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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광제정(光霽亭)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삼계면 산수1길 62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삼계면 세심길 26
(우) 55947(지번) 삼계면 세심리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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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집(蘆沙集) 기정진(奇正鎭)생년1798년(정조 22)몰년1879년(고종 16)자대중(大中), 대중(大仲)호노사(蘆沙), 오산노인(鰲山老人)본관행주(幸州)소자금사(金賜)시호문간(文簡)특기사항최익현(崔益鉉), 송병선(宋秉璿) 등과 교유. 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
蘆沙先生文集卷之二十二 / 記 / 光霽亭重建記
光霽。故上庠梅堂楊公諱墩亭號也。謹按其遺事。公蚤有俊聲。時値蔑貞。隱淪以終。故事業無耀人者。然其堂以梅。其亭以光霽。則雅尙不苟。可驗其一端矣。至使秋江高士賀榮叔以取端。河西大賢想餘音於隔世。則不賢而能之乎。抑又聞亭旣墟。而其傍有村。出洞而交路。其上有店。至今皆以光霽亭爲名。夫以一人之棲遯。能變其地名。嚴陵瀨之外。未聞焉。非賢有德者。不能也。歲辛未。公之後孫。重建於坊內甘隱山下。距舊墟十里而近。亭旣成。或有以地改名仍。事出舊貫之外。古墟林壑。不肯讓我以名則若之何。正鎭初亦聽瑩於此。思之不然矣。原此亭之得名。地歟人歟。若以其地則濂翁故宅。先有光風霽月亭。此地不應更有此亭矣。今有一人苟能留心於圖書未盡之言意。不論某地。不妨是光霽主人。曩也公旣主人於此亭矣。托衣履於甘隱三百餘年。亭之徙以從之。誰云不可。實之所在。名必從之。讓不讓奚論。河西舊題咏。旣有新板。安用他文字爲。但其重建顚末。不可無記云爾。
* 감은산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삼계면 세심리 산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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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집(高峯集) 기대승(奇大升)생년1527년(중종 22)몰년1572년(선조 5)자명언(明彥)호고봉(高峯), 존재(存齋)본관행주(幸州)봉호덕원군(德原君)시호문헌(文憲)
高峯先生續集卷之一 / 詩 / 題詠七言四韻一首七言絶句一首
橫岡斗起控澄潭。鬱鬱雙松晩翠含。楊柳春光風不定。溝塍秋色露爭酣。悄無車馬來相繞。謾有禽魚與共參。聞說葺完堪繼志曲欄何日對淸談。
松竹蒼蒼色映關。向來幽興獨盤桓。浮生蹤跡誰如意。留取芳盟到歲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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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앙집(俛仰集) 송순(宋純)생년1493년(성종 24)몰년1582년(선조 15)자수초(守初)ㆍ성지(誠之)호면앙정(俛仰亭)ㆍ기촌(企村)본관신평(新平)시호숙정(肅定)
俛仰續集卷之一 / 七言律詩 / 題光霽亭 進士楊墩。號光霽。○龍城誌。以蒼江詩剞之。
峨洋何必要知音。晩向林亭托契深。半夜好風收雨脚。一天晴月滿江心。煙橫小店分朝暮。山帶輕嵐閱古今。十里松楸長在眼。不堪扶杖獨登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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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서전집(河西全集) 김인후(金麟厚)생년1510년(중종 5)몰년1560년(명종 15)자후지(厚之)호하서(河西), 담재(湛齋)본관울산(蔚山)시호문정(文正)특기사항김안국(金安國)의 문인
河西先生全集卷之十 / 七言律詩 / 題楊上舍 墩 光霽亭
梅堂隔世想餘音。亭在山高與水深。雨歇芳林淸潤色。煙消靜夜見明心。三杯酒裏看天地。一局棋中送古今。鞍馬昔年秋峽晩。可憐奔走失登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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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집(沙村集) 장경세(張經世)생년1547년(명종 2)몰년1615년(광해군 7)자겸선(兼善)호사촌(沙村)본관흥덕(興德)특기사항정문부(鄭文孚), 유몽인(柳夢寅), 권필(權韠) 등과 교유
