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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 四 章 드러나는 음모 "야심한 시각에 남의 집을 찾아와서 웬 소란인가?" 위지강은 무표정한 시선으로 사마군을 주시하며 말했다. "집주인을 만나러 왔소이다." 사마군은 뒷짐을 지며 조소를 머금었다. "내가 이 집의 주인인데 무슨 일인가?" "농담이 심하시구려. 해월이 이 집의 주인인 줄 알고 있소이다." "해월과는 어떤 사이지?" "친구요." "친구라!" 사마군의 입술이 슬쩍 말려 올라갔다. "좋아, 친구라니까 말해 두는데… 잊어버려. 이제부터 연해월은 네 친구가 아니다. 알겠나?" 사마군이 홱 돌아섰다. 순간적으로 그의 손에서 발산된 지풍이 연해월의 마혈을 점했다. "가마에 태워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하 두 명이 연해월에게로 다가갔다. 연해월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싫어… 난 아무데도 안가." "실례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좌우에서 연해월의 팔을 잡았다. "싫어, 당장 손을 치워!" 그 광경을 본 위지강이 몸을 날렸으나 몇 발자국을 옮기지도 못한 채 뒤통수에 강한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 엎어지고 말았다. 사마군의 옆에 서 있던 무사가 손을 쓴 것이다. 사마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잘못 본 것인가?' 이렇게 허술하게 당할 위지강이 아닐 것이란 생각 때문에 든 의문이다. "위지공자!" 연해월이 위지강을 돌아보며 절박한 음성으로 불렀다. 하지만 무사들은 야속하게도 그녀를 가마 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사마군은 성큼성큼 위지강을 향해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충고하는데 쓸데없는 객기를 부려보았자 비참한 일만 당하게 된다. 물러가도록!" 위지강은 천천히 일어섰다. "비켜주시게, 해월에게 할말이 있으니까." 사마군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위지강을 바라보았다. "생긴 건 멀쩡한 녀석이 고집은 쇠말뚝이군. 충고하는데 내 수하들은 인내심이 그렇게 강하지 않아. 자네 같은 인물을 다루는 데는 이골이 난 사람들이네." 슉! 사마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파공음이 울렸다. 쾅! 턱이 홱 돌아간 위지강의 몸뚱이가 일 장여를 날아 사립문을 부수며 지면에 고꾸라졌다. 그 상태에서 사마군을 바라보는 위지강의 눈빛이 한기를 발했다. 참아야 하나? 언제까지 참아야 하나? "예나 지금이나 미친개에게는 그저 몽둥이가 약이지. 두 번 다시 찍 소리도 못하게 해주마, 애송이 녀석." 일어서는 위지강의 복부에 재차 강렬한 타격이 일었다. "안돼!" 연해월이 애타게 울부짖었다. 위지강을 가격한 무사가 사마군을 바라보았다. 사마군은 씩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정리하라는 뜻, 무사의 공격이 무자비하게 위지강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안돼! 그만둬! 제발 그만두란 말이야!" 연해월은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몸에 가해지는 타격은 아프지 않다. 철벽조차 부수는 몸뚱이에 무슨 통증이 있겠는가? 가슴이 아픈 것은 이렇게 어긋나는 운명이 슬프고, 소위 강자라는 저들이 앞세우는 힘의 논리가 싫다. 위지강은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그때 귓전을 울리는 조부의 음성! ― 명심해라. 대공(大功)을 이룰 때까지는 절대로 무공을 드러내면 안된다는 사실을. 퍼억! 코피가 터졌다. ― 열 명이든 백 명이든 그 자리에서 모두 죽일 수 없을 바에는 어떠한 고통과 시련도 참아야 한다. 안 그러면 우리는 죽어. '이렇게 해서라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언지 모르겠습니다.' 위지강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사마군을 바라보는 눈빛은 여전히 무심하고 차가웠다. "버들가지처럼 마른 놈이 맷집은 일품이군그래!" 지겹다는 표정을 지은 무사는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이번의 일격은 가히 바위를 격파할 힘이 담겨 있었다. 콰앙! 모옥이 반 이상 무너져 내렸다. 자욱하게 솟구치는 먼지에 가려진 위지강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사마군이 막 가마를 대동해 길을 나서려 할 때였다. "해월, 이대로 갈 생각인가?" 먼지 속에서 울리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 사마덕조와 사마군, 연해월을 비롯한 수십 명의 무사들도 하나같이 놀란 표정으로 위지강을 주시했다. 먼지 속에서 위지강이 저벅거리며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런 그의 두 눈은 무서울 정도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위지강은 사마덕조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부탁이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주시오." 