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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랑길1구간 (강화구간)( 평화전망대~ 대명포구 :103코스, 102코스, 101코스, 100코스)
◈ 일 자/기상: 2024. 11.14~15 /(9~16도/12~19:강화)
◈ 위 치: 김포
◈ 누구와: 나홀로
◈ 경로: 강화평화전망대- 별악봉- 사파출소- 창후항- 계룡돈대 -외포항- 건평항- 곤룡배수정류장-
전등사입구 - 초지대교 -대명포구
◇ 1일차( 강화평화전망대 ~ 외포항 : 22.6 ㎞)
* 103코스: 강화평화전망대- 별악봉- 사파출소- 창후항 (12.1㎞)
* 102코스: 창후항- 계룡돈대 -외포항 (10.5㎞)
★ 강화 나들길 5. (16코스. 서해랑102. 외포항-창후항-송산삼거리-교산리입구)
: 19.6 km.
◇ 2일차(와포리~대명포구: 25.5 ㎞)
* 101코스: 외포항- 건평항- 곤룡배수정류장(11.4㎞)
★ 강화 나들길 4. (4코스.서해랑101 .장곶돈대-스페인마을-후포항-건평항-외포항)
: 14.6 km.
* 100코스: 곤룡배수정류장- 전등사입구 - 초지대교 -대명포구(14.1㎞)
◈ 거리: 총48.1㎞ ( 1일차22.61 ㎞, 2일차 25.5 ㎞)
◈ 시간: 1일차( 4시간 41분), 2일차( 6시간12분)
◈ 교통
△ 1일차
- 갈때 : 일산 알미공원(05시10분발: 96번) →강화터미널(06시30 분도착: 1시간30분소요)
* 강화터미널~ 평화전망대: 택시(16.000원)
- 올때 : 외포리 →강화터미널(시내버스) → 일산알미공원(96번 시내버스)
△ 2일차
- 갈때 : 일산 알미공원(05시10분발: 96번) →강화터미널(06시30 분도착: 1시간20분소요)
* 강화터미널~ 외포리(시내버스)
- 올때 : 대명나류터(60-3시내버스) → 사우역. 김포고(걸포사거리:96번) → 일산 알미공원 (96번시내버스타고)
07시35분...강화 파출소 앞...101코스 종점과 102 시점
오늘은 서해랑 101코스와 100코스를 답사하기위해 일산에서 출발 강화 외포리에 07시30분에
도착 간단히 답사 준비후 07시35분에 답사 시작
산악지역은 무조건 우회(허리 문제)
강화 파출소
외포리 선착장과 바다건너 석모도
화도방향으로 직진 진행
외포리 함상공원
***외포리 함상공원 개요***
강화함상공원은 1985년 취역 이래 34년간 우리 바다를 지켜 오다 2019년 퇴역한 ‘마산함’을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방식으로 재생한 공간이다. 이곳은 평소 쉽게 접하기 어려운 군함에서 해군 생활과 각종 전투장비를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다. 마산함은 한국형 호위함으로 1984년 10월 26일 진수돼 1985년 7월 20일 취역한 함정이다. 울산급은 총 9척이 제작돼 대한민국 해군의 주력 전투함으로 사용됐다. 국산 호위함 최초로 태평양을 횡단하였으며, 림팩(RIMPAC) 훈련에 참여했다. 해군 최우수 포술함으로 선정되어 대통령 부대표창을 받는 등 맹활약하다 2019년 퇴역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강화함상공원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왕새우 양식장과 석모도
강화 해안서로따라 약3키로미터 진행
왕새우 양식장
갈매기와 석모도 그리고 바다
곤릉버스 정류장12키로 미터,강화 파출소1.5키로 미터 이정목
바닷가의 멋진 야영장
멋진 풍경(바다와 석모도)
해안서로(64번도로)따라 진행
천상병 귀천 공원
**천상병 귀천(歸天) 공원
천상병 시인의 대표 시 ''귀천''의 시상을 떠올리게 한 건평 포구의 하늘을 구경할 수 있는 공원으로
이곳의 바다와 노을빛을 사랑한 시인의 맑은 문학정신과 강화 해안의 아름다운 풍경을 오래도록 기리고 보전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08시15분...여기까지 해안서로를 따라 오다가 좌측건평리쪽을 진행... 약3.5키로 미터 지점
골목길에는 예쁜집들이 나타나고
건평교회
건평로를 따라 진행
건평리 일대
아늑한 시골길이 전개 되고... 멋져요(건평로)
건평로
정담차집
하우 약수터
건평로를 지나... 강화 남로에 도착
김취래 묘입구
강화파출소 6키로미터, 곤릉 정류장7.5키로 미터 이정목
여기서 산으로 진입해야 하나 개인사정상(허리 아픔) 도로로 진행
정제두 묘
**정제두 묘 ; [ 鄭齊斗 墓 ]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학자 정제두의 묘. 2007년 2월 26일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강화읍에서 마니산으로 가는 도중 하우고개 중턱에 있으며, 면적은 3,900㎡이다. 묘 앞에는 상석과 묘비, 장명등, 문인석 등이 배치되어 있다.