沙村張先生集卷之一 / 五言律詩 / 次光霽亭韵
中夜高亭靜。都忘時序遒。月明孤島出。影落半江流。莫道鸎花嫰。偏宜松桂秋。百年無事客。四節任天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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沙村張先生集卷之二 / 七言律詩 / 次光霽亭金河西韻 名麟厚
| 金麟厚 | 1510 | 1560 | 蔚山 | 厚之 | 河西, 湛齋 | 文正 |
峩洋何必要知音。晩向林亭托契深。半夜好風收雨脚。一天晴月滿江心。烟橫小店分朝暮。山帶輕嵐閱古今。十里松楸長在眼。不堪扶杖獨登臨。
原韵
梅堂隔世想餘音。亭在山高與水深。雨歇芳林淸潤色。烟消凈夜見明心。三盃酒裏看天地。一局碁中送古今。鞍馬昔年秋峽晩。可憐奔走失登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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沙村張先生集卷之二 / 七言律詩 / 次府伯柳應文韻。題光霽亭。名夢寅。
| 柳夢寅 | 1559 | 1623 | 高興 | 應文 | 於于堂, 艮菴, 默好 | 義貞 |
小亭高占白雲層。松桂羅生翠作棚。芳草江郊聞牧篴。淸燈秋夜伴詩僧。沙鷗驚避雙旗影。山叟欣瞻五馬騰。一曲陽春誰敢和。朗吟終日愧無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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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곡집(玄谷集) 조위한(趙緯韓)생년1567년(명종 22)몰년1649년(인조 27)자지세(持世)호소옹(素翁), 현곡(玄谷)본관한양(漢陽)초명소한(紹韓)특기사항성혼(成渾)의 문인. 권필(權韠), 이안눌(李安訥), 이춘영(李春英) 등과 교유
玄谷集卷之五 / 詩○七言律詩 一百十首 / 次張氏光霽亭韻
閑中風月是知音。光霽名亭取義深。最愛吹花來水面。尤憐經雨到天心。廢興縱有關時運。景色應無變古今。欲策驪駒輸勝賞。携君一辦共登臨。
현곡집 제5권 / 시(詩)○칠언율시(七言律詩) 110수 / 장씨의 광제정 시에 차운하다〔次張氏光霽亭韻〕
한가한 속의 풍월이 진정한 벗이니 / 閑中風月是知音
정자를 광제라 명명한 뜻이 깊구나 / 光霽名亭取義深
꽃 피우고 수면에 온 바람 사랑스럽고 / 最愛吹花來水面
비 온 뒤 하늘에 뜬 달이 더욱 좋아라 / 尤憐經雨到天心
흥패가 비록 시절 운수에 달려있지만 / 廢興縱有關時運
풍경은 응당 고금에 변함이 없으리라 / 景色應無變古今
말을 채찍질하며 멋진 구경 다하려고 / 欲策驪駒輸勝賞
그대와 함께 올라오는 자리 마련했네 / 携君一辦共登臨
[주-D001] 장씨(張氏)의 광제정(光霽亭) 시 : 장경세(張經世, 1547~1615)의 《사촌집(沙村集)》 권2에 실린 〈차광제정김하서운(次光霽亭金河西韻)〉 시를 말한다. 광제정은 매당(梅堂) 양돈(楊敦, 1461~1512)이 지은 누각으로, 전라북도 임실군 삼계면 세심리에 있다.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 이덕현 (역) |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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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누정/광주.전라도
<한국누정279> 임실 광제정(光霽亭) 231104
노인장대 2024. 1. 26. 05:38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삼계면 세심길 82 (세심리)
건립시기 : 조선 고종 9년(1872)
문화재지정 :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답사일자 : 2023년 11월 4일, 흐림
광제정(光霽亭)은 조선 초기에 매당 양돈(梅堂 楊墩, 1461~1512)이 후천리 광제마을에 처음 지었으며, 지금 건물은 양돈의 후손 양석모가 고종 9년(1872)에 다시 지은 것이다. 성종 9년(1478) 소과에 합격한 양돈은 학문과 덕행이 높아 남효온 등이 천거하여 조정에서 여러 차례 관직을 내렸으나 모두 사양하고 이곳에서 자연을 벗삼으며 여생을 보냈다. 양돈이 죽자 마을 사람들은 그의 학식과 덕망을 추모하기 위해 정조 12년(1788)에 아계사를 지어 위패를 모셨다.
