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가 김동형 소설가
아산 탕정에서 태어남.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수료. 연세대학교 방송 작가반 24주 수료. 연세대학교 사회교육원 논술지도교육자 보통반, 고등반 1년 수료
88년도 한국반공연맹 작품현상모집 소설부분 당선. 94년도 크리스찬 문학 단편 ‘어느 터널’ 신인상. 95년도 한맥문학 중편 ‘봄을 기다리는 낙엽’ 신인상
창작집 : 봄의 찬가, 촛불과 아들. 그 여자의 나팔소리 외6
중편소설집 : 무지개를 타고 떠난 아내 외2
장편소설 : 그해 봄에 피었던 꽃 외3
국제펜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제1376호 내무부장관 표창. 제936호 국방부장관 표창. 인천시장 표창 2회
한국 방공연맹 이사장 표창 2회. 기독교 크리스천 문학대상 2회
민주신문 대한민국을 빛낸 21세기 한국인물 대상(문학부)
[작가연락처] 인천시 미추홀구 낙섬서로50번길 30 (용현동) kimdh5@hanmail.net
010-8882-4243
제12회 인천펜 문학상 심사경위
*수상작가와 작품집 - 김동형 소설집 《그 여인의 탄원서》*
♣ 심사일자 2024.10.15.10:00~
♣ 심사장소 인천시남동구노인복지관 지층 대화실
♣ 심 사 자 한기홍 회장 . 최제형 시인 . 엄현옥 문학평론가
♣ 심사의견
수상작인 김동형 작가의 소설집 ‘그 여인의 탄원서’는 삼엄한 현실인식하에서 집필된, 위기의 한국사회 저변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과 성찰을 주문하는 현장문학임을 공감하였습니다. 특히 작중의 인물들에게서 투영되는 비극적 서사를 통하여, 안보와 이념의 비등점에 선 한국의 암울한 현실인식과 눌함으로 연명되는 소외자와 아웃사이더(局外者)들에 대한 투박하고 진정성 있는 천착이 시선을 잡았음을 밝힙니다.
작가의 치열한 문학정신에 박수를 보내며, 제2, 제3의 역저를 기대합니다.
[심사위원진 일동]
김동형 소설가 ----- 당선 소감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독자들까지도 뜻밖의 낭보로 놀라지 않았던가요? 급속도로 발전하는 영상문화에 몰린 독서문화가 전멸하는 시대적인 입장에서 노벨문학상이라니, 마른 나무에서 꽃이 핀 격이라 할까? 아무튼 그 동안 우리 문인들에겐 더할 나위없는 반가운 수상소식이었다 전하는 바입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세계경제 10위권까지 성장하는 과정에서 특히 과학 분야에서 우주항공 발사체를 비롯 지진 0,9의 위력에 해당하는 방산 산업체 현무 5탄과 더불어, 원자력 발전소에 안전장치가 결함이 생기면 본체가 아예 가동이 안 되는 세계최초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또한 전자 산업과 IT산업, 반도체, 스마트폰 인공지능과 그리고 조선 산업 등 각 분야에서 국제시장을 석권하고 있습니다. 문화면 영상 쪽에서도 작품상과 주연상까지 거머쥐는 판에 우리 문학계만 침체일로에서 숨죽이고 있던 차에, 소설에서 그들을 다 제치고 노벨문학상의 영광에 깃발을 하늘 높이 올리다니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지 않던가요?
이렇게 대단한 축제분위기 속에서 본인에게도 인천펜문학상이 주어진다니 그 수상소식에 더 할 나위 없이 기쁘다 할까요. 인천펜 회장님을 비롯 심사위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수상작 작품 해설]
-소설집 <그 여인의 탄원서> 중
「NLL 알고 있다.」
임 헌 영
(문학평론가)
이 달의 『한국 소설』에서 마침 거대담론에 걸맞는 작품 김동형의 「NLL은 알고 있다.」를 찬찬히 읽었다. 화자는 김진우이나 사건 전개의 중심축에는 그의 어릴 적부터의 여친인 설은진이다.
소설은 후쿠시마 원전사고(2011.3.11)가 터진 뉴스를 보다가 진우는 5년 전(2006) 설은진이 간 곳임을 알고서 그녀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회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두 사람은 울산이 고향인데 유달리 은진은 진우를 따랐다. 유복자인 그녀는 다섯 살 위인 진우에게 의지했는데 그녀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가출하면서 헤어지게 되었다. 은진의 아버지는 사관학교 출신이 아닌 일반 간부출신 육군중위로 수도사단 26연대(혜산진 부대) 제 3중대 부관으로 있을 때 월님 퀴논에서 소대장으로 “42명의 부하병사들을 데리고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의 기습을 받아 적과 치열한 백병전 끝에 장렬하게 전사한 역전의 용사다.” 은진은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의 생일이나 현충일 ,국군의 날 같은 기념일에는 엄마를 따라 월남파병 용사들이 잠든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아 엄마가 시키는 대로 아버지 영혼 앞에 술잔도 올리고 절도하며 엄마 따라 울기도 했다.”
