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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유실 속의 노인 말소리의 여운이 사라지지도 않아서 풍운류랑인 고화룡은 이제 자기의 일이 끝났다는 듯 건장한 늙은이의 거센 장풍을 벗어나 중첩해 있는 누각을 향하여 나는 듯이 달려갔다. 이와 때를 같이해 그 음산한 정원에 있는 유실에서 퍽! 하고 힘을 주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공중을 날던 비류신의 몸뚱이는 상대방의 위맹한 장력에 의하여 실외(室外)로 밀려나서 집어 던진 짚단처럼 퍽! 소리를 내며 정원의 땅바닥에 떨어졌다. 이때, 건장한 늙은이는 고개를 치켜들고 괴상한 음성으로 길게 부르짖으면서 거대한 몸뚱이를 팽이처럼 돌려 고화룡의 뒤를 추격했다. 순식간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비류신은 갑자기 심한 추위를 느끼고 눈을 번쩍 떴다. 어느새 날은 환하게 밝아 있었고 전신의 옷이 새벽이슬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이에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에 떠 있는 몇 조각의 흰 구름을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바라보았다. 머리가 텅텅 빈 것이 긴 악몽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머리뿐 아니라 전신의 각 부분도 감각이 이상했다. 그는 지금 체내의 기혈이 뒤집히는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도 경력(勁力)이 없어 마치 무공을 전혀 연마하지 않은 사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류신은 차츰 어젯밤의 일이 생각났다. 월광검 소대풍이 자기에게 이 유실에 와서 지령보주 소대호를 찾아보라고 하던 일이… … 그는 재빨리 주위를 살펴보다가 펄쩍 뛰도록 놀랐다. 다시 자기가 누워 있던 곳을 본 그는 크게 놀라 부르짖었다. 비류신은 후다닥 일어나 공중으로 몸을 솟구쳐 올라갔다. 그러나 두 자 높이에서 뛰어오르지 못했다. 어젯밤처럼 한 번에 삼사 장 높이로 뛰어오르던 절묘한 경공을 펼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지금 가벼운 무공까지도 발휘하지 못했다. 비류신은 주위에 흩어져 있는 백골과 해골에 혼비백산하도록 놀라서 자기가 경공을 상실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원래 이 한갓지고 음산한 정원의 사방에는 부서진 사람의 뼈와 백골들이 질펀하게 널려 있었으며, 비류신이 서 있는 땅바닥에도 부서진 백골들이 깔려 있었다. 음산한 바람이 백골을 스치자 썩은 냄새가 코를 찔러 구역질이 났다. 그래서 더욱 이 정원은 음산하고 공포감을 주는 처량한 기운이 감돌았다. 비류신은 서글픈 탄식을 불어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백골들은 아마 실내에 갇혀있는 소대호가 십팔 년 동안 살해한 사람들일 것이다.’ 태양이 담장 위로 솟아오르자 눈부신 햇살이 그의 가슴팍에 묻은 핏자국을 더욱 선명하게 비추었다. 그는 손으로 가슴의 핏자국을 쓰다듬으면서 비로소 자기의 가슴 속에서 용솟음치던 기혈이 가라앉았다는 것을 느꼈다. 별안간. 무거운 탄식소리가 그의 귓전으로 들려왔다. 비류신이 눈을 깜빡거리면서 보통 사람과 다름없는 눈빛으로 소리 나는 곳을 돌아보았다. 삼 장 밖에 있는 넓은 큰 유실의 벽은 최상품의 푸른 벽돌로 쌓아올린 것이었다. 그러나 다년간 사람의 손길이 가지 않아 먼지가 누덕누덕 끼어 있어서 십분 처량하게 보였다. 그리고 벽의 중간에는 문이 없는 구멍이 하나 있어서 실내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햇살이 비스듬히 비치기는 하지만 안쪽은 역시 음산하고 어둠침침하여 안의 정경을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 무거운 탄식소리는 바로 이 유실 안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비류신은 이 유실 안에 지령보주 야원광명지신도 소대호가 갇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가 이곳에 온 것은 바로 소대호에게 그의 상처를 치료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금 주위의 백골들을 보자 그는 오싹 소름이 끼쳐 감히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소대호는 이곳에 십팔 년이나 갇혀 있었기 때문에 성격이 냉혹하고 괴벽하여 미친 듯이 살생을 한다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 나는 들어가기만 하면 그의 일장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비류신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망연히 땅에 깔린 해골을 밟으면서 유실의 문 입구로 걸어갔다. 