광제정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정자 한가운데에 온돌방을 마련한 형태로, 정자 안쪽에는 '매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그 옆으로 김인후의 글과 기정진의 '광제정중건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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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당 양돈(楊敦)의 임실 광제정(光霽亭)
전북 임실군 삼계면은 전라북도 서남단에 위치하여 기후가 온난하고 땅이 비옥하여 오곡백과가 풍요한 지역으로 면적 54.07㎢, 인구 2,224명(2001)이다.
동쪽은 오수면(獒樹面), 서쪽은 덕치면(德峙面), 남쪽은 순창군 동계면(東溪面), 북쪽은 청웅면(靑雄面)·임실읍과 접한다. 16개 리로 이루어져 있다.
오수산(獒樹山)에서 부터 화강암류로 형성되는 해발고도 200m의 구릉지 및 오수천 주변에 평지가 있으나 산지가 많다. 주곡농업 외에 고추·잎담배 등이 생산되며, 섬진강의 은어(銀魚)가 오수천에 서식하여 특산물이 되고 있다. 순창∼장수 간 지방도가 면의 남동부를 통과한다.
주민들은 대체로 성격이 보수적이고 쾌활하며 감정이 풍부하여 인정이 많은 편이다. 예로부터 생거 남원 사거 임실 (生居 南原 死去 任實)이라하여 산자수려하고 기후풍토가 천혜의 조화를 이루어 이러한 자연의 정기로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으며 주민들은 절의와 지조를 지키면서 후학을 길러내는 학구열은 전국에서도 으뜸가는 곳으로서 훌륭한 문화유산을 전승해 왔다.
선심리 252-1 지금의 임실군 삼계면 후천리 광제 마을 광제정(光霽亭)은 오수천 서쪽 언덕에 위치했다가 후손 양정보가 고종 9년(1872)에 세심리 현재 위치로 이건했다.
광제정은 언제 지었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으나, 선조대 학자 매당(梅堂). 광제정(光霽亭) 양돈(楊敦.1461∼1512) 선생이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서 광제(光霽)란 선비로서 혼탁한 속세에 물들지 않겠다는 매당(梅堂) 양돈(楊墩)의 지조를 상징하며, 이는 매당 생존의 시대상황과 무관치 않다.
광제정의 누정제영을 통해, 은일을 실현코자 한 매당의 심정과 광풍제월(光風霽月)의 마음으로 우뚝 선 기상이 엿보인다.
송사(宋史) 주돈이(周敦頤1017~1073)전에서 주돈이의 인물평을 "마음이 쾌활하고 깨끗하기가 맑은 날의 바람과 비 갠 날밤 달과 같다.(胸懷灑落如光風霽月)"라고 하였는데 광풍제월(光風霽月)에서 취한 것으로 보이며 그 준말로 광제(光霽)라는 정명이 청랑(淸朗)한 인품을 비유하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 즉 선비로서의 혼탁한 속세에 물들지 않고 오직 맑고 깨끗하게 세상을 살겠다는 선비의 지조가 엿보인다
정내에는 조선 중엽 호남 북쪽에는 이항, 영남에는 이황(李滉), 충청에는 조식(曺植), 서울에는 이이(李珥)가 남쪽에는 김인후가 버티고 있었다는 그는 다방면에 통달한 철학자요 전라도에서 유일한 고려 조선시대의 18현중에 한 사람으로 1,600여수의 시를 남긴 시인 김인후(金麟厚 1510 중종 5~1560 명종15)의 기문과 조선 후기 기호학파(畿湖學派)의 큰 줄기를 형성한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 정조22~1876 고종13)의 광제정중건기(光霽亭重建記 / 光霽 故上庠梅堂楊公諱墩亭號也) 등이 보관되어 있다.