사마덕조는 무심한 눈으로 위지강을 바라보았다. "지독한 놈. 아예 목을 베어주마." 그 무사였다. 무방비 상태의 위지강을 눕히지 못했다는 사실에 오기가 발동한 무사는 검을 뽑아 그대로 위지강의 목을 베었다. "잠깐!" 사마덕조였다. 무사는 흠칫 놀라 급히 검을 거두고는 뒤쪽으로 물러났다. 사마덕조가 묵직한 음성으로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위지강이 천천히 고개를 쳐들며 대답했다. "위지강이외다." 순간 사마덕조는 흠칫했다. '위지'라는 성만 들어도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반응이다. 이제는 십칠 년이나 지난 과거의 그때, 배신의 검을 들어 의형(義兄)을 베고 난 후부터였다. 위지강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수염을 쓰다듬는 가벼운 행동, 그러나 그 순간에 그의 몸에서는 가공할 기운이 회오리처럼 일었으니! 콰앙! 쿵쿵쿵! 지면에 찍히는 깊이 세 치에 달하는 깊은 발자국의 흔적. 일 장 가량 물러선 위지강은 분노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자신이 남긴 발자국과 사마덕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암습이라니! 북파무림맹의 맹주답지 않소이다." 사마덕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드물게 보는 용(龍)의 눈이군! 내 칠성 공력을 받아내고도 저리 당당하다니 위험한 인물이다.' 그랬다. 칠성의 공력이라면 과거 의형을 베었을 때 그 공력이 아니던가? 세월이 아무리 장강후랑추전랑이라 하지만 간과할 일이 아니었다. 부친의 표정을 본 사마군은 내심을 파악하고는 넌지시 권했다. "이러다간 천둥벌거숭이 하나 때문에 밤을 지샐 것 같습니다. 해월을 위해서라도 깨끗하게 정리하지요." 사마덕조는 위지강을 무서운 눈초리로 쏘아보다가 홱 돌아섰다. 사마군의 입에서 냉랭한 일갈이 터졌다. "없애라!" 챵! 수십 명의 무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안돼요! 죽이지 말아요!" 연해월이 절규했다. 딸의 애절한 호소에 사마덕조는 잠시 멈칫거렸다. 고개를 돌린 그의 시선에 처연한 연해월의 모습이 맺혔다. "저 사람을 죽이면 저도 죽습니다." 사마덕조의 얼굴에 곤혹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설마 연해월이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저 사람만 살려준다면, 당신을 아버님이라 칭하겠습니다." 연해월의 말을 들은 사마군이 놀라 부친을 바라보았다. "둘 사이가 보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 대계를 위해서라도 제거해 버리심이……!" 사마덕조가 고개를 저었다. 그의 얼굴에 온화한 웃음이 번졌다. "딸의 첫번째 부탁이다. 들어줘라!" 사마군이 지풍을 날려 연해월의 마혈을 풀어주었다. 그러자 연해월은 가마에서 몸을 날려 그대로 위지강을 향해 다가갔다. "많이 아프죠? 괜찮아요?" 연해월은 눈물을 흘리며 위지강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위지강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나에게 닥친 이 모든 것이 너무나 갑작스럽소. 마치 눈을 뜬 채로 나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연해월도 웃었다. 슬픈 웃음이다. "북경 인근이래요. 와줄 수 있죠?" "북경! 어디로?" 연해월이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막상 자신이 장소를 정했지만 정작 그녀도 북경에 대해선 아는 것이 전무했던 것이다. 잠시 곤혹스러워하던 연해월이 눈빛을 반짝 빛냈다. "그래요, 북경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해요. 매달 보름 때마다 북경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서 기다릴게요." 위지강은 빙그레 웃었다. "알겠소. 내 꼭 찾아가리다." "그래요, 꼭 와야 해요. 꼭." 재차 다짐을 받은 연해월은 아쉬운 듯 몸을 일으키고는 위지강을 다시 한 번 애수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홱 몸을 돌려 가마를 향해 달렸다. 흐르는 눈물이 바람에 날리거늘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위지강은 우울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떨궜다. '간다. 기필코!' 두두두두! 말발굽 소리가 지축을 울렸다. 그들은 순식간에 어둠의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 * * 어둠에 잠겨 있는 야산. 야산 중턱의 높다란 언덕 위에서 위지강의 조부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벌써 두 시진이 지났는데…….' 노인은 우울한 탄식을 불어냈다. '아무래도 보내지 말았어야 했던 모양이다.' 노인은 천천히 집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살얼음판을 걸으며 연명하느니, 차라리 평범한 사람들처럼 촌부로 사는 것이 오히려 행복한 길일지도 모른다.' 