그리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늠름하게 실내로 들어섰다. 순간. 일진의 가벼운 바람이 스치자 벽에 쌓인 먼지가 떨어져 그의 얼굴과 몸뚱이를 뒤덮었다. 원래 그는 목숨을 걸고 들어가서 소대호에게 애걸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스스로 죽음이 오기를 기다리는 결과밖에 안되기 때문이었다. 비류신은 옷소매로 얼굴의 먼지를 털고 실내를 두루 살펴보았다. 천정과 벽의 귀퉁이에는 거미줄이 얼기설기 쳐져있고 곳곳에 먼지가 자욱하게 쌓여 있어서 오랫동안 사람이 거처하지 않은 듯 음산하기만 했다. 이 유실은 십 장 가량 넓었으나 텅텅 비어 있을 뿐 물건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별안간-- 두 줄기의 번갯불과도 같은 광채가 한 번 번쩍하더니 곧 사라져 버렸다. 비류신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일 장 가량 떨어진 곳의 땅바닥에 허연 털로 전신이 뒤덮인 괴이한 늙은이가 무릎을 틀고 앉아 있었다. 길게 늘어진 허연 머리털과 수염 아래로 회색 도포자락이 은은히 보였다. 이 사람이 바로 십팔 년 동안 감금되어 있는 지령보주 야월광명지신도 소대호 그였다. 비류신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노인이 이곳에 십팔 년 동안이나 갇혀있었다니, 너무나도 처량한 일이구나!’ 그는 감동한 듯 가볍게 한숨을 내쉬면서 천천히 그를 향해 걸어갔다. 괴노인 소대호는 별안간 눈을 번쩍 떴다. 두 줄기의 형형한 신광(神光)이 얼굴을 뒤덮은 백발 속에서 번갯불처럼 뻗쳐 나왔다. 그 눈빛 속에는 비할 데 없는 위력이 서려있어서 보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소대호는 그러한 눈빛으로 계속 비류신의 얼굴을 응시했다. 비류신은 벼락에라도 감전된 듯 가슴이 철렁하여 본능적으로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이때 그 괴노인은 수염과 머리털을 부르르 떨더니 갑자기 눈을 감아버렸다. 이어 그의 입에서 뼈를 에이는 듯 서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자네는 죽음이 두려운가?” 비류신은 이 말을 듣자 즉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고 처량하게 대답했다. “인생은 백세를 산다 할지라도 지나고 보면 잠깐 사이에 불과한데, 늦게 죽으나 일찍 죽으나 두려울 게 무엇입니까… …” 괴노인 소대호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그의 다음 말을 잘랐다. “자네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이곳으로 나를 찾아왔는가? 그토록 어린 나이에 거짓말을 하다니… …” 비류신은 그 말을 듣자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생각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온 의도를 분명히 알고 있는 것 같구나.어떻게 알았을까? 보아하니 나의 부탁을 들어줄 것도 같은데… …’ 그는 서글프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후배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저는 원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나 피맺힌 원한이 골수에 사무쳐 있는 탓에 지금은 죽을 수 없습니다… …” 소대호는 여전히 두 눈을 굳게 감은 채 차갑게 물었다. “자네는 지령보의 사람인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어떻게 대담하게 지령보에 뛰어들었지? 또 어떤 사람이 자네를 이곳에 오도록 지시해 주었나?” 소대호의 음성은 여전히 냉담하고 추호의 인정도 없었다. 비류신은 그의 원래 성격은 절대로 이렇게 냉혹하고 무정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반드시 극도로 비통하고 한스러운 일에 타격을 받은 탓에, 과거에는 분명 호탕하기 이를 데 없던 노인의 성격이 지금처럼 변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야월광명지신도 소대호는 확실히 극도로 한 맺힌 과거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와 같은 천하제일의 고수가 무엇 때문에 이 유실에 십팔 년 동안이나 갇혀 있었겠는가. 