기정진은 중건기에서 처음 양돈(楊敦 1461∼1512)이 세웠던 정자의 터에서 십 리 정도 떨어진 감은산(甘隱山) 아래에 터를 잡아 다시 지어면서 옛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무오(戊午)년 사화(士禍)를 피하여 남원(南原) 감은산(甘隱山) 아래에 은거(隱居)하게 되었다. 일편단심으로 연이어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곳에서 노닐고 휴식하면서 지내다가 마침내 생을 마쳤다. 이에 사림(士林)들이 아계서원(阿溪書院)을 창립(刱立)하여 제향을 모시게 되었다. 그러나 그 서원이 훼철(毁撤)되는데 미쳐서는 후손들의 안타까워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이 정자를 중수(重修)하여 추모(追慕)하는 마음을 붙이게 되었다....."
또 광제정중건기를 통해 볼 때 광제정에 매화를 심고 광제라는 현판을 내건 주체가 바로 매당 자신이며 매당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광제정은 매당을 기리는 상징물로 존재해 왔는데 이는 경사지를 이용해 조성된 돈대(墩臺)와 매화 식재에서도 확인된다. 지금도 주변에는 큰 바위들이 있다.
광제정은 3단 계단식 축대 위에 건축되었고 한가운데 내실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는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가 이곳에 들려 지은 시판이 정내부에 자리하고 있다.
양돈(梅堂)이 친구 시절 글 읽던 일 생각하며
산 높고 물 깊은 곳에 정자를 지었네.
비 멎은 고운 숲은 빛이 윤나 더욱 맑고
연기없는 고요한 밤은 밝은 마음 보이누나.
梅堂隔世想餘音 亭在山高與水深
雨歇芳林淸潤色 烟消靜夜見明心
석잔 술 마시는 가운데 천지(天地)를 깨닫고
한 판의 바둑으로 세월을 보내네.
왕년의 안장 말에 가을 산골 저물어서
바쁘다고 올라보지 못하니 가련쿠나.
三盃酒裡看天地 一局碁中送古今
鞍馬昔年秋峽晩 可憐奔走失登臨
題楊上舍 墩 光霽亭 / 河西先生全集卷之十
광제정은 정자로서는 드물게 단청이 되어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정자 한 가운데에 온돌방이 하나 있는 점이 특징이다. 계단식 축대 위에 정자가 있으며, 한 가운데에 계단식 통로가 있다.
정자 안쪽에는 ‘매당(梅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누정은 대게 휴식처로서 설립되었고, 대부분의 정자들은 시국의 혼란과 불안한 정세에 따라 관직을 사양하고 은거 생활의 처소로서 설립되었다. 이곳은 후자에 속한다.
양돈 선생의 호가 매당(梅堂) 또는 광제정(光霽亭)으로 이를 따랐다. 그는 1461년(세조 7) 출생으로 1498년(성종 9)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생원·진사를 지내다가 연산군 때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현재의 봉현리인 아산방(阿山坊)에 은거하다 그의 문장과 덕행은 뛰어나 당시 모범이 되었고,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1454 단종 2 ~ 1492 성종 23)등의 추천으로 조정에서 벼슬을 내렸으나 이를 거부하고 조용히 자연속에서 세상을 통찰하며 학문을 강구하며 살았다.
소위 처사나 은일은 생각보다 지식이 깊었다. 숨은 학자(學者)로서, 임금이 특별(特別)히 벼슬을 준 은일(隱逸) 출신으로 과거를 보지 않고 정승에 제수되었으나 응하지 않은 인물로 송시열(宋時烈)과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송시열의 제자로 정승자리를 마다했던 권상하(權尙夏)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양돈은 1512년(중종 7) 70세로 사망하였다. 향민들이 그를 추모하여 아계사(阿溪詞)를 짓고 매년 봄·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1990년 6월 30일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30호로 지정되었다.