이때 돌연한 인기척이 들려 노인은 반색을 하며 뒤돌아 섰다. "강이냐?" 전방을 살피던 노안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시선에 잡힌 것은 허공을 선회하며 떨어져 내리는 몇 줄기의 괴영이었다. 괴영들은 노인을 에워싸며 사뿐히 내려섰다. 생각 외로 여자였다. 달빛을 등진 채 요염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십 후반의 여인은 바로 지주미인 소소염과 그의 수하들이었다. "뉘시오?" 노인은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더듬거렸다. 수목을 등진 소소염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흘렀다. "오랜만이군요. 풍선배!" "풍선배라니? 무슨 말씀인지?" 노인의 반문에 소소염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실망인데요. 한때 무쌍무적(無雙無敵)의 위대한 혈명(血名)을 사해에 떨치던 고독천마(孤獨天魔) 풍천양(風天陽) 선배가 이런 시골구석에서 그릇이나 굽고 있다니요." 노인은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오! 낭자께서 사람을 잘못 보셨소. 노부는 절대로 당신이 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외다." 소소염은 육감적인 몸매를 흔들며 천천히 노인에게 다가갔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저도 감히 하늘같은 선배와 다투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요." 그녀는 노인 앞에 우뚝 선 채 손을 쓱 내밀었다. "물건을 내주세요." "물건?" 소소염의 요염한 눈매가 싸늘하게 빛났다. "천마비록(天魔秘錄)!" 순간 노인의 안색이 확 굳어졌다. 그러나 그는 이내 입가에 피식 쓴웃음을 머금었다. "분명히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인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아무래도 내가 늙긴 늙은 모양이오." 노인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처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멈춰요!" "어쨌든 내가 가진 거라곤 싸구려 질그릇 몇 개밖에 없으니 그거라도 좋다면 마음대로 가져가시구려." "풍선배,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인내심에 한계가 있어요." 노인은 걸음을 멈춘 채 담담하게 웃었다. "살만큼 살은 데다 병까지 짊어진 육신이오. 필요하다면 기꺼이 가져가시오." 노인의 비웃는 어투에 소소염은 쌍심지를 곤두세웠다. "이빨이 빠진 주제에 아직도 자신을 맹수라고 착각하는가?" 소소염이 쌍장을 맹렬하게 내쳤다. 쾅! 노인의 왜소한 가슴에 소소염의 장력은 벼락 꽂히듯 작렬했다. "크윽!" 노구가 허공으로 붕 떠올라 십여 장을 날아 지면에 처박혔다. 한 사발은 됨직한 시뻘건 피가 노인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노인은 손으로 땅을 짚고 상체를 일으키려고 애썼다. 그러나 부상당한 노쇠한 몸은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것 같았다. "호호! 이것 참 의외네요. 고독천마 풍천양이 이렇게 쉽게 당하다니. 설마 주화입마라도 당한 건가요?" 그녀의 비웃음을 듣는 노인의 눈빛이 한광을 발했다. 고독천마 풍천양. 그 이름. 적수다운 적수를 찾지 못해 천하제일의 고독인(孤獨人)을 자처했던 절대고수의 그 이름! 그랬다. 노인의 과거 이름과 호가 풍천양, 고독천마였다. 주름진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선 풍천양의 몸에서 홀연히 천하를 짓누를 무서운 패기가 뻗쳤다. 소소염이 냉소를 날렸다. "이제야 왕년의 풍모가 드러나는군요. 하지만 여전히 당신의 몸에는 한 올의 공력도 남아 있지 않아요." "조용히 살고자 해도 사람들이 가만두지를 않는구나. 소소염 잡소리는 때려치우고 손을 써라!" 소소염은 갈고리처럼 오므린 손을 치켜들며 차갑게 내뱉었다. "좋아요. 정히 뻗댄다면 나도 방법이 있어요. 풍선배를 사로잡아 근육이 갈라지고 뼈가 뒤틀리는 분근착골(分根着骨)의 고문수법을 시험해 보죠." "네가 감히?" 풍천양은 가소롭다는 듯이 소소염을 쏘아보았다. 그녀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원하는 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머리통이 아니라 천마비록이지만 귀가 어둡다면 먼저 귀를 뚫어줄 수밖에 없죠." 소소염이 몸을 날렸다. 번개같은 속도로 풍천양의 머리에 떠오른 그녀의 오른손 다섯 손가락이 쫙 펼쳐지며 질풍같이 몰아쳤다. 풍천양은 무슨 일인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소소염의 공격이 그의 머리에 바람구멍을 내려 할 때였다. "멈춰라!" 쩌렁쩌렁한 용음(龍音)이 전방에서 터져 나왔다. 소소염은 고막이 파열되는 듯한 충격을 받고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뚝 멈추었다. '벼락을 삶아 먹었나? 어느 놈의 목청이 이렇게 커?' 소리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린 소소염은 두 눈을 부릅떴다. 