십팔 년이란 세월은 한 인간에 있어서 길고도 지루하며 또한 중요한 시간이다. 그런데 그는 이 지루한 세월을 고독하고 처량하게 이 유실에서 지냈다.’ 여기까지 생각한 비류신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안색이 비참할 정도로 어두워졌다. 자신의 비통한 과거가 상기되자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비류신은 어느새 소대호 면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처량한 음성으로 애걸하기 시작했다. “선배님, 후배는 영형이신 소대풍 선배님의 지시를 받고 찾아온 것입니다. 저의 체내에 고질병이 있어 찾아온 것이니 어르신네께서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소대호는 백발과 수염을 부르르 떨면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대풍형님, 대풍형님… 그분이 아직 나를 기억하고 있단 말인가? 그 분에게 아직도 형제지간의 정이 있단 말인가? 음… 한스러운 것은 대천동생이로구나… …” 비류신은 이 말을 듣자 가슴이 철렁하여 낭랑만 음성으로 말했다. “노 선배님의 큰 형님이신 소대풍 선배님께서는 몹시 노 선배님을 걱정하고 계십니다. 그 어르신네는 저에게 노 선배님을 구출해 주라고까지 하셨습니다.” 비류신은 물론 그들 형제간의 은원관계를 모르고 있었다. 그는 단지 소대호가 한없이 처량하고 고독하여 친지의 위로가 필요할 것이라고 느꼈다. 사실 소대풍도 비류신에게 그런 감정을 나타내었다. 소대호는 비류신의 말을 듣더니 백발에 가린 눈을 번쩍 뜨더니 무서울 정도로 싸늘한 광채를 뿜어내었다. 그 눈빛 속에는 냉랭한 살기마저 서려있었다. 그는 그러한 눈초리로 일순간도 깜빡이지 않고 비류신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비류신은 가슴이 섬뜩해 왔다. ‘나를 살해하려고 그러는 것일까… …’ 이러한 생각을 하며 서글픈 한숨을 쉬면서 입을 떼었다. “선배님께서 저를 살해하시려 한다면 후배는 절대로 삶을 탐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원통한 것은 피바다와 같은 원한을 갚지 못하고 죽는다면 어찌 죽어서도 눈을 감을 수 있겠습니까.” 소대호는 냉혹한 살기를 조금 누그러뜨리며 냉랭히 대꾸했다. “강호의 인물은 하나같이 음험하고 간사하지. 자네는… 음… …” 그는 처량하게 한숨을 내쉬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비류신은 마음이 섬뜩 했다. ‘그는 어째서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말을 하는 것일까 아 그렇지! 그는 그의 큰 형인 소대풍이 그를 생각한다는 말을 듣고 살기가 생긴 것이다. 그럼 그의 큰 형 역시 간사한 무리란 말인가? 그러나 그 노인은 만면에 인자한 빛이 서려 있지 않았든가… …’ 소대호는 갑자기 왼손을 뒤로 뻗어 잔금섭혼신편을 움켜쥐더니 말했다. “자네는 이 채찍을 가지고 어서 돌아가게!” 비류신은 두 손으로 채찍을 받아들고 눈물을 흘리면서 애걸했다. “흐흐흐… 노 선배님, 후배를 구해 주십시오… …” 소대호의 음성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는 나직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는 내가 조용히 수양하는 것을 방해했어. 내가 자네를 죽이지 않는 것만도 큰 다행이거늘 목숨까지 구해달라니, 세상에 그렇게 용이한 일이 있을까?” 비류신은 암담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노 선배님께서 저를 구해주시어 피맺힌 원한을 갚도록 해주신다면 후배는 평생 동안 노 선배님께서 이루지 못한 일을 완성시켜 바다처럼 깊은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소대호는 별안간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의 말이 진정인가?” “거짓말이라면 천벌을 받을 것입니다.” 소대호는 돌연 고개를 쳐들고 괴상하게 웃기 시작했다. 기뻐서 그러는 것인지 슬퍼서인지 그의 마음을 읽을 수가 없었다. “십팔 년 동안이나 괴롭고도 지루한 세월을 보냈더니 결국 대가를 얻게 되는군… …” 비류신은 지금 눈앞에 있는 절세의 무공을 지닌 소대호가 비할 데 없이 깊은 우울과 처량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소대호는 갑자기 차갑게 소리 질렀다. “자네는 지금 자네의 병이 이미 완치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비류신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이상하다는 듯 반문을 했다. “무엇이라 구요?” 