그의 학문과 덕행이 높아 당시에 사표로 면앙정 송순 등 이에 상응한 명인사들이 이곳을 다녀가며 그를 흠모했다.
조위한(趙緯韓)
閑中風月是知音 光霽名亭取義深 最愛吹花來水面 尤憐經雨到天心
廢興縱有關時運 景色應無變古今 欲策驪駒輸勝賞 携君一辦共登臨
次張氏光霽亭韻 / 玄谷集卷之五
그중에 전라도도사, 금구현령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인목대비 유폐, 영창대군 살해 등의 정치적 혼란에 환멸을 느끼고 낙향해 시문을 즐기며 여생을 보내며 사회 현실과 우국지정을 읊은 문학 작품을 남겨 문명(文名)을 떨치기도 하였던 조선 중기 남원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사촌(沙村) 장경세(張經世 1547~1615)도 하서 김인후의 시를 차운해 감흥을 남긴다.
높은 산 큰 바다가 어찌 글을 원할까
해 저물어 인연 깊은 정자를 찾아 마음을 깊이 맡기노라.
한밤중 빗줄기 그치자 바람이 좋고
하늘에는 맑은 달, 강물에는 안개로다.
峨洋何必要知音 晩向臨亭托契深
半夜好風收雨脚 一天晴月滿江心
정자에 누우니 산은 아침저녁 나뉘고
산 안개 띠를 둘러 고금을 교감하니.
십리에 송추(松楸)가 아득히 눈에 들어오고
지팡이 버려 두고 홀로 정자에 오른다.
煙橫小店分朝暮 山帶輕嵐閱古今
十里松楸長在眼 不堪扶杖獨登臨
次光霽亭金河西韻 名麟厚 /沙村張先生集卷之二
題光霽亭 進士楊墩 號光霽 龍城誌 以蒼江詩剞之
또
中夜高亭靜 都忘時序遒 月明孤島出 影落半江流
莫道鸎花嫰 偏宜松桂秋 百年無事客 四節任天遊
次光霽亭韵 / 沙村張先生集卷之一
또
小亭高占白雲層 松桂羅生翠作棚 芳草江郊聞牧篴 淸燈秋夜伴詩僧
沙鷗驚避雙旗影 山叟欣瞻五馬騰 一曲陽春誰敢和 朗吟終日愧無憑
次府伯柳應文韻 題光霽亭 名夢寅
沙村張先生集卷之二
또한 조선시대 호방한 선비로 3년간 학업에 정진하였는데 그때 《중용》을 800번이나 읽었다는 것과 기생 한우(寒雨)와 주고받은 시조의 일화, 평양기생과 평양감사에 얽힌 로맨스 등 기인으로 수 많은 연분을 남겼던 풍류쾌남아(風流快男兒)라는 애칭을 받고 있는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 명종 4∼1587 선조 20)도 이곳에서 한 수 남긴다.
나이 들어 옛 시냇가 연못을 바라보니
맑은 물결 위에 황혼빛 그림자 비치네.
아름다운 뜰과 난간에 봄의 정취가 있으니
푸른 복숭아와 홍살구가 꿈속 가득 피었네.
蒼髥相對古溪潭 晩影澄波日夜含
瑤ㅇ玉欄春有意 碧桃紅杏夢方
정자에서 바라보는 산수절경이 임제의 시를 연산되게 한다.
그리고 1898년 전라북도 관찰사였던 이호준(李鎬俊,1821~1901)이 쓴 광제정중건기와 후계 서하(西河) 노익원(後溪 盧翼遠), 이병섭, 장성출신 하서 김인후의 9대손 신호(莘湖) 김녹휴(金錄休.1827~1899)의 시문이 거액되어 있어 이 시기에 이건 중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선조 김인후를 감회하며 이렇게 시(梁氏光霽亭移建韻)를 남긴다.