쇄애애액! 달빛 속에 하나의 점이 무서운 속도로 폭사해 오고 있었다. 그 속도는 믿지 못할 정도로 빨라 삽시간에 사람의 형상으로 변해 소소염을 향해 날아들었다. 바로 위지강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놈이다. 모두 막아라." 소소염이 놀라 명령을 내리자 수하들이 몸을 날렸다. 파파파팟! 삽시간에 허공을 뒤덮는 수많은 비단 천들! 검인 양 목을 베어 오는 것도 있었고, 채찍처럼 전신을 휘감아 오는 것들도 있었다. 중요한 건, 그 비단 천에는 산악을 자를 강한 힘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여인들, 꼭 그렇게 죽음을 탐하는가?" 위지강의 몸이 바람 앞의 갈대처럼 흔들렸다. 하나, 둘, 넷……! 그의 몸이 흔들릴 때마다 수많은 환영이 파생되고, 그 그림자들을 비단천이 갈가리 찢었다. 비명은 애초에 없었다. 위지강이 펼친 신법은 어느 것이 실상이고 허상인지 종잡을 수 없는 절묘한 신법이었던 것이다. 소소염이 두 눈을 부릅떴다. "처… 천마용등보(天魔龍登步)!"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천마(天魔), 현 무림에서 그 두 글자가 들어가는 무공을 펼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감히 자신의 무공에 천마라는 두 글자를 붙이는 무사도 없었다. 그건 천마비록을 연성한 절대자를 향한 중원무림의 경배였다. 감히 인간이 익힐 수 없는 경외의 무공이기에 천마(天魔)자를 붙인 중원최강의 무공이었다. 그런데 지금 위지강이 펼치는 무공이 바로 그 천마비록에 기재된 천마용등보였음이니! 챙! 예리한 금속성이 울렸다. 연검을 뽑아 든 소소염의 아름다운 얼굴이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천마의 무공을 펼침은……. 그대가 전설의 가문 천추군림가(千秋君臨家)의 후예임이라는 뜻! 맞나요?" 소소염의 질문에 위지강은 고개를 저었다. "낭자, 중요한 건 천마가 아니라 내가 무공을 펼쳤다는 점이오." 무공을 펼친 이상 한 사람도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지만 소소염은 그의 말뜻을 몰랐다. 아니 그녀가 알 필요도 없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 네가 천추군림가의 후예인가의 여부는 중요치 않아. 내가 필요한 건 천마비록일 뿐이다." 스팟! 연검이 곧추섰다. 곧이어 싸늘한 검기를 날리며 곧추선 검이 활처럼 휘어지며 위지강의 목을 쳤다. 위지강은 후면을 향해 가볍게 손을 뻗었다. 우두둑! 엄지손가락 굵기 만한 나뭇가지가 부러져 손에 들린 찰나, 위지강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천마검(天魔劍) 제일초(第一招) 용형뢰(龍形雷)!" 전설의 실현이었다. 향후 중원무림에 피의 폭풍을 야기시킨 한 인간의 무서운 용솟음이었다. 부챗살 형태로 폭발하듯 폭사된 수백 개의 검기가 소소염을 향해 해일처럼 몰아닥쳤다. 그 어마어마한 기세에 소소염은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믿을 수 없어!" 소소염이 바람처럼 몸을 날렸다. 그 덕분에 위지강의 공격은 애꿎은 수하들에게 몰아쳤다. 그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무슨 방법으로 저 공격을 피한단 말인가? 콰콰콰쾅! 퍼벅! 퍽! 검기에 격중당한 여인들의 전신이 벌집처럼 관통된 채 퉁겨져 날아갔다. 피를 뿌리며 가랑잎처럼 날아간 그녀들은 나무와 바위를 가릴 것 없이 부딪쳐 피곤죽이 되어 즉사했다. 간신히 지면에 착지한 소소염은 넋을 잃고 위지강을 바라보았다. "천마비록에 수록된 무공 가운데 천마검법은 절기 중의 절기다. 삼갑자의 내공이 없으면 단 일초도 펼칠 수 없는 극상승의 검법이거늘……. 네가 그걸?" 풍천양이 클클거리며 웃었다. "소소염, 내가 만든 작품이지만 어떤가? 볼만하지 않나?" "이제 보니 늙은이가 공력을 저 어린놈에게 전수한 것이구나! 음흉하게 그 사실을 속인 것이고." 풍천양은 뒤의 나무에 노구를 기대며 희미한 웃음을 떠올렸다. "내가 보기엔 지금의 상황이 그대가 한눈 팔 수 있을 만큼 한가로운 편은 못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가?" 소소염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헉!" 다급한 신음이 절로 터졌다. 위지강이 허공 삼 장의 높이에 떠서 천지양단세로 대기를 가르자 일성 진기가 나뭇가지의 끝에서 파생되어 벼락치듯 지면을 강타했던 것이다. 콰가가강! 인간의 무공이 아니었다. 지면이 폭격을 맞은 것처럼 움푹 패였다. 무형의 검기는 땅을 반으로 쫙 가르며 그녀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맙소사! 검기(劍氣)!" 이제는 더 이상 놀랄 틈도 없다. 소소염이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위지강이 발출한 검기가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발치를 스치고 지났다. "허허! 이놈, 강아. 집을 부수려는 것이냐? 어서 검기를 회수해라!" 풍천양은 여유가 있었다. 풍천양의 말을 들은 위지강이 검을 회수했지만 발출한 검기는 이미 노도처럼 공간을 가로질러 허름한 모옥을 향해 직격하고 있었다. 콰콰쾅! 