소대호는 쓸쓸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는 경맥에 응결되어 있던 기운이 이미 전부 흩어져서 혈맥이 파열하여 죽는 일은 없을 걸세. 바로 자네가 나의 내력(內力)에 빨려 들어올 때 자네의 입에서는 선혈이 흘러나오고 있었지. 그것은 경맥이 곧 파열하게 될 징조였네. 그때 즉시 치료하지 않았다면 잠시 후에는 혈액을 토하고 죽게 되지. 그래서 나는 일종의 선천강기를 운행하여 자네의 칠성정맥 (七星靜脈)과 기음팔혈(奇陰八穴)을 진동시킴으로써 전신의 공력을 모조리 상실케 했다네… …” 비류신은 이 말을 듣자 놀람과 기쁨이 극도로 달했다. 그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노 선배님께서 저의 생명을 소생시켜 주신 은혜는 백골난망입니다… …” “자네는 공력을 전부 상실하여 보통 사람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데 뭐가 기쁘단 말인가?” “죽지만 않는다면 후배는 다시 공력을 수련할 수 있습니다!” 소대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자네는 지금 무양무음진경의 초식을 전부 터득했으니 지금부터 그것을 다시 수련하거나 그 괴이한 초식을 발휘해서는 안 되네. 그렇지 않으면 진기가 다시 경맥에 쌓이게 되어 죽음의 길이 있을 뿐이야.” 비류신은 이 말을 듣자 가슴이 섬뜩했다. ‘나는 몇 년을 허비해가면서 그 진경(眞經)을 얻은 후 미친 듯이 기뻐하며 절초를 연마했는데 결국은 헛수고로 돌아가다니, 내가 다시 다른 무공을 연마하자면 어디서 훌륭한 스승을 만날 것이며, 또 언제 초인적인 무공을 연마하여 피맺힌 원한을 갚을 수 있단 말인가… …’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비류신은 실망과 슬픔을 금치 못하여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때-- 한 가닥 영감이 번개처럼 그의 번뇌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분은 내 평생 동안에 제일 첫째가는 무림의 기인(奇人)이다. 그는 절세의 무공과 불가사의할 정도로 심후한 내공을 지니고 있으니, 아마 다시 이런 사람을 만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 절기(節技)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 하여야겠다… …’ 비류신의 눈은 예리했다. 소대호의 무공으로 말하면 당세에서는 아마 그와 맞설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가 소대호에게 몇 수의 절기를 전수받기만 한다면 비록 무림의 패권을 쥐고 강호를 경시할 수는 없지만, 당세에서 그와 맞설 수 있는 고수는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소대호가 야월광명지신도(夜月光明地神刀)란 외호를 가지고 있는데, 그의 큰 형 소대풍 역시 월광검(月光劍)이며 그의 동생 소대천은 지신도(地神刀)로써 모두 소대호의 외호에서 따온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것은 형과 동생의 외호를 종합한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은 무슨 까닭일까. 여기에는 물론 깊은 의미와 원한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소대호는 절세적인 재치와 비할 데 없는 총명한 지혜를 지닌 귀재였다. 그의 부친은 만검신경(萬僉神經)이란 비급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천하에서 더없는 위력을 지닌 세 가지 검법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 세 가지란 천강검, 지살검, 성월검으로써 이 검법들은 정묘하고 심오하기 이를 데 없어 초인적인 자질과 지혜를 지닌 기재(奇才)가 아니라면 아무리 전수해도 그 중 한 가지 검법도 터득할 수 없을 정도였다. 총명하여 그 중 한 가지 검법을 소화했다 하더라도 세 가지를 모두 터득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소대호의 부친은 지난 날 삼형제에게 검법을 전수할 당시, 세 가지 검법의 원서와 도해(圖解)를 각기 한 가지씩 나누어 주어 연마하게 했었다. 그런데 그의 형 소대풍과 소대천이 각기 천강검과 성월검을 연마하기 시작하여 몇 초 밖에 터득하지 못했을 때, 소대호는 벌써 지살검법을 완전히 터득했었다. 