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원전의 출력 제어 방식
전 교수는 국내 원전의 출력 제어 방식을 크게 3가지로 구분하며, 그 중 1번과 3번 방식만 적용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현 시점에서는 초/분 단위로 자동 조절하는 방식(예: 주파수제어운전)이 구현되지 않으므로, 이를 '계획된 출력감발' 운전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는 것.
1) 연료 교체 및 정비를 위한 감발: 원전은 약 1년 반마다 연료를 교체하고 정비를 해야 하므로, 이 과정에서 출력을 점진적으로 줄인다. 최종적으로는 가동을 멈추는 단계까지 이르는데, 이를 통해 일정 수준까지 출력을 조절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계획에 따라 천천히 감발(혹은 증발)하는 방식을 뜻한다. 앞서 2020년 5월 2일 오후 7시부터 이튿날 자정까지 신고리 3‧4호기를 대상으로 출력 감발이 이뤄진 바 있다. 연휴기간 전력수요가 최저 4100만kW까지 낮아지면서 발전기 1기 고장 시 계통주파수가 기준치(59.7Hz) 아래로 떨어질 것을 예상해서다.5)
2) 전력계통운영시스템(EMS)을 통한 자동 조절: 전력거래소 EMS에서 신호를 보내어 발전기에 유입되는 증기량을 조절하는 밸브를 자동으로 작동시키며, 이 과정은 분 단위로 출력이 오르내리도록 제어된다. EMS 제어신호로 출력을 조절하는 것.
3) 발전기 자체 감지 시스템을 통한 수동 조절: 발전기 자체에서 회전 속도를 감지하고, 이에 따라 밸브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거래소에서 신호를 보내면 발전소 오퍼레이터가 수동으로 조절하는 형태로 작동한다.
2-2. 원전 부하추종운전이 어려운 이유
원전은 전력수요에 따라 수시로 발전량을 늘리거나 줄이는 부하추종운전이 사실상 어렵다. 그 이유는 발전량을 조절하기 위해
원자로 내 핵분열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핵연료 제어봉을 넣고 빼거나 붕산을 주입하는 게 가능하지 않고 적잖은 위험이 뒤따라서다.6)
일각에서는 원전을 경직성 전원으로 분류하면 안 된다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백원필 원자력학회 회장은 지난해 7월 열린 대한전기학회·원자력학회·신재생에너지학회 공동좌담회에서 “원전은 프랑스에서 입증되었듯 일일부하추종이나 주파수제어 탄력운전 기능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다만 백 회장은 “국내 원전이 당장 탄력운전을 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며 “원전 탄력운전은 주파수제어운전과 계획 일일부하추종으로 나눌 수 있는데, 터빈전단의 가버너밸브를 이용한 시간당 2~3% 조정은 현재도 가능하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시간당 10% 정도를 조정하려면 원자로 자체에 대한 기술 검토 등이 필요하다는 것.7)
이에 대해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부하추종은 한국형 원전의 모델인 CE형에서 이미 반영된 바 있지만 프랑스처럼 원전 주변 인구가 적은 데다가 규제를 제대로 하는 국가와 비교하면 안 된다”며 “원전 출력은 노물리 특성상 긴급하게 조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간당 10% 등의 조절이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천천히 출력 조정하는 것은 현재도 가능하지만 이 같은 조치가 출력변동 측면에서 봤을 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일례로 지난해 추석 연휴를 비롯한 경부하기간에는 보수기간을 조정하여 원전을 사전에 정지시키거나 출력을 천천히 내려서 75%, 50% 등의 감발 출력을 일정 시간 유지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론적으로는 긴급 출력 조정이 가능할지라도 노물리상 출력이 급변동하면 사고 발생이 우려되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이 대표는 강조했다.
앞서 2022년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당시 정재훈 한수원 사장도 ”국내에 가동 중인 원전은 부하추종을 하기 어렵다“고 언급한 바 있다.8) 원전 출력을 낮추는 방법은 중성자를 흡수하는 붕산을 원자로에 투입하는 방법과 연료 제어봉을 삽입하는 등 2가지가 있다. 다만 후자의 경우 빠른 제어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굳이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9)
일각에서는 적어도 APR1400 원자로 모델의 경우 부하추종운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운전 경험을 쌓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앞서 이 대표도 지적했던 것처럼 원전 출력을 임의로 조절하는 행위가 원전 안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2-3. 제논 축적과 제어 문제
원전은 갑자기 출력을 낮출 경우 제논(Xe-135)이 증가하면서 노심 반응도가 감소한다. 제논은 원자로의 핵분열 과정에서 직접 혹은 간접 분열로 생성되는 핵분열 물질 중 하나로, 중성자를 흡수한다.