근 보름 동안 정성껏 손질한 모옥이 삽시간에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소소염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이건 아니었어. 천주는 놈이 무공을 모른다고 했는데… 속은 거야. 천주는 물론 천하의 모든 인물들이.' 소소염은 절망을 느꼈다. 그런 그녀의 귓전에 풍천양의 너털웃음이 들려왔다. "쯧쯧쯧. 놈, 공력의 수발(受發)이 그렇게 엉망이어서야 어디 고수라 할 수 있겠느냐?" 위지강이 씩 웃었다. "나무라지 마십시오. 이번에는 제대로 된 무공을 펼쳐 보일 테니까요." 스슥! 위지강의 몸이 환영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반사적으로 사방을 살핀 소소염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없다. 위지강의 종적이 묘연한 것이다. '설마 그 무공을……?'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소소염은 즉각 몸을 뽑아 올렸다. 그녀의 동작은 매우 빨랐다. 하지만 그때 그녀의 가슴을 사정없이 베고 지나는 물체가 있었으니. "……!" 불에 덴 듯한 화끈한 통증! 지주미인 소소염은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주먹만한 구멍이 뻥 뚫린 그곳에서 피가 콸콸 솟구치고 있었다. "이거였어. 파공음을 들었을 땐 이미 늦어 명왕부에 도달한다는 전설의 검초, 그 이름이……?" "천마대구식 제오초(第五招) 무영검(無影劍)이라네. 나 역시도 저 녀석이 무영검까지 터득하고 있을 줄은 몰랐지!" 풍천양이 고목에 기댄 몸을 일으키며 하는 말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소소염의 눈동자에서는 생의 기운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풍천양이 물었다. "이제는 내가 자네에게 물을 차례군! 누가 보냈는가?" 소소염이 허무하게 웃었다.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입을 열 정도로 나약한 여자는 아냐." "천하사세의 하나겠지. 그리고 너 소소염은 사내를 벌레보다 더 경멸하는 여인이니 너를 거둘 곳은 단 하나, 환락천이겠군!" 소소염의 입이 벌어졌다. 고독천마 풍천양이 무공의 고수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사태를 직관하는 매서운 눈을 지니고 있을 줄이야. '철저한 실패야. 천주는 사태를 잘못 파악하고 있어!' 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쿵 소리와 함께 무너진 소소염의 동공은 훤히 열려 있었다. 죽은 것이다. 풍천양은 풍비박산이 난 모옥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럭저럭 한 고비는 넘겼다만… 이젠 어디다 이 늙은 노구를 눕히누!" 혼자말로 탄식을 토하던 풍천양은 문득 위지강이 궁금해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검게 죽은피를 입가에 주르륵 흘리면서도. "할… 아버지!" "녀석, 천마검을 무리하게 펼치느라 기혈이 엉켰다. 자칫하면 주화입마에 걸리니 먼저 운기조식을 하거라!" "아닙니다. 아프지 않습니다. 오히려 답답합니다. 언제까지… 우린 이렇게 남의 눈을 피해 다니면서 살아야 합니까?" 풍천양은 위지강을 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정녕 그것이 궁금하냐?" 위지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움직임으로 인해 다시 한 번 피를 토한 그는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풍천양은 그런 위지강을 측은한 눈길로 쳐다보며 혼자말을 흘렸다. "대답해주지! 네가 용(龍)이 될 때까지다!" * * * 화원에는 봄이 풍성했다. 방안에는 여인의 향기가 풍성했다. 이곳을 지나는 바람은 그 자체가 향기를 지니고, 햇살은 스스로 얼굴을 가린다고 했다.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들이 모여 있는 이곳! 한 층에 삼백 개의 방, 구 층이니 도합 이천칠백 개의 방일 것이다. 그 방마다 한 번 눈길을 주면 그대로 혼을 빼앗길 절대의 미녀들이 거하고 있으니 이 문파의 명칭이 천하를 진동시키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환희천(歡喜天)! 천하를 지배하는 사대 거파의 하나! 특이하게 환희천의 천주는 여인이다. 태양마후(太陽魔后)라 불리는 그녀는 쉰 살이 넘었으나 주안술(駐顔術)을 익혔기에 삼십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태양마후는 사대 거파의 하나이면서도 정사 중간의 인물답게 행동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녀의 침상에는 항상 젊은 청년이 넘쳤다. 색욕? 물론 당연하다. 천하사세의 우두머리이니 그 정도의 권력을 지닌 여인이라면 사내를 밝혀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으니까! 허나, 중요한 건 그녀가 사내를 탐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색이 아니라 바로 순음진기를 극성으로 익히기 위함이라는 점이다. 부수적으로 팽팽한 피부를 유지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오늘도 환희천의 중심부인 태양마후의 처소에서는 뜨거운 열풍이 불고 있었다. 