이에 놀란 그의 부친은 다른 두 가지 검법이 적힌 원서를 전부 그에게 주어 연마하도록 했다. 뜻밖에도 그는 일 년 동안에 정묘하고 심오한 이치를 전부 이해했으며, 세 가지 검법을 완전히 터득하기에 이르렀다. 이리하여 그는 야월광명지신도란 외호를 얻게 되고, 그의 형과 동생은 월광검과 지신도란 외호를 얻었던 것이다. 소대호는 그 부친의 무공만 완전히 터득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부친은 절세의 총명을 지니고 있는 그를 몹시 아꼈기 때문에 또 다른 훌륭한 무학의 비보(秘譜)를 여러 권 그에게 주어 연마하게 했다. 그 결과 소대호의 무학은 그 심오함의 정도를 정확히 추측할 수가 없었다. 비류신은 소대호를 향해 꿇어앉아 처량한 음성으로 말했다. “노 선배님, 후배는 선배님께서 저를 제자로 거두어들이시어 다시 무공을 수련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간청 합니다… 후배의 원수는 현 흑도 중에서 가장 강한 고수인데다, 무공이 절륜하고 마음과 수단이 독합니다. 게다가 무수한 부하들이 있으며 많은 음모를 품고 있습니다. 저에게 초인적인 무공이 없다면 도저히 피맺힌 원한을 갚을 길이 없습니다… …” 소대호는 갑자기 두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비류신을 제자로 받아들이는데 대한 여부를 결정짓는 모양이다. 비류신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몹시 두렵고 초조한 감정에 싸여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주 민감하게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의 인생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고비라고 느꼈다. 소대호가 그에게 무공을 전수하지 않겠다면, 이곳에서 축출당하거나 그의 일격에 죽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역시… … 홀연 소대호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나는 원래 이 어지러운 대천세계(大天世界)를 벗어나려고 했었지. 그러나 지난날의 원한과 이루지 못한 일들이 있어서… 아… …” 그는 다시 서글픈 한숨을 쉬더니 손을 들어 비류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주 인자하게 말을 이었다. “여보게, 나는 자네가 몹시 비참한 과거가 있기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지령보에 침입하여 천수비경을 훔치려 했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런데 사실 그 비경은 보 안에 있는 사람 수중에는 없다네. 그리고 자네는 그 비경의 무학을 수련하게 되면 악인으로 변하게 될 걸세.” “… …” “자네는 다시 나의 무공을 수련하겠다고 말했지. 그런데 인간의 생명은 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하네. 한 사람이 많은 정력과 정신력을 소비해가며 비할 데 없이 심오한 무공을 터득했는데, 일시에 모두 상실해 버린다면 그것은 실로 너무나 애석한 일이지… 자네가 터득했던 그 무양무음진경에 기재되어 있는 무학은 하나같이 심오하고 정묘한 절초이니까 더욱 그렇지. 자네가 다시 나의 무공을 배우겠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인데, 난 며칠 후 이 속세를 떠날 생각이라네. 그리고 내가 지니고 있는 무공이 천하에서 제일 강한 것이 아니니까 자네가 몇 수 배운다 해도 아마 자네의 뜻대로 복수를 할 수는 없을 거야… …” 비류신은 그가 며칠 후에 죽을 것이라는 말에 놀람을 금치 못하며 물었다. “노 선배님, 어르신네는 무엇 때문에 돌아가신다고 하십니까?” 소대호는 처량하게 대답했다. “복잡한 은원관계는 한마디로 다 말할 수 없으니까 자네는 그 일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게.” “노 선배님께서 조금 전에 하신 말씀은 후배에게 무양무음진경의 초식을 다시 연마하라는 뜻입니까?” 소대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 뜻은 그렇다네. 절세의 무공은 절대 요행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지. 가끔 예외도 있긴 하지만 그것은 천 년에 한 번 있기도 드문 일일세. 그리고 그러한 것은 대부분 방문(旁門)의 무학에 속해 있어서 실수할 우려가 많고, 설사 연마하여 성공한다 할지라도 훗날 반드시 해를 입게 되지. 