 잘랐고, 벽공장력이 화살을 뭉그러뜨렸으며… 바로 그 순간, 무림사에 거대한 분수령을 이룩할 대폭발(大爆發)이 시작되었다. 우르르르릉- 쾅-! 돌연, 하늘이 화우(火雨)에 휘어 감겼다. 무수한 핏빛 함박꽃이 피어나듯이, 잠룡대산 허공 위로 불꽃송이들이 잇따라 피어 올랐으 며… 매캐한 유황 내음이 안개를 태우며 번지기 시작했다. 우르르르릉- 쾅- 쾅-! 휘몰아치던 대폭풍보다 십 배 더 강한 바람이 일어났으며, 악마화룡전에 내장된 화약이 연 쇄적으로 폭발하는 가운데 단애 위가 불기둥에 휘어 감겼다. 충천(沖天)하는 화광. 자욱이 번져 나가는 매캐한 유황 내음. "물러나라!" "으으, 함정이었다. 백도인들을 몰살하기 위한……." "안쪽에 그 자들의 후예들이 있는데, 뒤쪽에서 공격하다니……!"기인들은 일제히 허공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하나, 이십 리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불바람에 휘어 감길 수밖에 없 었다. 어디 그뿐이랴? 대체 언제 묻혔는지 모를 화약이 지하에서부터 폭발을 하기 시작했으며, 절벽이 괴수의 울 부짖음 소리를 내며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쩌어어억-! 집채만한 바윗덩어리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고, 머리통만한 바위가 불덩어리로 화해 우박 처럼 떨어져 내렸다. 산사태가 일어나 잠룡비전 쪽으로 덮쳐 들었으며, 절벽 위에 몰려든 무림기인들의 동체가 불바람과 산사태에 휘말리며 잠룡비전 쪽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폭발음이 너무나도 엄청난지라, 비명 소리는 아예 들리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듯, 인근 이십 리는 일제히 붕괴되어 버리기 시작했다. 콰르르릉- 콰쾅-! 대지진(大地震)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화탄이 터지는 가운데, 오래 전에 매설된 지하의 화약이 폭발하였고… 그것이 지맥(地脈)의 혈(穴)을 건드리며 일대가 지진에 의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주의 종말인 양 모든 것은 불(火)과 산사태에 의해 뒤덮여 버리기 시작했다. - 모든 것은 완벽히 성사(成事)되었음! - 잠룡비전의 위치를 무림계(武林界)와 대명황실(大明皇室)에 슬쩍 흘려 준 것이 주효하였 음. 잠룡비전이 이미 포기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무림기인들은 척마멸사의 기치를 들고 대거 모여들었으며, 안배(按配)되었던 처형은 하나의 어김도 없이 정확히 성공되었음!- 생 존자가 있기 힘듬. 물론 극소수는 살아남을 것이되, 그들의 힘만으로는 천하 정세를 뒤바꿀 수 없을 것임. 잠룡비전의 폭발로 인해 정사쌍도(正邪雙道)는 엄청난 손실을 입었으며, 향후 오 년(年) 안에는 재기하지 못할 것임!- 악마무후(惡魔武侯)의 안배대로 잠룡비전과 정사쌍 도 기인들을 동귀어진(同歸於盡)시키는 계획은 완전 성공되었음! 쏴아아… 쏴아아……! 폭우(暴雨)다. 붕괴되어 버린 잠룡비전의 터로 세찬 빗발이 쏟아져 내렸다. 실로 지독한 폭우인지라, 그리도 극심하던 죽음의 불바람도 이틀 타오르다가 꺼져 버리고 말았다. 무림사가 고쳐 쓰여지게 되는 이 날. 잠룡비전을 중심으로 하여 인근 이십 리가 붕괴되었으며, 최소한 이천사백이 폭발과 산사태 가운데 파멸해 버린 것이다. 한데, 실로 기이하게도 폭우의 하늘 위로 묘한 서기(瑞氣)가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그 빛은 이전에 비해 오히려 강하다 할 수 있었으며, 문득문득 무서운 혈기(血氣)로 화하곤 하는 것이었다. |
첫댓글 즐독 ㄳ
재미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