단, 평상시와 다르게 오늘의 이 정사는 채양보음을 위한 정사가 아니다. 인간 본연의 색을 즐기는 육체의 향연인 것이다. "아… 아… 아흑!" 어둠 속에서 열락(悅樂)에 겨운 여인의 교성이 실내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고 있었다. 이십 후반으로 보이는 절색의 미녀가 한 사내와 알몸으로 뒤엉킨 채 발광을 하고 있었다. 온몸이 절절이 녹아들 신음이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사내의 혼을 앗아갈 교성을 지르는 이 여인이 바로 환희천의 천주인 태양마후였다. 상대방인 사내의 얼굴은 어두움으로 인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창문으로 흘러드는 희미한 달빛에 비친 그의 몸매는 매우 단단한 근육질이었다. 사내는 무릎을 바닥에 댄 자세로 연신 허리를 퉁겨 올렸다. 태양마후의 투명하고 미끈한 두 다리는 허공을 향해 번쩍 치켜진 채 사내가 풀무질을 할 때마다 가랑잎처럼 흔들거렸다. "헉헉!" 사내의 등줄기를 타고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둑하게 어둠이 내릴 때 시작된 정사이니 반나절이 지난 셈이다. 그럼에도 욕망은 쉬이 가라앉질 않았다. 사내의 정력이 그만큼 절륜한 이유도 있겠지만 이 정사가 지닌 중요성 때문이다. 사내는 여인을 반드시 포로로 만들 필요가 있었고, 여인 역시 사내를 손아귀에 쥐어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악, 더… 힘껏." 태양마후의 요구에 따라 사내의 몸놀림이 점차 빨라졌다. 그에 따라 태양마후는 더욱 더 자지러지는 신음을 흘리며 풍만한 젖무덤은 물 담긴 고무풍선처럼 출렁거렸다. 마침내 절정에 도달하는지 태양마후의 눈동자가 몽롱한 빛을 발했다. 아울러 이완되었던 하체의 근육들이 팽팽하게 긴장되기 시작했다. 태양마후의 변화를 주시하던 사내가 마지막 힘을 모아 허리를 거칠게 내리찍었다. "하악!" 늘씬하면서도 풍만한 나신이 활처럼 휘어졌다. 치미는 쾌락과 욕정을 견딜 수 없는지 그 나신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고 두 손은 침상의 모서리를 잡고 바르르 떨고 있었다. 나른한 눈빛과 묘한 향! 쾌락에 젖어 떠는 몸과 엉덩이의 절묘한 율동! 사내는 다시 한 번 하체를 번쩍 들었다가 힘차게 밀어 넣었다. 여인의 몸이 한껏 휘어지고 입에서는 고조된 신음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아아……! 죽을 것 같아. 당신 너무 멋져!" 천하제일의 미녀라 해도, 천하를 움직이는 여인이라고 해도 사내의 강인한 힘 앞에는 평범한 여인에 불과한 모양이다. 사내는 전신의 힘이 하초의 한 부분으로 급속히 쏠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힘은 좁은 출구를 박차고 힘차게 밖으로 분출되었다. "허억!" 사내의 입에서 짐승의 울부짖음과 같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태양마후도 때를 같이하여 몸 깊은 곳에서 폭발하는 강한 힘을 느꼈다. 여체가 다시 한 번 광란을 일으켰다. 짐승이 울부짖듯 거친 신음을 흘리며 날뛰던 여인의 움직임이 한순간 스르륵 가라앉았다. 두 사람은 파도처럼 밀려드는 절묘한 쾌감을 한동안 만끽했다. 한동안 여체 위에서 진저리치듯 몸을 떨던 사내가 자세를 바로 해 누웠다. 그렇게 많은 시간 여체를 탐했으면서도 아직 욕정이 남았는지 사내는 태양마후의 풍만한 젖가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마후의 몸은 언제나 뜨겁구려." "호호호! 그대의 정력도 갈수록 강해지는 것 같아요. 천하에 나를 만족시킬 사람은 아마도 당신뿐일 것입니다." 태양마후는 섬섬옥수로 사내의 가슴을 타고 내리는 땀방울을 천천히 훑어 내렸다. 사내는 그녀의 이런 행동이 좋은지 후후 웃으며 말했다. "일년! 그 안에 천하는 마후에 의해 일통 될 것이오. 천하의 모든 문파들이 환희천에 앙복할 것이오. 실로 영광스런 삶이 아니겠소?" "호호! 어찌 그걸 나 혼자의 영광이라 하겠어요? 천하는 내가 아닌 우리 두 사람이 공유하는 거예요." "이 몸은 그저 마후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감복할 뿐이오." 침상에서 천하를 논함이 새로운 욕정을 불러일으켰는가? 사내의 양물이 서서히 곤두서기 시작했다. 반나절 동안 정사를 치른 걸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정력인데, 사내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음성은 조금도 흥분한 기색이 없었다. "그러나 속단할 일이 아니오. 천추군림가의 후예와 풍천양의 죽음을 확인하지 않는 한 말이오." 태양마후가 요염하게 웃었다. "듣기로는 당신이 수십만 명을 동원해 그들의 행방을 찾은 것으로 아는데… 아직도 찾지 못했어요?" 사내의 두 눈이 어둠 속에서 차갑게 빛났다. "그렇소. 하지만 기필코 찾아낼 것이오. 난 나머지 삼세보다 그들을 더욱 암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있소!" 태양마후는 사내의 말에 흥미를 느꼈다. "당신답지 않군요. 사대 거파의 수장들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당신이 그런 말을 하다니요!" 사내는 문득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꽉 쥐어 일그러뜨리며 음산한 음성을 흘렸다. "당연하오. 