예를 들어서 자네가 수련했던 무양무음진경이나 천수비경 등은 모두 방문 좌도(左道)의 무학중 으뜸가는 것일세.” “… …” “하지만 정통 무학을 배운다면 수련법이 모두 비할 데 없이 심오하기 때문에 반평생의 세월을 걸쳐 연구한다 할지라도 완전히 터득하기란 어렵지. 아… …” 그는 여기까지 말하고 감정을 이기지 못하는 듯 길게 한숨을 쉬었다. 비류신은 그의 말에 무슨 뜻이 깃들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그를 망연히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소대호는 갑자기 전신을 부르르 떨면서 아주 나지막한 음성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방문 좌도에서 크게 성취를 얻은 사람은 일곱 사람이 있지. 그중 세 사람은 이미 세상을 등졌다네… …” 비류신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뭐라고요? 천하 무림에 고수들이 그렇게 많단 말씀입니까? 그들은 누구입니까? 그들 중 누구의 무공이 가장 강합니까?” 소대호는 빙그레 웃었다. “내 무공이 가장 높지.” “그럼 노 선배님은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셨군요!” 소대호는 백발과 흰 수염에 가려진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며 낭랑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정사(正邪) 양도의 무공을 모두 수련했었지. 여보게, 자네의 추측이 맞네. 칠 인의 고수 중 나의 무공이 가장 높은 것이 그것의 확실한 증거지… …” 이때 그의 붉어진 얼굴은 더욱 눈부신 광채를 발했다. 그 눈빛 속에서는 기쁜 광채가 번뜩였다. 왕년에 풍운을 질타하던 영웅 시절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또 자기가 성취한 무학에 대해 크게 만족하며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호기(豪氣)는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이에 점점 사라져 버렸다. 이어 그는 다시 서글픈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나는 일곱 사람 중에서 무공이 가장 높기는 하지만, 그러나 두 사람에게 제압을 당한 적이 있다네.” 비류신은 탄성을 질렀다. “뭐라 구요? 이 천하에서 노 선배님보다 무공이 더 강한 사람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천하의 무학이란 망망대해처럼 한이 없는 것이지. 자네가 아무리 높은 무예를 터득했다 해도 역시 천하제일이라 할 수 없는 것일세. 말하자면 강한 사람 중에는 더욱 강한 인물이 있기 마련이야… 내가 말한 두 사람만 해도 나 자신은 그들에게 진다고 시인하지만, 그들 역시 나를 어느 정도는 두려워하고 있지… …” 비류신은 강호 무림의 기인들의 일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노 선배님, 어르신네께서 방금 말씀하신 일곱 사람은 누구누구 입니까? 그리고 어느 분이 별세 했는지요… …” 소대호는 낭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자네는 진편독자 탁성군이 받아들인 제자인가, 아니면 자네가 뜻밖에 그의 잔금섭혼신편과 무야무음진경을 얻게 되었는가?” 비류신은 이 물음에 가슴이 섬뜩 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 …’ “저는 뜻밖에 그분의 유물을 얻게 된 것입니다.” 소대호는 다시 물었다. “자네가 이곳에 들어올 때 어떤 사람이 도와주었는가?” 비류신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분의 이름은 모릅니다. 하오나 그분의 무공은 극히 고강했습니다.” 소대호는 위엄 있는 눈빛으로 시종 비류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비류신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쓸쓸히 한숨을 쉬었다. “그 일곱 사람은 무림칠절(武林七絶)이라고 부르지… …” 비류신은 이 말에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노 선배님은 바로 칠절 중의 진검독자(眞劍獨子)가 아니신지… …” 소대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왕년에 진검독자로 강호 무림에서 행세했었지. 음, 그러나 왕년의 영웅시절은 이미 유수와 같이 흘러가고 한 무더기의 황토만이 남게 되었네… 칠절의 으뜸은 물론 나였지. 그 다음이 진편독자 탁성군이고, 나와 그가 가장 막역한 사이였지. 그 다음은 바로 나의 안사람이었네. 