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체르노빌 원전사고 40주년, 우리는 어떤 희망이 있는가?...
중요한 교훈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규제철학인데도
국내 안전성 평가, 여전히 단일호기 중심...실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다수호기 위험 대표 사례
[산경e뉴스] [이정윤칼럼]
1986년 4월 26일 발생한 '체르노빌 사고'(Chernobyl disaster)는 단순한 원전 사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술 실패 이전에 규제철학의 실패였고, “설마 그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낙관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올해는 체르노빌 사고 40주년이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그 교훈을 제대로 계승하고 있는가 되묻게 된다.
오히려 일부 규제는 안전을 강화하기보다 사고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축소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국제 원자력 규제체계는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단순히 정상운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 사고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격납건물(containment), 다중방호(defense-in-depth), 중대사고(severe accident) 관리, 독립 규제기관의 중요성이 강화되었다.
핵심은 분명했다. 사고 확률이 낮더라도 사고가 발생했을 때 결과가 치명적이라면 반드시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원전 정책 흐름은 다른 방향을 보인다.
특히 SMR(소형모듈원자로)과 같은 새로운 원자로 기술 도입, 그리고 노후 원전 수명연장 과정에서 “위험도 기반 규제”와 “포용규제”가 강조되면서 안전철학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규제는 기술혁신을 지원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점차 유연성을 확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인허가 속도와 산업 경쟁력을 이유로 규제 간소화를 요구한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안전 검증의 수준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SMR은 아직 충분한 상업운전 경험이 없는 FOAK(First-of-a-Kind) 기술이다.
설계 개념은 존재하지만 실제 장기간 운전 경험과 대규모 사고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경수로 규제를 “혁신에 맞지 않는 낡은 틀”로 규정하고 위험도 평가를 통해 일부 안전 요구사항을 대체하려는 시도가 증가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일수록 더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일 수 있다.
“혁신 기술이므로 기존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하면서 실제 검증보다 모델 기반 분석과 가정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체르노빌 사고 역시 “그 정도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확신 속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최근 이루어지는 기존 원전의 수명연장 과정이다.
수명연장은 단순히 설비를 더 오래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설계수명 동안 누적된 열피로, 재료 취화, 응력부식균열(SCC), 케이블 열화, 콘크리트 구조물 노화 등 장기간 운전에서 발생하는 복합적 위험을 다시 평가하는 절차다.
따라서 수명연장은 신규 원전보다 더 엄격한 검증이 요구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평가 구조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특히 중대사고(severe accident)를 법적·제도적으로 다루는 방식에서 중요한 문제가 나타난다.
원안위 고시 사고관리범위 규정상 중대사고 예방능력과 완화능력을 평가하도록 되어 있지만, 실제 “사고로 인한 핵연료 손상을 금지”(원안위고시 제2026-1호, 6조 7조)하는 전제가 강조되면서, 중대사고 가능성을 낮게 도출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중대사고를 법적으로 면제해 준 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사고를 예방하는 것과 사고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축소하는 것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규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을 전제로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발생할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준비해야 한다.
체르노빌은 사고 가능성을 과소평가한 결과였다.
특히 위험도 기반 평가(PRA)는 객관적 숫자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떤 사고 시나리오를 포함할 것인지, 어떤 고장을 제외할 것인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중대사고 위험도를 높게 평가할수록 추가 설비 투자, 보강공사, 운전 제한, 심지어 수명연장 불허 가능성이 발생한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위험도를 낮게 산정할 유인이 존재하나 원안위의 입장은 사업자의 입장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이 문제는 다수호기(multi-unit) 환경에서 더욱 심각해진다.
한국 원전은 대부분 한 부지 내에 여러 호기가 밀집되어 있다.
고리, 한빛, 한울, 월성 모두 대표적 다수호기 단지다.
그러나 많은 안전성 평가는 여전히 단일호기 중심으로 수행된다.
실제 사고는 단일호기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지진, 해수취수 상실, 공통 전원 상실, 화재와 같은 외부 사건은 여러 호기에 동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다수호기 위험의 대표 사례였다.
사고는 하나의 원자로 문제가 아니라, 복수호기 동시 손상과 공통원인 고장(common cause failure)의 결과였다.
미국은 이 사고 후 즉시 연방규정에 이를 반영했다.(10CFR100.11)
그러나 현재 수명연장 평가에서 이러한 다수호기 시나리오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
원안위는 2016년 연구해서 다수호기 문제를 반영하겠다고 하고 신고리 5,6(새울 3,4호기) 건설을 허가했지만 10년이 넘도록 현재까지 수백억원의 연구비를 투입하고도 수명 연장이든, 신규 건설이든 심사는 그냥 통과했다.
체르노빌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규제철학의 문제였다.
사고는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안전을 낙관적으로 해석하는 순간 시작될 수 있다.
“중대사고는 없을 것”이라는 믿음은 안전철학이 아니라 희망사항일 수 있다.
체르노빌 40주년은 단순한 추모의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의 규제체계가 실제 위험을 충분히 다루고 있는지 점검하라는 요구다.
SMR과 같은 새로운 기술, 그리고 노후 원전 수명연장 모두 산업 논리가 아니라 안전 원칙 위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규제는 산업 발전을 방해하는 장벽이 아니라, 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을 통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다.
우리가 체르노빌을 기억한다고 말한다면, 지금처럼 안전철학이 오히려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그 기억은 추억이 아니라 규제철학 속에서 살아 있어야 한다. 안전은 선언이 아니라 검증이다.
그리고 검증은 언제나 가장 불편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이정윤 논설위원
출처 : 산경e뉴스 데스크칼럼 2026-04-26
https://www.ske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51808