상대는 천추군림가의 후예들이오. 나는 특히 풍천양보다는 천추군림가의 핏줄을 이은 자를 주목하고 있소이다. 그자는 어쩌면 천마비록을 연마했을지도 모르오." 사내의 말을 들은 태양마후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삼단같이 긴 머리가 상체의 일부를 가린 그 모습은 정녕 요물이었다. "천마비록을 말인가요?" "그렇소. 풍천양이 있으니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오!" 태양마후가 픽 웃었다. "기우예요. 천마비록을 익히려면 삼갑자에 달하는 내공이 있어야 해요. 그자는 고작 열일곱에 불과하니 절대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요. 설령 천고의 기연을 얻는다 해도 말이에요!" 사내는 비릿하게 웃었다. "천마비록을 과소평가하지 마시오. 만일 풍천양의 내공과 천마비록에 수록된 내공의 속성편의 비밀이 풀려졌다면?" 태양마후가 돌연 요요한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 아니에요. 기억하잖아요. 십칠 년 전, 대사형(大師兄)의 호의로 천마비록을 보았지만 누구 한 사람 천마비록을 해독치 못했어요. 천고의 기재로 알려졌던 우리들이 말이에요! 그런데 그걸 그 멍청한 풍천양과 꼬마가 해독을 했다고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에요." 말을 마친 태양마후의 눈동자에는 어느새 색기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사르르 몸을 일으킨 태양마후는 어깨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그러자 한 손으로 쥐어도 모자랄 것 같은 풍만한 젖가슴과 겨드랑이의 체모가 드러났다. 그 모습은 가히 폭발적인 유혹이었다. "음!" "이봐요. 그렇게 고민하지 말고 우리 다시 한 번 열락에 들어요!" 그녀의 손가락이 그녀의 몸을 떠나 사내의 몸에 닿았다. 탄탄한 근육으로 뭉친 배에 닿은 손길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이윽고 그녀의 가늘고 긴 손가락은 사내의 중심을 움켜잡았다. 사내가 전신을 움찔거렸다. 태양마후의 부드러운 손길이 중심을 자극하자 피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신체의 한곳이 불끈 곤두선 것이다. 그곳이 아플 정도로, 피부가 당길 정도로 한껏 발기한 것이다. "멋져. 손오공의 여의봉도 이보다 신기하지는 못할 거예요." 태양마후는 손을 데일 듯한 뜨거운 불기둥을 마치 갓난아기 다루듯이 살살 어루만졌다. "으으음!" 마침내 사내의 입에서 억눌린 듯한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마치 지렁이가 꿈틀거리듯, 시퍼런 힘줄이 툭툭 불거진 그의 중심은 무쇠라도 꿰뚫을 듯 용솟음쳤다. 태양마후는 맛난 먹이를 눈앞에 둔 맹수처럼 혀로 입술을 축였다. 그녀의 고개가 점차 숙여져 삼단같이 긴 머리가 사내의 중심을 덮었다. 그 상태에서 그녀의 머리가 묘하게 움직였다. "으윽!" 사내가 엉덩이를 번쩍 치켜들었다. "우욱!" 무슨 일을 벌이는지 태양마후의 입에서 야릇한 비명이 터졌다. 언뜻 보이는 그녀의 볼이 한껏 부풀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그때마다 사내의 입에서는 신음소리가 흘렀다. 그러길 얼마, 태양마후가 답답한 듯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러자 거대한 사내의 상징의 뿌리가 드러났다. 그 상부는 없었다. 앵두처럼 작은 태양마후의 입에 삼켜진 것이다. 사내의 중심은 너무 거대해 그녀의 작은 입술이 터질 것 같은 형상이었다. 중심이 빠져 나가는 듯한 절묘한 쾌감에 더 이상 참지 못한 사내는 벌떡 일어나 그녀와 자세를 바꿨다. 이미 달아오른 여인의 몸을 연 그가 힘차게 진격했다. "하… 아악!" 태양마후가 두 눈을 한껏 부릅떴다. 허공을 더듬던 손이 사내의 등줄기에 사정없이 쑤셔 박혔다. 사내는 왕제비였다. 여체를 다루는 마술사였다. 강인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그러다가 폭풍처럼 가공할 파괴력으로 태양마후를 정점으로 몰고 갔다. 혼절지경에 이를 정도의 쾌감에 태양마후는 머리를 휘저으며 신음을 토했다. "아아……! 등표, 넌 정말 멋……." 사내가 급히 여인의 입술을 막았다. 하지만 이미 여인의 입을 통해 그 이름은 언급되고 말았으니, 놀랍게도 이 사내는 북파무림맹의 군사인 바로 그 등표인 것이다. 정사는 그 후로도 장장 한 시진 동안 더 이어졌다. 등표가 돌아가고 난 뒤 태양마후는 알몸을 가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침상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그때 방문 밖에서 그녀의 측근인 빙령(氷靈)의 음성이 들려왔다. "천주님, 급한 보고입니다." "급한 보고?" "소소염이 당했습니다." "뭐라고?" 태양마후의 나신이 퉁겨지듯 침상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대충 옷을 걸쳐 입은 후 명을 내렸다. "들어오너라." 스르륵 방문이 열리며 빙령이 들어섰다. 나이는 대략 이십여 세, 백의를 산뜻하게 차려입은 미모의 여인이었다. 그녀의 등에는 한 자 정도 길이의 짧은 쌍검이 교차로 메어져 있었다. "소소염이 당했다고? 자세히 말해 보거라." 지주미인 소소염은 태양마후가 근자에 포섭해서 수하로 거둔 여인이었다. 