그러나 우리 세 사람 중 이미 두 사람이 죽었고, 며칠 후면 나도 그들을 따라가야 하네… …” 비류신은 처량하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노 선배님, 존부인(尊夫人)께서는 어째서 별세하셨습니까?” 소대호는 이 말을 듣자 한 가닥 죄책감이 마음을 괴롭혔다. 은빛 수염과 백발을 부르르 떨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내… 내 안사람은 내 손길로 인해 죽음을 당했지. 내가 안사람을 죽이다니 실로 부끄러운 일일세… 이것은 모두 나의 아우와 큰 형님을 원망할 일이야… 그 일을 얘기하자면 몹시 가슴이 아프니 얘기하지 않겠네. 자네는 훗날 모두 알게 될 걸세.” 비류신은 속으로 생각했다. ‘소대호가 죽어야 한다는 건 혹시 자기 처를 잘못 죽여서인지도 모른다.’ 사실 그것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소대호 삼형제의 은원관계가 몹시 복잡하다는 것을 그가 어찌 알겠는가. 하지만 그중에서 역시 정(情)을 무시할 수 없었다. 비류신은 서서히 입을 열었다. “노 선배님, 그럼 나머지 네 사람은 누구입니까?” 소대호는 격정적인 감정을 누르면서 두 눈을 살며시 감았다. “그 사람은 빙화동주 백화선녀와 역공관주(易空觀主) 순천진인(純天眞人), 적귀노파(赤鬼老婆) 청백구(靑白 ) 그리고 행적이 괴이하고 신비한 괴인(怪人) 신독괴살수(辛毒怪殺手)일세. 아… 이들 네 마두는 무공이 절강하고 음흉 잔인하여 닥치는 대로 살인을 하였네. 정파 같기도 하고 사파 같기도 하며 성격이 지극히 괴벽한 인물들이지. 자네는 훗날 그들을 만나게 되면 가급적 멀리 피하는 것이 좋을 걸세… …” 비류신은 이 말을 듣자 문득 어젯밤에 만났던 만화신검 홍부용이 생각나서 재빨리 입을 열었다. “노 선배님, 어젯밤 저는 백화선녀가 여제자인 만화신검을 지령보에 보내 명령을 전하게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소대천에게 전하는 것인지, 어르신에게 전하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소대호는 이 말을 듣자 흰 수염과 백발에 가린 얼굴이 크게 변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오더니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자네가 그녀의 제자를 만나게 되거든 나는 이미 죽었다고 말하게. 왕년의 은원은 그것으로 풀릴 것이네… 아! 그녀가 만약 나의 아우를 찾아가게 된다면 간사한 무리의 독계(毒計)에 걸려들 가능성이 있는데… …” 비류신은 이때 소대호에게는 아무리 생각해도 풀 수 없는 비밀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즉시 물었다. “노 선배님이 이 천하에서 두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그분들은 누구입니까?” 소대호는 이 말을 듣자 온화한 얼굴에 갑자기 서글픈 웃음을 떠올리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들은 남자와 여자일세. 남자는 나의 정적(情敵)이면서도 은인이었지. 그는 비할 데 없이 악독한 인물로써 온갖 음모와 계교로 나를 죽이려 했었네. 여인은 선녀 같은 미모를 품고 있었지만, 그 심정을 나에게 토로하지 못하자 마지막에는 나를 죽도록 미워했었네. 그녀는 내 몸뚱이를 천만 조각으로 찢지 못하는 것이 한이었지… 그들 두 사람 중에서 여인의 무공이 더 높고,또 괴이하기 이를 데 없었네. 무림칠절이 모두 방문 좌도의 고수라 하지만, 그녀에 비하면 마치 애송이 무당이 노련한 무당과 만난 격이지. 아… …” 그는 한숨을 쉬고 나서 다음 말을 이었다. “내가 십팔 년 동안 처량하고 고독한 세월을 보낸 것은 모두 그들 두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도 할 수 있네… 음… 그러나 나 자신을 원망해야지 다른 사람을 원망할 수 있겠나… …” 여기까지 말했을 때 그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고개를 치켜들어 오래되어 헐은 천정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 표정은 쉴 새 없이 변화를 일으켰다. 그는 심중에 쌓은 비밀을 이야기하려는 것 같았다.그러나 그는 마침내 마음속의 격정을 억제하고 점차 안색을 바로 하며 쓸쓸히 한숨을 쉬었다. “그 두 사람의 명호는 자네에게 알려 줄 수 없네. 나의 고충을 양해하여 주기 바라네.” 비류신은 급히 말을 막았다. “노선배님, 과분한 말씀을 하십니다. 후배는 단지 그 고인(高人)들의 명호만을 알려고 했을 따름인데, 사실 그것은 저에게 별로 이익 되는 점도 없으며, 또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소대호는 돌연 미소를 지었다. “여보게, 자네는 내가 무수한 비밀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할 걸세. 