새 정자에 옛 편액으로 전인(前人)의 뜻을 이었으니,
물의 근원이 맑기도 하고 또 깊은 곳에 옮겨지었네.
풍류(風流)는 일정한 곳 없으니 배회할만한 지역이고,
성의(誠意)로 낙성을 마치니 선대 이으려는 마음이네.
亭新名舊續前音 移在水源淸且深
風流無定夷猶地 誠意終成肯搆心
송삼(松杉)으로 지었으니 유독 옛 감회가 느껴지는데,
천석(泉石)으로 꾸몄으니 도리어 지금을 생각해서일까.
우리 선조께서 옛적에 묵적(墨蹟)를 남겨두었으니,
유연(悠然)히 사모하는 마음 일어나 오르고 싶었노라.
取近松杉偏感古 輸奇泉石却圖今
先韻敢依題板末 何年光霽去登臨
신호집(薪湖集) / 卷之一
1864년(고종1)부터 장악원 주부, 전주 판관 감무 등을 지냈던 안동(安東) 김계진(金啓鎭)은 남원 현감을 지내면서 이곳에 들려 이렇게 감흥을 나타나내고 있다.
형제간에 화목했다는 것은 본래 알았었는데
광월(光風)과 명정(名亭)은 지역도 아늑하네.
은거(隱居)하는 높은 의표는 거북이가 꼬리 끄는 듯
호남에서 한가한 아취는 해오라기가 마음을 엿본 듯
塤床唱和自知音 風月名亭境更深
遯世高標龜曳尾 住湖閒趣鷺窺心
만학하라는 분부를 받고 공연스레 옛날 회고했겠지
어진후손이 긍구(肯搆)하니 오늘을 기다린 것일까.
화려한 편액을 다시 내걸고 사람들이 우러르니
의연히 도인의 모습으로 자리에 오시는 듯하네.
分符晩學空懷古 肯搆賢仍若待今
華額重懸人景仰 依然道貌席間臨
이 지역에는 선사시대, 청동기시대에 어떠한 세력집단이 존재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유물과 유적, 특히 후천리에 있는 고인돌의 지명으로 보거나 고인들 보위 암벽에 아산현 터를 표시하는 석각 등으로 보아 적어도 이 지역에 강력한 세력집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기원 전후에는 철기문화가 등장하는데 이 시대는 청동기 시대보다 한층 분화된 계급과 강력한 지배체제를 갖춘 소국이 발전하였고 더 나아가 이러한 소국을 아우르는 마한이라는 부족 연맹체가 형성되었다.
삼계면은 전통 예절의 본 고장으로서 문화 교육의 중요한 주도적 역할을 해온 곳이며 많은 문헌, 유적과 구비전설이 전래되었고 충·효·절의와 가언·선행 등으로 뭇 사람들의 추앙을 받아온 유현들의 학맥과 연원을 지켜온 유향(儒鄕)의 본 고장이기도 하다.
또 삼계면에서 배출된 박사의 수는 100명이 넘는데 1개 면으로서는 배출된 박사의 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임실 박사골마을의 본래 이름은 세심(洗心)마을로 씻을 세(洗) 와 마음 심(心) 자를 쓰는데 이를 풀이하면 마음을 씻는다는 뜻이 된다. 이는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마을 앞으로 세심천이 유유히 흐르는 박사골 세심마을이 그 누구든 쉬어가고 싶게 하는 마음을 씻는 깨끗한 마을임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이 마을 산머루는 전국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으며 우수성을 알리고자 ‘박사골 산머루축제’를 열고 있는데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오고 있는 곳이다.
또한 광제정 입구 숙호(宿虎)마을과 광제정 우측으로 돌출된 복호암(伏虎巖)은 매당을 배향하는 공간이라는 장소성이 함축된 표현이며, 이곳에 새겨진 양집하의 5언시에도 매당을 추념하는 공간 아계사(阿溪祠)의 장소성이 잘 묘사되어 있다. 매당을 배향한 아계사가 고종5년(1868) 훼철되면서 그 유지(遺址)는 ``광제정 이건을 위한 터``로의 쓰임새를 보였다.