소소염은 무공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추적에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솜씨를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사내라면 환멸을 느끼는 성격이라 손속에는 일말의 잔정도 없었다. 태양마후의 휘하에 들어온 후 다섯 번의 임무를 완벽하게 처리했던 그녀가 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어젯밤 소소염의 시체가 발견되어 이송되었습니다." 태양마후가 눈살을 찌푸렸다. "풍천양에게 당한 것인가?" 빙령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소소염을 죽인 건 풍천양의 수법이 아닙니다. 순찰당주의 보고에 의하면 그녀는 천마비록의 무공에 당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천마비록?" "그렇습니다. 십칠 년 전 천하를 경악시킨 천마비록의 천마검법, 제오초 무영검에 당한 흔적이었습니다." "……!" 떨고 있었다. 천하사세의 주인이자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다는 이 여인 태양마후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순찰당주를 불러라. 내 직접 그를 보겠다!" 빙령의 보고는 한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순찰당주가 운구해 온 소소염의 시체를 손수 확인한 태양마후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고독천마 풍천양이 천마비록을 익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충실한 하인인 그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것이니까! 즉, 자신이 아닌 위지백의 후인에게 천마검법을 전수했을 가능성이 가장 농후하다. 태양마후의 아름다운 옥용에 갑자기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빙령의 전음을 듣고 있기 때문이다. (전화위복입니다. 위지백의 후인은 아직 세상물정이 어두울 터이니 천주께서 그자를 유혹, 천마비록을 얻은 후 제거해 버리세요. 그럼 전대의 고민을 없앰은 물론이고 천하제일의 비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태양마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빙령, 음곡(陰谷)의 인물들을 동원해라." 빙령의 단아한 얼굴에 놀람의 기색이 역력했다. "음곡의 인물들을 말씀이십니까?" 음곡! 환희천의 비밀거점 중의 하나로 태양마후가 미를 미끼로 포섭한 천하의 고수들을 말한다. 태양마후는 십칠 년 전 대형을 죽이는 모반에 가담한 후 훗날을 대비해 음곡에서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괴물들을 양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무엇보다도 그들을 찾는 게 최우선이다. 천마비록만 손에 넣는다면 이까짓 천하의 사분지 일이 아니라 무림전체가 우리 환희천의 손아귀에 들어온다." "그럼 그를 죽이라는 말씀인지?" "아니다. 일단은 탐색한다. 천마비록이 그의 수중에 있는지를!" "존명!" 빙령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태양마후의 두 눈에 탐욕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기필코 나 태양마후가 무림을 제패하고 말리라. 그리고 고금이래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여인천하를 이루고야 말겠다. 오호호호호!" * * * 북경의 외곽, 드넓은 대지에 자리한 웅장한 성채 하나가 있다. 담의 길이만도 수십 리에 달하고 그 안에는 크고 작은 전각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북파무림맹. 무적검맹, 환희천, 남극벌과 함께 통칭 천하사세(天下四勢)로 불리며, 강북무림의 법과 질서를 주도하는 철혈의 군림무가(君臨武家). 북파무림맹의 지세를 살핀 풍진이사는 '웅풍은 이곳에서 불어 장강을 건너 천하로 향할 것이다.' 이렇게 말했다. 그의 예언은 한치의 어긋남도 없어서 현재 북파무림맹은 천하사세 중에서도 최강의 성세를 자랑하고 있었다. 수만 평의 연무장은 무사들의 땀으로 축축이 젖고, 수십 리에 달하는 담은 무사들의 우렁찬 고함소리에 속이 곯았다고 하던가? 오늘 북파무림맹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바삐 돌아갔다. 오늘은 무림의 신이 태어난 날이었다. 바로 사마덕조의 마흔다섯 번째 생일인 것이다.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구파일방의 장로들이 사절단으로 파견되었고, 수백 개의 군소방파의 문주들은 갖은 진상품을 바리바리 싣고는 북파무림맹을 향해 몰려들었다. 오늘의 천하는 오직 북파무림맹뿐인 것 같았다. 북파무림맹의 내원! 연해월은 외출을 하기 위해 후원을 가로질러 월동문 앞에 이르렀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홍조가 감돌고 있었다. 미림현에 있을 당시에도 선녀가 무색할 정도로 아름답던 그녀의 용모는 이제는 만개한 꽃처럼 활짝 피어 있었다. "오늘이 보름이야!"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