묘비는 1803년(순조 3)에 건립하였는데, 비문은 신대우가 짓고 글씨는 서용보가 썼다.
묘 앞에는 정제두의 아버지인 정상징(鄭常徵)과 그의 부인 한산 이씨의 합장묘가 있다.
2007년 2월 26일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정제두는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사앙(士仰), 호는 하곡(霞谷)이다. 1668년(현종 9) 별시문과에 급제하였고,
공조좌랑, 호조참의, 한성부윤, 대사헌, 이조참판, 우찬성 등을 지냈다.
그는 일생동안 학문에 전념하였는데 처음에는 주자학을, 뒤에는 지식과 행동의 통일을 주장하는 양명학(陽明學)을 연구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 옛 사진 몇장 삽입(이곳을 지나가야 하나 허리아파 우회)
석릉
**강화 석릉 ; [ 江華 碩陵 ]
강화 석릉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에 있는 고려 후기 제21대 희종의 능이다.
강화 천도기(1232~1270년)에 조성된 왕릉 가운데 하나다.
지하식 석실과 곡장 등 고려 왕릉의 전형적인 구조를 보이면서도 8각 호석 등 일반적인 고려 능제와 구분되는 특징이 확인되었다. 13세기 몽골과의 전쟁 기간 동안 공식적으로 개경을 대체한 강도(江都)의 위상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고려 21대 희종(熙宗)의 능으로 1237년(고종 24) 조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희종은 신종(神宗)의 장남이며 부인은 성평왕후(成平王后) 임씨이다.
왕위에 오른 희종은 1211년(희종 7) 그가 즉위하는 데 공헌을 한 최충헌(崔忠獻)을 제거하려다 실패하고 폐위되어 강화로 유배되었다.
이후 자연도(현재 영종도)를 거쳐 1215년(고종 2) 교동(喬桐)으로 옮겨졌다.
1219년 (고종 6) 유배에서 돌아왔으나 1227년(고종 14) 복위 음모설에 휩싸여 최우(崔瑀)에 의해 강화로 쫒겨났다가 교동에 유배되었다.
1237년(고종 24) 8월 법천정사(法天精舍)에서 승하한 뒤 10월 석릉에 안장되었다.
조선 현종(顯宗) 때 강화유수 조복양(趙復陽)이 고쳐 지었고, 1867년(고종 4) 능 앞에 표석을 세우는 등 관리가 이루어졌으나,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훼손되었다. 1974년 봉분이 붕괴되고 능역이 파괴된 것을 보수, 정비하였다. 2001년 발굴 조사를 통해 석실과 능역의 구조를 확인하였고, 그 결과를 토대로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하였다.
1992년 3월 10일 사적 제369호로 지정되었고, 2011년 '석릉'에서 '강화 석릉'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00년 석릉을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봉분 주변에서 석물(石物)이 발견되었고, 2001년부터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남한에서 처음으로 진행된 고려 왕릉 발굴이다.
강화 석릉은 지하식 석실과 곡장(曲墻) 등 고려시대 능제(陵制)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한편, 석실 상부의 8각 호석은 강화석릉과 강화 가릉에서만 보이는 독특한 구조이다.
