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의 기도
찬송: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290장)
말씀: 창세기 18:27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묵상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맞섭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듣고 고통 가운데 기도합니다.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창18:23) 아브라함이 드리는 긴 기도의 첫마디입니다. 확신으로 무장한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을 같이 대하시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도 선명합니다.(창18:25) 그러나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그의 목소리는 잦아듭니다.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라고 말하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당함을 지적하던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보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는 몇 명의 의인이 있었을까요? 롯의 가족이 멸망을 면한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19:29) 구해주셨다고 했습니다. 스스로의 자격으로 구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도 자신이 ‘티끌이나 재’와 같다고 고백합니다.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고백입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만큼 ‘의로운’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사도 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라고 선언합니다. 이 말은 다윗의 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시14:1 이하, 53:1 이하) 구약에서 가장 존경받는 두 인물, 아브라함과 다윗도 스스로를 의인이라 주장할 수 없었습니다. 사순절 아침에 이마에 바르는 재는 인간의 무가치함을 아프게 지적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기도는 티끌이 드리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기도는 창세기에서 구조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8장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삭의 출생 장면은 21장에 가서야 나옵니다. 이 사이에 중요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 첫 번째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악한 도시가 망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악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고민하지 않고 즉시 결행합니다. 고뇌하는 밤이 있었을 수도, 밤새 하나님께 따져 묻고 항변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그 고뇌의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그런 성경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기도와 항변에는 긴 지면을 할애하는 것이 특이합니다. 마땅히 심판받아야 할 악인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고 간청하는 아브라함에게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발견합니다. 아들보다 악인의 멸망을 더 애타는 마음으로 대하는 성경의 지면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만납니다. 아브라함은 티끌이나 재와 같은 사람이었지만, 의로우신 예수, 참 중보자이신 그분을 닮은 ‘믿음의 조상’이었습니다.
기도
티끌이나 재와 같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티끌같이 작은 우리가 이웃을 품고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좁디좁은 우리 마음이 이웃을 향해 넓어질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 길을 잘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티끌같이 작고 좁은 제 마음이 이웃을 향해 넓어질 수 있도록, 그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