광제정 건립 이후 최소 359년간 이어져 왔던 후천리 옛 광제정 터와 그 주변은 광제정의 이건에도 불구하고 ``광제정 · 광제마을 · 광제교 · 광제천 등의 지명 속에 광제라는 전부지명소로 남아 매당을 기리는 장소로 전승되고 있다.
광제정은 남원 양씨 종중의 연대의 공간이라는 뚜렷한 구심적 장소로, 전승될 수 있었던 배후에는 선조의 덕업을 숭상하며 시대적 고민을 함께한 후손과 종중 및 교우자 간의 동료의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장소 전승의 이면에는 매당의 인품과 ``광풍제월``의 기상을 기리고자 하는 추모의 정 그리고 선조의 덕업을 이어받아 지켜나가는 ``봉선(奉先)``의 정신이 깊이 작용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곳을 뒤로하고 나오는 길에 공자가 말한 이런 문구가 떠오른다. “내 일찍이 종일 먹지 않고 밤새도록 잠자지 않고 생각해 보았으나 이로움이 없었다. 배우는 것만 못하였다.論語 ; 衛靈公"
임실군의 현존하는 정자는 다음과 같다.
관란정(觀瀾亭) 오병규(吳秉圭) 둔남면 대정리 대말, 광제정(光霽亭) 양돈(楊暾) 연산/1909 삼계면 세심리 세심, 구로정(九老亭) 최성구(崔聖九) 1906 둔남면 둔덕리 우번, 군자정(君子亭), 신계징(申啓澄) 1957 임실읍 오정리, 노양정(蘆陽亭) 지사면 안하리 마을주민 1940 지사면 안하리 안하제옆, 둔학정(遯壑亭) 송경원(宋慶元) 세조/1940 임실군 성수면 왕방리 원증, 득가정(得暇亭) 1471/1993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 관월, 만취정(晩翠亭) 김위(金偉) 1572/1812 임실군 삼계면 신수리, 만휴정(晩休亭) 최덕지(崔德之)의 후손 1961 지사면 방계리 주암촌, 반환정(盤桓亭) 한용섭(韓瑢燮) 숙종/1909 오수면 용정리 용정, 비비정(飛飛亭) 최영길(崔永吉) 최창렬(崔滄烈) 1573/1930 임실군 성수면 봉암리 신계, 사가정(四嘉亭) 고은상(高殷相) 1926 삼계면 세심리 세심, 산곡정(山谷亭) 황임증(黃恁增) 1957 임실읍 감성리, 수운정(睡雲亭) 김낙현(金樂顯) 1875/1877 신덕면 금정리, 신포정(薪浦亭) 오수지역 친목회원 1846/1922 오수면 오수리 관월 , 쌍백정(雙白亭) 유상규(柳庠珪) 1572/1834 삼계면 사월리, 압구정(狎鳩亭) 박번(朴蕃) 1927 청웅면 구고리 평지, 양요정(兩樂亭) 최응숙(崔應淑)의 후손 /1965 운암면 입석리 구암, 영벽정(暎碧亭) 최순(崔珣)/ 최전(崔琠) 1935, 오괴정(五槐亭) 오흥윤(吳興胤) 중종/1856 삼계면 삼은리 월촌, 용두정(龍頭亭) 한종연(韓鐘淵) /1949 임실군 오수면 봉천리 냉천, 운서정(雲棲亭) 김승희(金承熙) 1928 관촌면 덕천리 주천, 월파정(月波亭) 밀양 박씨 1936 덕치면 물우리 물우, 월파헌(月波軒) 김성진(金聲振) 삼계면 학정리 세옥, 육우정(六愚亭 심진표(沈鎭杓)외6인 1919 성수면 월평리 신촌) 등이다.
전라도누정연구가.오인교/ nox9109@naver.com
매당 양돈(楊敦)의 임실 광제정(光霽亭) by 오인교 전라도누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