곡장과 석단 등은 1970년대 정비 과정에서 변형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석실 내부는 이미 도굴된 상태였으나 청자 접시, 대접, 잔, 잔탁, 항아리 등 자기 조각과 관정, 금동제 장식판, 금박 편, 구슬, 동전, 자물쇠 등 금속 유물이 수습되었다.
출토된 청자 가운데 청자양각국화당초문대접은 강진 사당리에서 생산된 것으로 파악되며, 이로부터 강도(江都) 시기 자기의 생산과 수급 체계를 파악할 수 있다.
형태와 특징
강화 진강산(441.3m) 동쪽 능선의 남사면에 자리한다. 현재 능역은 발굴 조사 이후 복원된 것이다. 발굴 이전 강화 석릉의 능역은 남북 31m, 동서 20.5m의 규모였으며, 5단의 석축단(石築壇)으로 구획되어 있었다.
최상단에는 지름 약 4m의 봉분이 있었고 주위에 ‘∩’형태로 곡장이 둘러져 있었다.
곡장 서측 전면에는 석인상(石人像) 1기가 세워져 있었다. 2단에는 표지석과 석인상 1기가 배치되어 있었고, 3~5단에는 별다른 석물이 없었다. 3단 능역에서는 다량의 기와 조각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이 구역에는 어떤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강화 천도기(1232~1270년)에 조성된 왕릉 가운데 하나다. 고려시대 전형적인 능제적 특징과 함께 8각 호석과 같은 개별적인 요소를 함께 보여 준다. 고려 왕실의 능제를 직접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자, 몽골과의 전쟁 동안 공식적으로 개경을 대체한 강도로서의 위상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가릉 뒤편의 석물(사자상인가??), 뒤편의 석물은 처음 봄
가릉 앞쪽과 두개의 석물있음
**강화 가릉 ; [ 江華 嘉陵 ]
강화 가릉(江華 嘉陵)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에 있는 고려 후기 제24대 원종의 왕비 순경태후 김씨의 능이다.
강화 천도기(1232~1270)에 조성된 왕릉 가운데 하나로 지상식 석실과 8각 호석 등 일반적인 고려 능제와 구분되는 특징을 갖추고 있다. 13세기 몽골과의 전쟁 기간 동안 공식적으로 개경을 대체한 강도(江都)의 위상을 보여 주는 유적이다.
고려 원종(元宗)의 비 순경태후(順敬太后) 김씨의 능이다. 1237년(고종 24)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4세에 궐에 들어가 경목현비(敬穆賢妃)로 책봉되었고 1235년(고종 22) 원종이 태자가 되면서 태자비가 되었다.
1236년(고종 23) 충렬왕을 낳고, 이듬해 7월 세상을 떠났다.
석 달 뒤인 10월 7일 가릉(嘉陵)에 안장되었다. 1262년(원종 3) 정순왕후(靜順王后)에 추봉되었고, 1274년(충렬왕 즉위년) 순경태후로 추존되었다.
조선 현종 때 강화유수 조복양(趙復陽)이 보수하였고, 1867년(고종 4) 능 앞에 표석을 세우는 등 관리가 이루어졌으나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훼손되었다. 1974년 봉분과 능역이 파괴된 것을 보수, 정비하였다. 2004년 발굴 조사를 통해 석실과 능역의 구조가 확인되었고 조사 결과를 토대로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되었다.
1992년 3월 10일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2011년 가릉에서 강화 가릉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04년 왕릉 정비, 복원을 위한 학술 자료 확보를 위해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가릉은 일반적인 고려 왕릉과 구분되는 특징이 확인되었다. 가릉의 석실(石室)은 지상에 설치되었는데,
이는 고려 왕릉 가운데 지금까지 가릉에서만 확인된 것이다. 고려 왕릉의 석실은 지하 또는 반지하에 석실이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석실 상부에 설치된 8각 호석도 강화 석릉과 가릉에서만 보이는 구조인데 고려 왕릉의 호석은 12각이 전형적이다.