엄마는 전처의 두 자녀를 가진 남자와 재혼하여 그 가정에서 견디지 못한 은진은 중학교를 졸업 후, 무작정 가출 진우와 헤어지게 되면서 러브호텔에서 주인아줌마의 심부름이나 하면서 밥이나 얻어먹는 조건이었으나, 17세 때 건축업 일을 하는 아내가 있는 엄길준에게 농락을 당했지만 우여곡절을 거쳐 다행히 부부가 되었다. 열다섯 살이나 위인 서른 두살의 엄은 서울에서 건축업을 한다지만 사실은 집장사를 하면서 나름대로 알락한 삶을 누릴 수 있었는데 젊은 나이에 폐암으로 불행하게도 죽고 말았다. 형욱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이지만 수십억 재산을 남편이 남겨주었기에 살아가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아들 형욱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Y대학 건축과에 합격 나름대로 단란했는데 그가 해군에 지원 , NLL에서 전함 참수리 357호에서 복무를 하게 되었다.
여기서 작가는 NLL이 형성된 역사적인 배경을 자상하고도 전문적으로 기술하는데 이는 마치 <레 미제러불>에서 파리의 하수도 시설이나 나폴레옹의 워터루 전투 묘사처럼 장황하기에 거대담론으로 받아들 일만 하다.
“서해군사분계선 <NLL>은 북한이 주장하듯이 공평치 못하게 설정이 되었다. 옹진반도와 백령도 연안에 황해도 근해까지 점령하고 있으니 서해안은 어쩜 우리 아군이 거의 점령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북한에서는 공평치 못하게 나눠진 군사분계선에 대하여 늘 불만을 갖고 트집이다.”라고 서두를 뗀 작가는 이를 이승만의 치적으로 일관한다.
바로 이 무대에서 “제2차 연평 해전은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 25분 서해북방 한계선 남쪽 3마일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에서 일어났는데 화염에 휩싸인 참수리 357호는 형욱이가 소속된 함정이다. 형욱은 19명의 부상자 속에 포함하고 있었다.
바로 “온통 세계인들의 시선이 월드컵 경기장으로 쏠리고 있을 때”였다. 교전당시 북쪽에 경비정을 향하여 형욱은 정신없이 함포를 쏘아댔다. 그 와중에 적의 포탄도 계속해서 날아들었고 그 포탄에 형욱은 파편을 맞았고 그게 두부 치명상을 입게 되었다.“
남편과 아들을 전쟁에서 잃은 은진은 조국이 싫어졌다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떠난 곳이 바로 육촌 언니가 살고 있던 후쿠시마였다. 육촌 언니의 아버지는 H고보 출신으로 후쿠시마 탄광에서 십장(현장감독)노릇을 했기에 조선인 노무자들이 원수처럼 여기고 있어 8, 15일 후 일본에서 정착하고 말았다. 거기서 은진은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당하고서 김진우에게 전화를 걸게 되었다.
-그렇다면 들어와야 되는 거 아냐?
-삻어! 아무리 힘이 들어도 부도덕한 정치인들로 질서와 도덕이 무너진 잔인한 그 땅엔 엄마의 품속 같은 내 조국이라 할지라도 다시는 안 갈거야.
(중략)
지구상의 미아로 부초같이 떠도는 은진에게 할 말을 잊는다. 무슨 말을 한다고 은진에게 위로가 될까?
-오라버니 이만 전화 끊을 께요?
은진과의 대화는 이렇게 끝이 났다. 은진은 지금 세슘에 오염된 상태로 한 오락 한 오락 몸속에서 세포가 죽어가고 있단다. 불쌍한 여인 은진은 처음부터 불행과 함께 타고난 여인이었을까? 낮선 하늘 아래 낮선 땅에서 정처없이 떠돌고 있을 은진의 남은 삶에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오로지 진우는 빌뿐이다.
- 「NLL은 알고 있다.」
작가는 「NLL」이 무엇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었을까? 주제의식은 다양하지만 이승만의 정치적 활동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대조적으로 백범 김구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의식이 이 소설의 기조를 이루고 있다. 이 역사의식을 연장시켜보면, 김대중 노무현 시기의 민주화 조치에 대해 강한 비판의 투지가 번득이기도 한다.
8,15 전후의 현대사 개관은 작가의 해박한 전문지식에 바탕을 둔 견해가 스며든다. 이만큼 현대사를 꿰뚫어 보는 식견을 가진 작가가 오늘의 우리 문단에 몇이나 될까? 그리 흔치 않기에 조심스럽게 정독하게 된다.
그러나 김구에 대한 비판 의식과 반비례해서 이승만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민족사적 시각으로 볼 때 얼마나 객관성을 지닌 것인지에 대하여는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특히 이승만의 평가에서 친일파의 집권 세력화와 독립운동 세력을 빨갱이로 몰아 극심하게 탄압한 점을 간과하고서 현대사를 논할 수 있을까?
한미동맹을 이승만의 치적으로 평가한 대목 역시 국제정세에 대한 논란이 쟁점 됨직하다. 오늘날의 미국은 아무리 물러가라고 해도 결코 철수하지 않을 만큼 오로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국가 이기주의 화신임을 전제로 삼지 않으면, 한국의 현대사는 한낮 빈 껍데기 논의가 될 것이다. 미국의 실체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전제한 뒤라야 한미관계의 냉정한 이해가 가능하지 않을까?
적어도 세계사적 보편 가치로서의 민주주의 원칙을 수용하고 국민 국가로서 민족적 자주성을 국가 존립의 가치 기준으로 삼은 뒤에 보수와 진보는 서로 다른 주장을 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