그렇다네, 하지만 이 비밀들은 모두 나 자신으로선 입 밖에 낼 수 없는 한스러운 일이며,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죄과일세.” “… …” “지금 나는 자네가 해야 할 몇 가지 일을 분부하겠네. 아울러 곧 자네의 체질을 바꾸어 자네가 무양무음진경의 무예를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네. 천하에서 이런 재간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아마 나 한사람밖에 없을 걸세… …” 비류신은 그 말을 듣자 의심이 일면서도 기쁨을 금치 못했다. 의심스러운 점은 소대호가 정말로 그런 절세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진편독자 탁성군 같이 절륜한 공력과 재질을 지닌 사람도 무양무음진경의 무예를 연마하여 경맥이 파열 당해 참사를 당했는데 소대호가 자기의 운명을 바꾸어주겠다니 잘 믿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자기의 체질을 바꾸어 자기가 천신만고 끝에 연마했던 비공(秘功)의 진정한 효력을 다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일단 그에게 기쁜 것은 만일 그렇게만 된다면 자기는 그때부터 오만하게 강호 무림을 종횡하면서 피맺힌 원한을 갚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소대호는 그러한 비류신의 심중을 꿰뚫기라도 한 듯 가볍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여보게, 본래 내게는 그러한 능력이 없었지. 허나 내가 수련한 무공의 절반은 방문 좌도의 무공이고, 나머지 절반은 정파의 무공이므로 그러한 기능이 생긴 걸세. 그래서 사도(邪道) 의 무공을 연마해도 자신의 몸에 상해가 없도록 할 수 있지. 하지만 이런… …” 그는 본래 이런 기능을 발휘한 후에는 곧 그 자신의 목숨을 잃게 된다고 말하려 했었다. 그러나 비류신이 내막을 알게 되면 그에게 치료를 받지 않으려 할까 봐 말을 중단해 버렸다. 비류신이 그러한 내막을 알게 된다면 확실히 그 역시 하나의 처량하고 고독한 인간의 생명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자기의 무공을 되찾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그가 무공을 회복한 후에 초인적인 고수가 된다 할지라도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류신은 격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입을 열었다. “노 선배님께서 후배에게 깊은 원한을 갚도록 해주신다면 후배는 평생 커다란 은혜에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노 선배님의 원수도 자세히 조사하여 처리를 하겠습니다… …” 비류신은 갑자기 정색을 하며 엄숙하게 말했다. “여보게, 나는 평생 동안 필요 없이 남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없네. 그러니 내가 자네에게 시키지 않는 일은 참견을 하지 말게.” 비류신은 그의 말에 얼떨떨하여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배는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소대호는 다시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이어 안색을 누그러뜨리고 무한히 자애로운 빛을 발하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여보게, 자네의 이름과 내력을 나에게 알려 줄 수 없겠나?” 비류신은 이 말을 듣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며 울음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노 선배님, 저의 이름은 비류신(飛流身)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신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할 데 없이 수치스러운 일을 당했으므로 도저히 제 자신이 직접 말할 수가 없사오니 어르신네는 널리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비류신은 간악한 자에게 해를 당하여 음약(淫藥)을 먹고 그의 모친과 관계를 갖게 된 수치스럽고 비통한 일을 어찌 그에게 토로할 수 있겠는가.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