이 밖에 석실의 구조나 출토 유물은 당시의 능제가 잘 반영되어 있다. 석실은 이미 도굴되어 자기류는 거의 확인되지 않았으나 당 · 송대 동전 86점, 은제 경첩, 나비 장식, 호박 장식, 구슬, 새 장식 옥 장식품, 석간(石簡) 등 금속 유물과 장신구 등이 출토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여기 까지
하우 고개 버스 승하차장
멋진 은행나무 단풍이
양도 파출소
양도면소재지
양도 주민센터
양도면사무소 버스승하차장
동광중학교 입구
동광중학교
강화지맥의 진강산
전등사 방향으로 진행
멋진 카페(산장)
능안 버스 승하차장
능내리 마을회관
해안 남로를 따라 계속 진행
죄측 전등사 방향으로...
예쁜정원이...
조산교회와 버스승하차장
강화도 특산물 ... 순무
***강화순무***
강화 순무는 겨자과의 한해살이 또는 두해살이 식물이다. 이름은 무이지만 식물학적 계통으로는 배추에 가깝다. 겉모양으로 봐서는 무인지 배추인지 구별되지 않는다. 잎사귀가 무처럼 길쭉한 것도 있고 배추처럼 넓은 것도 있다. 맛도 무 같이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 나는가 하면 배추 뿌리의 싸아한 향이 나기도 한다. 꽃은, 네 장의 노란 꽃잎을 단 꽃이 줄기 끝에 몰려 피는데, 배추꽃과 구별되지 않는다. 순무의 염색체수는, 무와 다르고 배추와 같다고 한다. 강화순무약쑥시험장 강화정 재배육종팀장은 “순무는 배추의 한 종류로 봐야 하며, 순무의 맛이 옛날 조선배추의 뿌리 맛과 비슷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근대에 육종된 배추(포기배추)의 조상이 순무일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강화 순무 - 인삼과 겨자 맛이 난다 (팔도식후경, 황교익)
조산초등학교 앞 정류장
큰점 마을
진강산과 조산리 일대
전통 디저트 체험관
강화지맥 마루금을 지나고..(진강산과 마니산 사이 마루금)
하록 버스 승하차장
도장2리 하록 마을 회관 및 노인회관
좌측 오뚝솟은 봉우리 정족산, 우측 마니산
대흥버스 승하차장
이곳은 노견도 없다... 원래 서파랑길 아님(산악 우회)
어두마을
정화 버스 승하차장
구지 뽕나무 열매
서두머리 마을표석과 마을
해탄마을 표지석과 마을
멋진 단풍
◇ 예사진 몇장
이규보의 묘
** 이규보
고려 중기의 문관으로 어려서부터 시와 문장에 뛰어나 영웅서사시 동명왕편 등을 썼으며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즉흥시를
쓰기로 유명했다.
최씨 무신정권에 지나치게 아부를 한 아첨꾼이라는 평가도 있으나, 벼슬살이를 하는 입장에서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이해해주는 입장도 있다.
한국 문학사에 빼놓을 수 없는 걸출한 문인인 동시에, 몽골과의 외교에서도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이규보에 관한 기록은 『고려사』 이규보 열전, 이규보 묘지명, 『동국이상국집』 등 풍부하다.
| 묘지명에 기록된 사후 관작 | ||
| 시호 | 문순공(文順公) | |
| 문산계 품계 |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 종 2품. |
| 직위 |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 - 수문전 대학사(修文殿 大學士) - 한림원사(翰林院事) - 수국사(修國史) - 판예부사(判禮部事) | 평장사는 중서문하성의 차관, 수문전 대학사는 수문전에서 강의를 맡은 직위, 한림원사는 한림원[5]의 장관, 수국사는 사관의 차관, 판예부사는 상서성 예부의 장관이다. |
| 수직 | 수태보(守太保) | |
| 태자삼사 | 태자태보(太子太保) | 태자의 자문관, 태자의 스승. |
다움 자료
이규보의 묘비
여기까지
10시52분...대명포구8.5키로 미터. 전등사1키로미터 이정목... 약16키로미터 지점
길상초등학교
전등사 입구 84번 도로어 접속... 도로 따라 진행
11시12분...전등사 입구 식당에서 점심(돌솥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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