제논이 축적될 경우 2019년 6월 발생한 한빛 1호기 저출력 제어봉 조작 오류 및 출력 급증 사고, 체르노빌 원전 사고 등 예기치 않은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제논이 쌓일 경우 중성자 컨트롤이 어렵게 되는데 출력조절이 어려우니 출력 폭주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출력 상태에서의 위험성을 인지하는 것은 원전 운영의 기본이다. 저출력이 발전소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연구 중인 단계이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10)
2-4. 과거부터 불거진 원전 출력감발 안전성 문제
원전 출력감발과 안전성을 둘러싼 논쟁은 과거부터 불거진 바 있다. 2000년 3월 7일자 <동아일보>11)에 따르면 당시 정부가 발전노조 파업에 대응하기 위해 원전 가동률을 조절하자 노조 측은 전력 공급을 줄이면서 원전 가동률을 낮추는 것은 비정상이고 안전에도 위험이 따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발전노조는 징검다리 연휴를 파업 성공 여부 기간으로 판단했다. 파업으로 총 전력 공급의 60% 정도를 담당하는 화력발전소의 출력을 줄일 수 없게 되면 공급 과잉을 피할 수 없어 정부가 손을 들 것으로 예상해서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원전 가동률을 낮추는 방법으로 수요 감소에 대응했는데 3∼5% 정도 낮춘 것으로 파악된 바 있다.12)
당시 산업자원부는 해명자료를 통해 출력변화율 제한치를 준수했다며 “파업 이전에도 원전 출력을 일부 낮추어 운전한 사례가 있고 영광(한빛) 5호기 시운전을 실시할 때는 일요일(당시 3월 3일) 경부하기간 감발한 45만∼46만kW 보다 많은 50만 kW 이상을 감발한 바 있다”고 전했다.
2-5. 출력조절이 핵연료에 미치는 영향
원전 출력감발이 일정횟수를 넘게 되면 핵연료 안정성에 영향을 미친다. 그동안 특수 경우를 제외하고 상시 감발운전을 실시하지 않은 이유이다. 핵연료 주기와 원전 감발 여력은 상관관계가 있는데, 새 핵연료를 투입할 원전일수록 노심연소율이 적어 출력감소 가능일이 더 길다. 지난해 한수원은 노심연소율이 60%를 넘어선 원전과 정비원전을 4~5월 감발불가 원전으로 분류한 바 있다.13)
프랑스의 경우 원전 비중이 높아 원전도 일일부하추종을 하고 있지만 노심이나 계통에 영향을 미쳐 이에 따른 노후화가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국부과열로 핵연료가 손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출력제어에 대한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14)
이 대표는 “출력변동이 잦아질 경우 핵연료가 심한 부하가 작용하게 되는데 피로현상으로 핵연료가 조기에 파손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라며 “핵연료 파손 시 계통 전체 방사능 준위가 상승하게 되고 특히 증기발생기를 통해 소량의 방사성물질이 누설될 수 있는데 이는 대기 중으로 누설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증기발생기 배관에는 방사선 감시기가 설치되어 있지만, 지난 2014년 한빛 3호기 증기발생기 방사능 누출 사고 과정에서 오작동한 것으로 뒤늦게 나타났다. 사고 발생 당시 복수기 등에서는 방사능이 측정됐지만 정착 누출이 일어난 증기발생기 감시기는 수치가 그대로여서 문제가 된 바 있다. 조사 결과, 2012년 3월 사업자 측이 감시기의 전압을 임의로 조절했고, 설비의 감시 영역이 당초 측정하고자 하는 영역에서 크게 벗어난 것으로 드러났다.15)
<각주>
5) ”2일 오후 7시부터 분당 0.04%씩 출력을 낮춰 3일 오전 3시부터 1기당 발전량을 300MW씩 낮췄고, 이렇게 13시간을 유지하다 같은날 오후 4시부터 다시 서서히 출력을 높여 자정께 정상 출력으로 복귀하는 수순을 밟았다.“
https://www.e2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2424 전력계통 초유의 원전 출력 감발 (이투뉴스)
6) 각주 5)와 동일
7) https://www.e2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55985 경직성 전원 너무 많다는데…원자력계 "2050년 50%는 돼야" (이투뉴스)
8) https://www.elec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6228 원전 부하추종운전, 과연 가능한가 (전기신문)
9) https://www.e2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42467 봄가을‧주말마다 원전출력 낮춰야 할 판 (이투뉴스)
10) https://www.seoulfn.com/news/articleView.html?idxno=343809 한빛 1호기 저출력 제어봉 조작 오류···원전 운영 또 '구멍' (서울파이낸스)
11) 김국헌 원전계측제어시스템개발사업단 단장 “원전은 가동률이 20% 미만으로 떨어질 경우 불안정해질 수 있다.원전은 화력이나 복합화력에 비해 출력을 빨리 조절할 수 없는 단점도 있다”, 박군철 서울대 교수 “원전 가동을 급격하게 바꾸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가동률을 75∼80% 정도로 낮추는 것은 괜찮다. 전력이 남아돌 때는 원전 가동률을 몇 시간 정도 50%까지 떨어뜨리기도 한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20307/7794695/1 原電 출력조절 안전성 논란 (동아일보)
12) 각주 11)과 동일
13) https://www.e2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53142 원전 출력감발 여력 빠듯…이대로가면 정지 불가피
14) 각주 13)과 동일. 박종운 동국대 에너지전기공학과 교수 “프랑스는 원전 비중이 워낙 높아 원전도 일일부하추종을 하지만 10~20년 충분히 안전을 검증하고 하는거다. 그런데도 노심이나 계통에 영향을 미쳐 빠른 노화가 문제가 되고 있다. 출력을 잘못 줄이면 발전소가 셧다운되고, 반대로 과도하게 높이면 출력이 폭주될 위험이 있다. 핵연료별로 출력이 고르게 나오도록 써야하는데, 차이가 생기면 국부과열로 핵연료가 손상될 수 있다”
15)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3064013 한빛원전 3호기 방사선 감시기 ‘먹통’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